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자 Tip!] 종목을 막론하고 신생팀의 ‘좌충우돌 성장기’를 지켜보는 것은 무척 흥미롭다. KBO리그의 NC처럼 빠르게 자리잡아 창단 2년 만에 가을야구를 경험하든, 케이티처럼 호된 신고식을 치르며 1할대 승률에 허덕이든 어쨌거나 애틋한 마음이 생기고 자꾸만 눈이 가게 마련이다. 지난 2월 ‘무늬만 수도권’인 경기도 동두천시에 고교 야구팀이 생겼다. “이른 시일 내에 신흥 강호로 자리잡겠다”는 포부처럼 이름도 신흥고다. 1990년대 초반 OB에서 뛰었던 원음방송 해설위원 출신의 곽연수(48)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다. 그들은 당분간 색깔 없는 야구를 지향할 예정이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책임야구, 배려야구’ 정도 되겠다.
[연천=스포츠Q 글 민기홍·사진 최대성 기자] 동두천은 경기도 최북단에 위치한 인구 9만7000여명의 조용한 도시다. 이곳에 지난 2월 새로운 야구인생을 시작하려는 고교생들이 한데 모였다.
부산공고, 경남고, 마산 용마고 등 부산-경남권 학생들과 구리 인창고, 상우고, 배명고 등 서울-경기권에서 자리를 잡지 못했던 학생들이 의기투합했다. 성남 분당 매송중을 비롯한 중학교에서도 합류했다. 신생팀들이 대개 그렇듯 신흥고도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 팀을 꾸렸다.
지난해 파주 율곡고 창단과 경주고의 부활로 ‘60개팀 시대’를 열었던 고교야구는 1년 새 글로벌선진학교, 강원고, 부산정보고, 성지고에 이어 신흥고까지 5개 학교가 릴레이로 창단하며 65개팀 체제를 갖추게 됐다.
1989년부터 1994년까지 OB에서 외야수로 활동했던 곽연수 감독이 신흥고 지휘봉을 잡았다. 수장부터 선수들, 학부모에 이르기까지 아직은 동두천이 낯설다. 하지만 이들은 지역사회와 재학생들의 성원 속에 하나로 뭉쳐 조용한 반란을 준비중이다.
◆ "색깔 입히기는 일러", '선순환' 해태 야구를 보라
“곽연수 야구요? 색깔은 없습니다. 제가 강조하는 것은 딱 하나입니다. 공격이면 공격, 수비면 수비, 주루면 주루 책임감을 갖고 임하라는 것입니다. 형들이 좋은 곳으로 진학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해라. 훈련에 열심히 참여하라고 주문합니다.”
곽 감독은 1980년대 극강의 전력을 자랑했던 해태 타이거즈를 예로 들었다. 그는 “김성한, 김준환, 김봉연, 김일권같은 선배들의 타이틀 획득을 위해 모두가 열심히 뛰었다”며 “조화롭게 양보하다보니 자연스레 팀 성적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말했다.
“야구는 다른 어떤 종목보다도 남을 도와야 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연습 과정을 예로 들죠. 배팅볼, 수비 등등... 모든 게 보조하는 것이잖아요. 그라운드에 서있는 야수가 수비를 하면 한 경기에 몇 개나 하겠어요. 동료를 위하고 희생하다보면 선순환이 이뤄집니다.”
31세 때 고교 감독으로 부임한 그는 2011년부터 3년간 해설위원도 지냈다. 곽 감독은 “야구 기술은 대학과 프로에 가서도 배울 수 있다”며 “선수들이 유연한 사고를 갖고 양보했으면 좋겠다. 기량보다도 학교생활하나만큼은 끝내준다는 소리를 듣게 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그가 현장을 누비면서 깨달은 학생 야구선수들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다름 아닌 ‘배려’였다.
◆ 신흥고의 2015 목표, "왜 지는지 알고 지는 것"
곽 감독은 경기고를 개교 1세기가 다 돼서 우승으로 이끈 사령탑이다. 1905년 출범한 경기고 야구부는 2000년 황금사자기에서 창단 95년 만에 처음으로 전국대회 우승컵을 들었다. 그는 1999년부터 9년을 보내며 한 해도 빠지지 않고 4강권 이상의 성적을 낸 명장이었다.
“다른 지도자들의 부러움을 받을 정도로 좋은 환경에서 야구했지요. 경기고가 명문학교잖아요. 학교의 지원, 선수들 스카우트 어느 하나 빠지는 게 없었습니다. 그런 학교가 우승하는데 100년이 걸렸으니 신흥고는 200년 걸려야 되는 것 아니겠어요? 하하하”
갈길이 멀다. 지난 17일 신흥고는 첫 공식 경기를 치렀다. 제43회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1회전, 상대는 명문 부산고였다. 부푼 기대를 안고 그라운드를 밟았지만 경험 부족은 어쩔 수 없었다. 0-7, 7회 콜드게임패. 상대 선발 박종무에게 단 1안타를 뽑는데 그쳤다.
