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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분석] '클린시트 우승' 자신감, 길목 차단하는 영리한 수비가 '늪 축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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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분석] '클린시트 우승' 자신감, 길목 차단하는 영리한 수비가 '늪 축구'였다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5.01.26 23: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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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년만의 결승 진출의 힘, 허술한 듯 하면서도 탄탄함…촘촘하게 서며 공간 최소화, 이라크 공격 무력화

[스포츠Q 박상현 기자] 한국 축구가 2015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유일한 전승팀에 무실점팀으로 결승까지 도달했다. 이제 55년만의 우승까지 단 1승만 남았다.

울리 슈틸리케(61)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26일 호주 시드니 스타디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벌어진 이라크와 AFC 아시안컵 준결승전에서 이정협(24·상주 상무)의 1골 1도움 활약으로 2-0으로 이기고 1988년 카타르 대회 이후 27년만에 결승에 올랐다.

2000년과 2007년, 2011년에 4강에 오르고도 모두 결승 진출에 실패했던 한국 축구는 '3전 4기'로 결승에 오르며 4강 징크스까지 털어냈다.

무엇보다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아시안컵에서 5경기 연속 무실점을 기록했다는 점이다. 사우디아라비아와 평가전까지 합하면 6경기 연속 무실점이다. 경기시간만도 570분이다. 0-1로 졌던 이란전까지 포함하면 578분이다.

한국 축구대표팀이 A매치에서 6경기 연속 무실점을 기록한 것은 2003년 12월 7일 1-0으로 이겼던 중국과 동아시아축구선수권 경기부터 2004년 4월 28일 파라과이전 0-0 무승부까지. 그러나 당시에는 무승부가 3경기가 끼어 있었다. 게다가 약체 몰디브와 0-0 무승부라는 치욕스러운 결과도 있었다.

한국 축구가 6경기 연속 무실점을 기록하며 승리한 것은 1990년 9월 호주와 두차례 평가전을 비롯해 싱가포르, 파키스탄, 중국, 쿠웨이트 등 베이징 아시안게임 4경기까지 무실점 승리한 이후 24년 3개월만이다.

또 한국 축구는 마지막 우승을 차지했던 1960년 대회 이후 55년만에 전승 우승을 눈앞에 뒀다. 하지만 당시는 1실점을 기록한 우승이었다. 이제 한국 축구는 무실점 우승이라는 새로운 역사에 도전한다. 한국 축구가 최근 국제 대회에서 무실점 전승 우승을 차지한 것은 지난해 인천 아시안게임이었다.

◆ 길목마다 진을 친 수비수, 유효슛 최소화

한국 축구가 아시안컵에서 치른 경기를 보면 유효슛 허용률이 낮다. 오만전에서는 5개의 슛을 내줬지만 이 가운데 1개에 그쳤고 호주전 역시 9개의 슛 가운데 유효슛은 3개에 머물렀다. 우즈베키스탄전에서는 13개 가운데 4개, 이라크전은 11개 가운데 2개였다.

다만 유효슛 허용률이 높았던 경기는 공교롭게도 슈틸리케 감독이 "더이상 한국은 우승 후보가 아니다"라고 일갈했던 쿠웨이트전이었다. 11개 가운데 6개로 가장 힘든 경기였다.

게다가 수비수들의 몸을 맞고 굴절되거나 막히는 경우도 호주전부터 많아졌다. 호주전과 이라크전에서는 3개가 수비수들의 몸을 맞은 경우였다. 그만큼 상대 선수들의 길목과 공격 루트를 사전에 차단하고 있다는 의미다.

▲ 곽태휘, 김영권, 기성용, 박주호의 활동반경을 보여주는 히트맵. 한국 진영 가운데가 붉게 물들어 네 선수가 집중적으로 이 지역을 막았음을 보여준다. [사진=AFC 아시안컵 공식 홈페이지 캡처]

이 가운데 김진수(23·호펜하임)가 가장 악착같은 경기를 펼쳤다. 이라크전에서 모두 4개의 태클을 기록하며 이라크의 공격 루트를 끊는데 앞장섰다. 후반 11분 경고를 받긴 했지만 김진수는 상대 선수에 대한 압박을 통해 측면 공격루트를 사전에 차단했다.

