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Q(큐) 나혜인 기자] 팬데믹 4년 차, 극장의 봄은 갈 길이 멀다. 천만 영화 단 2편이 극장을 먹여 살렸고 손익분기점을 넘긴 영화는 고작 10편, 100만 커트라인에 떨어져 나가는 영화들도 수두룩하다. 마지막 타자로 나선 '하얼빈'이 사흘 만에 150만 관객을 돌파하며 선전하고 있지만 탄핵 정국으로 인해 섣불리 흥행을 점치기 어렵다. 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동안 모셔둔 창고영화를 대부분 털어냈으니, 내년에는 신선한 활어들이 극장의 활기를 가져오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
◆ 한국영화 100만 보릿고개, 극장 수익 '사치'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2024년 1월부터 지난 26일까지 극장을 찾은 관객 수는 총 1억2070만명, 매출액은 1조1713억9007만원으로 나타났다. 오는 31일까지의 추정 관객을 더하면 지난해 관객 1억2513만명, 매출액 1조2614억1201만원과 비교해 적거나 비슷한 수치로 한 해를 마무리할 전망이다. 개봉편수와 상영편수는 2023년 1539편, 2621편에서 2024년 1400편, 2371편으로 각각 100편, 300편가량 줄어들었다. 편당 관객 수는 오히려 늘어난 셈이다.
한국영화 관객은 지난해보다 1000만명 가까이 늘었다. 2023년 한국영화 총 관객 수는 6075만명, 2024년은 26일 기준 6971만명을 기록했다. 매출액 역시 5984억원에서 6741억원으로 증가했다. 금주 '하얼빈'이 개봉 후 첫 주말을 맞이하므로 2024년 한국영화 전체 관객 수는 700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측된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한국영화 관객 수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라는 점은 고무적이지만, 최고점을 찍은 2019년 1억1562만명의 절반을 웃도는 성적은 계속되는 극장 불황을 나타낸다.
특히 올해는 '파묘'(1191만)와 '범죄도시4'(1150만) 두 편이 영화 시장 붕괴를 막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영화 개봉작 613편 중 1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는 17편, 200만명으로 기준선을 높이면 천만 영화 두 편과 '베테랑2'(752만), '파일럿'(471만), '소방관'(298만), '탈주'(256만) 6편으로 정리된다. 지난해 '서울의 봄'(1185만), '범죄도시3'(1068만)이 극장가를 살려낸 것과 같은 결과다. 100만 관객도 모으기 힘든 상황이 계속되다 보니 손익분기점을 달성한 한국영화는 두 손에 꼽힌다. 올해 손익분기점을 달성한 영화는 '파묘', '범죄도시4', '베테랑2', '파일럿', '소방관', '탈주', '핸섬가이즈', '사랑의 하츄핑', '건국전쟁', '소풍' 10편이다.
◆ 팬데믹 이후 극장, 서브컬쳐 주목
일반 상업영화들이 고충을 겪는 반면, 서브컬쳐는 메이저의 길을 걷고 있다. 지난해 '엘리멘탈', '스즈메의 문단속', '더 퍼스트 슬램덩크',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가 전체 박스오피스 톱15를 장식하고, '명탐정코난', '짱구는 못말려', '귀멸의 칼날' 등 재패니메이션 극장판이 크게 흥행하면서 애니메이션 중심의 서브컬쳐가 메인스트림으로 급부상했다. CJ CGV에 따르면 애니메이션 영화 관람객은 2019년 13.3%에서 2023년 24.4%로 11%p 증가했다. 관람객 구성도 어린이-청소년 외 연령이 5% 이상 증가했다. 서브컬쳐 주 관객은 소비 충성도가 높은 팬덤으로 이뤄져 팬데믹 이후 극장 소비 변화에 큰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SNS 및 커뮤니티 활동이 활발해 입소문 전파에 특화된 점, 티켓 가격 상승이 'N차 관람 욕구'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점이 두드러졌다.
올해도 애니메이션이 흥행 가도를 달렸다. 디즈니-픽사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2'는 879만명을 동원하며 '파묘', '범죄도시4'와 나란히 2024 박스오피스 톱3를 장식했고, 지난 11월 개봉한 디즈니 애니메이션 '모아나2'(323만)는 개봉 한 달 만에 전체 박스오피스 7위를 사수했다. '쿵푸팬더4'(177만), '슈퍼배드4'(156만), '위시'(140만)도 100만 고지를 넘고 30위권에 자리했다.
