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Q 글 용원중기자·사진 노민규기자] 시추에이션 드라마 형식의 독립영화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이하 ‘이우끝’)는 도시의 얼굴 편의점을 배경으로 한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12시간 동안 일어나는 일들을 여러 편의 에피소드에 담아냈다. 편의점에서 일하는, 편의점을 찾는 다양한 인간군상을 통해 우리 사회의 민낯을 바라본다.
◆ 편의점 배경으로 우리 사회의 민낯 그려낸 '이우끝' 출연
10여 개의 에피소드에는 9명의 푸릇푸릇한 청춘배우들이 등장해 각 에피소드의 주연을 소화한다. 이 가운데 ‘복 많이 받으세요’ 편의 편의점 알바생 김새벽(28)을 찍었다. 꽤 괜찮은 독립영화에 연이어 출연해온 여배우이며,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쌓은 경험을 캐릭터에 녹여냈다는 사전 정보에 관심이 동해서다.
지방에서 올라온 취업준비생 민희는 왼쪽 뺨에 난 상처를 머리로 슬쩍 가린 채 편의점 계산대를 지킨다. 그날따라 진상 손님들 퍼레이드다. 야쿠르트 아줌마는 자리를 떡하니 차지하고 컵라면을 후루룩 먹으며 전화통화에 여념이 없다. 본사에서 감시근무를 나온 남자직원은 이것저것 따져 묻더니 규정 위반을 본사에 접수하겠다고 엄포를 놓는다. 이에 사장은 전화를 걸어와 길길이 날뛰며 해고를 통보한다. 그런 사장에게 당차게 따진 뒤 가방을 싼 채 캔맥주를 따서 시원하게 들이킨다. 일진 사나운 날이다.
영화 속 모습과 달리 자그마한 체구의 앳된 여자가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화장기 없는 얼굴이 젊은 날의 문소리를 연상케 할 정도로 강단 있고 서늘하다.
◆ 실제 알바 경험 바탕으로 민희 연기…편의점은 인물관찰 최적의 공간
“무명 연극배우로 활동하던 2009년 겨울, 4개월 동안 종로3가 서울극장 옆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낮에는 공연 연습을 해야 해서 주말 야간근무를 했죠. 집이 대학로였는데 영화를 무료로 볼 수 있는 혜택 때문에 그곳에서 알바를 한 거예요.(웃음) 워낙 번잡하고 노숙자들이 많은 지역이라 밤을 새우며 일하다보면 별의별 손님을 상대하게 돼요. 밤샘 근무가 끝나면 12번 마을버스를 타고 귀가하곤 했죠.”
노숙자들은 1리터 생수병에 온수를 받기 위해 편의점을 안방처럼 드나들었다. 품고 자야 체온을 유지할 수 있어서다. 새벽 1시쯤에는 노래방 도우미들이 음료를 사러 대거 몰려왔다가 5시경에는 만취가 돼서 찾았다. 극장을 찾는 연인들, 낙원상가 뒤편의 게이술집을 찾는 동성애자들, 탑골공원을 중심으로 모여드는 어르신 등 다양한 사람들을 관찰할 수 있던 시기였다. 우유를 사던 할머니에게 혼쭐이 난 경험도 있다. 거스름돈을 잘못 된 방향으로 건넸다는 이유에서다. 그 이후부터는 타인에게 돈을 줄 때 방향까지 고려하며 건넨다.
“이 에피소드는 상처 있는 사람들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주시했어요. 차별 혹은 포용이 있을 수 있잖아요. 전 민희가 해고된 뒤에도 주눅들지 않은 채 열심히 취업준비를 할 거라고 봐요. 절 보면 민희와 비슷한 구석이 있어요. 과묵한 것 같은데 할 말 다하는 성격이나 긍정적인 면,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에 뿌리내리고 살려고 하는 점 등이요. 후후.”