◆ 곽태휘-김영권 중앙수비, 기성용-박주호와 완벽 호흡

이제 더이상 중앙수비는 '자동문'이 아니다. 한국 축구대표팀의 중앙수비는 브라질 월드컵을 통해 자동문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알제리와 월드컵 조별리그 2차전에서는 4골을 내주며 무너졌다.

중앙수비가 무너졌던 것은 중앙수비와 수비형 미드필더 사이의 간격이 너무 넓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상대 공격수에게 공간을 내주고 그만큼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투 센터백과 더블 수비형 미드필더의 간격이 크게 좁아졌다. AFC 아시안컵이 공개한 히트맵에서 곽태휘(34·알 힐랄), 김영권(25·광저우 에버그란데), 박주호(28·마인츠05), 기성용(26·스완지 시티)의 활동 영역을 겹치면 한국 진영의 중간 부분이 붉게 물들어있음을 알 수 있다. 그만큼 이 지역에 네 선수의 활동이 집중됐다는 뜻이다.

▲ 박주호(위)와 기성용의 활동반경을 보여주는 히트맵. 박주호는 한국 진영쪽에 주로 머무르며 수비에 치중한 반면 기성용은 수비 뿐 아니라 공격까지 나섰음을 보여준다. [사진=AFC 아시안컵 공식 홈페이지 캡처]

특히 박주호의 활동 영역은 최대한 상대 진영으로 넘어가는 것을 자제하면서 수비에 치중한 반면 기성용의 활동 영역은 허리부터 이라크 진영까지 넓게 분포되어 있다. 박주호에게 홀딩 역할을 맡겨놓으면서 수비와 공격을 자유자재로 넘나들었다.

◆ 좌우 풀백 김진수-차두리도 중앙 수비 커버

김진수와 차두리(35·FC 서울)의 이라크전 수비 범위는 비단 좌우 측면에만 그치지 않았다. AFC 아시안컵 홈페이지의 히트맵에서는 두 선수의 활동 범위가 측면은 물론이고 중앙 수비까지 광범위하게 포진해있음을 알 수 있다.

또 차두리는 이라크전 후반 12분 두르감 이스마일의 슛을 온몸으로 막아냈다. 차두리의 몸을 맞지 않았더라면 골키퍼 김진현(28·세레소 오사카)의 정면으로 날아가는 유효슛이 될 수 있었다.

이날 한국의 플레이 가운데 또 하나 주목할만한 것은 49개의 클리어링이다. 90분 경기였으니 추가시간까지 합하면 2분마다 클리어링이 일어났다는 뜻이다. 그만큼 이라크 공격이 들어올 때마다 사전에 차단해 바깥으로 걷어내는 경우가 많았다. 태클 성공률도 86.4%에 달해 효과적인 수비가 가능했다.

또 포백 수비는 공격에도 적극 가담해 공격 포인트를 올렸다. 김진수는 활발한 오버래핑과 함께 이정협의 헤딩골을 어시스트하는 프리킥 크로스를 올렸고 김영권은 이정협의 가슴 트래핑 어시스트를 받아 왼발로 추가골을 만들어냈다. 슈틸리케 감독 체제 출범 후 처음으로 세트 플레이에서 득점이 나왔을 뿐 아니라 역시 첫 수비수 득점이 나왔다. 다양한 공격 루트 개발이라는 점에서 이라크전은 소득이 많았다.

한국 축구의 아시안컵 경기 장면을 보면 위태위태하고 아슬아슬한 모습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언제나 클리어링이나 상대로부터 공을 뺏는 것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잦다. 상대 공격의 길목을 미리 막아낸 결과다. 그것이 바로 한국이 아시안컵에서 선보이는 '늪 축구'다.

한국의 '늪 축구'는 오는 31일 벌어지는 결승전에서도 그대로 이어질 것이다. 이제 한국 축구대표팀은 체력축구, 압박축구와 함께 늪 축구라는 새로운 콘텐츠로 55년만의 아시안컵 우승을 향해 마지막 스퍼트를 하고 있다.

▲ 김진수(위)과 차두리의 활동반경을 나타내는 히트맵. 이들은 측면뿐 아니라 한국 진영 중앙 수비에도 관여해 이라크 공격수들을 차단했다. [사진=AFC 아시안컵 공식 홈페이지 캡처]

tankpark@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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