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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만년 조연에서 주연 인생으로 '김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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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만년 조연에서 주연 인생으로 '김뢰하'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4.06.20 12: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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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글 용원중기자·사진 최대성기자] “그동안 오디션을 많이 봐왔지만 이번 영화는 바둑 오디션을 봤어요.(웃음) 감독님 사무실에서 바둑을 뒀죠. 바둑판 앞에서 돌을 착점하는 걸 보시더니 ‘됐네’ 하시더라고요.”

◆ 인생의 첫 수부터 다시 두고 싶어하는 조직보스 남해로 첫 주연

영화와 드라마에서 조연으로 활약했다. 조폭 멤버와 깡패, 악역을 주로 맡아온 배우 김뢰하(49)가 배우 인생 최초로 주연을 차지했다. 바둑을 소재로 한 영화 ‘스톤’에서 재능 많은 아마추어 바둑기사 민수(조동인)를 만나면서부터 지나온 인생에 대한 회한에 젖는 50대 조직 보스 남해로, 중년 남성의 짙은 향기를 객석에 흩뿌리는 중이다.

 

“출연 제의를 받았을 때가 첫 애가 두 돌이 됐을 때였어요. 이제 험하고 센 캐릭터를 그만 하고 부드러운 캐릭터를 하자고 결심했던 시기라 처음엔 고사했죠. 그런데 시나리오를 정독하고 감독님으로부터 캐릭터에 대한 설명을 듣다보니 보통 깡패 캐릭터와 결이 달라서 수락했어요.”

과거 조직폭력배나 깡패 캐릭터를 준비할 땐 어떻게 하면 좀더 강인하고 지독하고 날까로울까에 천착했다. 이번엔 그런 부분을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인생을 4분의3 가까이 살아온 인물이 자신의 삶을 후회한다면 어떤 심경일까’ ‘참 쓸쓸하고 허무하겠다’란 생각에 탐닉했다.

“민수가 ‘스톤’의 타이틀 롤이라면, 이 영화의 감성적 흐름을 주도하는 건 남해죠. 보통의 작품들에선 또다른 조연들과 협력군이 가세해 부담이 덜 됐을 텐데 이번엔 감성적 이야기 흐름을 끌고갈 남해가 삐끗하면 영화 전체가 삐그덕거릴까봐 부담이 됐던 것 같네요. 그런데다 민수 역의 조동인 배우가 신인이라 불안이 더했죠.”

▲ '스톤'의 장면들

하지만 촬영 4~5회차를 넘어서고, 조동인의 만만치 않은 역량을 확인하면서부터 걱정을 덜어냈다. 자신의 캐릭터에 집중했다. 대부분의 신인들은 연기 디렉션이 들어오면 중압감 탓에 스스로 갇히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조동인은 겁내는 기색 없이 한결 같은 표정과 행동을 보였다. 아버지인 고 조세래 감독의 피를 이어받아서인가, 싶었다.

◆ ‘플란다스의 개’ 이후 조폭, 깡패 등 악역 캐릭터 굳어져

극중 남해는 민수를 자신의 바둑선생으로 모신 뒤 함께 바둑을 두며 인생을 성찰한다. 자신의 젊은 날을 보는 듯한 기분에 좌절한 채 내기바둑판을 전전하는 민수가 프로입단대회에 나가도록 하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지원한다. 민수와의 약속에 따라 조직이 손을 댄 재개발 프로젝트에서 손을 떼고 은퇴한 뒤 바닷가 마을로 낙향할 계획을 세운다. 영화에는 남해의 갈등과 더불어 날 선 카리스마와 주먹 솜씨가 튀어나온다.

“30년 넘게 험악한 세계에서 자라왔고 보스의 위치에 있을 정도면 조직 장악력, 전투력, 카리스마는 보유하고 있겠죠. 보시기에 온도차가 있었을 거예요. 본능과 이성 사이의 커다란 간극이겠죠. 몸이 기억하는 폭력이 본능적으로 표출되는 한편 민수와 철거민들을 바라보는 시선에선 회한, 쓸쓸함이 묻어났을 테니까요.”

 

스크린과 브라운관에서 봐왔던 무섭고 날카로운 인상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온화하고 차분한, 한편으론 지적인 ‘아저씨’ 한 명이 있을 뿐이다. 이러한 ‘온도차’는 단지 배우이기에 가능한 걸까 싶은 물음표가 떠올랐다.