곽 감독은 “아직 투수력이 많이 약하다. 설령 리드를 잡는다고 한들 늘 불안하다”면서 “내야의 경우도 저학년 위주의 라인업이라 타선의 힘도 떨어진다”고 자평했다. 그는 자세를 고쳐 앉더니 이내 한해 청사진을 제시했다.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말았으면 해요. 신흥고의 2015년 목표는 왜 지는지를 알고 지는 것입니다. 1학년들이 많다고 무조건 진다? 그래서는 안됩니다. 우리도 해낼 수 있다고 자신감을 불어넣는 데 심혈을 기울이는 중입니다. 패배 의식을 떨칠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곽 감독은 주축이 되는 선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자신이 경기고 재임 시절 가르친 오승환(한신), 이동현(LG), 황재균(롯데) 등 스타가 된 선수들은 승부욕이 남달랐다는 것. 그는 “이런 선수 하나가 선수단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며 3학년 선수들의 분발을 촉구했다.
◆ 신생팀의 독기, "실전서 보여드릴 것"
여기저기서 모인 '3학년 4총사'는 감독의 기대감을 잘 알고 있다. 아직 팀이 완전히 자리를 잡은 것이 아니기에 동생들을 다독여야 하는 막중한 책임감도 있다. 포수 김상우와 투수, 중견수를 겸하는 전기성은 곽 감독이 “프로 지명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극찬할 만큼 경쟁력을 갖춘 선수들이다.
마산 용마고에서 적을 옮긴 김상우는 “아직 표준어가 어색하다”고 수줍게 웃으며 “동생들이 정말 착해서 어울리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 새로운 야구인생을 시작하는 것이니 만큼 동생들이 좋은 곳에 갈 수 있도록 길을 잘 닦아놓겠다”고 다짐했다.
부산공고서 전학온 전기성도 전의를 불태웠다. 그는 “주말리그에서 반드시 승리를 거두겠다. 개인적으로는 완봉승, 이영민 타격상 수상이 목표”라며 “오로지 팀만 생각하겠다. 신생팀답게 독기 있게 덤비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3학년 심재용과 이재순도 “호락호락 물러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맞장구를 쳤다. ‘신흥’이라는 학교명처럼 “패기 넘치는 신흥강호의 면모를 보여주겠다”는 당찬 출사표를 던졌다.
경남고를 다니다 올라온 투수 심재용은 “긴말은 필요없다. 실전에서 보여드리겠다”고 말했다. 상우고에서 옮겨온 이재순은 “감독님이 투수력에 대해 하는 걱정을 덜어드리고 싶다”며 “우리가 1회이니만큼 후배들이 신흥고를 찾을 수 있도록 첫 걸음을 잘 내딛겠다”고 선언했다.
배명고에서 야구가 잘 되지 않았던 2학년 안덕근도 새 야구를 시작한다. 그는 “올해는 준비하는 기간이다, 내년에는 우승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며 “신생팀이라고 무기력하게 밀리지 않겠다. 어떤 팀을 만나도 자신있다”고 눈빛을 반짝였다.
■ 신흥고는
1960년 5월 개교했다. 진실, 박애, 근로를 교훈으로 삼고 있다. 1970~80년대에는 전국중고축구대회에서 수차례 우승을 하는 등 축구 명문으로 알려졌던 학교다. 1990년대 축구부는 해체됐다. 지난해 말 야구부 창단 작업해 돌입해 지난 2월 창단했다. 경기 북부권 야구부로는 의정부시 상우고, 파주시 율곡고에 이어 세 번째다.
■ 신흥고 야구부(20명)
△ 감독 = 곽연수
△ 코치 = 명태윤 박근하
△ 선수 = 전기성 심재용 김상우 이재순(이상 3학년) 김성찬 김경찬 조성남 이윤민 성호중 안덕근 김민수(이상 2학년) 전승우 김성엽 박연준 이성진 박종인 곽동현(이상 1학년)
[취재 후기] 목소리, 눈빛에서부터 남다른 에너지가 느껴졌다. 취재 당일 신흥고는 독립야구단 연천 미라클과 경기를 가졌다. 플레이 하나하나에 쉴새 없이 목청을 돋워 파이팅을 외칠 만큼 서로를 위하는 것이 느껴졌다. 17~18년간 얼굴 한 번 본 적 없었던 이들은 각자 아픔을 겪은 후 생소한 곳으로 모여들어 급속도로 하나가 되고 있다. 철학이 확고한 곽연수 감독의 지도를 받은 이들은 내년이면 어떤 야구를 펼칠까 궁금해졌다.
ㄴ[챌린지 2015] (20) 앵글에 담긴 신흥 '맏형 4인방' 출사표(下) 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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