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Q(큐) 이세영 기자] “서브리시브와 공격 모두 최상위 레벨이었다. 이런 선수가 또 나올 수 있을지 싶다.” (신영철 수원 한국전력 감독)
“지금 남자배구 레프트에서 그만한 결정력을 갖춘 선수가 없다.” (진준택 전 한국배구연맹(KOVO) 경기운영위원장)
이 선수의 이름 석 자를 듣자마자 배구인들은 한 목소리로 엄지를 들었다. 1990년 대 이후 한국 남자배구 역사에서 이만한 레프트 공격수가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그 주인공은 바로 ‘갈색 폭격기’ 신진식(44) 전 대전 삼성화재 코치다.
신진식은 한국 남자배구의 ‘살아 있는 전설’에 가깝다. 삼성화재 시절 김세진(현 안산 OK저축은행 감독)과 좌우 쌍포를 구축하며 팀의 슈퍼리그 8연패와 실업배구 77연승을 이끌었다. 프로에서도 맹위를 떨친 신진식은 삼성화재의 2005년 V리그 우승, 2006년 KOVO컵 준우승을 견인하며 이름값을 했다.
신진식은 윙 스파이커 치고는 신장이 188㎝로 작지만, 탄력 넘치는 점프와 긴 팔로 키 큰 상대 수비수에게도 밀리지 않았다. 또, 한 박자 빠른 공격이나 스파이크 정점 때 상대 블로커의 벽을 이용해 터치아웃 유도를 많이 이끌어 낼 정도로 순간 판단 능력과 VQ(배구지수)가 매우 뛰어났다. 높이 뛰어올라 공이 찢어질 정도의 파열음으로 코트에 꽂는 초강력 스파이크는 그야말로 신진식의 전매특허. ‘갈색 폭격기’란 별명이 딱 어울렸다.
슈퍼리그 MVP 4회와 베스트6 3회, 아시안게임 금메달 2개와 은메달 1개. 성균관대 시절부터 15년간 한국배구에 큰 족적을 남긴 신진식이 떠난 자리는 아련한 향수마저 일으키게 한다. 아직 그를 능가하는 공격수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프로배구 여자부에 이어 남자부도 2016~2017시즌부터 외국인 선수를 트라이아웃으로 선발함에 따라 토종 공격수의 비중이 높아졌다. 제한된 예산으로 영입된 외인들은 기량 미달로 한국을 떠났다. 남자부에서만 2명(톤, 마르코)이 짐을 쌌다.
외국인 선수가 주로 공격만 담당하는 라이트 포지션을 맡는데, 레프트 자원이 좋은 팀이 리그 상위권을 달리고 있다. 김학민, 문성민 등 토종 공격수가 막강한 인천 대한항공, 천안 현대캐피탈이 봄 배구를 눈앞에 두고 있다.
하지만 이들을 최고 레프트로 꼽히는 신진식에 비견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신진식은 공격뿐만 아니라 수비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 "제2의 신진식은 없다…한국배구 육성체계 바뀌어야"
이런 이유로 전문가들은 현역 선수 중에 신진식의 뒤를 이을만한 재목이 보이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김건태 아시아배구연맹(AVC) 심판위원은 “신진식의 후려치는 타법은 말채찍에 비유될 정도로 강력하다. 공격 시 아주 이상적인 스윙을 하며, 이는 신진식만의 타고난 재능이다. 탄력이 좋은 체격적인 조건에서 가장 이상적인 타법이기도 하다”며 신진식의 빼어난 공격 능력을 언급했다. 이어 그는 “신장이 작아 블로킹에서 약점을 보였지만 후위에서 수비가 매우 좋다. 기본기가 뛰어나기 때문에 그 정도 수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김건태 위원은 “지금 프로와 아마추어를 통틀어 신진식에 견줄 레프트는 없는 것 같다. 앞으로 이런 선수가 나와야 한국배구가 발전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라이트 공격수로 1980년대를 풍미한 ‘돌고래 스파이커’ 장윤창 경기대학교 교수도 “신진식의 후계자를 콕 집어 언급할 수 없다”며 “신장이 비교적 작았기 때문에 뛰어난 탄력과 체공력, 공격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고 본다. 본인이 피나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면 ‘만능선수’로 십 수 년 간 명성을 떨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높게 평가했다.
