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자Tip!] 황정민이 ‘공작’을 통해 실존 인물을 연기했다. 그는 액션신 하나 없이도 눈빛과 대사만으로도 팽팽한 긴장감을 만들어내며 활약했다. 한 인물의 이면적인 모습을 담아낸 황정민이 전하는 ‘공작’ 이야기를 들어봤다.
[스포츠Q(큐) 이은혜 기자] 영화 ‘공작’(감독 윤종빈)은 실제 있었던 ‘흑금성 사건’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첩보물이다. 화려한 액션신이 없는 ‘공작’은 황정민, 이성민, 주지훈, 조진웅 등 캐릭터 중심의 이야기를 완성시켰다. 배우들은 총성 한 발 없는 작품을 ‘웰메이드 첩보물’로 만들어냈다.
1일 오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영화 ‘공작’에서 박석영을 연기한 황정민과의 인터뷰가 진행됐다.
◆ ‘흑금성 사건’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
‘공작’의 이야기는 1991년부터 2005년까지 이어지는 방대한 이야기다. 그중 가장 중심에 있는 사건은 1997년 12월 대선에서 당시 김대중 후보 낙선을 위해 안기부가 주도한 북풍 공작이다.
황정민은 ‘공작’ 시사회 이후 인터뷰에서도 이 사건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고 솔직히 말하며 참여 이유를 설명했다.
“이 사건을 몰라서 시작했어요. 몰랐던 것에 대한 창피함이 시작이었던 거죠. 시나리오를 받기 전에 윤 감독이 팟캐스트 주소를 보내주더라고요. 그래서 들었는데 너무 놀랐죠. ‘내가 이런 것도 몰랐다고?’ 했어요. 대본은 사실 밋밋했지만 그 이야기들을 어떻게 다이내믹하게 표현할지 궁금했어요.”
영화 속 황정민은 안기부의 블랙 요원 흑금성이자 무역 회사와 광고 회사의 평범한 박석영을 동시에 연기했다. 실제로는 한 사람이지만 흑금성과 박석영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1인 2역과도 같은 노력이 필요했다.
“차이점을 외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게 많은데 그걸 다 배제하고 감정적으로, 심리적으로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를 가장 많이 고민했어요. 표준말과 사투리같은 표면적인 말투는 그나마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선택이었던 것 같아요. 그 정도도 안 하고 두 캐릭터의 성격을 구축하고 표현하는 건 어려웠어요. 조금 쉬운 선택일 수 있었는데 잘 나온 것 같아 다행이었죠”
황정민은 ‘공작’을 준비하며 흑금성 사건의 실제 인물인 박채서 씨를 만나기도 했다. 박채서 씨는 2005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감됐고, 2016년 만기 출소했다.
“자신의 삶을 내려놓고 국가를 위해 한 우물만 파는 사람이니까, 정말 궁금했다. 그래서 실제로 뵙고 싶었다. 만났는데 눈을 읽을 수 없었다. 우리가 상대방과 대화하고 눈을 보면 ‘아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이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박채서 씨는 눈을 읽을 수 없었다. 진짜 큰 단단한 바위 같은 느낌이 있다. 그런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인이 박혀 그런지 모르겠지만 사람을 보고 느낌을 읽을 수 없는 건 처음이었다”
◆ ‘공작’, 액션 없는 첩보물
첩보물인 ‘공작’의 가장 특징적인 것은 액션신이 없다는 것이다. 총이 등장하지만 총이 발사되지는 않고, 인물들 사이에 사소한 터치는 있지만 주먹다짐으로 번지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작’은 시작부터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하는데 성공한다. 이는 배우들과의 뛰어난 호흡과 윤성빈 감독의 연출이 만들어낸 시너지 효과다.
“초반에 대만에서 촬영했던 고려관에서 이성민 배우와 독대하는 장면이 정말 힘들었다. 서로 이야기 하고 있지만 테이블 밑으로는 칼이 오가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서로 숨겨야 하는 게 있지만 관객들에게는 보여야 하는 게 있으니까. 그 장면을 촬영하고 대화를 많이 하기 시작했다. ‘내 카드가 이것밖에 안 되니 도와달라’고 했고, 많은 도움을 받았다.”
황정민은 이번 작품 속 북한에서 김정일을 만난 장면을 촬영하며 가장 긴장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정일 만나는 장면은 정말 긴장했어요. ‘이게 실제였으면 어떻게 차렷하고 서 있을까’싶었죠. 대사들이 제법 많았는데 해외 분장팀 일정 때문에 3일 밖에 시간이 없었어요. 준비를 단단히 해서 갔는데 막상 연기를 시작하니 계속 NG가 나더라고요. 구석 가서 벽 보며 다시 연습했는데, (이)성민 형도 그러더라고요.(웃음) 세트장이 엄청 커서 우리가 개미같이 느껴지기도 했어요.”
남과 북 사이에 있었던 이야기를 소재로 다루는 ‘공작’은 첩보물에 흔하게 등장하는 피와 싸움이 없다. 이는 관객들에게는 새로운 신선함이 되지만 작품에 참여하는 배우에게는 불안한 도전일 수도 있다.
“첩보물이라고 했을 때 기본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건 능수능란한 액션, 피, 싸움인데 그런 게 없어요. 처음에는 ‘어떻게 하려는 거지?’, ‘2시간 동안 관객들을 이끌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죠. 그런데 막상 촬영을 해보니 윤종빈 감독이 왜 이렇게 하겠다고 했는지 믿음이 생겼죠. 첩보물인데 액션이 없는 작품을 해 보는 것도 배우 필모그래피에서는 근사한 일이잖아요.”
◆ 작품 선택의 기준은 이야기와 관객
배우 황정민에게는 실존하는 이야기를 더욱 와 닿게 만드는 힘이 있다. 천만 관객을 동원한 ‘국제시장’에서도 그랬고, 이번 ‘공작’에서도 진한 울림을 선사했다. 정치적 색과 장르를 넘어 캐릭터가 가진 이야기를 전하는 황정민은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말을 전했다.
“작품 선택의 기준은 이야기와 관객이에요. ‘관객들과 어떤 이야기를 하나’가 중요하죠. ‘공작’이라는 이야기를 통해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이 만들어지는 거니까요.”
‘공작’을 통해 새로운 첩보 영화의 주인공이 된 황정민은 이번 작품을 통해 ‘신념’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됐다는 말도 전했다. 또한 자신의 신념에 대한 이야기를 솔직한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다.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그게 말은 쉽지만 안 돼요, 못 돌아가요. 영화를 여러 번 찍으면 내성이 생기거든요. 다른 이야기, 다른 인물이지만 쉽게 갈 수 있는 요령이 생겨요. 그걸 보시는 관객들은 쓴 소리를 하시기도 하고, 그걸 받아드리는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고민을 많이 해요. 지금은 좋은 쪽으로 생각해요.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것도 감사한 일이죠. 지금은 편안하고 재미있게 하고 있어요.”
[취재후기] ‘공작’의 황정민은 한 시대를 대표하는 배우가 됐다. 최고의 배우가 된 황정민은 자신을 향한 비판을 비롯한 다양한 시선을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이런 배우가 되길 꿈꾸고 있었다.
“저랑 같은 시대를 사는 분들이 나중에 자손들에게 ‘내가 젊을 때 이런 배우 있었어’, ‘그런 근사한 배우 있었어’ 하고 소개해 줄 수 있는 배우였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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