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자 Tip!] 프로 스포츠가 출범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고교 스포츠와 대학 스포츠의 인기는 지금과 전혀 비교가 되지 않았다. 지금의 프로 스포츠 인기와 필적했다. 고교 스포츠 인기가 와닿지 않는다면 대학 스포츠만이라도 생각해보자. '응답하라 1994'를 통해 연세대, 고려대를 중심으로 한 대학 농구의 인기만 보더라도 알 수 있지 않은가. 다른 종목도 마찬가지다. 일반인들의 인기와 함께 모교 학생들의 응원까지 더해져 뜨거운 열기를 뿜어냈다. 2008년부터 축구계에서는 새로운 시도가 시작됐다. 토너먼트 대회 외에 대학 축구의 리그가 생긴 것이다.
[천안=스포츠Q 글 박상현·사진 이상민 기자] 캠퍼스의 금요일은 일주일의 마지막날이기 때문에 술렁거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 술렁거림에는 다소 집중력이 결여되어 있다. 아무래도 주말을 앞둔 상황이기 때문에 당장의 금요일보다는 그 다음날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불타는 금요일'인 21일 단국대 천안캠퍼스도 들썩였다. 그러나 그 들썩임은 뭔가 느낌이 달랐다. 교내 대운동장에서 U리그 왕중왕전 결승전이 벌어진다는 소식에 학생들이 모여들었다. 대학 축구 우승 트로피를 놓고 벌어지는 경기에 마음 속에서 불타오르는 애교심이 끓어올랐기 때문이 아닐까.
경기 시작 1시간 전부터 여기저기에서 단국대 학생들이 몰려들었다. 또 단국대와 우승 트로피를 놓고 다투는 광운대 학생들 역시 원정 응원을 위해 학교 버스 2대에 나눠타고 단국대 천안캠퍼스에 도착했다. 광운대 학생들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았지만 광운대 비마 응원단의 선창에 맞춰 뜨거운 응원전을 펼쳤다.
1990년대 대학축구선수권의 단체 응원 열기만큼은 아니었지만 단국대와 광운대 학생들의 패기 넘치는 응원에 대운동장은 금방 달궈졌다. 단국대 응원단 아마다스의 시범 응원과 체육대학 학생들의 재즈 댄스 역시 결승전의 열기를 더욱 뜨겁게 만들었다.
양교 선수들도 학생들의 응원에 부응하듯 열띤 경기를 펼쳤다. 전반 내내 미드필드에서 밀리지 않는 대접전을 벌였다. 단국대가 광운대의 골문을 위협하면 광운대 역시 탄탄한 수비 뒤 측면 역습으로 맞섰다.
단국대가 전술이나 조직력에서는 약간 앞서는 듯 보였지만 계속된 일정으로 체력이 떨어져보였다. 떨어진 체력은 허점이 됐다. 결국 후반 7분 정기운의 선제 결승골이 단국대의 골망을 흔들었다. 단국대는 선제 실점을 마무리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광운대의 골문을 노렸지만 끝내 열리지 않았다. 두차례의 결정적인 프리킥 기회도 살려내지 못했다. 광운대 선수의 퇴장도 소용이 없었다.
광운대는 원정 경기에서 승리의 환호성을 올렸다. 천안까지 원정을 온 광운대 학생들도 서로 껴안으며 환호를 질렀다.
모교 운동장에서 아쉽게 패배를 당해 2009년 이후 5년만의 우승 도전에 실패한 단국대 선수들은 아쉬운 마음에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단국대 학생들은 박수를 치며 선수들의 선전에 찬사를 보냈다.
2014 카페베네 U리그 왕중왕전 결승에 오기까지 단국대와 광운대 모두 치열한 접전을 벌였다. 지난 4월 11일 개막한 정규리그부터 챔피언십에 해당하는 왕중왕전까지 7개월 동안 진행됐던 U리그에는 역대 최다인 77개팀이 참가해 열띤 경쟁을 벌였다. 그리고 단국대와 광운대가 끝까지 남았고 광운대가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 토너먼트 악연 떨쳐버린 광운대, 분석과 즐김의 힘
광운대는 그동안 토너먼트에서 약하다는 평가를 늘 들어왔다. 광운대가 전력 자체가 약한 팀은 아니었다. 설기현(35·인천) 등 스타를 배출한 대학 축구의 전통 강호이지만 언제나 전국대회와 인연이 없었다. U리그의 권역리그에서는 언제나 상위권이었지만 토너먼트는 광운대의 유일한 '약점'이었다.
오승인(49) 감독은 "이런 토너먼트 대회에서 우승해본 것이 2009년 1~2학년 대회가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며 "토너먼트에 약하다는 꼬리표를 뗄 수 있어서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광운대의 출발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시즌 첫 대회인 춘계대학축구연맹전에서 한성규와 정기운이 부상을 입으면서 팀이 흔들렸다. 오승인 감독은 "춘계 연맹전에서 8강에 그쳤다. 그 때 성적을 냈어야 했는데"라고 아쉬워했다.
