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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포커스] 안데스 전사들이 보여준 응전과 투혼, 이것이 한국축구의 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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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포커스] 안데스 전사들이 보여준 응전과 투혼, 이것이 한국축구의 활로다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4.06.29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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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팀 브라질 상대로 무서운 응집력…승부차기서 아쉬운 패배

[스포츠Q 박상현 기자] '라 로하' 칠레 축구가 잡을 수 있었던 브라질이라는 대어를 아쉽게 놓쳤다. 이와 함께 칠레의 위대한 도전도 16강에서 끝났다.

칠레는 29일(한국시간) 브라질 벨루호리존치에서 벌어진 2014 국제축구연맹(FIFA) 브라질 월드컵 16강전에서 전후반 90분과 연장 전후반 30분 등 120분 동안 1-1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아쉽게 2-3으로 져 8강 진출 티켓을 홈팀 브라질에 내줬다.

칠레는 전반 18분 다비드 루이스에게 선제골을 내줬지만 전반 32분 알렉시스 산체스의 한방으로 동점을 만들며 브라질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브라질을 이끌고 있는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 감독이 경기 직전 왜 칠레와 경기를 꺼려했는지 알 수 있었던 경기였다. 스콜라리 감독은 경기가 끝난 뒤 독일 일간지 빌트와 인터뷰에서 "예상했던대로 고전했다. 칠레는 조직력이 매우 뛰어난 팀이었다. 강력한 상대였지만 우리가 경기를 잘 풀었다"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 일방적인 브라질 응원 속에서 굴하지 않은 '다윗' 칠레

브라질이 남미는 물론이고 전세계 축구를 통틀어 거대한 '골리앗'이라면 칠레는 '다윗'과 같다.

마르셀로 살라스나 움베르토 수아조 등 특급 스타를 배출한 칠레 축구이지만 남미에서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등 틈바구니에서 끼어있었다.

코파 아메리카에서도 단 한차례 우승 기록 없이 준우승만 네차례에 그쳤을 정도로 남미에서는 다크호스 정도에 불과했다. 2007년과 2011년 등 최근 두차례 대회에서는 8강에서 만족해야만 했다.

역대 FIFA 월드컵에서도 자국에서 열렸던 1962년 대회에서 3위를 차지한 것을 제외하고는 단 한번도 8강을 경험해보지 못했다. 최근에 출전했던 2010년 남아공 대회에서도 16강에서 진군을 멈췄다. 브라질 월드컵 이전에 치러진 여덟차례 출전 가운데 원정에서 16강에 오른 것이 1998년 프랑스 대회가 처음이었을 정도다.

그런 칠레가 무려 5개의 별을 달고 있는 브라질과 맞섰다. 브라질 월드컵 직전까지 브라질을 상대로 한 역대 A매치 전적은 68전 7승 13무 48패. 2000년 8월 16일 이후 단 한차례도 브라질을 넘어선 적이 없었다.

칠레는 역대 월드컵에서도 브라질과 세차례 맞붙었지만 모두 졌다. 1962년 월드컵 4강전에서 브라질에 2-4로 진 것을 비롯해 1998년 프랑스 월드컵과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모두 16강에서 만나 각각 1-4, 0-3으로 완패했다.

이번에는 장소도 삼바 리듬이 가득한 브라질 벨로호리존치였다. 홈팬들의 일방적인 응원이 이어졌다. 그러나 칠레의 '붉은 전사'는 절대 굴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브라질 관중들의 응원을 자기 것인양 생각하며 거칠게 몰아세웠다.

◆ 스리백이라고 수비만 할 줄 알았나? 칠레판 철퇴축구

칠레(Chile)란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나라 이름도 있지만 칠리 고추란 뜻도 있다. 이날 칠레는 마치 매운 칠리 고추와 같았다. 유니폼처럼 붉은 칠리 고추의 맛을 브라질에게 톡톡히 보여줬다.

칠레의 기본 포메이션은 스리(3)백. 때에 따라서는 파이브(5)백과 혼용하는 수비 안정 후 역습 전술이 칠레의 주된 작전이다. 그러나 칠레는 이미 이번 월드컵을 통해 스리백이 수비 위주의 전술이라는 편견을 완전히 깨버렸다.

