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스포츠Q 박상현 기자] 과연 한국 여자축구가 꿈에 그리던 '아시아 제패'를 이뤄낼 수 있을까. 연습경기 결과만 놓고 보면 단지 꿈만은 아니다. 충분히 해낼 수 있는 목표라는 것을 보여줬다.
윤덕여 감독이 이끄는 여자축구대표팀은 8일 파주 스타디움에서 열린 베트남과 연습경기에서 박은선과 박희영, 조소현, 임선주, 여민지의 연속골로 5-0 대승을 거뒀다.
한국 여자축구는 역대 베트남과 A매치에서 4전 전승을 거뒀다. 4경기를 치르면서 무려 18골을 뽑았고 2골 밖에 내주지 않았다. 가장 최근에 맞붙었던 2010년 11월 14일 광저우 아시안게임 경기에서도 한국이 6-1 대승을 거뒀다.
그런만큼 베트남전은 오는 14일 개막하는 AFC 여자 아시안컵을 대비한 몸풀기 경기였다. 다득점은 당연했고 선수들의 컨디션이 얼마나 향상됐는지, 그리고 그동안 맞춰봤던 조직력이 얼마나 좋아졌는지 시험하기 위함이었다.
또 선수 교체를 무제한으로 하기로 합의, 공식 A매치로는 집계되지 않았지만 박은선이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9년만에 출전한 경기여서 더욱 의미가 깊었다. 박은선은 2005년 8월 6일 일본과 동아시아 선수권에 나선 이후 9년동안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뛰지 못했다.
◆ 박은선 합류가 가져다준 시너지 효과와 긍정 마인드
가장 주목할만한 것은 역시 박은선의 합류다. 박은선이 공격 일선에 들어오면 큰 키를 활용한 포스트 공격으로 공격루트가 단순해질 것 같지만 오히려 다양해졌다. 박은선 합류가 가져다주는 시너지 효과다.
박은선은 상대 선수와 몸싸움에서도 탁월한 능력을 보이지만 수비수들을 잘 끌고 나오기도 한다. 이는 결국 다른 동료선수들에게 기회를 주게 된다. 마침 대표팀에는 박은선 말고도 전가을이나 권하늘, 김나래 등 득점 능력을 갖춘 선수들이 많다.
아직 100% 컨디션이 아니지만 여민지까지 합류한다면 공격력은 더욱 극대화된다. 또 비록 조별리그 3경기만 출전하고 다시 잉글랜드로 돌아가지만 지소연까지 합류한다면 아시아 최고의 공격력이라고 자부해도 좋을 정도다.
박은선은 공격력의 강화 말고도 팀 전체에 긍정적인 분위기를 몰고왔다.
임선주는 "(박)은선 언니는 겉으로 보면 무섭게 생겼는데 실제로 부딪혀보면 속정도 깊고 매우 따뜻하다. 직접 부딪혀봐야 은선 언니의 마음씨와 인간미를 알 수 있다"며 "훈련할 때도 '내가 어떻게 맞추면 되겠니'라고 먼저 물어온다. 늘 조언을 구하고 물어온다. 너무 편하다"라고 말했다.
박은선 역시 최고참이라는 것을 내세우지 않고 초심으로 돌아간 모습이다.
박은선은 "후배들에게 많이 배우고 있다. 너무 고맙다"며 "특히 주장인 (조)소현이나 (유)영아도 도움을 주고 조언을 해줘서 대표팀 플레이에 적응하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선수들은 "요즘 대표팀 분위기가 얼마나 좋은지 말로 다 표현을 못한다. 이번에 일을 낼 것 같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박은선이 가져다 준 효과는 불과 1분만에 빛을 봤다. 아니나 다를까, 많이 도와주고 조언을 해준다는 조소현의 어시스트를 받아 페널티지역 오른쪽에서 가볍게 골을 성공시켰다. 공식 A매치 골은 아니지만 2005년 8월 1일 중국과 동아시아선수권 경기 이후 8년 9개월만에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넣은 골이었다.
두번째 골은 역시 대표팀에 골을 넣을 선수가 많다는 것을 증명했다. 전반 11분 박희영은 권하늘의 스루패스를 받아 페널티지역 왼쪽에서 가볍게 골을 성공시켰다.
◆ 세트플레이 득점도 훈련한 그대로 '척척'
현대 축구에서 세트플레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윤덕여 감독은 "특히 여자축구에서는 세트플레이에 의한 득점이 많이 나올수록 좋다. 반대로 상대팀의 세트플레이 때 수비 집중력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윤 감독은 대표팀 소집훈련을 하면서 세트플레이에 대한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전반 32분 조소현의 헤딩골이 바로 그것이었다.
