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자 Tips!] 연세대 수아레스, 상명대 바디, 세종대 즐라탄, 건국대 지루, 국민대 훔멜스, 삼육대 사비. 공 좀 찬다는 학생들이 SNS를 뜨겁게 달궜다. 대학교뿐인가. 야탑 존 테리, 행신동 산체스, 하안동 네드베드, 십정동 리베리 등 동네축구 기술자들도 온라인 스타가 됐다. '고고고알레알레(고알레)'의 손을 거친 덕이다. 드론을 띄워 축구중계를 서비스하는 고알레는 페이스북 좋아요 12만, 유튜브 구독자 1만8000명을 보유한 ‘슈퍼 스포츠 스타트업’이다. “아마추어 축구문화를 바꾸고 싶다”는 고알레 대표 3인을 만났다. 젊은이들이 열광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스포츠Q 글 민기홍·사진 이상민 기자] “아, 네이밍이요? 골방에서 우리끼리 나눈 이야기인데. 재밌잖아요.”
‘공릉동 무리뉴’ 윤현중 대표가 “이런 대화가 퍼져서 실제로 구현되다니 이게 희열이 아닐까 싶다”며 웃었다. ‘장안동 토레스’ 이병욱 대표와 누워 나눈 잡담이란다. ‘상도동 말디니’ 박진형 대표가 “누구나 가슴 속에 꿈꾸는 스타가 있지 않느냐”며 “별명은 영상 주인공의 의사를 묻고서 만들어진다”고 귀띔했다.
말하는 대로다. 고알레 3인은 생각하면 움직인다. 그렇게 아마추어 축구 문화를 조금씩 바꿔가고 있다.
‘합리적인 가격으로 추억을 선물하라’가 고알레의 사명이다. 축구경기를 영상으로 남기는 게 더 이상 프로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동호회, 조기축구회 모두 편하게 연락하라 외친다. 1팀 2시간 기준 20만원. 경기 전체 영상과 5분짜리 하이라이트 영상을 편집해 일주일 내로 전달한다.
내 움직임을 화면으로 확인하는데 1인당 1만원이라니. 참 부담 없는 가격이다.
◆ 1등 여행사 뛰쳐나온 공릉동 무리뉴, 와룡봉추와 의기투합
'범 1986년생'인 셋은 서울 동대문구에 있는 이병욱 대표의 집에서 합숙한다. 스타트업이라 할말이 너무 많아서라고.
헤어져도 ‘톡질에 톡질’이니 “이럴 바에야 합치는 게 낫다”고 의견을 모았다. 놀랍게도 이 대표의 어머니가 함께 산다. 전부 미혼이니 가능한 일.
셋은 “감사 또 감사하다”며 “어머님은 젊은 친구들의 열정을 지지하는 분”이라고 특별히 강조했다.
윤현중 대표가 아이디어 뱅크다. 국내 톱 클래스 여행사에서 근무하던 그는 지난해 사직서를 던지고 나왔다. 마침 드론이 이슈일 때였다. 그는 “원래 새로운 것에 관심이 많다. 저걸로 내가 좋아하는 축구를 중계해보면 어떨까 싶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2015년 12월 정식으로 드론을 띄웠다. 6개월 준비 기간 동안 홀로 명함을 돌리며 부지런히 영업했다.
고등학교 친구인 이병욱 대표, 대학교 친구인 박진형 대표를 유혹했다. 반드시 둘이어야만 했다고. “하나는 와룡(臥龍), 하나는 봉추(鳳雛)인데 누가 와룡이고 봉추인지는 잘 모르겠다”는 농담을 잇더니 “인격, 현명함 어디 하나 빠지는 게 없는 친구들이다. 박 대표는 브랜딩과 소통능력에서, 이 대표는 추진력과 동기부여 면에서 탁월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이병욱 대표는 외국계 광고대행사에서 광고기획자(AE, Account Executive)로 재직하다 사표를 썼다. 영국에서 투어리즘 마케팅 석사 공부를 하던 박진형 대표도 중도 귀국했다.
둘은 “아이디어를 내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면서 “윤 대표는 실행력에 브레이크가 없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유연히 받아들인다”고 제안을 받아들인 이유를 밝혔다.
베타테스트를 할 때만 해도 팀명은 촬영 작업에 초점을 맞춘 '마이 스페셜 모먼트'였다. 윤현중 대표가 런칭에 맞춰 이름을 바꿨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공식 주제가인 리키 마틴의 '더 컵 오브 라이프(The Cup of Life)'에서 고고고알레알레알레를 땄다. 이제는 모두가 자연스레 고알레라 줄여 부른다.
