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자 Tip!] 미국 메이저리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 셋업맨을 맡고 있는 투수 오승환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빠른 공을 던져 ‘돌부처’라는 별명이 붙었다. 한국의 올림픽 간판 효자종목으로 자리매김한 양궁에도 오승환 못지않게 표정 변화가 없는 궁사가 있다. 바로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여자 대표팀 선발전에서 1위를 차지한 여자양궁 세계랭킹 1위 최미선(20·광주여대). 야구를 ‘멘탈게임’이라고 하는데, 양궁 역시 평정심을 유지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선수로서 가장 큰 무대 사대에 서는 꿈을 이루기까지 시련도 많았던 최미선이 올림픽 첫 금메달을 정조준한다.
[태릉=스포츠Q(큐) 글 이세영·사진 이상민 기자] “아직까지는 얼떨떨해요. 시간이 조금 더 지나야 올림픽에 나간다는 게 실감이 날 것 같아요.”
만 20세에 처음으로 나가는 큰 대회라 아직 실감은 나지 않는다. 하지만 누구보다 올림픽을 열심히 준비했다고 자부할 수 있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되는 것만큼이나 힘들다는 태극마크를 품었기 때문.
최미선은 쟁쟁한 선배들을 제치고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지난달 19일 막을 내린 리우 올림픽 국가대표 평가전에서 1, 2차 합계 15점을 획득, 1위로 리우행을 확정지었다. 최미선은 각각 2, 3위를 차지한 기보배(28·광주시청), 장혜진(29·LH)과 함께 올림픽 개인전과 단체전을 치른다.
최근 좋았던 흐름을 그대로 이어갔기에 생애 첫 올림픽 출전의 꿈을 달성할 수 있었다. 지난해 4월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단 최미선은 지난해 리우 프레올림픽 여자 개인전과 단체전 금메달을 휩쓸었다. 아울러 세계양궁연맹(WA) 양궁월드컵 2차 대회에서 개인·혼성 2관왕에 올랐고 파이널 대회에서도 개인과 혼성 모두 1위를 차지했다. 굵직굵직한 대회를 제패했기에 세계랭킹 1위에 올라설 수 있었다.
WA에 따르면 최미선의 화살 한발의 평균점수는 9.36점이며, 승률은 85%(22승 3패)에 달한다.
◆ 일찌감치 쓴맛 봤기에 웬만한 시련에 흔들리지 않아
최근 성적만 봐서는 최미선이 단번에 양궁 정상에 선 ‘깜짝 스타’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 역시 정상에 오르기까지 많은 실패를 경험했다.
전라남도 무안에서 태어나고 자란 최미선은 일로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활을 잡았다. 선생님의 권유로 시작한 양궁에 흥미를 붙인 최미선은 전남체고 시절 두각을 나타냈다. 국가대표가 되고자 여러 차례 문을 두드렸지만 선발전에서 번번이 탈락했다.
그의 실패를 가까이서 지켜본 문형철(58) 양궁대표팀 감독은 “평가전 첫날에는 잘하다가 3~4일이 지나면서 기록이 처질 때가 많았다”며 “체력이 약하다보니 정신력도 같이 무너졌다. 3년 정도 힘든 시간이 있었다”고 말했다. 선수들 간 실력차가 거의 없기 때문에 한두 발 실수로 대표팀 승선 여부가 갈릴 때가 많았다. 문 감독은 “계속된 불운에 최미선이 힘들어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고등학교 때 겪은 시련이 최미선을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원래 성격이 무덤덤한 편”이라고 밝힌 그이지만 어린 마음에 받았을 상처가 컸을 터. 그러나 이를 내색하지 않은 최미선은 하루 400발씩 쏘는 강훈련을 소화하며 결전의 날을 기다렸고 마침내 꿈에 그린 국가대표가 될 수 있었다.