박은선이 페널티지역 왼쪽 바깥에서 얻어낸 프리킥을 박희영이 크로스로 올렸고 조소현이 이를 받아넣었다.
윤덕여 감독은 이 장면을 두고 "약속된 세트플레이가 그대로 맞아떨어졌다"며 "박희영은 프리킥 능력이 탁월한 선수여서 믿고 맡길 수 있다. 또 하나 대표팀에게 긍정적인 것은 박희영 말고도 김나래와 전가을에 지소연까지 프리킥이 뛰어난 선수가 많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후반 31분에 나온 임선주의 헤딩골 역시 박희영의 오른쪽 코너킥 상황에서 나왔다. 비록 신장에서 우리보다 작은 베트남을 상대로 했다고는 하지만 약속한 플레이에서 두 골이 나왔다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이다.
◆ 아직 100% 컨디션 아니지만 여민지도 골맛
후반 39분에는 여민지도 골을 넣었다.
여민지는 그동안 혹사 논란에 시달리며 한동안 제 컨디션을 찾지 못한채 기량 성장을 멈췄다. 이 때문에 현재 소속팀인 스포츠토토에서도 풀타임 출전을 자제하면서 컨디션이 올라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이는 윤 감독도 마찬가지다. 여민지 말고도 골 결정력을 갖고 있는 선수들은 충분하기 때문에 구태여 여민지에 대해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이 때문에 여민지는 이날 경기에서도 선발이 아닌 후반 교체로 출전했다. 그리고 여민지는 탁월한 골 감각으로 상대 골키퍼까지 제치고 침착하게 골을 넣으며 팀의 다섯번째 골을 선사했다.
윤덕여 감독은 "아직 완전한 컨디션이 아니기 때문에 이번 아시안컵에서는 후반에만 쓰려고 생각하고 있다"며 "여민지는 매우 영리한 선수다. 원톱으로 놓아도 되고 처진 스트라이커나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용해도 제 몫을 해준다. 영리하게 경기를 풀어가는데다 골을 넣을 수 있는 위치 선정도 뛰어나다. 체력만 좋아진다면 아시안컵은 물론이고 내년 월드컵에서도 좋은 활약을 펼쳐줄 수 있다"고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 월드컵 본선 티켓에 만족할 수 있나, 목표는 우승
윤덕여 감독이나 선수들 모두 월드컵 본선 티켓에만 만족하지 않는다. 목표는 아시아 제패, 즉 여자 아시안컵 우승이다.
역대 한국 여자축구대표팀은 여자 아시안컵에서 3위에 오른 것이 최고 성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윤 감독은 최고 성적을 뛰어넘고 싶어한다.
윤 감독은 "지소연이 조별리그 3경기 밖에 나오지 못하지만 권하늘이나 여민지 등으로 충분히 공백을 메울 수 있다"며 "물론 우승 목표는 쉽지 않다. 하지만 남은 기간 더 준비한다면 못할 것도 없는 목표"라고 말했다.
또 박은선은 "일단 팀 목표가 내 목표"라며 아시아 제패에 대한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득점상까지 타면 더 좋겠죠"라고 욕심까지 내는 모습을 보였다.
일단 연습경기를 통해 '예열'은 끝났다. 조별리그에서 만나는 태국이나 미얀마가 전력이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베트남보다도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에서 낮은 팀들이다. 3월 28일 FIFA가 발표한 여자축구 랭킹에서 베트남은 28위인 반면 태국은 30위, 미얀마는 45위에 불과하다.
태국과 미얀마가 한 수 처지는 전력이라면 최소한 조 2위 자격으로 4강에 진출, 월드컵 본선 티켓을 따낼 수 있다.
그러나 여자축구대표팀이 노리는 목표는 이것이 아니다. 중국까지 꺾어 조 1위로 4강에 오른 뒤 호주, 일본 등을 꺾고 우승컵을 들어올리겠다는 것이 최종 목표다.
윤덕여 감독은 "아시아 정상에 오르게 되면 침체됐던 우리나라 여자축구에도 긍정적인 변화의 기류가 흐를 것"이라며 "우승을 차지한 것을 계기로 여자축구의 발전을 이끌어낼 수 있다. 이를 위해서라도 우승이라는 목표를 꼭 이뤄내고 싶다"고 힘줘 말했다.
tankpark@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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