◆ 무브먼트, 중도 귀국-사표 제출이 가능했던 이유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는 게, 유학에서 돌아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터.
“익히 알려진대로 광고대행사 일이 정말정말 힘들어요. 막내라서 혼자 남아 새벽 5시까지 일을 했던 날이 있었어요. 그런데 이 시간을 제게 온전히 투자한다면, 딱 3분의 1만이라도 쏟아도 제가 그리는 꿈에 가까이 갈 수 있겠더라고요. 평생직장 개념이 없잖아요 이 세대는. 에너지가 있을 때 뭐라도 해보고 싶었어요."
"잊을 수 없는 날이 있어요. 사직서 쓰고선 한여름이었거든요. 앉아서 그림을 그리는데 땀이 뻘뻘 쏟아지는데도 너무 행복한 거예요. 요새는 밤 새는 날이 많아도 힘들지 않아요. 같은 생각을 하는 친구들과 함께 있어서요.” (장안동 토레스 이병욱 대표)
"여행업에 관심이 많았어요. 업계 1등 여행사에서 인턴을 했는데 정규직 전환이 안됐어요. 하필이면 저만요. 그 기업은 왜 내가 아니라고 했을까를 생각하다가 여행업이 시작된 영국에서 투어리즘 마케팅을 공부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그런데 ‘이게 아니구나’ 해서 돌아왔어요. 교과서 훑어보기더라고요."
"우리가 낸 아이디어로 인해 세상에 무브먼트가 생기더라고요. 공감하는 과정을 보면서 희열이 생기는데요. 이건 직장생활하면서 월급 오르고 승진해서 얻는 기쁨과는 조금 다른 형태의 것이 아닐까 싶네요." (상도동 말디니 박진형 대표)
“진형이와 병욱이는 잘 맞을 거라고 봤어요. 아니나 다를까, 코드가 맞더라고요. 무슨 화학작용이 일어나는 줄 알았어요. 전 계속 창업을 생각했어요. 사직서 낼 때 솔직히 조금 무섭기도 했지만요. 세상을 재밌게 바꾸고 싶다는 생각으로 살고 있습니다."
"고알레를 만든 걸 후회해 본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늘 이 선택을 복기하고 반성하죠. 오히려 더 빨리 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공릉동 무리뉴 윤현중 대표)
비범한 사나이들이 뭉치니 금방 시너지 효과가 났다. 윤현중 대표가 사업의 아이디어, 시스템을 준비하고 이병욱 대표가 크리에이티브 분야 콘텐츠 기획을 맡는다. 박진형 대표는 PR, 마케팅, 방송, 홍보를 담당한다.
누리꾼들이 보는 영상은 토레스가 제작하고 해설은 말디니가 한다. 고알레 뼈대는 무리뉴가 구축했다는 소리다.
박 대표에 따르면 결론 도출까지 얼굴 맞대고 언성을 높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없던 일을 만드는 건데 논리와 논리가 부딪히는 건 당연한 거다. 그 과정에서 나오는 자연스런 갈등일 뿐 서로가 싸우거나 서운함을 느낀 건 전혀 없다”며 “멤버가 둘이라면 충돌할지도 모르겠다. 셋이라 중재가 되는 면이 있다”고 웃었다.
◆ '인생 영상' 댓글에 뿌듯, 고알레 와서 떠들자
드론은 대당 200만원 선. 지역마다 쓰는 장비가 달라 여러 업체의 드론 4대를 돌아가며 사용한다. 경기 촬영까지 세팅하려면 400만원이 든다. 야외에서 드론을 띄우려면 무조건 국방부의 촬영 촬영 허가를 받아야 한다. 1시간 충전하면 15~17분 남짓밖에 촬영이 안돼 충전기, 멀티탭을 싸들고 다녀야 한다고.
주말에 주로 경기가 몰리기 때문에 평일에 종일 일한다. 이번 추석 연휴 때도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기획 회의를 했단다. SNS에 올라가는 1분 분량의 영상 편집에만 2~3시간이 소요된다니 그 노고를 짐작할 수 있다.
페이스북에서만 15만 건 이상이 조회된 ‘중앙미드 욕 안먹을 정도만 해봅시다’라는 4분짜리 영상은 하루를 꼬박 바친 결과물이다. 사례 수집, 자막 삽입, 편집은 보통 일이 아니다.
