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월드컵경기장=스포츠Q(큐) 글 신희재·사진 손힘찬 기자] “자만했다. 우승 후보라는 평가에 아니라고 했지만, 진짜인가 싶어서 가볍게 생각했던 것 같다.”
김기동(54) FC서울 감독은 홈 개막전을 앞두고 지난 1주일간 성찰의 시간을 보낸 걸 털어 놓았다.
22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서울과 FC안양의 하나은행 K리그1 2025 2라운드 경기. 서울의 홈 개막전이자 연고지 더비로 경기 전부터 많은 축구팬과 미디어의 관심이 집중됐다. 최대 관심사는 역시나 경기 결과였다. 객관적인 전력은 서울이 앞서지만, 더비의 특성과 예상 밖이었던 1라운드 성적표를 고려하면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는 게 중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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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서울은 15일 제주SK와의 1라운드 경기에서 0-2로 무기력하게 패했다. 올 시즌을 앞두고 김진수, 문선민, 정승원 등 국가대표급 자원을 대거 보강해 우승 후보로 떠올랐으나 내용과 결과 모두 제주에 밀렸다. 1라운드에서 디펜딩 챔피언 울산 HD를 1-0으로 제압한 안양과 대조를 이뤘다.
홈 개막전을 앞두고 만난 김기동 감독은 “제주SK전이 돌아보면 큰 약이 됐다”면서 전지훈련 이야기를 꺼냈다. “1라운드 선발 11명은 일본 가고시마에서 호흡이 잘 맞았던 멤버들이다. 그때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던 게 독이 됐다”며 “훈련할 때 문제가 나와야 깊이 생각하고 대비할 수 있다. 그런데 준비가 잘 된 걸로 자만했다. 그게 선수들에게도 비쳤던 것 같다”고 반성했다.
비시즌 신입생은 물론 기성용도 지난해 장기 부상 이후 돌아와 다시 호흡을 맞춰야 했다. 김기동 감독은 “짧은 시간에 절반 가까이 새로 들어왔다. 조직력을 올리기에는 부족했는데 ‘내가 왜 건방진 생각을 했을까’ 싶었다”며 “선수단에 이 점을 언급하면서 우승 후보가 아닌 ‘도전자’로 밑에서 다시 시작하자고 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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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안양전을 앞두고 제주전과 비교해 3명을 바꿨다. 2선 측면에 배치됐던 루카스 실바(브라질)와 문선민을 벤치로 내린 뒤 수비형 미드필더 이승모와 U-22(22세 이하) 자원인 왼쪽 윙어 손승범을 투입했다. 그러면서 제주전 3선에 배치됐던 정승원이 오른쪽 윙어로 자리를 옮겼다.
김기동 감독은 “단점보다 장점이 많을 거로 생각한다. 오늘은 날씨가 춥고 운동장이 얼었기 때문에 ‘좋은 축구’보다 ‘변수’를 조심해야 한다”며 “제주전을 못 해서 진 건 아니라고 본다. 2실점 모두 제주가 기가 막히게 만든 게 아닌 우리 (수비) 대처가 부족했다. 쉬운 실수에서 승패가 갈린다. 변수에 대비하고 후반에 할 수 있는 걸 고민한 결과 지금의 명단을 짜게 됐다”고 설명했다.
뚜껑을 열자 서울이 준비한 대로 경기가 흘러갔다. 서울은 전반 30분까지 볼점유율 66%로 우위를 점했다. 전반 22분 세트피스 수비와 전반 32분 마테우스(브라질)의 발리슛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실점 위기가 없었다. 다만 1라운드처럼 해결사 부재로 전반 무득점에 그친 게 옥에 티였다.
서울은 후반 시작과 동시에 균형을 깼다. 주장 제시 린가드(잉글랜드)가 2분 만에 오른발 슈팅으로 골망을 가르며 앞서갔고, 후반 33분 루카스의 환상적인 바이시클 킥 추가골로 한 발 더 달아났다. 후반 추가시간 수비 실수로 만회골을 내줬지만, 2-1로 마무리하면서 승점 3을 확보했다. 내용과 결과 모두 1주일 전과 180도 달라져 팬들의 우려를 씻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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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후 기자회견에 참석한 김기동 감독은 “마지막 실수만 아니었으면 계획대로 잘 된 경기”라며 “(교체로) 전반에 투입된 루카스는 좁은 공간에서도 활약할 수 있고, 후반에 들어간 문선민은 상대가 라인을 올리면 뒷공간을 파고들어서 힘들게 한다. 이승모는 3선에서 협력 수비하면서 세컨볼을 많이 획득해 상대를 어렵게 했다. 전반에 찬스 2번 빼면 경기 내내 위험한 장면이 전혀 없었다. 준비한 대로 잘 맞아들어갔다”고 총평했다.
수훈선수로 인터뷰에 응한 린가드는 “최대한 빨리 승리해서 승점을 갖고 시즌을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 제주전 실망스러운 점이 있어서 안양전은 무조건 승점을 가져와야 했다”며 “더비는 더비다. 평소보다는 좀 더 많이 뛰어야 하고, 반드시 이겨야 하는 분위기도 있다. 그렇지만 이번 시즌 치르는 경기 중 하나일 뿐이라 생각하고 차분하게 임했다. 초반에 분위기를 잘 잡았고, 상대가 피지컬적이고 뛰는 팀인데 그 부분에서 지지 않은 것도 승리 요인”이라 평가했다.
믹스트존에서 만난 정승원은 “감독님이 (제주전 직후) ‘우리가 자만했다. 도전자 입장으로 다시 하자’고 말씀하셨다”며 “첫 경기를 졌기 때문에 홈에서 승리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국가대표팀 경기처럼 많은 관중의 응원을 받아서 좋았고 힘이 됐다. 오늘 이겨서 기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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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전 패배의 충격을 빠르게 털어낸 서울은 수비 실수로 인한 실점을 줄이고, 새 외국인 공격수 영입을 마무리 짓는 걸 다음 목표로 삼았다. 김기동 감독은 “측면에서 김진수와 최준의 크로스가 좋은데 받아 줄 선수가 없어 답답한 상황이 2경기 연속 나왔다”며 “상대가 내려섰을 때 중앙에서 방점을 찍는 전북 현대의 콤파뇨 같은 유형이 필요했다. 그게 안 돼서 만들다가 실수하고 역습을 당한다. 구단에서 조만간 결정을 내리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첫 두 경기 선발 명단에서 가장 큰 차이였던 정승원의 포지션 교통정리도 관건이다. 윙어, 윙백, 중앙 미드필더를 아우르는 정승원은 “개인적으로는 수비형 미드필더를 선호한다”며 “여기서 더 성장할 기회가 있는 것 같다. 프로 10년차지만 유명한 수비형 미드필더들을 보면서 공부도 많이 하고 있다”며 의욕을 보였다.
서울은 다음달 3일 김천상무를 홈으로 불러들여 개막 2연승에 도전한다. 린가드는 “오늘처럼 최대한 많은 승점을 쌓으면 탑4 내지 우승을 이야기하는 순간이 올 것”이라며 “팀의 목표에 맞게 최선을 다해 준비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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