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7 23:04 (토)
[챌린지 2015] (32) 정영식, '얌전한 탁구'를 버리니 세상이 달라졌다
상태바
[챌린지 2015] (32) 정영식, '얌전한 탁구'를 버리니 세상이 달라졌다
  • 민기홍 기자
  • 승인 2015.06.26 11: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내용 꼬리표 떼고 7년만에 국제대회 우승... AG대표 탈락 아픔 딛고 환골탈태

[200자 Tip!]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남자 탁구 결승전. 유승민은 중국의 왕하오를 4-2로 꺾고 우승을 확정짓자마자 김택수 코치를 향해 달려가 진한 포옹을 나눴다. 여기 다시 한번 감격의 장면을 재현하겠다는 ‘꽃미남’ 탁구스타가 있다. 이용대의 ‘살인 윙크’만큼 파급력을 갖춘 세리머니를 연구중이라 하니 더욱 눈길이 간다. 정영식(23·KDB대우증권)은 ‘국내용’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성인 무대 데뷔 7년 만에 국제무대 단식에서 정상에 올랐다. 그의 탁구 전성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안양=스포츠Q 글 민기홍·사진 이상민 기자] 정영식은 한국 남자 탁구의 대들보다. 지난 7일 호주 골드코스트에서 열린 국제탁구연맹(ITTF) 월드투어 호주오픈 챌린지 시리즈 남자단식 결승에서 호콴킷(홍콩)을 4-0(11-8 11-5 12-10 11-6)으로 완파하고 생애 처음으로 국제대회 단식 금메달을 따냈다.

▲ 정영식은 지난 7일 호주오픈에서 우승하며 성인무대 데뷔 후 7년 만에 국제대회 단식에서 정상에 오르는 기쁨을 맛봤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국내 무대에서는 늘 정상권을 유지했지만 유달리 세계를 상대로는 빛을 보지 못했던 그가 마침내 비상하기 시작했다. 2008년 코리아오픈을 시작으로 월드투어에 나선 정영식은 도전 7년 만에 처음으로 이기는 법을 터득했다.

◆ 올림픽 세리머니, 힐링캠프 게스트를 꿈꾼다 

“올림픽 세리머니를 준비하고 있죠. 아직 뭐라고 딱 말씀드리기는 그래요. 진부하지 않은 걸로 구상중입니다.”

스타 기질이 다분하다. 곱상한 외모도 시선을 잡아끄는데 어눌하면서도 또박또박 할 말 다하는 말투가 사람을 빠져들게끔 한다. 정영식의 꿈은 아마추어 종목 선수들이 흔히 목표로 내세우는 올림픽 금메달같은 차원을 넘어선다. 김연아나 박태환처럼 한 종목의 위상을 드높이는 선수가 되겠단다.

“무릎팍 도사에 나가는 게 꿈이었어요. 그런데 폐지돼 버렸죠. 하지만 힐링캠프가 남아 있습니다. 런던 올림픽 때 보니까 금메달 따면 게스트로 부르시더라고요. 단독으로 토크쇼에 나가는 것이 꿈입니다. 하하하”

▲ 정영식은 국내 선수 중 주세혁에 이어 랭킹 2위를 달리고 있다. 이대로라면 내년 리우 올림픽에 나설 수 있다.

내년 리우 올림픽에는 3명이 출전할 수 있다. 올해 세계랭킹으로 2명, 내년 선발전을 통해 1명을 뽑는다. 세계랭킹 19위 정영식은 주세혁(16위)에 이어 국내선수 랭킹 2위를 달리고 있다. 현재 성적을 유지한다면 힐링캠프 출연의 첫 관문을 통과하는 셈이다.

주변 사람들은 정영식을 ‘이중인격자’라 부른다. 평소에는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하다가도 탁구대 앞에만 서면 돌변한다. 정영식은 “관중이 많은 대회에서는 일부러 파이팅도 크게 외치고 세리머니 동작도 크게 한다”며 “주목받는 것을 좋아한다. 탁구를 안 했다면 아마 연예인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영식의 여동생은 중앙대 연극영화과에서 연기를 전공하고 있다. 피는 속일 수 없다.

◆ 아시안게임 탈락, 내려놓음이 가져온 변화 

“작년 말부터 공이 좀 맞더라고요. 무언가 깨달은 것 같아요. 겁이 나서 선뜻 변화를 주지 못했었는데 지난해 아시안게임 대표 선발전 탈락 후 탁구를 이렇게 저렇게 맘대로 쳤어요. 실패 후 충격을 받고 변한 거죠. 국제무대서는 의구심이 있었는데 통하더라고요. 확신이 생겼어요.”

지난해 정영식은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맞았다. 2년간 준비한 인천 아시안게임 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한 것. 탁구를 시작한 이래 가장 큰 시련이었다. 그런데 이 아픔이 전환점이 될 줄은 몰랐다. 마음을 편히 먹으니 탁구가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짐을 덜어놓은 그는 완전히 새로운 선수로 탈바꿈했다.

탁구선수였던 아버지 정해철(51) 씨의 영향을 받아 5세 때 라켓을 쥔 정영식은 엘리트 코스를 착착 밟았다. 중원고 재학 시절 잠시 슬럼프를 겪기도 했지만 또래인 서현덕, 이상수(이상 삼성생명)에 큰 자극을 받아 운동에 전념한 결과, 19세 때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복식 동메달을 획득했다. 국내 무대에서는 늘 수위를 다퉜다. 찬사가 쏟아졌다.

