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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2' 제2의 조태오, 왜 없을까? [인터뷰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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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2' 제2의 조태오, 왜 없을까? [인터뷰Q]
  • 나혜인 기자
  • 승인 2024.09.30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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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나혜인 기자]  *해당 인터뷰에는 '베테랑2'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지난 22일 음주 운전 의심 운전자를 추적하며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는 유튜버 A씨가 한 운전자와 추격전을 벌이다 사망 사고를 내는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이 과정이 400여 명이 시청 중이던 생방송에 그대로 노출됐고, 운전자는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끝내 사망했다. 경찰은 신호위반, 공동위협 등 불법 정황을 확인하고 A씨를 입건할 방침이라 밝혔다. 이에 A씨는 자신의 불법 행위가 '공공의 이익'에 의한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사법을 대신해 정의 구현을 하겠다는 '사적 제재' 행위는 비단 A씨만의 문제가 아니다. 6월에는 유튜브 채널 나락보관소가 20년 전 밀양성폭행 사건을 재점화하고 가해자들의 신상을 공개했다. 누리꾼들은 솜방망이 처벌로 끝난 밀양성폭행의 가해자를 처단한다는 것에 열광했고, 가해자들의 삶이 하나둘 망가질수록 정의감에 도취됐다. 하지만 피해자 동의 없이 사건을 뭍으로 끌어올리고 수익창출을 낸 사실이 밝혀지면서 나락보관소 역시 경찰 수사 대상이 됐다. 그러자 일부 누리꾼들은 '영웅'의 앞길을 막았다며 피해자와 성폭력상담소를 향해 2차 가해를 쏟아냈다. 피해자를 방패 삼아 벌인 일은 결국 사적 제재의 위험성을 알리는 사건이 됐다.

최근 유튜브 시장 활성화와 함께 사적 제재라고 불리는 사이버 레커(렉카)가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여론은 사이버 레커가 전달하는 자극적인 정보에 쉽게 동요했다. 정보의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은 부재했다. 이런 사회 현상 속에서 사적 제재를 소재로 한 '베테랑2'가 텁텁한 뒷맛을 남기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영화 '베테랑2' 박선우 역 정해인(왼쪽), '베테랑' 조태오 역 유아인 스틸컷. [사진=CJ ENM 제공]
영화 '베테랑2' 박선우 역 정해인(왼쪽), '베테랑' 조태오 역 유아인 스틸컷. [사진=CJ ENM 제공]

이 뒷맛은 빌런의 등장과 정의의 승리, 동일한 시작과 끝을 지닌 '베테랑'과 '베테랑2'가 상반된 평가를 얻은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가타부타할 것 없는 명확한 악인 조태오(유아인 분)를 처단하면서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안겼던 1편과 달리 2편은 여론을 대신해 사적 제재를 행하는 해치(정해인 분)가 등장하면서 악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여기에 정의를 상징하는 서도철(황정민 분)까지 사법 결정에 대한 소시민의 심경을 토한다. '선과 악의 대결'이라는 간결한 구조가 복잡하게 얽히니 순수악인 제2의 조태오도 존재할 수 없다. "죄짓고 살지 말라 그랬지"라는 명쾌한 답에서 '죄'만 남아 물음표를 붙일뿐. '베테랑2'는 답안지 없는 문제를 내놓고 이 문제가 영화관 바깥으로 걸어나가 관객의 입과 입을 통해 확장되길 기대한다.

이러한 기대는 류승완 감독이 '베테랑'의 흥행에서 느낀 '불편한 감각'으로부터 출발했다. '베테랑'은 1341만 관객을 동원하며 크게 흥행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메시지는 잊히고 단편적인 대사만 부유했다. 류승완 감독은 '베테랑'이 소비되는 방식을 보며 경각심을 갖게 됐다고. 그는 "1편은 제가 일련의 사건에서 느꼈던 분노를 해소하는 힘으로 완성한 영화다. 당시 관객들도 그 부분에 열광했다. 그런데 어느샌가 맥락은 사라지고 대사만 밈(Meme, 인터넷 용어)으로 남더라. 그걸 보면서 '이게 맞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통해 내가 분노했던 것들을 순간적으로 해소하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라고 2편 제작에 앞서 떠올린 생각을 털어놨다.

무엇보다 분노를 해소하는 과정에서 느꼈던 섬찟함을 잊지 못했다. 세계대전 당시 나치 장교 가족의 삶을 그린 조나단 글래이저 감독의 '존 오브 인터레스트'(2024)를 예로 들며 "영화 속 사람들을 보면 자신들은 아무런 죄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나. 히틀러 시대의 사람들은 나치가 정의라고 믿었다"고 말한 류승완 감독은 "한 사건의 가해자가 시간이 지나고 보면 피해자인 경우가 있다.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겠어?'라며 가해자를 비난했던 나 자신을 변호하고 있더라. 거리를 두고 그 모습을 보니 섬찟했다. 어떠한 사안이나 사건, 현상을 냉정하게 본다면 내가 실제로 아는 정보는 아무것도 없다. 정보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려는 노력도 없이 감정에 치우쳐 분노하는 것이 과연 정당할까? 내가 생각하는 정의는 정의가 맞는지 생각하게 되더라"라고 밝혔다.

기존의 흥행 공식에서 벗어난 '베테랑2'에 대해서는 "어쩌면 위험한 선택이었을 수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소위 '공분'이라고 하는 공적인 분노의 실체가 명확한지, 정당한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질문해 봐야 하지 않을까"라고 소신을 드러냈다.

