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12-27 17:51 (금)
[인터뷰Q] '공작' 윤종빈 감독의 과감한 선택, '첩보물'에 대한 새로운 시각
상태바
[인터뷰Q] '공작' 윤종빈 감독의 과감한 선택, '첩보물'에 대한 새로운 시각
  • 이은혜 기자
  • 승인 2018.08.07 08: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0자Tip!]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로 충무로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던 윤종빈 감독은 ‘비스티 보이즈’, ‘범죄와의 전쟁’, ‘군도’로 꾸준히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약 4년 만에 선보이는 작품 ‘공작’에서 윤종빈 감독은 자신의 강점은 극대화 시키면서도 기존 첩보물과는 다른 시각을 제시하며 한층 더 성장했다.

[스포츠Q(큐) 이은혜 기자] “할 만큼 했어요. 후회는 없어요.”

편집만 10개월이 걸렸다. 언론 시사회 일주일 전까지 편집에 매달릴 정도로 공을 들였다. 영화 ‘공작’이 일반적 형태의 첩보물이 아닌 까닭에 장면에 대한 판단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 ‘스파이 영화’ 공식 깬 ‘공작’

 

영화 '공작' 윤종빈 감독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공작’을 보다보면 의문이 생긴다. 존 르 카레의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나 영화 ‘본’ 시리즈,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이다. 스파이가 등장하는 소설이나 영화에는 필수 요소로 꼽히는 액션은 등장하지 않고, 총은 등장하지만 방아쇠는 당겨지지 않는다는 게 영화 ‘공작’의 특징이다.

“영화에 액션이 없는 이유는 제가 ‘실화에 힘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이야기 자체가 매력인데 액션을 넣으면 그 세계가 파괴될 것 같았어요. 이야기의 힘이 ‘스파이 장르’라는 본질을 건드릴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넣었으면 재미없었을 거예요”

스파이 영화의 기본적인 틀과 이미지에서 벗어난 작품인 ‘공작’은 카메라 앵글 변화로 긴장감을 더하기도 했다. 대척점에 있는 두 인물이 날카로운 대화를 이어갈 때 눈만을 클로즈업하는 방식 등을 사용했다. 다양한 구도의 앵글은 인물들의 대화가 마치 액션처럼 느껴지게 하는 역할을 한다.

“‘액션처럼 보인다’는 이야기는 말이 공격처럼 느껴져야 한다는 건데요. 흑금성이 사업가인 척 할 때는 앵글 사이즈를 넓게 가져가서 겉모습에 집중할 수 있게 했고, 속내를 보여줘야 할 때는 클로즈업을 사용해서 긴장을 느낄 수 있게 했어요. 그것 말고도 다양한 방식이 있었죠.”

‘공작’은 1995년에서 2005년까지 일어난 이야기를 137분 안에 녹여냈다. 실화 배경이다 보니 영화를 보다보면 자연스럽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느 부분이 영화적 상상력일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게 된다. 윤종빈 감독은 “따지기 너무 어려운데요?”라며 웃어보였다.

“긴 기간 동안 일어난 일을 2시간 호흡에 넣는 게 너무 큰 문제였어요. 그래서 그냥 ‘전체 맥락에서 틀린 게 없으면 최대한 심플하게 가자’고 했죠. 소설에는 자세하게 나와 있는데. 정말 인물도 너무 많고 복잡해요. 더 센 이야기도 많고, 증명 불가능한 이야기도 많고요.”

◆ '공작' 향한 우려 섞인 시선들

 

영화 '공작' 윤종빈 감독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윤종빈 감독은 제작보고회나 시사회 현장에서 “이 영화를 제작할 수 있을까 의심했다”, “기획 단계에서 뜯어 말린 사람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윤 감독이 ‘공작’을 기획하고 있었을 때는 암암리에 블랙리스트나 제작 지원 압박 등에 대한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을 무렵이었다. 말 그대로 영화에 대한 어떠한 것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말은 그렇게 했어도 ‘우리나라가 민주사회고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인데 설마 그렇겠어’ 했어요. 주변에서도 ‘야 너 조심해야 돼’ 하는데 저는 그냥 ‘영화 한 편 찍는데 뭐’ 했거든요. 근데 또 그런 우려들 때문에 촬영이 끝날 때까지는 조용히 찍고 싶기도 했어요. 그런데 촬영 들어가기 전에 천지개벽이 일어났죠, 뭐. 한 치 앞도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영화 외적인 문제 뿐 아니었다. ‘공작’은 작품에 꼭 필요한 평양 신과 김정일 캐릭터를 위해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했다. 북한 장면은 다른 나라에서 촬영해 놓은 영상 소스를 샀고, 김정일 분장을 위해 해외 분장팀을 섭외해 오기도 했다.

