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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민도 마운드에, 불혹에 이룬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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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민도 마운드에, 불혹에 이룬 꿈
  • 김의겸 기자
  • 승인 2021.06.23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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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김의겸 기자] 패색이 짙은 팀을 위해 베테랑이 팔을 걷어붙였다. 김강민(39·SSG 랜더스)이 데뷔 20년 만에 투수 등판 꿈을 이뤘다.

9회초 1사 주자 없는 상황, SSG 더그아웃은 국가대표 출신 외야수 김강민을 마운드에 세웠다. 전광판에 김강민 얼굴이 뜨고, 그를 '투수'로 소개하자 인천 SSG랜더스필드는 술렁였다. 팀 최고참의 갑작스런 마운드 등판은 완패를 지켜본 홈팬들에게 소소한 즐거움을 안겼다.

김강민은 22일 인천에서 열린 2021 신한은행 쏠(SOL) KBO리그(프로야구) LG 트윈스와 홈경기 1-13으로 뒤진 9회초 투수로 등판, ⅔이닝을 1피안타(1피홈런) 1볼넷 1삼진 1실점으로 막았다.

2001년 SSG 전신 SK 와이번스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한 그가 투수로 뛴 건 이날이 처음이었다. 한때 '제2 배영수'로 불렸던 그가 불혹 나이에 투수로 데뷔한 것이다.

[사진=SSG 랜더스 제공]
SSG 외야수 김강민이 데뷔 20년 만에 투수로 등판했다. [사진=SSG 랜더스 제공]

패색이 짙었다. 김원형 SSG 감독은 더이상의 투수 소모를 막고자 김강민을 마운드에 세웠다. '맏형님' 김강민은 몸을 사리지 않고 최선을 다했다. 

첫 타자 정주현을 상대할 때는 직구 구속이 시속 130㎞대 중반이었다. 결국 5구째 시속 137㎞ 직구를 얻어맞았다. 좌월 솔로 홈런으로 이어졌다. 김강민은 이후 구속을 높였다. 김재성을 상대할 때는 최고 시속 145㎞까지 나왔다. 김재성을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이어 김용의를 볼넷을 내보낸 그는 이영빈에게 직구 3개를 연속해서 던져 파울 플라이로 이닝을 마무리했다.

SSG 후배들은 더그아웃으로 돌아오는 선배에게 손을 내밀며 존경과 존중의 뜻을 전했다. 팬들은 시속 140㎞ 이상 공을 뿌리는 야수의 투구 하나하나에 탄성을 쏟아냈다. 김강민이 마운드를 내려가자 머리 위로 박수를 보냈다.

구단은 김강민이 직구 17개, 슬라이더 1개, 체인지업 1개, 투심 1개를 던졌다고 분석했다.

[사진=SSG 랜더스 제공]
[사진=SSG 랜더스 제공]

김강민은 대구중 시절 투수로 가능성을 인정받고 야구명문 경북고에 입학했다. 고교 1년 선배 중 한 명이 배영수 현 두산 베어스 투수코치다. 

당시 그는 투수로 성공하겠다는 꿈을 꿨지만 고등학교 1학년 때 손등뼈가 부러지는 바람에 내야수로 전향했다. 2001년 SK에 입단한 김강민은 2군에서 내야수로 뛰며, 이따금씩 투수 훈련도 했다. 2002년에는 시즌 막판 구단으로부터 외야수 전환 제안을 받았다. 빠른 발과 강견이 외야에서 빛을 볼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학창시절 외야수로 뛴 적이 없는 김강민은 남들보다 배로 훈련했고, 그는 외야수로 프로에서 살아남았다. 2007년 주전 외야수로 도약했고, 지금도 리그 최정상급 수비력으로 사랑받고 있다. 돌고 돌아 1군 투수 데뷔전을 치른 김강민의 표정은 밝았다. 못다한 꿈을 잠시나마 이룸과 동시에 홈팬들에게 소소한 위안을 줄 수 있었다. 팀을 위한 베테랑의 희생이기도 했다.

올 시즌 유독 야수가 마운드에 서는 일이 잦았다.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에선 흔한 일이지만 KBO리그에선 올해 들어 그 숫자가 부쩍 늘었다. 과거 최정(SK), 나성범(NC 다이노스), 최동수(LG) 등이 투수로 나선 사례는 있지만 익숙한 일은 아니었다.

투수로 등판한 강경학. [사진=연합뉴스]
투수로 등판한 한화 내야수 강경학. [사진=연합뉴스]

지난 4월 카를로스 수베로 한화 감독은 두산 베어스와 홈경기에서 1-14로 크게 뒤지자 9회초 내야수 강경학을 투수로 기용했다. 강경학이 계속해서 안타를 맞으면서 투구 수가 늘자 한화 벤치는 다시 야수 정진호에게 바통을 넘겼다. 순수 야수 2명이 마운드에 차례로 등판한 건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한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한화는 5월 키움 히어로즈전에서도 승부가 기울자 야수 정진호를 마운드에 세웠다. 지난해에는 노시환이 NC를 상대로 공을 던진 바 있다. 올해 허문회 롯데 전 감독도 추재현, 배성근, 오윤석을 투수로 등판시키기도 했다.

최근에는 미국에서도 관련 규정을 손보기도 했다. 2019시즌 앞서 "야수의 투구를 허용하지 않는다"며 △ 경기가 연장에 돌입하거나 △ 6점차 이상 벌어진 상황에서만 야수가 투수로 등판할 수 있도록 했다. MLB에서 제한을 뒀음에도 여전히 야수의 마운드 등판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이제는 KBO리그에서도 야수의 마운드 등판이 하나의 트렌드가 된 듯 보인다.

미국야구를 경험한 수베로 감독이 투수를 아끼고자 이 같은 시도를 했고, 한국야구에 화두를 던졌다. 처음에는 사령탑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렸지만 올해 많은 케이스가 양산됐다. 이날 김강민의 호투(?)는 프로야구에 불고 있는 새로운 바람과 트렌드를 대변하는 것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팬들에게 큰 볼거리를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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