이처럼 광운대의 올해 여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하지만 두 선수의 부상은 오히려 광운대 선수들이 똘똘 뭉치는 계기가 됐다.
오승인 감독은 "두 주전의 부상 때문에 앞으로 한 해를 어떻게 치러야 하나 고민됐던 것이 사실"이라며 "그런데 그 때부터 다른 선수들이 활약을 해주기 시작했다. U리그에서도 점차 만족스러운 경기력이 나왔다"고 밝혔다.
그러나 오 감독은 선수들에게 구태여 큰 부담을 주지 않았다. 오 감독은 평소에 선수들에게 우승을 해야 한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오 감독은 "내 축구 철학은 항상 선수들과 함께 경기를 즐기자는 것"이라며 "경기와 상대 팀을 분석하는 것도 앞으로의 경기를 더 즐기기 위한 그 이상의 것은 없다. 그 분석을 통해 만들어진 전술이 맞아들어가는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단국대와 결승전만 하더라도 측면을 적극 공략하며 된다고 봤는데 그것이 그대로 맞아 떨어졌다. 그렇게 해서 이긴 경기라 더욱 기쁘다"고 말한다.
오승인 감독은 선수들에게 다양한 포지션을 경험해보라고 말한다. 오승인 감독 역시 현역 시절 골키퍼를 제외하고 필드 플레이어 전 포지션을 소화했다. 오 감독도 "어느 위치에 있어서 선수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자신의 철학을 얘기한다.
그 결과 광운대 학생들은 '취업 시장'에서 뛰어난 성과로 귀결됐다. 한성규와 김민혁은 자유계약선수로 각각 수원 삼성과 FC 서울에 입단했고 전현재와 조향기는 서울 이랜드FC에 우선 지명을 받았다.
오승인 감독은 "광운대는 이번 겨울 취업시장이 따뜻하다. 굳이 우승을 하지 못하더라도 경기력이 좋으면 프로 진출은 따라오기 마련"이라며 "이번 시즌에도 선수들의 취업이 잘 되어서 기쁘다. 전국 대학 최고 수준이라고 해도 무방하다"고 기뻐했다.
오승인 감독의 눈은 벌써 내년을 향해 있다. U리그 왕중왕전 우승으로 오승인 감독은 내년에도 좋은 경기력을 펼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 감독은 "주축 선수들의 졸업 공백을 동계훈련에서 어떻게 메우느냐가 관건"이라며 "하지만 U리그 왕중왕전에서 보여줬던 광운대의 저력은 내년에도 기대감을 갖게 한다"고 말했다.
선수들에게 언제나 100점을 주는 오승인 감독의 뚝심은 광운대의 사상 첫 U리그 우승으로 이어졌다. 오승인 감독의 즐김과 분석의 축구가 광운대의 뚝심과 저력을 만들었고 대학 축구의 최강으로 만들었다.
◆ 전국체전 우승, U리그 준우승…단국대의 후회없는 2014년
신연호(50) 단국대 감독은 경기 직전 운동장을 바라보며 "모교에서 열렸던 경기에서는 좋은 기억이 많으니까 제대로 해보려고 한다"며 "선수들이 다소 지쳐있긴 하지만 90분 제대로 견뎌보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단국대는 U리그 왕중왕전에서 12연승을 달리는 등 최강의 면모를 자랑했다. 그러나 이틀 간격으로 계속되는 경기에 지쳐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지난달 제주에서 열렸던 전국체육대회에서 우승까지 차지하면서 쉴 틈이 없었던 것이다.
단국대의 경기력은 나무랄 곳이 없었다. 이날 학교까지 찾아와 대학 선수들의 경기력을 지켜 본 울리 슈틸리케(60) 감독도 "조직력에서 있어서는 단국대 쪽이 훨씬 좋아 보인다"고 말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후반 들어서면서 다소 지쳐있는 기색이 역력했고 광운대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단국대 선수들은 피로를 이겨내면서 마지막까지 광운대를 몰아붙였지만 기대했던 골은 나오지 않았다. 모교 운동장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우승컵을 내준 아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신연호 감독은 단국대의 2014년은 성공적이라고 말한다. 신연호 감독은 "올해 우리 선수들의 점수를 준다면 95점이다. 아쉬움이나 후회는 없다"며 "그래도 U리그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으니까 5점은 빼야 하지 않겠느냐"고 웃어보였다.
