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Q(큐) 안호근 기자]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스포츠계에서 생겨난 이 말은 올 한해를 장식한 문구 중 하나였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무언가를 이뤄내는, 진인사대천명의 중요성을 몸소 증명해 더욱 감동을 키웠다.
e스포츠팀 DRX가 리그 오브 레전드(LPL, 롤) 월드챔피언십(롤드컵)에서 정상에 오르며 널리 퍼진 이 말은 연말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에서 16강 진출을 이뤄낸 축구 대표팀을 통해 보다 대중화됐다.
3년 가량 이어지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국, 높아진 물가와 금리 등으로 인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이 말은 국민들에게 큰 울림을 줬다.
◆ 비판일색 벤투→벤버지, 포르투갈도 잡아낸 태극전사
파울루 벤투(53) 축구 대표팀 감독은 10회 연속 월드컵 본선행을 이끌고도 많은 비판에 직면했다. 답답한 경기력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고 불안한 수비와 4년간 이어온 빌드업에 중심을 둔 플레이 스타일에 대한 회의론도 나왔다.
그러나 선수들의 믿음은 확고했고 남미 강호 우루과이와 첫 경기에서 대등하게 싸우며 가능성을 확인했다. 가나와 조별리그 2차전에서 석패하긴 했으나 0-2로 끌려가던 상황 속에서도 2골을 몰아치며 큰 자신감을 수확하더니 3차전 포르투갈을 꺾고 역대 3번째, 원정 2번째로 16강 진출 쾌거를 이뤄냈다.
특히나 3차전은 드라마 그 자체였다. 복잡한 경우의 수가 있었지만 16강 진출을 위해선 무조건 포르투갈을 꺾어야만 했다. 직전 경기 벤투 감독이 퇴장당하며 자리를 비운 상태로 맞이한 포르투갈전. 선제골을 내주고도 동점골을 만든 대표팀은 후반 추가 시간 극적인 역전골을 만들어냈다.
대회 내내 마스크를 쓰고 불편한 상태에서 경기에 나섰던 손흥민(토트넘 홋스퍼)은 우리 진영에서부터 단독 드리블 돌파를 펼친 뒤 상대 선수 7명의 집중 견제를 받으면서도 단 하나의 패스 공간을 찾았고 부상으로 경기에 나서지 못했던 황희찬(울버햄튼 원더러스)은 교체로 나서 역전골을 성공시켜 더욱 감동을 끌어올렸다. 승리 후에도 우루과이의 승리가 확정되기 전까지 마음을 졸여야 했기에 더욱 극적으로 느껴졌던 쾌거였다.
벤투식 ‘빌드업 축구’에 대한 회의론이 짙었고 세계적으로도 한국의 16강 진출 가능성을 낮게 봤다. 손흥민은 부상을 당한 뒤 곧바로 수술대에 오르며 ‘1%의 가능성’을 보고 월드컵 출전을 위해 매진했고 결국 주장으로 팀을 이끌고 값진 성과까지 만들어냈다. 경기 후 선수들은 관중석에서 넘겨받은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중꺾마)’이라는 문구가 적힌 태극기를 펼쳐들고 세리머니를 했다. 포기하지 않고 원하는 결과를 이뤄낸 태극전사들의 행보와 궤를 같이 해 더욱 화제가 된 문구였다.
◆ ‘원조 중꺾마’ DRX, 할 수 있다는 마음 하나만으로!
‘중꺾마’의 유래는 지난달 롤드컵에서 비롯됐다. 고등학교 동창인 ‘페이커’ 이상혁(26·T1)가 롤의 황제로 군림하는 동안 ‘데프트’ 김혁규(담원 KIA)는 뛰어난 기량과 커리어에도 롤드컵 무관에 그쳤다.
다시 한 번 나선 롤드컵. 예선 격인 플레이-인 그룹 스테이지부터 출발했으나 DRX는 이를 겪으며 오히려 더 단단해졌다. 롤 프로게이머로선 베테랑으로 손꼽히는 그는 기량 저하로 인해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6번째 도전 만에 4강 진출을 이뤄내며 뜨겁게 눈시울을 붉혔다.
젠지 e스포츠마저 꺾고 결승에 오른 DRX는 최다 우승팀이자 ‘페이커’가 있는 T1을 만났다. 고교 동창이자 대비되는 행보를 이어온 고교동창을 만났으나 이번에 미소를 지은 건 ‘데프트’였다.
1세트를 내주고도 2세트 46분 혈투 끝에 승리를 따낸 DRX는 ‘중꺾마’ 정신으로 끝내 창단 첫 롤드컵 우승을 이뤄냈다. ‘데프트’의 눈은 또다시 붉어져 있었다. ‘데프트’뿐 아니라 개인방송을 하다 ‘세체정(세계 최고 정글)’이 된 ‘표식’ 홍창현, 믿기지 않는 성장 스토리를 쓴 ‘제카’ 김건우와 ‘킹겐’ 황성훈, 유일한 롤드컵 우승자 출신으로 이들을 도운 ‘베릴’ 조건희까지 최고의 궁합으로 모두의 예상을 뒤엎었다.
우승 후 ‘데프트’는 “LCK 스프링을 치를 때만 해도 우승할 수 있겠냐 물어봤을 때 솔직히 그렇게 말하기 힘들었다”면서도 “그런데 경기를 치르면서 점점 성장하는 게 느껴져서 마음가짐도 변했다. 우승팀에게 중요한 건 한국에서 말했던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꺾마’는 올해를 관통하는 하나의 표현이었다. DRX와 축구 대표팀은 모두가 불가능이라고 할 때 뼈를 깎는 노력으로 이를 뒤집어내며 큰 울림을 전했다. 큰 기대를 받지 못한 이들이었기에 감동은 더욱 진했다. ‘중꺾마’는 스포츠가 우리 사회에 전할 수 있는 긍정적인 영향력을 제대로 읽어볼 수 있었던 메시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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