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스포츠Q 박상현 기자] 어떤 한 리그에서 강력한 전력을 갖추고 있는 팀 또는 스타선수가 즐비한 팀을 일컬어 '레알'이라는 별명을 붙인다. 갈락티카 정책으로 전세계 스타선수들을 영입한 레알 마드리드에서 비롯된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WK리그의 '레알'은 아마 인천 현대제철일 것이다. 아시안컵은 물론이고 인천 아시안게임에 출전해 동메달을 따낸 여자축구 대표팀 선수 가운데 8명이 무려 현대제철 소속이다.
최인철 감독이 이끄는 현대제철이 20일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열린 IBK기업은행 WK리그 2014 챔피언결정 2차전에서 고양 대교와 득점없이 비기고 1, 2차전 합계 1승 1무로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우승이 확정된 뒤 최인철 감독은 감회가 남달랐다. 2012년 대교의 통산 세번째 우승 당시 대역전극의 희생양이 됐던 현대제철이 2년만에 설욕한 것이기도 했지만 유난히 올시즌은 대표팀 차출 등으로 선수들의 피로가 극심했기 때문이다.
◆ 대표팀 멤버 8명 차출, 더블 스쿼드로 위기 넘겨
현대제철 소속 선수 8명이 대표팀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기량이 뛰어나다는 증거지만 빡빡한 일정 속에 제한된 스쿼드로 경기를 치러야 하는 팀의 입장에서는 그리 반가운 일은 아니다. 자칫 독이 될 수 있다.
아시안컵 당시에는 주전 골키퍼 김정미와 함께 수비수 김도연, 김혜리, 임선주와 미드필더 김나래, 전가을, 조소현, 공격수 유영아가 차출됐고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는 미드필더 김나래 대신 공격수 정설빈이 뽑혔다. 모두 8명씩이었다.
특히 아시안컵이 벌어졌던 5월에는 서울시청과 맞대결이 예정되어 있었다. 외국인 선수인 비야와 따이스, 정설빈이 있긴 했지만 베스트 라인업 구성이 불가능했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 현대제철은 서울시청에 2-1로 힘겹게 이겼다.
이에 대해 최인철 감독은 "아시안컵이 열리는 기간에 치러졌던 경기라 그동안 기회를 얻지 못했던 선수들을 내보냈는데 다행스럽게도 이겼다"며 "정규리그 1위에 오르는데 당시 경기가 가장 큰 고비였고 승리한 것이 선두로 치고나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이어 최 감독은 "챔피언에 오른 것은 몇몇 선수들만의 승리가 아니라 모두의 승리다. 시즌 내내 더블스쿼드를 가동하면서 대표팀 선수들이 빠졌을 때 나머지 선수들이 잘해줬다"며 "경기를 뛴 선수나 뛰지 않았던 선수나 같이 고생했다. 함께 훈련하면서 훈련 파트너가 되어준 선수들, 그리고 스타성이 있는 선수 등 너나할 것 없이 칭찬을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 스페인 전지훈련 등 파격적인 지원, 확실한 훈련 시스템 갖춰
이날 기자석 근처 관중석에는 한 외국인이 유심히 WK리그 챔피언전을 지켜보고 있었다. 네덜란드 출신의 후이징가 배리 해롤드는 인천 장애인아시안게임 5인제 및 7인제 축구 심판을 보기 위해 인천을 찾았다. 잠시 시간이 나서 여자축구를 유심히 지켜봤다.
그는 "한국 여자축구의 실력이 대단하다. 매우 터프한 경기를 펼친다"며 "상대 선수와 강하게 맞부딪히는 모습이 인상적"이라고 밝혔다.
네덜란드 여자축구는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에서 9월 현재 15위에 올라있다. 한국은 네덜란드보다 두 계단 밑인 17위다.
그러나 해롤드 심판은 "한국 여자축구가 네덜란드보다 더 잘하는 것 같다. WK리그가 매우 흥미롭다"며 "붉은 유니폼을 입은 팀(현대제철)이 조금 더 나아보이는데 WK리그에서 어디가 제일 좋은 팀이냐"고 되물었다.
WK리그에 대한 그의 평가는 단순한 립서비스는 아니었다. 최인철 감독 역시 스페인 전지훈련을 다녀오면서 WK리그의 경쟁력을 확인했다.
현대제철은 올시즌 초 WK리그 구단 최초로 해외전지훈련을 실시했다. 지난해 우승한 것에 대한 포상 개념으로 해외여행을 겸한 것이긴 하지만 최인철 감독은 스페인에서 전지훈련을 하면서 외국 클럽과 맞붙어 선진 축구를 몸으로 익혔다.
최 감독은 "해외 전지훈련에서 느꼈던 것은 확실히 WK리그가 좋은 리그라는 점"이라며 "우리처럼 실업팀이 있어 선수에만 열중하는 국가는 얼마 되지 않는다. 외국 선수들 가운데에는 축구가 아닌 일에 종사하는 등 투잡을 하는 경우도 있다. WK리그가 세계 여자축구에서는 결코 뒤지지 않는 시스템을 갖고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이 가운데에서도 현대제철의 훈련 시스템은 화끈한 지원만큼 못지 않다.
올시즌 서울시청에서 현대제철로 이적한 김혜리는 "처음에 이적하면서 적응에 어려움을 겪긴 했지만 훈련을 받으면서 역시 현대제철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훈련할 수 있는 환경이나 지원 같은 것을 직접 느끼면서 왜 현대제철이 강한지를 알 수 있었다"고 밝혔다.
◆ 챔피언 오른 날, 벌써 2015년 준비 돌입
최인철 감독은 챔피언에 올라 좋아하는 선수들을 보면서 흐뭇한 미소를 날리면서도 벌써 머리 속에는 내년 시즌을 위한 구상으로 복잡하다. 특히 내년은 캐나다에서 FIFA 여자 월드컵이 벌어지기 때문에 대표팀으로 차출될 선수들의 공백을 어떻게 메울지가 고민이다.
최인철 감독은 "단기적으로는 당장 이달 말에 열리는 전국체전을 준비해야 한다"며 "아직 내년 전지훈련 계획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내년 계획을 잘 짜서 다시 한번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최 감독을 비롯해 현대제철 선수들은 지역연고제가 하루 빨리 정착되기를 바랐다. 인천 아시안게임 여자축구 동메달이 완전히 가시기 전에 치러진 챔피언결정전이었지만 한 시즌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경기라고 하기엔 너무나 자리가 많이 비었다.
최인철 감독은 "많은 관중이 오시지 않았다는 것을 따지기보다 연고지가 하루 빨리 정착되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계속 기량을 발전시키면 관중들도 자연스럽게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조소현도 관중들이 적은 것에 대해 "늘 그랬지 않느냐"며 "무엇보다도 홈 앤 어웨이 경기 제도가 정착되어야 하고 모든 선수들의 능력도 키워야 한다. 아시안게임 등으로 관중과 팬들의 보는 눈이 높아졌기 때문에 선수들도 스스로 노력하며 변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기자들과 인터뷰가 끝난 뒤에는 화려한 불꽃이 터지는 가운데 서로에게 샴페인을 뿌리며 지난 7개월 동안 진행됐던 WK리그의 최종 승자가 된 것에 대한 기쁨을 누렸다. 대교 선수들은 아쉬움이 가득했지만 현대제철 선수들에게는 결코 잊지 못할 인천의 월요일 밤이었다.
tankpark@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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