120분 내내 볼 점유율은 칠레가 51-49로 근소하게 앞섰고 패스 성공률에서도 72%로 브라질(68%)에 앞섰다. 물론 공격 시도는 브라질 쪽이 많았다. 브라질은 이날 무려 23개의 슛을 때렸고 이 가운데 13개가 칠레의 골문 안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칠레는 6개의 선방을 보여준 클라우디오 브라보의 활약 속에 네이마르 등 세계 최고의 공격진을 앞세운 브라질의 예봉을 단 한 골로 막았다.

오히려 한방 능력은 칠레가 우수했다. 칠레는 13개의 슛 가운데 5개를 유효슛으로 기록했다. 이 가운데 하나가 골로 연결됐다. 연장 후반 14분에는 마우리시오 피니야의 결정적인 오른발 슛이 크로스바를 맞고 나오며 브라질의 등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만약 피니야의 슛이 조금만 아래쪽으로 향했더라면 이날 승리는 칠레의 것이었다.

칠레가 이처럼 브라질을 몰아칠 수 있었던 것은 스리백이 옛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과감하게 변화를 선택했기에 가능했다. 포백이 세계 축구의 대세라고는 하지만 그 흐름 속에서 나름 스리백의 경쟁력을 찾아냈던 것이다. 현재 스리백을 과감하게 채용한 팀들이 이번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것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 죽도록 뛴 칠레, 투혼을 불사르다

이날 칠레 선수들은 그야말로 사력을 다해 뛰었다. 물론 연장 전후반까지 120분 넘게 뛴 탓도 있겠지만 골키퍼를 제외하고 풀타임을 소화한 모든 필드 플레이어가 10km 이상을 뛰었다. 이 가운데 마르셀로 디아즈가 15.524km로 양팀을 통틀어 가장 많이 뛴 것으로 기록됐다.

또 칠레에 유일한 골을 안긴 산체스는 찰스 아랑기스와 함께 모두 68회의 전력질주를 기록했고 곤살로 하라는 최고 시속 31.25km로 달려 브라질을 위협했다. 브라질에서는 헐크 56회, 네이마르 55회, 루이스 구스타부 51회의 전력질주를 기록해 대조를 이뤘다.

특히 칠레는 조직력이 빛났다. 개인기에서는 도저히 브라질을 따라갈 수 없는 칠레는 팀으로 똘똘 뭉쳐 브라질을 상대했다. 개인보다 위대한 것이 팀이라는 것을 칠레가 다시 일깨워준 셈이다. 진정한 '원팀'의 조직력이 빛났다.

또 칠레의 강한 조직력은 옛 유물이 된 스리백을 다시 보게 만들었다. 아랑기스와 마르세로 디아스, 아르투로 비달 등 미드필더들이 수비에 적극 가담하면서 3명의 중앙 수비수에게 부담을 덜어줬다. 중앙 수비와 윙백, 미드필더의 유기적인 플레이는 공격 일선에 있는 산체스의 공격력을 극대화시키기에 충분했다.

◆ 12년전에 이와 비슷한 팀이 있었다

칠레가 보여준 모습은 마치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어느 한 팀과 닮았다.

칠레에 전설적인 골키퍼 브라보가 있었듯이 12년 전 그 팀은 바로 이운재라는 골키퍼가 든든히 골문을 지키고 있었다.

또 당시 그 팀은 김태영, 홍명보, 최진철의 강력한 스리백을 바탕으로 이영표와 송종국이라는 윙백의 유기적인 플레이가 돋보였다. 중앙에는 김남일, 이을용 등이 있었고 박지성과 설기현, 안정환, 황선홍 등이 활발하게 움직이면서 상대를 괴롭혔다.

이 팀 역시 스리백을 사용했다. 거스 히딩크 감독이 어떻게 해서든 포백 시스템을 정착시켜보려 애썼지만 실패하면서 스리백으로 돌아선 것이 오히려 전력을 극대화시켰다. 그리고 이 팀은 4강이라는 업적을 세웠다.

이후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는 비록 원정 16강에 실패했지만 원정 첫 승이라는 성과를 거뒀고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비로소 16강 진출이라는 대위업을 달성했다.