“흑금성이 평양으로 들어가 김정일을 만나는 게 전환점인데요, 얼굴이 안 나오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관객들이 이야기를 안 믿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현실적인 대안은 특수 분장이었어요. ‘나는 전설이다’, ‘맨인블랙’, ‘블랙스완’ 담당했던 특수 분장 팀에 김정일이랑 키가 비슷한 배우들 중 제가 좋아하는 연기를 하는 배우 세 분 사진을 보여줬더니 기주봉 선생님과 하면 가장 비슷할 거라는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

특수분장 촬영은 연기자와 제작진 모두에게 도전이었다.

"처음 본 뜬 건 3달 걸렸어요. 그걸 한국으로 가져와서 확인·수정했고, 다시 보냈죠. 다시 들고 와서 테스트 하고, 또 수정해서 촬영 들어갔어요. 분장하면 접착력 때문에 10시간 밖에 못 찍는데 기주봉 선생님은 먼저 나와서 6시간 동안 분장을 하셨죠.”

북한의 모습을 담아내야 하는 ‘공작’을 연출하기 위해 자료조사는 필수였다. 한국에 있는 북한 관련 서적은 거의 다 찾아본 수준이고, 북한 여성 장교 출신 탈북자에게 자문을 구했다. 고증을 따르며 했지만 이해가 안 된 부분은 한국식으로 변형했다.

배우들의 북한 사투리 사용 여부 역시 고민의 한 축이었다. 북한 인물로 등장하는 주지훈 이성민 등은 북한 사투리를 사용하되 관객들에게 피로감을 주지 않아야 한다는 게 윤종빈 감독의 생각이었다.

“북한말 쓰는 배우들에게는 전달이 우선이라고, 사투리에 집착하지 말자는 이야기를 했어요. 사실 우리가 아는 북한말은 함경북도나 평안북도 말씨지, 평양은 사투리가 심하지 않거든요. 어색하게 다가가는 것만큼 관객들을 힘들게 하는 것도 없어요. 그래서 저는 오버하지 말고, 뉘앙스 전달을 해보자는 생각이었죠.”

◆ ‘공작’을 이끈 배우들의 힘

 

영화 '공작' 윤종빈 감독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공작’은 화려한 액션이 없다보니 배우들의 연기력이 더욱 중요해진 작품이다. 황정민, 이성민, 주지훈, 조진웅 등 배우들은 많은 대사들을 소화해야 했고, 넓고 빈 공간이 많은 세트가 주는 특유의 압박감까지 견뎌내야 했다. 윤종빈 감독은 “나도 힘드니까 다 함께 극복해보자고 했죠”라고 말하며 촬영 당시 세웠던 두 가지 원칙에 대해 이야기 했다.

“(주)지훈이 제외하고 (황)정민 선배랑 (이)성민 선배에게 부탁했어요. 1시간 40~50분까지 이 사람 생각하는지 모르겠으면 좋겠다고요.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라고 알리지 말라’가 첫 번째 원칙이었고, 두 번째는 ‘대화 신이 액션 신처럼 느껴졌으면 좋겠다’였어요. 긴장감과 태도가 안 드러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거든요. 그 원칙에서 연기하기 힘들었을 거예요.”

윤종빈 감독은 이렇게 미묘한 디렉팅과 어려운 상황에서도 뛰어난 연기를 보여 준 배우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저희는 거의 다 합의된 연기를 했어요. 디테일한 부분을 배우들이 정말 잘 해줬어요. 정민 선배는 제가 촬영 전에 따로 ‘나는 완벽한 스파이를 원하지 않는다’고 이야기를 했어요. 남을 속이면서도 그 사람의 심리가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걸 다 해주시더라고요. 엄청 놀랐죠”

‘공작’은 황정민 조진웅과 이성민 주지훈이 서로 반대 진영에 서며 긴장감을 유지시킨다. 그러면서도 황정민과 이성민의 관계를 오묘하게 그려낸다. 대립을 세운다기 보다는 서로를 믿는 그림을 그려내며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것이다. 이 역시 첩보 영화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코드다.

“스파이 영화의 본질은 냉전시대의 산물인데, 스파이는 군인이에요. 군인에게는 피아식별이 제일 중요하거든요. 그런데 적으로 만난 사람을 적이 아닌 ‘인간’으로 마주하게 되는 게 이 이야기의 본질이라고 생각했어요. 이명운이 자신의 조국과 국민을 아끼고 안타까워하는 마음에 우리가 동의할 수 있고, 이명운이 보는 흑금성이 스파이지만 신념과 국가를 향한 태도는 인정하게 되는 거요. 그게 이 영화를 관통하는 코드라고 생각해요.”

[취재후기] 윤종빈 감독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실화가 가진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는 말을 전했다. 실화가 가진 힘 뿐 아니라 감독과 배우들의 치열함까지 더해져 있는 ‘공작’ 이후 한층 더 성장할 윤종빈 감독의 이야기가 기대된다.

 

도전과 열정, 위로와 영감 그리고 스포츠큐(Q)

관련기사

주요기사
포토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