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Q(큐) 신희재 기자] 베테랑 공격수, K리그1 출신 수비수, 고졸 출신 4명까지.
무려 6명이 한순간에 직장을 잃었다. 개인의 잘못이 아닌 신임 단장의 부당한 채용 지시가 원인으로 지목됐다. 지난해 선수 선발 비리로 한차례 홍역을 앓았던 K리그2 안산 그리너스에서 또다시 문제가 발생했다.
안산은 지난 23일 갑작스러운 선수단 물갈이로 입방아에 올랐다. 뒷배경에는 19일 새로 부임한 김정택 단장이 있었다. 김 단장은 취임과 동시에 자신이 뽑은 12명의 명단을 보여준 뒤 선수단에 포함하라고 지시한 게 보도돼 논란의 중심에 섰다.
안산은 2022년과 지난해 이종걸 전 대표이사, 임종헌 전 감독, 배승현 전 전력강화팀장이 선수 선발을 대가로 에이전트와 부모로부터 금품을 수수해 검찰 수사선상에 올랐다. 비위행위자 3인은 면직 처분을 받았고, 안산은 지난해 12월 한국프로축구연맹(K리그)에 제재금 5000만원 징계를 받았다.
이를 계기로 안산은 투명한 선수 선발 방식을 마련했다. 선수와 계약하려면 안산시 체육진흥과장과 1군 감독, 구단 직원들로 구성된 선수강화위원회 의결을 거쳐야 한다. 규정에 따라 지난달 28일 열린 선수강화위에서 다음 시즌 안산 성인팀 선수단 30명이 정해졌다.
3주 뒤 부임한 김정택 단장은 선수강화위 의결을 뒤엎으면서 반발을 샀다. 이후 안산은 내부 논의 끝에 김 단장의 명단 중 8명을 영입하고, 기존 선수단에서 6명을 방출하기로 했다. 6명에는 K리그 통산 236경기 31골 14도움을 기록한 공격수 강수일, 올해 K3리그서 대구FC B팀 소속으로 29경기에 출전한 수비수 임지민, 고교 졸업을 앞둔 유망주 4명이 포함됐다.
특히 고교 유망주들은 계약서에 사인만 안했을 뿐 안산 입단 절차를 모두 밟아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이들은 구단 선수강화위를 통과한 뒤 연봉 협상, 메디컬테스트를 마치고 팀 훈련에 참여하고 있었다. 안산을 믿고 대학교 수시 지원도 하지 않았는데 무직 신세가 될 위기에 처했다.
그러자 축구계 전체가 반발했다. 먼저 안산 지지자 연대 소모임 ‘오늘보다 나은 내일’은 19일과 22일 두 차례 성명문을 내고 유감을 표했다. 이 단체는 "김정택 단장의 영입 명단이 아닌 기존 이관우 감독과 송경섭 안산 U-18(18세 이하) 감독이 작성한 영입 명단을 토대로 신속히 선수단을 구성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단체는 김정택 단장을 '정치적 보은 인사다', '안산시 특정 중학교 축구부의 카르텔과 깊이 연관됐다', '김 단장의 아들이 과거 안산서 3년간 뛰었던 사례가 특혜로 의심된다', '시즌 중 전 대표를 비난하는 걸개를 걸었다'고 주장하면서 이민근 안산시장에게 단장 재임명을 요구했다. 아울러 성명문에 개재된 요구사항이 이행되지 않을 시 26일부터 단체행동에 나설 것이라 예고했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은 안산 와스타디움의 구단 사무실에 근조화환을 보내 항의 의사를 밝혔다. 화환에는 '절차와 상식 무시하는 김정택 나가', '구단 사유화하는 김정택 단장 사퇴' 등의 문구가 적혔다.
한국스포츠에이전트협회도 23일 성명을 냈다. "이번 사건은 단순히 계약의 문제를 넘어, 젊은 선수들에게 큰 좌절감을 안기고 소속 에이전트들에게는 안정적인 업무 수행을 저해하는 심각한 사례"라며 "선수들은 구단의 일방적인 계약 취소 통보로 귀중한 시간과 기회를 잃었다. 에이전트는 선수들의 신뢰를 잃을 위험에 처했다. 이는 안정적인 사업 영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에이전트협회는 안산에 책임 있는 사과와 후속 조치, K리그엔 계약 번복 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을 촉구했다. 또 에이전트협회에서 자체적으로 선수와 에이전트의 권리를 더 강력히 보호할 방안을 지속해서 논의하고 추진해 나갈 것을 다짐했다.
한국프로축구선수협회 또한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선수협은 24일 성명을 내고 "안산의 계약 보류와 절차 무시는 명백한 위법 행위"라면서 "축구단 운영의 기본 원칙과 선수들의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했다"고 비판했다.
선수협은 김정택 단장이 제시한 12명 중 코치진이 '기량 미달'로 평가한 선수들이 다수 포함돼 "(성인팀 선수 선발 권한이 없는) 유스 디렉터가 김 단장과 결탁해 검토됐다. 공정한 선수 선발과 프로 축구단 운영의 투명성을 크게 훼손했다. 단장 개인의 이익을 위한 선수 교체이면서 원칙을 무시한 월권행위"라고 강조했다.
언론, 서포터, 단체의 연이은 비판에 안산은 사과 대신 정면돌파를 택했다. 24일 입장문을 통해 "내부 논의 중이거나 진행되는 계약 관계들이 사실과 다르게 보도돼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언론사와 에이전트협회의 융단폭격을 반박했다.
안산은 ▲ 지난달 선수강화위에서 30명이 확정됐다 ▲ 신임 단장이 12명을 바꿔 넣으려 시도했다 ▲ 신인 선수들에게 계약 불가를 통보했다는 내용을 모두 부인하면서 "구단의 공식 통보 없이 허위 사실을 제보받아 사실과 다른 내용을 공개한 걸 (언론사와 에이전트협회는) 명확히 소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산은 언론사에 정정보도를 요청했고 에이전트협회를 향해서는 "신임 단장 개인의 명예와 구단, 안산시 이미지를 훼손했다"며 "구단 경영을 방해하면서 구단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심각한 위해 행위라고 판단, K리그 구단 이사회 등을 통해 적법한 대응에 나서겠다"고 예고했다. 그러면서 서포터즈와는 원하는 일정에 맞춰 간담회를 개최해 해명에 나설 것이라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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