지난 세차례 월드컵에서 이 팀이 아시아 축구의 강인함을 월드컵을 통해 알릴 수 있었던 것은 척척 들어맞는 조직력과 유기적인 플레이는 물론이고 투혼을 불살랐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투혼 넘치는 플레이에 모두가 열광했다.

하지만 이 팀은 정작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투혼이 넘치는 플레이를 보여주지 못했다. 중앙 수비는 계속 삐걱거렸다. 중앙 수비와 중앙 미드필더의 유기적인 플레이가 되지 않아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중앙을 계속 내줬다. 손흥민이라는 인재를 앞에 두고도 제대로 된 공격을 풀어가지 못했다.

대한민국 축구였다.

◆ 한국 축구가 보여줬어야 했던 그 모습, 칠레에서 보다

칠레는 남미의 다크호스 정도의 전력이지만 언제나 칠레 국민들에게 큰 기쁨을 주어왔다.

1962년 칠레 월드컵 당시 칠레는 대지진으로 모든 국민이 큰 도탄에 빠져있었다. 월드컵 개최 2년 전인 1960년에 찾아온 발디비아 지진은 리히터 규모 9.5~10을 기록, 역대 관측사상 세계 최대 지진을 기록했다. 하지만 칠레는 이에 굴하지 않고 대회를 훌륭하게 치러냈고 칠레 대표팀은 역대 최고 성적인 3위에 올랐다.

칠레는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당시에도 대지진을 겪었다. 리히터 규모 8.8으로 1962년 이후 가장 강력한 지진으로 기록됐다. 당시 칠레는 비상사태가 선언됐고 7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남아공 월드컵 개막 4개월여 전에 생긴 이 지진으로 많은 칠레 국민들이 아픔을 겪었지만 칠레 축구는 이에 굴하지 않고 16강까지 진출하며 기쁨을 선사했다.

이런 점은 한국도 닮았다. IMF 사태로 모두가 힘겨워했고 그 상처가 치유될 무렵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썼다. 그러나 한국 축구는 세월호 대참사로 슬픔에 잠겨있던 국민들에게 위안을 주지 못했다.

한국이 국민들에게 기쁨을 주지 못한 것은 제대로 된 전술도 없었고 어떻게 풀어나가고자 하는 의지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러시아와 첫 경기에서 1-1로 비긴 것을 제외하고는 인상적인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알제리와 경기에서는 치욕스러운 2-4 패배를 당했다. 알제리가 공격적으로 나올 것이 뻔한 경기에서 상대가 선수 5명을 바꿔 출전하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실력이 부족하고 상대에 대한 대비가 제대로 되지 않았으니 참패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벨기에전 역시 한국은 수적인 우세 속에서도 벨기에를 상대로 한 골을 넣지 못했다.

결정적으로 한국 축구는 브라질 월드컵에서 제대로 싸울 준비조차 하지 못했다. 브라질 월드컵을 앞두고 무려 감독 2명을 교체했다. '원골, 원스피릿, 원팀'을 주창했지만 하나로 뭉쳐지지도 않았다. 그러다보니 전술은 고정됐고 변화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호르헤 삼파올리 칠레 감독은 "우리는 개최국 팬들로 가득찬 경기장에서 모든 것을 다했다. 우리 선수들은 역사를 만들었고 그들이 자랑스럽다"며 "볼 점유율을 높게 가져가려 노력했고 경기가 끝날 때까지 브라질을 상대로 당당하게 맞섰다. 크로스바를 맞지 않았더라면 경기 결과가 어떻게 됐을지 모르는 일"이라며 당당한 패배에 대해 만족해했다.

그의 첫 마디는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었지만 선수들에 대한 자부심이 묻어났다.

반면 홍명보 감독은 "제대로 준비를 하지 못했다. 어린 선수들이 경험을 쌓는데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한국 축구팬들은 홍명보 감독의 입을 통해 바로 삼파올리 감독의 말을 그대로 듣고 싶었을 것이다.

한국 축구가 재도약하기 위해서는 브라질을 혼쭐 낸 칠레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세계축구의 흐름에 당당히 응전하고 강팀보다 더 강한 투혼을 발휘하는 안데스 전사들에게서 한국축구를 활로를 찾을 수 있었다.

tankpark@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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