김뢰하는 1994년 봉준호 감독의 단편영화 ‘지리멸렬’로 데뷔했다. 이어 2000년 봉 감독의 장편영화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에서 노숙자로 출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부랑인이라는 두렵고 센 이미지가 많은 감독들에게 노출되면서부터 ‘살인의 추억’의 폭력경찰, ‘라디오 데이즈’의 노봉알 작가 등 이런 캐릭터들을 줄곧 연기해온 거죠. 이걸로 먹고 살고, 사랑도 받았으니 고맙죠. 물론 배우로서 안정궤도에 올랐을 땐 다른 이미지에 대한 갈증도 느꼈어요. 찰영감독님들도 카메라 앞에 제가 서면 조명과 각도를 세계 잡아내길 좋아해요. 후후. 카메라 밖 일상에선 그런 표정 잘 안짓죠.”

◆ 최후 맞는 장면서 보인 복합적 눈빛연기 인상적

호시탐탐 기회를 노려왔던 경쟁 조직 그리고 믿었던 부하로부터 죽음을 맞이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김뢰하가 보인 눈빛연기는 매우 인상적이다. 멀리에서 피를 흘리며 주저앉은 민수, 칼을 든 부하를 연이어 바라보는 시선에선 여러 갈래의 감정이 충돌하고 번뜩였다.

“모든 걸 받아들이는 처지였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항하는 건 인간의 본능일 수 있고, 내가 죽지 않으면 저기 있는 민수가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니까 또 죽음을 받아들어야 하는 상황이고요. 민수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날 살리려 고집하지 말고 어서 나가라. 그래서 꼭 제대로 살아라. 프로가 돼라’라는 무언의 시그널을 담아 연기한 거죠.”

 

그가 겪은 고 조세래 감독은 바둑과 영화를 놓지 못했던 열정의 인물이었다. 열악한 제작환경에서도 현장진행이 매끄럽게 이뤄졌던 건 감독의 철학과 인품 덕이 아니었나 싶어 새삼 고마움을 느낀다. 안타깝게 암투병 끝에 지난해 11월 운명을 달리했으나, 부산국제영화제에 함께 참석해 감독 데뷔작을 세상에 공개했던 점은 다행이자 큰 위로다.

‘스톤’에는 주옥과 같은 명대사가 가득하다. 김뢰하는 “바둑은 서로 한수씩 번갈아가며 두는 가장 공정한 게임이다”란 대사를 가장 마음에 들어한다.

“요즘 사회 분위기에 가장 어울리는 말이니까요. 정당하게 둬야 할 판을 두 수, 네 수, 어떨 땐 돌을 한주먹 가득 집어 바둑판에 올려놓는데도 ‘잘못 됐다’고 말하지 못하는 세상에 너무 적확한 표현이지 싶은 거죠. 너무나 좋은 대사들을 거름 없이 쏟아내 일부 관객들은 거북스러워할 수도 있을 거 같네요.”

 

◆ 도예전공 미술학도에서 현실참여, 프로페셔널 배우로 ‘터닝’

남해는 인생의 첫 수부터 다시 두고 싶어한다. 배우 김뢰하 역시 다시 두고 싶은 수가 있을까. 인터뷰 전, 그의 프로필을 조사하다가 단국대 도예학과(85학번)를 졸업한 이력이 눈에 들어왔다.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가 전 사회를 들끓게 했던 격동의 80년대 중반, 그는 미술학도였는데 왜 도예가 아닌 연기를 선택했을지 궁금했다.

“흙 만지고 뭔가를 창조하는 행위를 너무 좋아했어요. 하지만 1학년에 연극반 활동을 하며 현실에 눈뜨게 됐죠. 도자기와 그림이 싫거나 그만 두고 싶어서 연기를 한 게 아닌 것만은 분명해요. 폭압이 지배하던 그 시절이 미술을 못하게 했을 뿐인 거죠. 미술이든 영화든 음악이든, 어느 분야든 열정은 통하는 거니까 후회는 없어요. 연기를 사랑하지만 연기는 공동 작업이잖아요. 나 홀로 미술품을 완성했을 때의 그 성취감은 아직도 연기에서 느끼질 못하는 것 같아요.”

 

[취재후기] 인터뷰를 마감할 때 즈음, 세월호 이야기가 나왔다. 한없이 미안한 표정을 짓던 그는 “선배들이 5월 광주에 부채의식을 갖고 살았다면, 우리 세대는 오랜 시간 동안 세월호 참사에 부채의식을 갖고 살아야 할 것 같다”고 토로했다. 안타까운 상황에서 영화가 잘 되길 바라는 게 아이러니지만 ‘스톤’의 메시지가 그나마 죄책감을 덜어준다고 했다. 남해처럼 자신의 살아온 길을 되돌아보고 있다는 김뢰하. 악수를 두거나 피치 못하게 둔 수를 상기한다. 친구라면 “무르자”라고 말할 것 같다며 담배를 집어 물었다.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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