▲ 정영식은 "김연아나 박태환처럼 한 종목의 위상을 높이는 선수가 되고 싶다"며 "올림픽 금메달을 따서 힐링캠프같은 토크쇼에 단독 게스트로 출연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런데 ‘국내용’ 꼬리표를 떼지 못했다. 정영식은 “상위 5명 안에 들어 국가대표가 되고 나니 국제대회에서는 반드시 지면 안된다는 부담감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전략도 실패였다. 정영식의 ‘얌전한 탁구’는 생소한 선수들이 맞붙는 국제무대서 먹히지 않았다. 과감하지 못하니 늘 선제공격에 무너져 끌려가는 경기를 해야만 했다.

단발로 치러진 아시안게임 선발전에서 탈락한 후 마침 두 달간 대회가 없었다. 정영식은 “모든 걸 내려놓으니 마음이 편해졌다”며 “주변에서 공이 세진 비결이 뭐냐, 갑자기 왜 이렇게 잘 치냐는 이야기까지 들을 만큼 경기력이 좋아졌다”고 귀띔했다.

정영식은 지난해 12월 전남 여수에서 벌어진 종합선수권대회에서 퍼펙트 우승을 차지하며 화려한 부활을 알렸다. 국제대회서도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다. 카타르-쿠웨이트 오픈에서는 세계랭킹 10위를 제압했고 8강에서는 5위와 접전을 펼친 끝에 아쉽게 패했다. 지난달 필리핀오픈 준우승에 이어 호주오픈을 거머쥐며 7년 무관의 한을 떨쳤다.

◆ 김택수-오상은, 지금의 정영식을 만든 사람들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동메달, 1998 방콕 아시안게임 금메달에 빛나는 한국 탁구의 레전드 김택수가 정영식의 소속팀 사령탑이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웃으며 이야기를 주고받던 정영식은 김택수라는 이름을 나오자 자세를 고쳐 앉고 진지하게 말문을 열었다.

“감독님은 누구보다 저를 믿어주셨어요. 모두가 ‘정영식은 국제대회서는 안 먹혀’, ‘잘 치는데 발전 가능성이 적어’라고 할 때도 흔들리지 않고 끌어주셨죠. 김택수 감독님이 없었다면 지쳤을 겁니다. 승리를 향한 열망, 성실함 등 제 장점을 보고 믿어주셨어요.”

▲ 국제대회만 나가면 꼬였던 정영식은 지난해 아시안게임 대표 선발전 탈락 이후 공격적인 스타일로 변모해 승승장구하고 있다.

정영식은 “내가 공격적으로 변한 건 예전부터 김택수 감독님이 누차 강조하신 부분이다. 진작에 잘 들었어야 했었던 부분”이라며 “김택수 감독님을 비롯해 유남규 감독님, 유승민 코치님 등 대단한 업적을 남기신 분들을 정말로 존경한다”고 말했다.

김택수 감독이 정영식의 기술적 성장을 책임졌다면 팀 선배 오상은은 정영식의 등대이자 심리치료사다. 정영식이 초등학생 때 이미 세계 10위권에 자리하고 있던 오상은은 38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현역으로 뛰며 후배들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

정영식은 “뛰어난 실력을 보유한 대선배와 동료가 돼 형이라고 부르는 것도 믿기지 않는다”며 “상은이 형이 해주시는 모든 말씀이 도움이 된다. 내가 느끼는 고충들을 그 분께서는 이미 모두 겪지 않았나. 성공한 분이 해주시는 조언이라 더욱 믿음이 간다”고 밝혔다.
 

■ 정영식 프로필 

△ 생년월일 = 1992년 1월 20일
△ 출생지 = 경기도 의정부
△ 체격 = 180cm 65kg
△ 출신학교 = 삼정초-내동중-중원고
△ 수상 경력
- 2010 16회 광저우 아시안게임 단체전 은메달, 복식 동메달
- 2011 세계선수권대회 복식 동메달
- 2011 아시아선수권대회 단체 동메달, 복식 은메달
- 2012 세계단체전선수권대회 단체 동메달
- 2013 중국오픈 복식 동메달
- 2013 동아시아경기대회 단체 은메달, 단식 동메달
- 2013 폴란드오픈 복식 금메달
- 2014 코리아오픈 복식 3위
- 2015 필리핀오픈 단식 은메달
- 2015 호주오픈 단식 금메달

▲ 정영식은 "중국 선수들과 자주 붙어야 중국을 넘어설 수 있다"면서 "일단 "비중국권 선수들 중 최고가 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취재 후기] 기자는 “비중국권 선수들 중 최고가 되겠다”는 정영식의 과거 인터뷰에 대해 “꿈이 너무 작은 것 아니냐”는 짓궂은 농담을 건넸다. 정영식은 “중국 선수들을 이기기 위해서는 일단 많이 붙어봐야 한다”면서 “비중국권 선수들을 이기지 못하면 그들과 대결할 기회조차 없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라고 밝혔다. ‘당찬 사나이’ 정영식이 내년 여름 이경규, 김제동, 성유리와 이야기를 나누기를 바란다.

도전과 열정, 위로와 영감 그리고 스포츠큐(Q)


주요기사
포토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