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스포츠Q(큐) 글 신희재·사진 손힘찬 기자] 2024년 2월 13일. KIA(기아) 타이거즈는 제11대 감독으로 이범호 1군 타격코치를 선임했다.
당시 KIA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김종국 전 감독이 배임수재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아 갑작스럽게 팀을 떠났다. 혼란을 수습할 지도자로 여러 인사가 거론됐는데, KIA의 선택은 1981년생 초보 감독 이범호였다.
KBO 최초 1980년대생 사령탑이 된 그는 취임 직후 “초보 감독이 아닌 KIA 감독으로서 맡겨진 임기(2년) 내 반드시 팀을 정상권으로 올려놓겠다”고 다짐했다. 약속을 지키는 데 단 1년이면 충분했다. 지난해 6위에 그쳤던 KIA는 이범호 감독의 지도하에 올 시즌 KBO 최강팀으로 탈바꿈했다.
시즌 초반부터 심상치 않았다. KIA는 투타 조화를 앞세워 4월부터 줄곧 선두 경쟁을 펼쳤다. 6월 12일 1위에 올라선 뒤 단 한 번도 2위권 그룹의 추격을 허용하지 않았다.
이견이 없는 우승 후보였지만 위기도 있었다. 윌 크로우, 이의리, 윤영철 등 선발 투수들이 차례대로 쓰러져 고민이 컸다. 마운드 전력이 불안하니 팬들도 애가 탔다. 6월 25일 부산 롯데 자이언츠전에선 14-1로 리드하다 15-15 무승부를 허용했고, 7월 31일 광주 두산 베어스전서 역대 한 경기 최다 실점(6-30) 불명예도 안았다. 설상가상 8월 24일 창원 NC(엔씨) 다이노스전서 1선발 제임스 네일이 타구에 맞고는 턱관절 골절상으로 전열에서 이탈했다.
그러나 이범호 감독은 조급해하지 않았다. 황동하, 김도현 등 대체 선발을 발굴해 약점을 최소화했다. 그러면서 후반기 승부처였던 LG 트윈스(8월 16~18일), 삼성 라이온즈(8월 31일~9월 1일)와 5경기에서 모두 승리, 한국시리즈로 직행했다. '호랑이 꼬리를 잡으려는 자'들을 자비 없이 뿌리친 타이거즈다.
KIA는 정규시즌 팀 타율(0.301), 팀 평균자책점(4.40) 모두 1위를 차지했다. 최형우, 양현종, 나성범 등 베테랑들이 굳건했고 김도영, 정해영, 곽도규 등 신예들이 스텝업하면서 최강의 위용을 뽐냈다. 이범호 감독은 이들을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엄격하게 대하는 ‘형님 리더십’으로 KIA를 이끌었다.
양현종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범호 감독은 7월 17일 광주 삼성전에서 KIA가 9-5로 앞선 5회초 2아웃에 양현종을 교체했다. 큰 점수 차였으나 양현종이 4회 3점, 5회 2점을 내주고 흔들리자 과감하게 움직였다. 이때 이 감독은 당혹스러워하는 양현종에게 다가가 ‘백허그’를 해 눈길을 끌었다.
그 외에도 이범호 감독은 나성범, 소크라테스 브리토, 김도영, 박찬호 등 핵심 타자들이 수비에서 안일한 플레이를 할 때 과감하게 문책성 교체를 단행했다. 이를 통해 선수단 전체에 ‘팀 승리가 최우선’이라는 일관된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범호 감독의 리더십은 한국시리즈에서도 빛났다. KIA는 제임스 네일~양현종~에릭 라우어로 구성된 3선발을 바탕으로 상황에 맞게 불펜과 타순을 구상해 시리즈 내내 우위를 이어갔다. 28일 5차전에서는 경기 초반 양현종이 흔들리자, 김도현~곽도규~장현식~이준영~전상현~정해영을 빠르게 투입해 7-5 대역전승을 이끌었다.
이범호 감독은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초반에) 삼성 투수가 많이 없어서 지금부터 잘 막으면 승산이 있다고 봤다. 도현이 올리고 바로바로 붙여서 따라갔다. 최선을 다한 결과 이길 수 있었다”면서 “팀을 맡아 굉장히 힘든 시기도 좋은 시기도 많았다. 마지막에 너무나도 좋은 상황에서 우승할 수 있어 감사하게 생각한다”는 소감을 남겼다.
4승 1패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KIA는 7년 만의 통합 우승으로 V12 대업을 완성했다. KIA의 이전 우승인 2017년 두산과의 한국시리즈 잠실 5차전 때 더스틴 니퍼트를 상대로 결정적인 만루홈런을 때린 이가 바로 이범호 감독이다.
이범호 감독은 2005년 선동열 삼성 전 감독과 2011년 류중일 삼성 전 감독에 이어 3번째로 취임 첫해 통합 우승을 달성한 감독이 됐다. 아울러 19년 전 선동열(42세 9개월 9일)에 이어 역대 2번째 최연소 통합 우승 감독이 됐다.
모든 감독의 평생소원인 우승을 첫해에 이뤘다. 이범호 감독은 “처음 부임했을 때 선수들에게 ‘하고 싶은 대로 야구하라’고 했다. 그걸 시즌 내내 지켰다”면서 “앞으로도 선수들이 감독 때문에 눈치 보고 못 하지 않도록 하겠다. 그래서 좋은 선수 많이 육성하고, 젊은 선수들 성장하는 데 보탬이 되는 지도자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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