배구인들이 기억하는 신진식은 실력뿐만 아니라 정신력과 승부욕도 ‘넘버원’이었다.
삼성화재 시절 세터로서 함께 호흡을 맞춘 신영철 한국전력 감독은 “지는 것을 정말 싫어한다. 러닝 훈련을 할 때도 동료보다 빨리 들어오려 했다”고 떠올렸다.
대표 팀에서 감독과 선수로 한솥밥을 먹은 인연이 있는 진준택 전 위원장은 “연습량이 워낙 많고 훈련을 열심히 하는 선수였다. 그게 경기에서 반영이 됐다”며 “경기할 때 좀처럼 흥분하는 법이 없었다. 냉정하게 자신의 몫을 했다”고 회상했다.
포스트 신진식이 없다고 낙담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배구인들은 유소년 육성법부터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눈앞의 승부보다 선수의 미래를 위해 기본기부터 다지는 방향으로 가야한다는 것.
김건태 위원은 “기초체력과 기본기를 위주로 선수를 키워야 한다. 이게 선행됐을 때 남자배구의 국제경쟁력이 올라갈 수 있다”며 “학창시절에 기본기가 완성돼 있어야 한다. 대학 때 기본기를 다지는 건 너무 늦다”고 지적했다.
장윤창 교수는 “신진식처럼 걸출한 선수가 나올 때 지도자들이 혹사시키지 않아야 한다. 또, 이 선수의 능력을 잘 키울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을 던졌다.
◆ "전광인-송명근, 수비력 더 키워야 신진식에 근접할 수 있어"
현역 남자선수 중 신진식의 대체 자(者)를 꼽는 건 어렵지만 지금보다 발전하면 그의 뒤를 따를만한 재목은 있다. 전문가들은 전광인(한국전력)과 송명근(OK저축은행)을 꼽았다.
두 선수는 대학시절부터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팽팽한 라이벌 관계를 유지해왔다. 전광인은 2014~2015시즌 공격종합 1위(공격성공률 57.52%)를 차지했고 송명근은 2015~2016시즌 오픈 공격 1위(공격성공률 48.20%)에 올랐다.
전광인을 지도하고 있는 신영철 감독은 “전광인과 송명근 모두 공격은 신진식보다 조금 못 미치지만 수비가 많이 약하다”라며 “전광인 역시 리시브를 담당하지만 신진식의 반사 신경에는 못 미친다. 송명근도 팔 스윙은 빠르지만 신진식만큼 상대 블로커를 이용하는(공을 달래는) 공격을 보여주진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진준택 전 위원장도 “송명근도 분명 좋은 선수이지만 신진식에 비해서는 수비력이 떨어진다”고 평가했다.
신진식이 코트를 떠난 지 10년이 됐지만 그의 뒤를 이을만한 공수 만능의 걸출한 레프트 공격수를 볼 때까진 시간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 의견이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꼽는 ‘포스트 신진식’은?
[에필로그] 소속팀과 대표 팀을 오가며 신진식에게 토스를 띄웠던 신영철 감독은 “(신)진식이는 술자리에서도 빼는 법이 없었다. 잘 놀았다”면서 “그 자리에서 허리춤도 추고 쾌활한 모습을 보였다. (전)광인이는 진식이보다 노래는 잘 부르지만 춤을 나서서 추진 않는 것 같다”고 허허 웃었다. 과거 스포츠 예능 프로그램 ‘우리 동네 예체능’에서 흥겨운 토끼춤을 선보이기도 했던 신진식. 코트에서 승부사 기질을 발휘했던 ‘갈색 폭격기’의 반전 매력이 아닐 수 없다.
도전과 열정, 위로와 영감 그리고 스포츠큐(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