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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야구 살림꾼' 박원준, 은퇴 후 돌아본 연맹 11년 [SQ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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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야구 살림꾼' 박원준, 은퇴 후 돌아본 연맹 11년 [SQ인터뷰]
  • 민기홍 기자
  • 승인 2022.03.23 09: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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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스포츠Q(큐) 민기홍 기자] 한국프로야구의 젖줄, 리틀야구는 지난달 큰 변화를 맞이했다. 10년 넘게 연맹 살림을 책임졌던 박원준 사무총장이 물러날 뜻을 밝힌 것이다.

이는 지난해 1월 연맹 지휘봉이 ‘리틀야구 대부’ 한영관 회장에서 유승안 회장으로 넘어간 것에 버금가는 빅이슈가 아닐 수 없다. 박 총장이 한 회장을 보좌한 동안 리틀야구는 리틀리그 월드시리즈 우승, 화성 드림파크 개장, 프로야구 드래프트 선수 대거 배출 등 숱한 성과를 거뒀기 때문이다.

이제 연맹 자문위원으로 한 발 물러난 박원준 전 총장을 경기도 광명시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유승안 회장은 지난달 14일 제1차 정기이사회에서 “리틀야구가 성장 발전하는데 기여했다”며 “리틀야구 가족 모두의 뜻을 모았다”며 박 총장에게 공로패를 전달했다. 그에게 리틀야구의 과거, 현재, 미래를 물었다.

한국리틀야구연맹에서 물러난 박원준 총장. [사진=본인 제공]

- 10년 넘게 일한 직장을 그만두셨습니다. 요즘엔 어떻게 지내십니까?

“제 닉네임이 ‘아톰61’입니다. 10여 년 전 안양 산타즈 여자야구단을 창단할 무렵 무렵 만든 애칭인데요. 숫자 61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투수를 하는 막내(둘째 아들)가 박찬호처럼 훌륭한 야구선수가 되기를 바라는 꿈을 담았고, 제 나이 만 61세가 되면 일선에서 물러나겠다는 은퇴 시기를 정한 겁니다. 지난해가 그때였습니다. 그런데 연맹에 신임 회장이 취임하면서 한 시즌을 함께 일할 수 있는 총장 보직을 맡아 업무를 총괄했습니다. 시즌 종료 후 정년 이야기가 나오면서 자연스럽게 명예퇴직을 고민하고 있었고, 공교롭게도 연초에 아내가 예기치 못한 대장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사실 올 시즌 코로나 확산으로 정상적인 대회 개최 문제 등 이런저런 이슈가 있었어요. 하지만 아내의 간병이 최우선 당면과제고, 그래서 당분간은 집사람을 보살펴야 겠다고 (은퇴를)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요즘엔 아침식사로 사과도 직접 깎고 계란프라이, 토스트, 버섯볶음밥 등 간단히 음식도 만들고... 설거지와 분리수거는 전담으로 하고 있습니다."

아내 이미라 씨(오른쪽)와 함께. [사진=스포츠Q(큐) DB]

- 2014년부터 총장을 지켜봤는데 일밖에 모르는 사람 같아 보였습니다.

“사실 군복무를 3년만 했으면 전역 후 퇴직금으로 일본에 야구 유학을 가려 계획했는데 장기복무를 하게 되었고, 22년간 군 생활을 하다 보니까 야구와는 단절된 상태였죠. 그러다 전역 무렵인 2004년 둘째 아들이 야구선수를 시작했네요. '야구대디'가 되어 경기장을 따라 다니다 안양시야구협회 전무, 경기도야구협회 기획이사로 현장과 연결이 되었죠.

리틀야구연맹은 2011년 (상반기) 심판위원으로 연을 맺었는데 9월부터 홍보이사를 맡으면서 사무처 업무를 보게 됐습니다. 이후 기획이사, 심판이사, 사무처장을 거쳐 사무총장으로 물러나게 됐습니다. 아무래도 군생활 영향인지 시즌 중에는 주말 없이 기본업무와 대회진행, 대외협력 등을 전념하며 마치 일에 중독된 것 같은 느낌이 많았습니다.“

- 스스로 점수를 매긴다면 몇 점을 주겠습니까?

“90점은 주고 싶은데 평가는 다른 사람들이 하는 거죠(웃음).”

- 후련하면서도 아쉬움이 많을 것 같습니다.