류승완 감독. [사진=CJ ENM 제공]
류승완 감독. [사진=CJ ENM 제공]

류승완 감독의 질문은 쌓이고 쌓여 사적 제재 집행인 '해치'를 탄생시켰다. 그는 "제가 두려워하는 공포의 형태는 실체 없이 발생하는 것들이다. 이를테면 '올여름은 왜 이렇게 덥고 길고 끔찍한 거야?' 다양하게 설명할 수 있지만 해결책은 없고, 공포를 느끼는 대상의 실체도 없다"고 말문을 열었다.

류승완 감독의 말을 빌리면 1편의 빌런 조태오에게는 자신이 저지르는 악행이 추악한 행동이라는 인식이 없다. 폭행을 저지르더라도 그에 맞는 금액을 지불하면 된다는 어긋난 정당성만 있다. 이는 그에게 명백한 악인의 도장을 찍는다. 반면 2편의 빌런 해치는 그를 둘러싼 딜레마가 있다. 죗값을 충분히 치르지 않은 범죄자들을 심판하는 모습과 자신의 정체를 보호하기 위해 가짜 해치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심판대에 잘못 올라선 대상까지 처형하려는 모습. 해치 딜레마는 정의와 불의의 공존에서 비롯된다.

류승완 감독은 "해치는 실체가 또렷하게 잡히기보다 혼란을 야기한다.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나서 해치가 어떤 인물인지 대화를 나누길 바랐다. 이 인물이 즐기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것인가, 사회적 신념을 위해 고통스러워하며 살인을 저지르는 것인가. 이런 궁금증이 클수록 메시지의 파괴력이 크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베테랑2' 서도철 역 배우 황정민 스틸컷. [사진=CJ ENM 제공]
'베테랑2' 서도철 역 배우 황정민 스틸컷. [사진=CJ ENM 제공]

더불어 메시지만큼이나 중요한 지점이 있다. 바로 '베테랑' 중심인 서도철의 성장. 9년의 공백 동안 서도철도 나이를 먹었다. 나이는 해를 넘기며 자연스럽게 축적된다. 보통 성인이 되는 나이를 기점으로 '어른이 된다'고 말하지만, 정신적인 성숙을 기준으로 본다면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

"1편에서 아내가 초등학교 3학년인 아들을 두고 '학교에서 애를 팼단다'라고 말하니까 서도철이 아무렇지 않게 '사람 때려서 깽값 물어주는 건 참아도 얻어터지고 오는 건 못 참는다'고 말해요. 당시에는 관객도 저도 재미있는 표현이라고 생각했는데, 제 아이가 커가면서 이 표현이 잘못됐다는 걸 알겠더라고요."

서도철이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보여주는 변화는 아버지 류승완 감독의 반성이기도 했다. 류승완 감독은 '베테랑2'의 수많은 대사 중에서도 서도철이 아들에게 "아빠 생각이 짧았어"라고 말하는 엔딩부를 가장 중요하게 꼽았다. 

그는 "서도철은 가정이 있는 인물이다. 이 사람이 구현하고자 하는 정의의 목적은 세계 평화가 아니다. 피곤하고 비루하고 짜증 나는 자신의 일상을 지키는 거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 그렇지 않나. 나의 일상을 지키기 위해 아침에 비타민 한 알 먹어가면서 회사에 출근했다가 짜증 나는 사람을 대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온다. 이 행위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서도철이 모든 일을 끝내고 돌아가는 곳을 보여주는 게 중요했다"며 "영화를 만드는 내내 집으로 돌아가 아들에게 자기 생각이 짧았다고 말하는 서도철을 떠올렸다. 사과하고 반성할 줄 아는 어른은 얼마나 아름답고 귀한가, 자신의 일상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어른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했다"고 전했다.

류승완 감독. [사진=CJ ENM 제공]
류승완 감독. [사진=CJ ENM 제공]

영화가 이야기 무게에 짓눌리지 않도록 밸런스 유지에도 남다른 공을 들였다. 액션영화에서 이야기가 시원함을 줄 수 없다면 액션이 박력을 대신한다. '액션 베테랑'다운 전략이었다. 특히 액션에서 오는 영화적 체험을 녹여내고자 했다.

류승완 감독은 "1편에서 서도철이 소화전에 찍힐 때 터졌던 관객의 반응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판타스틱영화제에서는 그 장면에서 박수가 나오기도 했다"며 "영화는 극장에서 보는 특별함을 선사해야 한다. 시각적 스펙터클이든, 뼈가 부서지는 고통을 체험하는 형태든, 빌런을 한 대 쥐어박아서 주는 쾌감이든. 내가 모르는 몇백명의 사람들과 같이 조용히 숨죽여 주인공을 응원하는 경험을 특별하게 만들고 싶다. 그것이 저의 목표"라고 말했다.

'베테랑2'는 가뿐히 손익분기점(400만)을 넘기고 빠른 속도로 누적 관객 640만명을 돌파하며 '시리즈 2000만 관객' 타이틀을 앞뒀다. 동시에 '베테랑3' 제작에도 한 발 더 가까워졌다. 이미 2편 쿠키영상을 통해 3편을 암시한바. 류승완 감독은 추후 제작될 속편에 대해 "3편은 기초 스토리가 나온 버전이 있다. 해치에 대한 스크립트를 쥐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말을 아꼈다.

류승완 감독의 진중한 고민이 담긴 '베테랑2'는 전국 극장에서 절찬 상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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