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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 김재열 포기 안 한 선배, 왜 사비까지 썼나 [기자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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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 김재열 포기 안 한 선배, 왜 사비까지 썼나 [기자의 눈]
  • 김진수 기자
  • 승인 2024.07.08 0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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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김진수 기자] 유명 일본 애니메이션 ‘슬램덩크’에서 정대만(일본명 미쓰이 히사시)이 포기하지 않고 농구 인생을 이어 나갈 수 있었던 건 흰머리의 안 선생님(안자이 미츠요시) 덕분이다. 안 선생님은 끊임없이 정대만에게 믿음을 줬고 농구를 포기했던 정대만은 마음을 돌렸다. 누굴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은 드라마틱하게 바뀔 수 있다.

지난 6일 2024 신한 쏠(SOL)뱅크 KBO 프로야구 올스타전(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나눔 올스타의 4번째 투수로 등판한 김재열(28·NC 다이노스)은 ‘인간 승리’의 아이콘이다.

그는 부산고를 졸업하고 2014년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했지만 한 번도 1군에 오르지 못한 채 2017년 11월에 방출됐다. 이듬해 방위산업체에서 산업기능요원으로 군 복무를 했고 우여곡절 끝에 다시 운동을 시작했다. 사회인 야구에서도 뛰며 프로에 대한 꿈을 놓지 않았다.

나눔올스타 김재열이 6일 오후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진행된 2024 KBO리그(프로야구) 올스타전에서 교체 등판해 투구를 하고 있다. [사진=스포츠Q(큐) 손힘찬 기자]
나눔 올스타 김재열이 6일 오후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진행된 2024 KBO리그(프로야구) 올스타전에서 교체 등판해 투구를 하고 있다. [사진=스포츠Q(큐) 손힘찬 기자]

결국 2020년 입단 테스트를 통과하며 KIA(기아)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복귀했다. NC로 이적한 올해 그는 KBO리그에서 손꼽히는 불펜 투수로 활약하고 있다.

사실 그의 프로 복귀에는 든든한 조력자가 한 명 있었다. 롯데에서 동고동락하던 팀 2년 선배 박휘성(32)이었다. 그 역시 2018년 10월 방출된 투수. 하지만 그는 프로재진입을 노리고 곧바로 혼자 몸을 만들기 시작했다. 김재열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 전화를 걸었다. 김재열은 그 당시만 하더라도 야구에 집중하지 못했다. 방위산업체 업무가 고된 데다 금전적으로 힘들어했다고 한다.

김재열의 군 복무가 1년쯤 남은 어느 날, 박휘성이 다시 연락해 이렇게 말했다. “네가 아직 나이가 어린데 형이 생각할 때 너무 실력이 아깝다.” 김재열은 어떻게 야구를 시작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나눔올스타 김재열이 6일 오후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진행된 2024 KBO리그(프로야구) 올스타전에서 교체 등판해 투구를 하고 있다. [사진=스포츠Q(큐) 손힘찬 기자]
나눔 올스타 김재열이 6일 오후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진행된 2024 KBO리그(프로야구) 올스타전에서 교체 등판해 투구를 하고 있다. [사진=스포츠Q(큐) 손힘찬 기자]

최근 스포츠Q와 연락이 닿은 박휘성은 그 당시를 떠올리며 "제가 금전적인 건 생각하지 말라고 했어요. 제가 다 해결해준다고 했죠”라고 했다.

박휘성은 자신이 운동하던 부산의 한 PT(퍼스널 트레이닝)센터에 김재열을 데리고 갔다. 둘은 매일 같이 훈련했다. 부족한 부분은 서로 채웠다.

방위산업체에서 2교대 하던 김재열은 일과를 마치고 센터를 찾았다. 롯데에서 방출 후 반여농산물도매시장에서 야채 배송 아르바이트를 하던 박휘성은 오후 1시쯤 일과가 끝나면 센터로 갔다. 오전 5시 30분에 출근하는 고된 일정이었지만 하루도 빼먹지 않았다.

당시 박휘성의 월급은 200여만 원. 결혼한 몸이었던 그는 하루 용돈 만 원으로 김재열과 점심과 저녁밥을 해결했다. 편의점에서 30분 동안 고민했지만 결국 사 먹은 건 삼각 김밥과 컵라면 등이었다. 그래도 프로로 다시 가고 싶다는 일념 아래 밤 11시까지 굵은 땀방울을 흘렸다.

결국 이때의 시간을 발판으로 김재열은 다시 프로가 됐고 감독 추천으로 올스타로 선정됐다. 김재열은 박휘성을 “은사 같은 형”이라고 말한다.

박휘성은 3개 구단의 테스트를 받긴 했지만 프로에 재입성하진 못했다. 하지만 야구와 연을 이어가고 있다. 2020년 물금고에서 코치로 부임한 그는 올해 5월부터는 부산공고로 옮겨 선수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렇다면 박휘성 코치는 왜 이렇게까지 김재열을 챙겼을까. 프로 시절에는 “살아온 스토리가 비슷해” 둘이 각별했다고 한다. 사실 박휘성 코치는 2번의 방출 경험이 있다. 첫 번째 방출되고 나서 6개월 있다가 다시 팀에 들어갔는데 그 6개월 동안 잠시 경험한 사회라는 곳이 만만치 않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무엇보다 김재열 옆에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박휘성 코치는 이렇게 말했다. “재열이는 정말 실력이 아까운 친구였어요. 같이 힘을 모으면 프로가 다시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죠. 나중에 재열이가 많이 고마워하더라고요. 제가 길잡이가 돼줬다고요. 저도 재열이한테 고마워요. 그렇게 잘돼서 제가 틀리지 않다는 걸 증명해 줬거든요. 동생이지만 참 강한 친구예요.”

김재열은 모자에 이니셜 ‘P’를 쓴 채 마운드에서 공을 던진다. 박휘성 코치의 성(姓) 이니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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