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Q 김학범 논평위원] 전날 독일과 브라질의 4강전과 달리 아르헨티나와 네덜란드의 맞대결은 보는 사람들에 따라서는 골이 나오지 않아 상당히 따분하고 지루한 경기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의 알레한드로 사베야 감독과 네덜란드의 루이스 판할 감독 입장에서는 자기들이 만들어놓은 퍼즐을 잘 맞춘 경기였다. 양 팀 감독의 뜻대로 제대로 풀어간 경기였다는 뜻이다.
전후반 90분과 연장 전후반 30분까지 120분 동안 한 골도 나오지 않은 것은 철저한 실리축구를 했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수비 축구라는 시각보다는 실리축구라는 것이 정확하다.
◆ 상대 에이스 메시·로번 철저하게 봉쇄
이번 브라질 월드컵 8강부터는 뒤집어지는 경기가 나오지 않고 있다. 16강전에서도 네덜란드가 멕시코에 2-1 역전승을 거둔 것 뿐이다. 녹다운 토너먼트에서는 높이 올라갈수록 강팀끼리 맞붙기 때문에 뒤집기가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감독들은 먼저 수비에 안정을 두는 실리축구를 할 수밖에 없다. 먼저 골을 내주면 이는 곧 패배로 이어지고, 선제골을 넣으면 이기는 경기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날 브라질이 독일에 1-7로 참패한 것 역시 감독들이 실리축구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계기가 됐다. 브라질도 먼저 골을 내준 뒤 앞으로 나가다가 독일에 내리 네 골을 더 내주며 무너졌다.
이에 따라 양 감독들은 상대 에이스인 리오넬 메시(27·바르셀로나)와 아리언 로번(30·바이에른 뮌헨)를 제대로 봉쇄하는 방법을 연구했다. 양팀 모두 서로 메시와 로번의 동선을 철저하게 분석했고 협공 수비책을 준비했다. 결과적으로 메시와 로번이 큰 힘을 쓰지 못하는 계기가 됐다.
◆ 판페르시와 디마리아의 구멍이 컸다
경기를 보면 아르헨티나와 네덜란드 모두 한 선수의 부진 또는 공백이 꽤 컸다.
아르헨티나는 잘 알듯이 앙헬 디마리아(26·레알 마드리드)의 공백이 워낙 컸다. 디마리아가 빠지면서 아르헨티나의 창조적인 축구가 힘을 잃었다. 또 네덜란드는 로빈 판페르시(31·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계속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판페르시는 경고 누적으로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 결장한 이후 전혀 제몫을 해주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판할 감독이 계속 판페르시를 기용하는 것은 한방을 해줄 수 있는 선수이기 때문이다. 홍명보 감독이 박주영을 조별리그 2차전까지 계속 믿었듯이 감독은 언젠가는 한방을 해줄 것이라는 믿음과 기대감이 있기 때문에 쉽게 빼지 못한다. 어려울 때 꼭 한건씩 해주고 승패를 결정하는 선수이기 때문에 좀 부진하더라도 감독이 끝까지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 '골키퍼 교체카드' 남겨뒀더라면, 판할 감독의 아쉬운 용병술
한가지 아쉬운 것은 판할 감독이 왜 코스타리카와 8강전처럼 승부차기에 대비한 골키퍼 교체 카드를 남겨두지 않았는지에 대한 것이다. 코스타리카는 승부차기 전에 반드시 끝내야 하는 상대였기에 공격적인 교체가 필요했지만 아르헨티나는 다르다.
내 생각에는 판할 감독은 처음에는 코스타리카와 8강전처럼 팀 크륄(26·뉴캐슬 유나이티드)로 바꿀 생각이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코칭스태프와 상의하면서 후반에 마음이 바뀐 것 같다. 하지만 이것이 승부차기에서 승패를 가르고 말았다.
결과론이 아니라 승부차기는 심리의 싸움이다. 그런데 크륄로 바꾸지 못하면서 네덜란드 선수들의 심리상태가 크게 불안해졌다. 승부차기에서 네덜란드는 못해서 진 것이 아니라 심리에서 밀렸기 때문이다.
◆ 승부차기 영웅은 로메로, 필드 영웅은 마스체라노
아르헨티나가 승부차기에서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역시 골키퍼 세르히오 로메로(27·AS 모나코)의 활약이 컸다. 로메로는 경기 최우수선수(맨오브더매치)에 선정됐다.
그러나 필드에서 영웅은 하비에르 마스체라노(30·바르셀로나)였다. 수비 미드필더인 마스체라노는 자신의 본연의 임무 뿐 아니라 중앙 수비까지 내려오며 네덜란드의 공격을 막아냈다. 로번의 두차례 위협적인 슛을 온몸을 던져 막아냈다. 이 가운데 하나는 로번이 완벽하게 넣을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마스체라노가 잘 막아냈다.
아르헨티나를 '메시 원맨팀'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어느 팀이나 가장 뛰어난 스타가 있기 마련이다. 원맨팀과 원팀으로 나누는 기준은 바로 응집력과 조직력이다. 현재 아르헨티나는 메시를 중심으로 똘똘 뭉친 원팀이다. 로메로나 마스체라노의 헌신만 보더라도 이를 잘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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