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Q 박상현 기자] 한국 야구는 역시 8회에 강했다. 언제나 위기의 순간 속에서도 한국 야구는 8회에 역전을 시키곤 했고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도 그 전통을 이어갔다.
류중일 감독이 이끄는 한국 야구대표팀은 28일 인천 문학구장에서 열린 인천 아시안게임 야구 대만과 결승전에서 김광현(26·SK)의 부진과 타선의 침체 속에 끌려가다가 2-3으로 뒤지던 8회초에 대거 4득점하며 6-3으로 역전승했다.
이로써 한국 야구는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이어 2회 연속 대회 금메달을 따냈다.
이날 한국 야구는 3번의 동점과 4번의 역전을 대만과 주고 받았을 정도로 팽팽한 접전을 벌였다. 콜드게임으로 이겼던 예선과 달리 오히려 경기를 내줄뻔한 위기를 맞았던 것은 1회초 무사 만루의 위기를 놓친 것이 컸다. 김광현 역시 타선이 가까스로 역전을 시켰는데도 이를 지켜내지 못했다.
◆ 안지만이 만들어낸 '8회의 약속' 전주곡
한국은 1회초 무사 만루의 기회를 놓쳤다. 예선전처럼 1회에 대량 득점을 했더라면 쉽게 갈 수 있었지만 믿었던 박병호와 강정호가 모두 삼진으로 물러나는 바람에 초반 기선을 대만에 내줬다. 설상가상으로 김광현이 첫 타자 천핀지에에게 3루타를 내준 뒤 린한의 2루수 앞 땅볼 때 실점하면서 끌려가기 시작했다.
1회초 무사 만루 기회를 잃은 한국은 궈지린에게 줄곧 끌려다니다가 4회초 궈지린이 이중 동작을 주심에게 지적당하면서 기회를 맞았고 이것이 5회초 동점과 역전의 원동력이 됐다.
그러나 손아섭이 홈으로 쇄도하다 아웃되면서 흐름이 끊겼고 김광현이 6회말 2점을 내주면서 패배 직전까지 끌려갔다.
이런 상황에서 '약속의 8회'는 안지만에서 시작됐다. 대만과 예선전에서 완벽한 투구를 선보였던 양현종이 장즈시엔에게 2루타, 왕보롱에게 안타를 맞고 무사 1, 3루 위기를 맞았다. 1, 2점을 더 준다면 그대로 무너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바로 이 때 양현종을 구원한 안지만이 빛났다. 안지만은 주리런을 삼진으로 잡아낸 뒤 린쿤성을 얕은 중견수 플라이로 잡아내 2개의 아웃카운트를 잡았다. 이어 판즈팡의 타구도 좌익수 김현수에게 걸리면서 실점없이 막았고 이것이 '약속의 8회'의 전주곡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8회초 민병헌과 김현수의 안타와 박병호의 볼넷으로 1사 만루를 만든 한국은 강정호의 몸에 맞는 볼로 3-3 동점을 만든 뒤 나성범의 2루수 앞 땅볼 때 3루 주자가 홈에 들어오면서 4-3 역전에 성공했다. 황재균은 2사 2, 3루 기회에서 주자를 모두 불러들이는 우전 적시타로 쐐기를 박았다.
황재균은 모친 설민경(54)씨가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에서 여자 테니스 단체전 금메달을 획득한데 이어 한국의 첫 아시안게임 '모자(母子) 금메달'이라는 진기록을 세웠다.
◆ 행운이 아닌 선수들이 똘똘 뭉쳐 만든 '약속의 8회'
한국 야구는 국제 대회에 나갈 때마다 8회에 역사를 쓰곤 했다. 힘겹게 끌려갈 때면 한국은 유독 8회에 힘을 냈다.
그 시초는 32년전인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으로 흘러간다. 한국은 일본을 맞아 8회초까지 1-2로 끌려가다가 8회말 1사 3루에서 김재박의 '개구리 점프 번트'로 2-2 동점을 만든 뒤 한대화의 역전 3점 홈런으로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일본과 3~4위전도 8회가 빅이닝이었다. 마쓰자카 다이스케와 팽팽한 0의 접전에서 3점을 뽑으며 3-1 승리를 거둔 것 역시 8회말에서 나왔다.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는 두번이나 8회의 기적을 만들어냈다.
도쿄에서 열렸던 1라운드에서 1-2로 뒤진 8회초 이승엽이 이시이 가즈히사를 상대로 역전 2점 홈런을 때려냈고 2라운드 역시 팽팽한 0의 접전에서 8회초 2점을 뽑아내며 2-1 승리의 원동력이 됐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역시 일본과 4강전에서 2-2로 맞선 8회말 이승엽이 2점 홈런을 쳐내며 사상 첫 결승진출을 이뤄냈다.
안방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타선의 침묵 속에 자칫 패배라는 대망신을 당할 뻔 했지만 한국 야구에게 언제나 승리를 약속했던 8회는 어김없이 찾아왔다.
'약속의 8회'는 행운이 아니라 선수들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다. 안지만이 7회말 무사 1, 3루의 위기를 넘긴 것부터 시작해 8회초 1사 만루의 기회에서 강정호가 몸에 공을 맞더라도 출루하겠다는 희생 정신, 자칫 병살타가 될 뻔 했던 상황에서 노련한 주루 플레이, 집중력으로 만들어낸 '약속의 8회'였다.
한국 야구의 역사를 만들어냈던 8회는 역대 기록만 보더라도 행운이 아니라 선수들의 희생정신과 집중력이 원동력이었다. 그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약속의 8회'와 함께 아시안게임 금메달도 함께 따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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