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Q 민기홍 기자] 역부족이었다. 한국축구의 2014 브라질 월드컵은 단 3경기로 막을 내렸다.
하지만 패배 속에서도 확실한 수확이 있었다. 든든한 차세대 수문장 김승규(24·울산 현대)의 재발견이다.
김승규는 27일(한국시간) 브라질 상파울루의 아레나 지 상파울루에서 열린 2014 국제축구연맹(FIFA) 브라질 월드컵 H조 마지막 경기 벨기에전에 정성룡을 제치고 주전 수문장으로 나서 발군의 안정감을 보여줬다.
긴장할 법도 했지만 그는 자신의 기량을 십분 발휘하며 7차례의 슛을 선방했다. 전반 32분 날렵한 움직임으로 앙토니 반덴보르가 올린 크로스를 펀칭으로 걷어냈다. 42분에는 드리스 메르턴스의 원바운드 중거리 슛을 가볍게 잡아냈다.
후반 14분에도 메르턴스의 중거리슛을 안정적으로 걷어냈다. 후반 45분에는 에덴 아자르가 오른쪽에서 날린 강력한 오른발슛을 몸을 날려 오른손으로 쳐냈다. 후반 32분 디보크 오리기의 중거리슛을 막아냈지만 쇄도하던 얀 페르통언에 결승골을 허용한 것만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김승규는 경기 후 가진 공식 인터뷰에서 "월드컵은 경험을 쌓으러 나오는 자리가 아니라 실력을 겨루는 자리다. 이번 경기를 경험이 아닌 실패라고 생각한다”라고 자기를 낮췄다. 이어 “후반 실점은 내 실수였다. 아쉬운 경기였다”고 덧붙였다.
눈시울을 붉히며 안타까움을 표한 김승규에게 경기를 지켜본 팬들 모두 아낌없이 찬사를 보냈다. 알제리와 2차전에서 판단 착오와 늦은 대응, 불안안 볼처리로 4실점한 정성룡과는 대비되는 대활약이었다.
FIFA도 이를 알고 정확히 짚어냈다. 경기 후 "한국의 골키퍼가 편안하고 안정적인 경기력을 보여줬다"며 "막판에는 벨기에 측의 결정적인 슛팅을 막아내며 팀을 구해내기도 했다"고 극찬했다.
김승규는 지난 2경기에서 벤치를 지키다 나왔음에도 최고의 몸 상태를 유지했다. 그는 “마지막 경기에 나가서 긴장됐지만 기다리다가 경기를 뛰는 건 익숙하다”고 말했다. 그는 클럽에서도 대표팀에서도 ‘2인자’의 설움을 여러 차례 느껴왔다.
그는 2008년에 K리그에 데뷔했지만 실력에 비해 출전 기회를 많이 갖지 못했다. 울산에는 2006 독일 월드컵과 2010 남아공 월드컵 대표였던 김영광이 있었기 때문이다. 순발력 하면 둘째가라면 서러운 김승규였지만 김영광을 넘어서는 것은 무리였다.
2012년에도 아픔을 겪었다. 런던 올림픽 지역예선에서는 이범영과 대표팀에 나란히 발탁됐지만 정작 본선에서는 정성룡이 와일드카드로 발탁되며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했다. 김승규는 20세 이하 대표팀서부터 한솥밥을 먹던 동료들이 동메달을 목에 거는 것을 한국에서 지켜봐야만 했다.
절치부심한 김승규는 K리그에서 한을 풀었다. 김영광이 종아리 부상을 입은 틈을 타 점차 출장 횟수를 늘리기 시작했다. 2013 시즌에는 32경기 27실점의 좋은 기록으로 고대하던 A대표팀에 이름을 올렸다. 그해 8월 페루와 평가전을 통해 A매치 데뷔전도 치렀다.
주전 골키퍼 정성룡이 리그 경기에서 부진을 거듭하자 골문을 지키는 날도 많아졌다. 지난 1월 미국 전지훈련에서는 코스타리카, 멕시코전에 연달아 선발로 나섰다. 한국은 0-4, 0-2로 무너졌지만 김승규의 반사신경에는 누구도 토를 달지 않았다.
올 시즌의 활약도 가장 좋았다. 그는 12경기에 출전해 8실점하며 경기당 0.67골만 허용해 12경기 12실점한 정성룡, 12경기 15실점한 이범영에에 월등히 앞섰다. 무실점 경기도 5차례 기록해 정성룡과 공동 1위였다.
홍명보 감독의 A대표팀 사령탑 취임 후 월드컵 전까지 15경기에서 5차례 주전 장갑을 꼈다. 리그에서의 성적을 바탕으로 조심스레 주전 가능성까지 제기됐지만 결국 2010년 월드컵 경험을 갖춘 정성룡이 안정감에서 앞선다는 판단에 밀려 또다시 2인자로 밀려나고 말았다.
하지만 기회가 왔다. 그는 만반의 채비를 갖추고 있었다.
김승규는 “준비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경기 준비에는 어려움이 없었다”며 “관중도 많고 다소 긴장해 초반을 잘 넘겨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맞아떨어졌다”고 말했다.
김승규는 월드컵 무대를 통해 큰 경험을 했다. 그는 “이름 있고 얼굴만 봐도 아는 선수가 있어 초반 긴장했는데 뛰어보니 똑같은 선수들이더라”고 말했다. 순발력과 운동신경에 자신감이라는 무기까지 갖춘 김승규는 이제 두려울 것이 없다.
새장 문을 열자마자 훨훨 날아오른 김승규는 무너진 홍명보호의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한국축구의 미래는 ‘확실한 뒷문’이 있어 결코 어둡지만은 않아 보인다.
김승규는 “2018 러시아월드컵에서는 최고의 몸 상태로 나와 최고의 성적을 거두고 싶다”며 벌써부터 미래를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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