9월 들어 조심스럽게 광고를 넣었다. 윤현중 대표는 “아직 우리가 광고색을 띠어선 안된다고 둘이 그렇게 반대를 했지만 내가 밀어붙였다. 올해 안으로는 비즈니스 모델을 확실하게 만들고 싶다”며 “궁극적으로 누구나 무료로 영상의 주인공이 되는 시대를 꿈꾼다”는 비전을 내놓았다.
‘인생 영상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란 댓글을 볼 때 힘이 난다는 이들이다. 누구나 고알레에 모여서 떠드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목표를 달성하고 있어 감사하다는 3인방이다. "축구에 투자하는 2시간에 간절함이 보인다. 고객께서 즐겁고 재밌게 모든 걸 그라운드에 쏟아내는 걸 보면 축구팬으로서 뿌듯하다"고 입을 모았다.
영상에 출연하는 상도동 말디니를 향해서는 간혹 악플이 달린다. "선수 출신도 아닌데 뭘 안다고 떠드냐"는 것이 요지. 박진형 대표는 "아니면 아니라고 해주시면 그게 좋은 것”이라며 “고알레의 콘텐츠는 오히려 비선출이라 나눌 수 있는 이야기이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고알레 페이스북 담벼락엔 '늘 그렇듯이 저희도 맞는 말인지는 몰라요'라는 메시지가 적혀 있다.
축구를 선택한 이유는 단순하다. 셋 다 좋아하고 글로벌 시장을 무대로 사업을 확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진형 대표는 "야구, 농구로 시장을 키워나가도 좋을 것 같다"는 질문에 "브랜드 확장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본다"고 가능성을 열어뒀다.
◆ 고알레, 각자 꿈으로 향하는 중간 과정
무리뉴, 토레스, 말디니의 미래가 궁금했다. 현재 직함만 같을 뿐 제각기 다른 꿈을 갖고 있다.
“우리 세대는 기성세대보다 세상이 빨리 변하잖아요. 어쩔 수 없이 심한 고저를 경험하겠죠. 연쇄 창업이 꿈입니다. 콘텐츠 비즈니스를 하고 있지만 축구는 사실 아주 작은 부분인 거죠. 성공해서 나중에는 창업하려는 사람들을 돕고 싶어요.” (윤현중 대표)
“전 영화감독이 꿈입니다. 상업영화요. 광고를 한 이유가 있어요. 15초 안에 수많은 기획이 담겨 있잖아요. 고난의 끝에 광고가 있다고 봤어요. 2시간짜리 마스터피스를 만들고 싶습니다." (이병욱 대표)
“저는 여행업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여행이 사람을 바꿀 수 있는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하거든요. 상관없는 것 같아 보이던 커리어들이 모여 지금의 제가 있으니 고알레가 제 꿈과 상관없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박진형 대표)
셋은 “고알레는 각자 다음 목표로 가는 중간 과정”이라고 뜻을 함께 했다. 윤 대표는 양치를 하면서도 경제방송을 듣는단다. 이 대표는 영화업, 박 대표는 여행업 트렌드를 빠짐없이 체크한다고.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 무엇인들 못할까.
공릉동 무리뉴에게 창업을 주저하는 이들을 향한 한 마디를 부탁했다.
“일단 뭐라도 해봐야 하는 것 같아요. 연락이라도 하세요. 나와도 죽지 않아요. 다 살 길이 있던데요. 죽으러 가는 길이 아닙니다.”
거침없는 답변을 듣고 나니 별명을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세 무리뉴 감독(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 떠올랐다.
[취재 후기] 취재 소재가 워낙 좋았기에 어느 때보다 좋은 기사를 쓰고 싶었다. 기자하길 정말 잘 했다고 생각할 때가 종종 있다. 공릉동 무리뉴, 장안동 토레스, 상도동 말디니같은 훌륭한 취재원을 만났을 때다. ‘왜 더 준비하지 못했을까, 좋은 인터뷰어가 되려면 한참 멀었다’며 자책했다. 이병욱 대표가 “새 사무실을 찾고 있다”며 “새해를 이 친구들과 그곳에서 맞고 싶다”고 했다. 윤현중 대표는 “끔찍한 소리 한다. 가족하고 보내야지”라고 면박을 줬다. 삼총사는 어떤 그림을 그릴까. 무척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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