신연호 감독은 "선수들이 힘든 일정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열심히 해준 것이 고맙다"며 "득점력이 다소 떨어지는 것이 아쉽긴 하지만 팀 조직력이 워낙 잘 맞아 실점이 많지 않았다. 공격만 잘 마무리해주면 승리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신 감독은 "남해에서 열렸던 경희대와 4강전을 마친 이후 나흘 여유가 있어 선수들의 피로가 어느 정도 풀릴 것으로 봤는데 역시 12경기를 쉼없이 달려온 것이 컸다"며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긴 했지만 시즌 2관왕도 자신있었다. 그러나 광운대가 역시 잘했다"고 평가했다.
대학 축구팀의 감독의 가장 큰 고민은 역시 '취업'이다. 프로에 얼마나 가느냐가 감독들의 가장 큰 일이다. 이에 대해 신 감독은 "내가 부임 초기부터 선발한 선수들이 꾸준히 조직력과 경기력을 다졌다. 그 결과 4학년 선수들의 취업도 잘 됐다"며 "단국대는 앞으로도 최강의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하고 자신한다"고 밝혔다.
◆ 대학 축구 관전한 슈틸리케 "패기 뛰어나지만 아쉬운 점이 많다"
U리그 왕중왕전 결승전에는 슈틸리케 감독도 찾았다. 대한축구협회가 새로운 대표팀 전임 감독을 뽑으면서 기준이 바로 대표팀 뿐 아니라 한국 축구 전반에 대한 조언까지 해줄 수 있는 지도자였다. 슈틸리케 감독은 이 기준에 기꺼이 응했고 유소년부터 대학 축구까지 한국 축구 경기가 열리는 곳곳을 찾고 있다.
슈틸리케 감독에게 아무래도 대학 축구라는 것은 낯설지 않을 수 없다. 그가 활동했던 독일이나 스페인 등 유럽에는 대학 축구가 그다지 활성화되어 있지 않다. 누구나 알듯이 유럽은 클럽 축구 문화이기 때문에 대학 축구는 낯선 문화다.
슈틸리케 감독은 이에 대해 "대학 축구도 한국 축구다. 대학 무대는 만 19세 이상의 선수들이 활약한다. 이들은 한국 축구의 미래"라고 평가했다.
전반전을 유심히 살펴본 슈틸리케 감독은 "전반적으로 기동력과 스피드, 패기가 뛰어나다"며 "그러나 선수들의 개개인 성향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개인기와 복합적으로 발휘될 수 있도록 지도하면 좋겠다"고 평가했다.
경기가 끝난 뒤 슈틸리케 감독은 경기가 벌어진 인조잔디를 살펴봤다. 슈틸리케 감독은 "천연 잔디 구장도 많이 보급되어 있는데 아무래도 인조 잔디에서 경기하기에는 어려움이 조금 있을 것"이라며 "또 인조 잔디 역시 오래 됐는지 너무 짧다. 선수들이 최고의 경기력을 보여주기엔 무리가 있다. 아쉬운 점이 많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슈틸리케 감독이 본 대학 축구는 그다지 나쁜 인상은 아니었던 듯하다. 이날 경기를 치른 광운대와 단국대 선수들을 향해 흐뭇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손수 메달을 걸어주기도 했다.
선수들의 경기 모습을 지켜 본 양교 학생들도 뿌듯한 표정이었다. 이긴 광운대 학생들은 물론이고 진 단국대 학생들 역시 시상식 장면까지 모두 지켜봤다.
이름 밝히기를 꺼려한 한 단국대 학생은 "앞으로도 이런 경기가 자주 교내에서 벌어졌으면 좋겠다"며 "학생들은 취업과 학점에 찌들어 있다. 요즘 모두가 '미생'이라는 얘기가 나도는데 경기를 응원하는 순간만큼은 잠시만이라도 '완생'이 된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직접 원정 응원을 온 광운대 지윤석(20) 씨는 "모두가 취업과 공부에 목을 매고 있지만 U리그 같은 행사는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기회라고 본다"며 "원정 응원을 위한 모집을 했지만 홍보가 부족했는지 체육학과 학생들 위주로 왔다. 학교를 알리는 계기도 되고 모든 학생들이 뭉치는 계기가 되는만큼 앞으로는 많은 학생들이 함께 U리그의 매력에 빠졌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취재후기] 우승 트로피의 몫은 광운대였다. 단국대 선수들은 눈앞에서 놓친 정상에 아쉬움을 토로했다. 하지만 이내 양교 선수들은 시상식에서 서로가 서로를 축하하고 위로하며 기쁨을 나눴다. 1등이 아니면 패배나 다름없다는 각박한 사회 속에서 경쟁은 어느덧 남을 누르고 자신이 이기는 것으로 변질됐다. 그러나 진정한 경쟁의 의미는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모두가 발전하는 것이 아닐까. 남을 누르고 자신이 우뚝 선다면 거기서 경쟁은 끝이고 더이상 발전은 없을테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 대학 스포츠의 경쟁이 진정으로 우리가 바라는 경쟁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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