◆ 부산토박이 대학졸업 후 상경...연극, 단편·독립영화 거치며 배우로 성장
인터뷰에 오기 전에 자신이 알바한 것들을 주욱 헤아려봤다. 대학 수시에 붙은 이후부터 알바를 계속 했다. 영문타자, 레스토랑 서빙, 영화관 도우미, 주차장 안내, 마트 계산원, 편의점 알바 등을 거쳤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고, 그런 경험이 배우생활을 하는데 도움이 되고 있다. 그는 "물론 그 과정에서 사람으로 인해 상처를 입기도 했지만 상처가 될지언정 모르는 것보단 깨닫는 게 더 나은 거 같다"고 밝혔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김새벽은 연기에 대한 꿈을 가슴에 품고만 지냈다. 대학 졸업 직전에야 “이렇게 살면 후회하겠다”란 생각에 언니가 사는 서울로 상경을 결심했다. 올라오자마자 연기학원에 등록한 뒤 어떻게 살아갈지 생각할 시간을 가졌다. 이후 지인의 소개로 연극과 뮤지컬에 조금씩 출연했다. 2009년엔 단편영화 오디션에 응시해 캐스팅되며 영화배우로 활동을 시작했다.
“처음 시작할 때도 대단한 욕심이 없었고, 지금도 큰 욕심이 없어요. 전 어떤 작품이냐, 어떤 캐릭터냐, 어느 정도의 비중이냐 보다 같이 작업하는 사람이 중요해요. 단역 출연했던 ‘써니’의 강형철 감독님이 ‘타짜2’를 연출하며 저를 불러주셨고, 이강국 감독님의 ‘로맨스 조’와 ‘말로는 힘들어’에 출연했고, ‘줄탁동시’에서 인연을 맺은 김경묵 감독님이 이번 ‘이우끝’에 다시 캐스팅해주셨으니 그걸로 행복해요.”
◆ 감독들 신뢰 덕에 '다시 쓰는 배우' 닉네임 얻어
‘믿고 보는 배우’가 아닌 ‘다시 쓰는 배우’임이 행복하단다. 탈북소년의 이야기를 그린 2012년 화제의 독립영화 ‘줄탁동시’에서 그는 동생들을 거두는 조선족 소녀 순희 역을 맡아 깊은 인상을 남겼다. 천연덕스런 조선족 말투와 동포애 강한 구원의 여인상을 생생하게 그려냈기 때문이다. 단편영화 ‘말로는 힘들어’에선 통통 튀는 여고생으로 상큼한 매력을 발산했다. 박찬경 감독의 ‘만신’에서는 폐병 걸린 남편을 둔 만삭의 임산부로, 무당 김금화로부터 굿을 받는 장면에 나와 눈도장을 찍었다.
‘이우끝’에 이어 오는 9월 일본 나라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장건재 감독의 ‘한여름의 판타지아’(가제)의 여주인공으로 일본 관객과 먼저 만난다. 나라영화제 지원작인 이 영화는 한 감독이 취재차 일본 나라현 고조에 들렀다가 겪는 일들을 그린 판타지 드라마다. 김새벽은 감독을 도와주는 통역 겸 취재업무 어시스턴트로 출연한다. 조곤조곤 할 말 다하고 확실하게 업무를 지원하면서 한편으론 감독을 푸시하는 캐릭터다.
“인간을 바꾸는 3가지 요소가 ‘시간’ ‘거주공간’ ‘만나는 사람’이란 글을 읽은 적이 있어요. 20대에 전 이 3가지를 다 누렸어요. 30대에는 또 많은 변화가 있었으면 해요. 촬영이 없는 날엔 집에서 밥 해먹고 수영장, 도서관, 피아노학원에 갔다가 다시 밥 해먹고 책을 읽어요. 이렇게 조급해하지 않고 가만히 있다 보면 연기하고 싶어질 때가 오거든요. 그런 리듬이 편하고 좋아요.”
[취재후기] 제목이 의미심장한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 김새벽은 “끝이 될 수 있으니 잘하자”란 긍정적 의미로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이창동 감독 그리고 벨기에의 다르덴 형제 감독과 꼭 작품을 함께 해봤으면 하는 게 배우로서의 소망이다. 중요한 또 하나, “연기로 먹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소원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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