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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스페셜] (下) '노력형 MVP' 이만수가 말하는 이승엽 스윙, SK와이번스 감독 이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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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스페셜] (下) '노력형 MVP' 이만수가 말하는 이승엽 스윙, SK와이번스 감독 이임식
  • 민기홍 기자
  • 승인 2016.09.15 08: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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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진출 못해 아쉬워, 후배들 야구일지 쓰길...야구 선배로 '승부조작'에 드릴 말씀 없다"

◆ 노력으로 일군 명예, 다시 태어나도 포수 

프로야구 35년 역사상 최고의 포수로 불리지만 이만수 전 감독은 “천재는 아니다”라며 스스로를 낮춘다.

“선수 생활 16년간 위장병을 달고 살았어요. 그만큼 노력했어요. 힘으로만 야구 했어요. 역기 있죠. 25㎏짜리 봉을 양쪽에 3개씩 달고 들었어요. 대학생 때 서울 올림픽 선수촌아파트에서 살았는데 연애하러 새벽에 일어나 장안동까지 1시간을 뛰어갔어요. 그렇게 운동했습니다. 와이프가 그래요. 노력한 거 치고는 정말 소질이 없는 거라고.”

야구를 시작한 건 친구 덕분이었다. 대구중 1학년 때 “야구부원을 모집하니 테스트를 한다”는 교내방송을 들었다. 오후 수업을 듣지 않아도 된다는 소리에 운동장으로 뛰쳐나갔다. 그 친구는 떨어졌다고. “나는 달리기를 정말 잘 했다”며 “운동회를 하면 늘 공책과 연필을 받던 놈이 나였다”고 입문 당시를 돌아본다.

▲ 선수 이만수는 프로야구 35년 역사상 최고의 포수다. 그는 "다시 태어나도 포수를 하겠다"며 "어린 친구들이 힘든 걸 피하는 현상이 아쉽다"고 말했다. [사진=삼성 라이온즈 제공]

정말 야구를 못했단다. “매일 하루 4시간만 자고 운동했다. 방법을 잘 모르고 무식하게 운동만 해 아쉽다”며 “생각해보면 내가 한 건 노동”이었다고 귀띔한다.

"TV에서 나오는 장면을 보면 내 타격폼이 정말 아니라고 느낀다"며 ‘셀프 디스’한다. 군인 아버지의 튼튼한 몸을 물려받아 통뼈란다. 선배들한테 맞아도 안 부러졌고 초등학교 4,5학년 때 유도를 잠깐 한 게 유연성을 기르는데 도움이 됐다는 설명도 잇는다.

어린 친구들이 포수를 기피하는 현상은 안타깝다고. "다시 태어나도 또 마스크를 쓰겠다"고 망설임 없이 말한다. 그는 “캐처야말로 투수, 야수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최고의 포지션이다. 생각하는 범위가 넓으니 리더가 되기에도 적격”이라며 “어린 친구들이 힘들어서 잘 안 하려 해서 아쉽다. 좋은 포수는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 "이승엽 스윙 컨닝, 장효조같은 타자는 지금도 없다"

해외 진출 무산, 삼성의 한국시리즈 준우승의 한(恨), 연봉 협상에서의 억울함 등 현역 시절로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통산 타율 0.331에 빛나는 역대 최고 교타자 고(故) 장효조와 국민타자 이승엽을 가까이서 보고 느낀 점도 귀띔했다.

▲ 2012년 SK 사령탑 시절 인천으로 원정 온 삼성 이승엽(왼쪽)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이만수 전 감독. [사진=삼성 라이온즈 제공]

“메이저리그 못 가본 건 참 아쉽습니다. 외국에 나가 볼 기회는 있었어요. 1984년이었는데 일본프로야구(NPB) 긴테쓰 버팔로스(현 오릭스 버팔로스)에서 오라고 했어요. 그때는 반일 감정이 정말 심해서 나갈 엄두를 못 냈죠.”

“삼성이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못했다고 아무리 잘 해도 연봉이 크게 오르지를 않는 겁니다. 하하. 당시에는 연봉이 전년 대비 25% 이상 인상이 안 됐어요. 그 때는 참 매번 고비를 못 넘기니 쫓겼죠. 이것도 지나고 보니 참 아무 것도 아닌데.”

“효조 형같은 타자는 지금도 없어요. 달인이에요 달인. 나는 배트가 그렇게 부러지는데 그 형은 방망이 한 개만 계속 썼어요. 1995년에 이승엽이 들어왔다 말입니다. 스윙이 너무너무 좋은 겁니다. 근데 몇 살 차이입니까. 한참 어린 친구한테 묻기는 쪽팔리고. 그래서 맨날 커닝했어요. 타격폼 바꿔보려 노력했는데 안 되대요. 한번 밴 습관이 안 바뀌는 겁니다 그렇게.”

▲ 2010년 대구 시민구장에서 열린 KBO리그 올스타전에서 시포, 시타자로 나선 이만수(왼쪽), 고 장효조. 이만수는 "효조형같은 타자는 지금도 없다"고 단언한다. [사진=삼성 라이온즈 제공]

◆ 야구 못 해도 실패한 인생 아냐, 어떤 조직에 가도 적응할 수 있다

이만수는 재능기부를 하면 꼭 학부모를 대상으로 강의한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가 요지다.

“사회 나가더라도 뭐든 합니다. 야구로 성공 못해도 다른 조직에 가면 다 해낼 수 있습니다. 새벽에, 밤에 운동을 했던 친구들이 무얼 못하겠습니까. 톱이 못 되어도 인생에서 실패하는 게 아닙니다. 수많은 가지가 있어요. 요즘에는 야구 재능만 갖고도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중국 야구시장이 큽니다. 지도자 400명이 필요하답니다.”