일찌감치 많은 좌절을 겪었기에 어떤 일에도 무던하게 대처할 수 있다. 최미선은 “주위에서 강심장이라고 하는데, 경기할 때 많이 도움 된다. 정신력에서 상대보다 한 발 앞서 나가는 것도 있고 ‘내가 할 것만 집중해서 하자’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문형철 감독은 “경기할 때 표정 변화 없이 묵묵하게 활을 당기는 건 좋은데, 단점이 있다면 너무나도 자기 성을 쌓다보니 긴장이 올 때 못 풀 때가 있다. 성격이 내성적인 편이라 언니들이 이런 부분을 잘 조율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 빼어난 지구력, 저체중 단점 메우기에 충분
양궁선수로서 강인한 정신력을 갖고 있는 최미선에게는 오래된 고민이 있다. 바로 체중이 생각만큼 불지 않는 것. 최미선은 양궁선수로서 호리호리한 168㎝, 53㎏의 체격을 갖췄다.
“체중이 적어서 바람이 많이 불 때 중심이 흔들리는 약점이 있어요. 선발전 같은 장기 레이스에서는 뒷심이 부족해 점수를 내지 못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힘을 키우면서 체중도 늘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생각만큼 쉽지 않네요.(웃음)”
원래 살이 잘 찌지 않는 체질인 최미선은 음식물을 충분히 섭취하며 몸을 불리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문형철 감독은 “고등학교 때보다는 체력이 많이 붙은 상태다. 지구력이 향상됐다”며 “국가대표가 된 뒤에 식단과 웨이트 트레이닝 시설이 좋아졌으므로 몸이 단단해질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있다고 본다. 살이 잘 찌지 않는 건 어려서 신진대사가 좋기 때문일 것이다. 나이가 들면 찔 것이다”라고 웃어보였다.
◆ 첫 출전에 2관왕? "개인전 향방 아무도 몰라"
태극마크를 단 지 1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어린 나이에 세계랭킹 1위를 달릴 정도로 급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최미선의 올림픽 2관왕을 조심스럽게 예상하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개인전에서 워낙 변수가 많기 때문에 정상의 주인공이 될지는 알 수 없다. 그 전에 치르는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따야만 2관왕의 조건이 채워지기 때문에 단체전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최미선은 “4년 전에 (2관왕으로) 올림픽을 경험한 (기)보배 언니가 팀의 단합을 위해 많이 노력한다”며 “정신적으로 힘들 때 많이 도움 되고,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 물어보라고 하셔서 든든하다”고 말했다. “최상의 팀워크를 다져나가고 있다”는 게 최미선의 설명이다.
문형철 감독은 “현지시간으로 8월 6일 양궁 종목이 시작되는데, 이때 예선전을 치르고 순위가 나오면 바로 단체전에 들어간다. 단체전이 먼저 열리기 때문에 일단 여기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개인전에서는 나라를 위해 세 선수가 최소한 8강은 진출해야 한다. 그래야 다른 한국 선수가 강호와 대결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개인전은 단판 승부이기에 아무도 모른다. 실력차도 종이 한 장에 불과하다. 당일 컨디션과 약간의 운이 승부를 좌우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올림픽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최미선 입장에서 기분 좋은 신드롬 2개가 있다. 하나는 여자 양궁이 올림픽 단체전에서 1988년 서울 대회부터 7연패를 달성해 온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지금까지 여자 양궁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가 모두 다르다는 것이다. 한국은 2008년 대회만 빼곤 1988년 김수녕을 시작으로, 1992년 조윤정, 1996년 김경욱, 2000년 윤미진, 2004년 박성현, 2012년 기보배 등이 금메달을 수확했다. 어느 누구도 올림픽 개인전에서 멀티 금메달을 획득하지 못했다.
이에 대해 최미선은 “조금 기대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 단체전을 더 잘하고 싶다. 일단 단체전에 초점을 맞추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화살이 10점에 들어갔을 때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짜릿함이 있어요. 이런 기분을 최대한 자주 느낄 수 있도록 대표팀 막내로서 제 역할에 충실하겠습니다. 앞으로 잘 준비한다면 충분히 좋은 경기를 치를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많은 격려 부탁드립니다.”
■ 최미선 프로필 △ 생년월일 = 1996년 7월 1일 |
[취재후기] 인터뷰 내내 스무 살 답지 않은 차분함과 노련함이 돋보였다. 최미선은 자신의 현 상황을 냉철하게 판단하고 개선하려 애쓰고 있다. 올림픽 출전이 실감나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보다 올림피아드를 여느 국제대회와 다르지 않게 생각하려는 마인드를 읽을 수 있었다. ‘평범한 것이 비범한 것일 수 있다’는 말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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