한국 애니메이션도 새 역사를 펴냈다. 인기 국산 애니메이션 '캐치! 티니핑'의 극장판 '사랑의 하츄핑'이 어린이 영화라는 편견을 깨고 1020세대의 관심을 끌며 123만명을 모은 것. 이는 손익분기점 50만명의 2배를 훌쩍 넘긴 성취다. 특히 한국 애니메이션이 12년간 넘지 못했던 '100만의 벽'을 넘으며 2011년 '마당을 나온 암탉'(220만명)의 뒤를 잇는 한국 애니메이션 영화 역대 두 번째 흥행을 썼다.
재패니메이션 극장판 '명탐정 코난: 100만 달러의 펜타그램'(75만), '극장판 하이큐!! 쓰레기장의 결전'(74만)은 스타 배우들이 출연한 국내 상업영화 '행복의 나라'(71만),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68만), '보통의 가족'(65만), '원더랜드'(62만), '아마존 활명수'(60만), '설계자'(52만), '빅토리'(50만)보다 높은 관객 수를 기록했다. '귀멸의 칼날: 인연의 기적, 그리고 합동 강화 훈련으로'는 전체 박스오피스 50위권 내 가장 적은 스크린 수 393개로 49만명을 모았다. 50위권 밖의 '도그데이즈'(36만), '1승'(31만), '대가족'(30만), '리볼버'(24만), '데드맨'(23만), '사흘'(20만), '더러운 돈에 손대지 마라'(8만)보다도 적은 스크린 수였다. (*누적 관객 수)
◆ 애니메이션 제작 호황, 더빙 시장 부활 기대
주류 문화를 넘어선 서브컬쳐는 어린이 영화 위주의 국내 애니메이션 시장에 새바람을 몰고 왔다. 내년에는 '사랑의 하츄핑'을 발판 삼아 더 많은 한국 애니메이션이 대중과 만난다.
먼저 이우혁 작가의 1000만부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하는 K-오컬트 애니메이션 '퇴마록'이 내년 2월 개봉을 준비 중이다. 원작은 1998년 안성기, 신현준 주연의 영화로 제작된 바 있으며 웹툰, 게임, 드라마 등 다양한 IP 확장을 낳았다. 내년 극장 개봉하는 '퇴마록'은 론칭 포스터와 예고편 공개만으로 폭발적인 화제를 모았다. 제57회 시체스 판타스틱 영화제, 제48회 안시 국제 애니메이션 영화제에 공식 초청되며 작품성을 인정받기도. '유미의 세포들', '런닝맨', '레드슈즈' 등을 제작한 국내 대표 애니메이션 제작사 로커스가 제작을 맡았으며, 이우혁 작가가 직접 크리에이터로 참여해 눈길을 끈다. 여기에 국내 대표 성우 남도형, 최한이 목소리 연기를 펼칠 예정이다.
OTT업계도 한국 애니메이션 제작에 열을 올린다. 넷플릭스는 선댄스 영화제 등 해외 유수 영화제에서 주목받은 한지원 감독과 손잡고 '한국 첫 애니메이션' 제작 소식을 알렸다. 한지원 감독의 신작 '이 별에 필요한'은 고연령층을 타깃으로 한 오리지널 상업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티빙은 내년 라인업에 3편의 애니메이션을 포함했다. 웹툰 기반의 애니메이션 '테러맨', '나노리스트'와 드라마 '구미호뎐'의 프리퀄 애니메이션 '구미호뎐: 연의 시작'이 2025년 공개된다.
다만, 국내 애니메이션 제작 호황이 성우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아직 미미하다. 상업 애니메이션은 유명 배우들이 목소리 연기를 맡는 경우가 많고, 수요(애니메이션)에 비해 공급(성우)이 넘쳐나기 때문. '이 별에 필요한'만 해도 배우들의 액팅을 이용해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특수성이 있어 김태리와 홍경이 목소리 연기를 맡기로 결정했다.
성우들은 K-애니메이션 제작 증가가 더빙 시장 활성화로 이어지길 희망했다. 신범식 성우는 "위축된 더빙 시장이 활성화되려면 자체 콘텐츠가 많이 나와야 한다"며 "지금의 서브컬쳐는 일본 기반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활발한 한국 콘텐츠 제작을 통해 후배 세대에는 자체 콘텐츠로 목소리 연기를 할 수 있는 시대가 왔으면 한다"고 전했다. 민승우 성우는 "지금까지는 이미 제작된 외화를 더빙하는 일이 성우의 주요 업무였다. 그런데 최근 K-웹툰 시장이 커지면서 국내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을 만나보는 것이 어렵지 않은 시대가 왔다"며 "'명탐정코난'처럼 수십 년 사랑받는 장수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이 제작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양질의 다양한 콘텐츠로 성장해 나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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