“부모님들께 그럽니다. 아들들이 해야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다 할 수 있다고. 저 보세요. 미국 가서 영어도 했잖아요. 행정에 대해서는 무얼 알았겠습니까. 사람이 모르면 공부하면 됩니다. 나보다 더 똑똑한 너희들도 다 해낼 수 있다고 전합니다.”

▲ 이만수 KBO 육성부위원장은 학생 선수를 대상으로 강연도 한다. 그는 학부모들에게 '어떤 조직에 가도 잘 적응할 수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사진=헐크파운데이션 제공]

기록과 독서는 특별히 강조했다.

“야구를 잘 하려면 일지를 써야 합니다. 저는 일기와 야구일지를 한 번도 밀리지 않고, 하루도 빼놓지 않고 썼어요. 그래야 상대의 장단점을 알지요. 중고교 때 맞붙는 선수들하고 프로에서 마주칠 텐데요. 그리고 책을 봐야 합니다. 다른 사람 인생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으니까요. 그래야 야구를 그만두고라도 적응할 수 있습니다.”

◆ '아름다운 이별' "SK 감독 이임식 참석은 내가 봐도 잘한 일"

2014년 10월 23일 부로 이만수는 공식적으로 ‘전 감독’이 됐다. 인천 송도 컨벤시아에서 열린 제5대 사령탑 김용희 감독 취임식에 앞서 이임식이 열려 눈길을 끌었다. 구단과 지도자의 이별은 대부분 모양새가 나쁘기 마련인데 그는 활짝 웃으며 SK의 앞날을 응원해 박수를 받았다.

무척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임식은 지나고보니 내가 생각해도 참 잘 한 것 같아요. 허허. 최창원 구단주께서 ‘최초로 하면 안 되겠냐’고 제안하셨거든요. 생각해보니 좋을 것 같더라고요. 원수 될 필요가 있나요. 야구계에서 또 만날 사람들인데. 아들, 며느리가 와서 꽃다발을 주는데 차마 울지는 못하겠더라고요.”

▲ 2014년 10월 김용희 감독의 취임식에 앞서 이만수 전 감독의 이임식이 열렸다. 모양새가 좋지 않은 그간의 방식과 다른 구단과 지도자의 이례적인 이별이었다. [사진=스포츠Q DB]

인천은 지도자 이만수에게 파란만장한 곳이다. 수석코치 부임 첫 해인 2007년 만원관중 앞에서 팬티를 입고 그라운드를 돌았다. 코치로 4회, 감독대행으로 1회, 감독으로 1회 등 6년 연속 SK의 한국시리즈 진출에 기여한 좋은 기억이 있다.

반면 2011년 감독대행이 됐을 때 전임 김성근 감독의 팬들로부터 입에 담기 힘든 욕설, 비난을 온몸으로 받아낸 아픈 기억도 공존한다.

“인천에서 벌써 10년째네요. 저는 고향이 세 군데입니다. 대구, 시카고, 인천이죠. 선수는 선수 마음만 알아요. 코치는 감독 마음을 모르고. 감독은 또 오너 마음을 모릅니다. 살아보니 이제는 좀 알 것 같아요. 이렇게 인생 공부를 하는 것 같네요.”

◆ "선배가 본을 못 보여" 야구인 자숙하자

인터뷰는 한국 아마추어 야구의 문제점을 논하는 것으로 막바지로 달했다.

"제가 이것저것 물어보면 아이들이 대답을 잘 못 해요. 토론이 참 좋은 건데. 아직까지도 주입식 교육인거죠. 지도자, 학교장 모두 성적이 중요하니 눈앞의 승부에 집착하고. 이기는 야구가 중요하니까 오른손 스윙이 더 좋은데도 우투좌타가 많이 나오고요."

▲ 어퍼스윙으로 통산 252개의 공을 담장 밖으로 날려보낸 이만수. 그는 "과거로 돌아간다면 타격폼을 정말 바꾸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삼성 라이온즈 제공]

“마이너리그 코치 시절 이야기입니다. ‘당신은 선수들의 단점밖에 안 보이나’라는 소리를 들었어요. 아니, 장점이 안 보이는 겁니다. 몇 달이 걸리니 달리지더라고요. 보려 하니 보입니다. 우리나라는 지적을 주로 해요. 그래야 예리하다고 하고 유능한 지도자로 비치죠. 미국은 개성 있게 치는데. 우리는 자꾸 무언가 만들어 내려고 합니다.”

승부조작, 스포츠도박 등으로 프로야구가 얼룩진 데 대한 사과도 전했다.

“야구인으로서 미안하지요. 팬들께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자숙해야 합니다. 내가, 우리가 본을 못 보여줘서 그런 겁니다. 선배들이 그렇게 했기 때문에 후배들이 그런 겁니다. 좋은 모델이 없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제가 더 봉사하겠습니다.”

야구로 행복을 전하는 전도사 이만수와 2시간에 걸친 대화는 쏜살같이 흘러갔다.

[취재 후기] "내일이 궁금한 사람이 되자"고 했던 분의 말을 새기고 살아간다. 그런데 이만수 전 감독이 "내 미래가 궁금하다. 20년 뒤는 어떨까"라고 했다. "50, 60대도 얼마든지 자기 인생을 살 수 있다"면서. 서울시가 홍보대사를 제대로 뽑은 것 같다. '헐크'로부터 기를 받았다.

▲ 이만수는 "선배들이 본을 보이지 못해 야구계에 불미스런 일이 생겼다"며 "그래서 내가 더 봉사하며 살겠다"고 약속했다.

[SQ스페셜] (上) '야구전도사' 이만수의 행복론, 인생2막 헐크는 웃는다 로 돌아가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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