“아직 현안 업무들도 많고 추진 중인 사안들이 있다 보니 후련하지는 않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리틀리그 월드시리즈 메이저대회에서 우승을 못한 게 가장 아쉽습니다. 단장으로 참여했던 두 대회 중 13세 인터미디어트 디비전은 2015년 우승을 맛봤는데, 가장 큰 대회인 12세 메이저 디비전은 2018년 인터내셔널 챔피언만 하고 정상에 못간 것이 너무 마음에 걸립니다.

2019 메이저 월드시리즈. 리틀야구 성지에서. [사진=본인 제공]

그리고 주니어부 활성화를 이루지 못한 게 실무 입장에서 미안한 마음입니다. 2012년 6월 당시 구본능 KBO 총재와 야구 원로들을 모시고 구리주니어구장 개장‧출범식을 한 게 엊그제 같이 생생한데,.. 주말리그로 제한된 운영을 해야 하고 국제교류전이나 대회 참가가 어렵다 보니... 올해는 어떻게든 국제교류전이라도 성사시켜 보고 싶었는데...

​아, 또 하나 있네요.“

- 무엇입니까?

“외교와 행정력입니다.

2015 인터미디어트 월드시리즈 우승 후. [사진=본인 제공]

세계연맹이 보기에 한국 리틀야구는 2014 월드시리즈 우승 전까지는 그냥 변방일 뿐이었을 겁니다. 사실 지금도 외교력은 걸음마 수준이라고 봅니다. 2016년 서울에서 그리고 2017~2019년 APT(아시아-태평양 지역예선대회)를 화성드림파크에서 유치한 이후에서야 입지가 약간 커진 거죠.

보람찼던 기억이 떠오르는데요. 2018년 1월 뉴올리언스에 열린 국제회의에 참석했어요. 미국 전역을 포함해 전 세계 리틀야구 관계자 1000명이 한 번에 참가해 4박5일을 보내는 일정입니다. 한국은 이전까지 그런 회의를 잘 알지도 못했고 관심도 없다가 그제서야 거길 처음 간 겁니다.

민간외교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네트워킹 해야 합니다. 제가 페이스북에 영어로 꾸준히 포스팅을 올리는데요. 그들과의 교류, 교감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연맹에서 물러났지만 개인적으로라도 그 시기엔 매번 방문하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라도 그런 회의는 꼭 참가하려 합니다.

- 연맹에서 일하는 동안 선수들의 국제경쟁력이 몰라보게 달라졌습니다.

“2014년 리틀리그 본선에서 일본을 두 차례 깨고 우승한 속을 들여다보면 국제교류전이 있습니다. 연맹은 2010년부터 전국의 우수한 선수를 발탁해 매년 2월 미국 로스앤젤레스(LA)로, 샌디에이고로 전지훈련을 보냈습니다.

2018 뉴올리언스 국제회의. 아시아태평양 임원들과. [사진=본인 제공]

이 친구들이 ‘비행기 타고 미국을 간다’, ‘현지 선수들과 겨룬다’는 사실만으로도 경험과 맷집이 생기는 게 눈에 보였습니다. 선수뿐이겠습니까? 지도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점점 강해진 거죠. 그 결과가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이어졌다고 봅니다.“

- 드래프트에서 지명되는 비율도 무척 높아졌습니다.

“그렇죠. 10년 전만 해도 리틀야구 출신이 드래프트로 프로에 입단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학교야구가 우선시 되는 분위기가 강했어요. 그러나 리틀야구가 괄목성장했고 상대적으로 초등학교 야구부는 침체되는 상황이 맞물리면서 이런 성과가 나온 것 같습니다.”

- 지도문화가 변한 것도 성과 중 하나라 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스포츠인권위원회도 생기고 지도자들 의식이 많이 변한 건 맞습니다만... 아직도 정신 못 차린 이들이 있습니다. 극소수이긴 하나 부지불식간에 아직도 일부 감독들이 폭언을 뱉습니다. 제어를 못하는 거죠. 리틀연맹은 10년 전부터 ‘야 인마’도 못하게 했습니다. ‘XX야’ 하면 경고 없이 퇴장시킬 수 있게 규정도 정비해 놓았죠. 그런데도 지난해 수도권 모 팀에서 폭언이 나왔어요.

2019 메이저 월드시리즈 카퍼레이드. [사진=본인 제공]

최근에도 초등학교 팀이 전지훈련 가서 연습경기 하는데 덕망 있는 지도자로 알려진 분이 폭언했다고 학부모 커뮤니티에서 공론화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부끄럽지만 이런 지도자들에겐 보다 강력한 처벌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강하게 처벌하려 하면 팀 성적, 진학 등의 이유로 감독을 추종하는 일부 학부모들도 문제라고 봅니다.

월드시리즈에 가보니 아시아권 친구들은 많이 경직돼 있더군요. 거의 두 줄로 맞춰서 연습장으로 이동하고, 훈련 중 미팅은 각 맞춰 서서 하고... 반면 미국, 남미 친구들은 굉장히 편한 분위기고...“

- 한영관, 유승안 두 회장을 모셨습니다. 어떤 장점이 있는 리더입니까?

“한영관 회장은 리틀야구에 열정을 바치신 분입니다. 새로운 일을 추진해 리틀야구가 잘 되도록 매진한 분입니다. 월드시리즈 윌리엄스포트 라마데 스타디움에 리틀야구를 상징하는 인물의 흉상이 있더군요. 개인적으로 한 회장의 공을 기려 화성드림파크에 상을 세우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만약 안 되면 메인구장에 동판이라도 새기려 했는데 이루지 못하고 제가 나오게 됐네요. 기회가 있을지...

유승안 회장은 사고가 유연하신 분입니다. 선수들 뒷바라지로 헌신하는 부모들을 위해 매 경기 시구‧시타 행사를 열었죠. 코로나 장기화로 화성드림파크 개방이 안될 땐 강원도, 제주도 등 선수들을 위한 대회 개최장소를 물색하고, 그간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었던 주니어부의 국제교류전이라든지 이런 안건을 올릴 때 ‘여건이 되면 하자’는 긍정적 오픈마인드입니다.“

유승안 회장(왼쪽)이 박원준 총장에게 자문위원 위촉장을 전달하고 있다. [사진=한국리틀야구연맹 제공]

- 감사한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함께 했던 이종현 팀장, 오영록 대리를 꼽고 싶습니다. 이 팀장, 오 대리가 없었다면 없었다면 월드시리즈 APT 같은 큰 국제대회를 치를 수 없었습니다. 또 국제대회 진행에 큰 도움을 준 숙명여대 통역봉사단에게도 감사함을 전하고 싶어요

그리고 리틀야구가 이렇게 발전하기까지 태동 초기부터 열악한 여건에서도 여태껏 팀의 명맥을 유지해주신 분들, 꿈나무 선수들을 지도한 원로 감독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 애틋한 지도자도 있겠습니다.

“2019년 월드시리즈를 함께 치렀던 이민호(대전 중구) 감독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런저런 어려움이 많았을 텐데 묵묵히 선수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더군요.”

박 총장이 애틋하게 여긴 2019 월드시리즈 국가대표 대전·충청·세종 올스타. [사진=스포츠Q(큐) DB]

- 기억에 남는 선수들도 많겠습니다.

“소형준은 의정부 리틀때만 해도 얌전하고 곧잘 던진다 정도였는데... KT 가서 승승장구하네요. 가장 아픈 손가락은 황재영(서울 강동구 출신)입니다. 2014 월드시리즈를 우승으로 이끈 핵심 멤버였죠. 가장 잘 됐어야 할 아이인데...

최수호나 정기범 같은 최근 (대전) 아이들도 떠오릅니다. 한창 뻗어나갈 친구들입니다. (서울대에 진학한) 김라경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리틀야구의 첫 여자아이였죠. 개인적으로 스파이크를 선물할 만큼 애착이 컸습니다.“

- 향후 계획이 궁금합니다.

“야구가 건전하게 발전하는 일이라면 어디서든 힘을 보태고 싶어요. 우선은 리틀야구연맹 자문위원 역할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또 아마야구 현장에서 저변확대를 위해 일할 수 있다면 어디든 가겠습니다. 제가 화성시민입니다. 드림파크라는 아시아 최고 인프라를 적극 활용할 수 있는 방안,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는 방안 등도 연구해 보겠습니다.

박 전 총장은 "저변확대를 위해서라면 어디든 가겠다"고 말했다. [사진=본인 제공]

저는 10년 후 우리나라 스포츠가 위기라고 봅니다. 야구계가 앞으로 10년은 버텨요. 그런데 10년 후 10세 남자아이가 14만명에 불과합니다. 지금부터 대비하지 않으면 많이 힘들 거라 생각합니다. 어린이, 다문화, 주니어 등 연령, 성별을 막론하고 활성화를 모색하겠습니다.

가능하면 팀도 창단하고 싶어요. 기존 팀의 운영 시스템이 아니라 학부모 부담을 줄이고 야구 자체를 즐길 수 있는 단체를 만들고 싶습니다.

아톰61은 이제 새로운 도전을 꿈꾸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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