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Q(큐) 민기홍 기자] ‘최순실 게이트’로 체육계는 그야말로 쑥대밭이 됐다. 차은택 전 문화창조융합본부 단장이 문화계를 주무른 것처럼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이 체육계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인사와 정책은 물론 각종 이권에 개입한 사실과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스포츠인들의 절망과 분노는 하늘을 찌른다.
K스포츠재단 강제 모금을 비롯 K스포츠클럽과 K스포츠타운, 스포츠도시 사업 등도 의혹 투성이다. 여기에 최순실 딸 정유라의 이화여대 체육학과 부정 입학, 대한승마협회 판정 논란, 장시호의 동계스포츠영재센터, 2018평창올림픽조직위원회 인사 개입 등 김종 전 차관이 최순실의 사리사욕을 채우려 체육계를 농단한 흔적은 도처에 널려 있다.
그간 다수의 언론 등이 집중 보도한 내용과 스포츠Q 취재 내용을 묶어 최순실과 김종 전 차관이 손잡고 그린 스포츠 제국의 밑그림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만약 그 시나리오대로 됐다면 스포츠 코리아는 어떤 변화를 겪었을지 궁금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상상하는 것만으로 소름 돋는 일종의 가상 시나리오다.
◆ 생활체육, 엘리트, 동계스포츠...대한민국 스포츠는 ‘최순실 제국’
2020년 어느 날. 탁구, 배드민턴 등 아마추어 스포츠 동호인들은 최순실이 장악한 K스포츠재단이 운영권을 쥔 K스포츠클럽에서 운동을 즐긴다. 정부가 생활체육 저변 확대를 위해 마련한 선진국형 스포츠클럽이다. 전국 각지에 220곳이 있어 일상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이들은 운동을 마치면 카페 ‘테스타로사(Testarossa, 이탈리아어로 빨간 머리)’에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긴다. 테스타로사는 최순실이 론칭한 프랜차이즈 브랜드다.
엘리트체육도 K스포츠타운을 통해 모든 것이 이뤄진다. 문체부는 2016년 7월 7일 스포츠산업 투자활성화 방안 중 하나로 K스포츠타운 조성 계획을 밝혔다. K스포츠타운이 표방한 취지는 '글로벌 스포츠 유망주의 발굴과 체계적인 육성 및 홍보'다. 문체부는 경기 하남, 전북 부안 등 전국 5대 거점에 600억~1000억 원을 들여 스포츠센터를 지었다. 국가대표에 발탁되고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되려면 K스포츠타운에 선발되는 것이 지름길이다.
최순실의 조카 장시호가 사무총장으로 일하고 있는 동계스포츠영재센터는 겨울스포츠의 중요한 채널이다. 함께 일하는 이들만 보더라도 그렇다. 스키,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등 각 종목 역대 올림픽, 아시안게임 메달리스트들이 이사진과 지도자로 포진해 있다. 화려한 이름값에 거미줄 네트워크까지 갖췄으니 거칠 것 없다.
K스포츠재단을 정점으로 한 K스포츠클럽, K스포츠타운 등 이른바 ‘K라인’은 대한민국 스포츠계를 움직이는 하나의 인적네트워크다. 국내 체육계에서 성공하려면 최순실 또는 장시호에 반드시 줄을 대야 한다. 선수와 지도자는 물론 학자와 체육관료 또한 매한가지다.
◆ 승승장구 더블루K, 침체일로 프로스포츠
2018 평창 올림픽은 인천 아시안게임보다 더한 ‘재앙’이 돼 한국 체육사에 오점을 남겼다. 김진선 조양호 등 유치를 주도한 전 조직위원장들이 모두 사퇴하면서 스텝이 꼬이기 시작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바랐던 분산 개최마저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한마디로 무산된 바 있다.
하지만 누슬리 등의 기업과 손을 잡고 평창 올림픽 시설로 이득을 챙긴 최순실 일가는 평창 일대 사놓은 수만 평 땅값까지 오른 덕에 큰돈을 벌어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스포츠마케팅 회사 더블루K의 승승장구도 눈에 띈다. 스포츠 서비스업 발전은 사실 더블루K에 일감을 몰아주려는 차원에서 기획된 프로젝트였기 때문이다. 더블루K는 문체부가 스포츠산업 활성화에 필수라고 주장한 에이전트업을 주요 비즈니스 모델로 한다. 최순실이 세운 페이퍼 컴퍼니인 독일 법인으로 K스포츠재단의 자금이 흘러들어간 것은 물론이다.
프로스포츠에도 태풍이 휘몰아쳤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과 만난 삼성, 현대자동차, SK, LG, 롯데 등 굴지의 재벌기업이 야구, 축구, 농구, 배구 등 4대 프로스포츠 구단에 투자할 돈을 K스포츠재단에 내놓으면서 투자가 상대적으로 줄어든 탓이다. 특히 삼성그룹은 야구단 라이온즈나 축구단 블루윙즈의 성적이 어떻게 되든 큰 관심이 없게 됐다.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종목은 오직 정유라가 하고 있는 승마였다.
◆ 정유라, 도쿄 올림픽 국가대표에서 K스포츠재단 이사장으로?
‘이대 나온 여자’ 정유라는 삼성의 든든한 지원을 등에 업고 2020년 도쿄 올림픽 마장마술 단체전에 국가대표로 나선다. 메달을 따는 데는 실패했다.
대표 선발 과정에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정유라보다 훨씬 기량이 뛰어난 A가 애꿎은 피해를 입었다. A의 부모는 부당함을 주장하지만 공허한 메아리로 돌아올 뿐이다. 최순실과 대립각을 세우거나 정유라 점수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대한승마협회에 단 한 명도 없기 때문이다. 일부 국회의원과 문체부마저 정유라 편이니 A의 가족은 좌절한다.
문체부의 ‘체육계 4대악 척결’은 여전히 계속된다. 승부조작, 입시 비리, 폭력, 조직 사유화 등 더러운 관행을 영원히 뿌리 뽑겠다는 것. 체육계 관계자들은 “맞는 말이긴 하다”고 동의는 하지만 유독 특정 집단만 피해를 입는 데에 대해 의문을 품는다. 그러나 누구도 반기를 들지 못한다. 노태강 문체부 전 체육국장, 진재수 전 체육정책과장처럼 한순간에 ‘훅’ 갈지 두려워서다.
최순실의 의도를 가장 잘 아는 김종 전 차관은 문체부에서 물러난 뒤 K스포츠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한다. 또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올림픽 출전 경력을 쌓은 정유라는 김종 이사장의 후임으로 대한민국 체육계의 막후 실력자로 떠오른다.
최순실 일가가 그린 ‘스포츠 제국’의 꿈은 점점 가시화된다. 인사도 정책도 최순실이 생각하는 대로다. 김종 전 차관이 부르짖었던 스포츠산업 부흥은 뒷전이다. 최순실의, 최순실을 위한, 최순실에 의한 ‘스포츠 코리아’는 그렇게 황폐화된다.
가장 암울한 것은 어디서 꼬였는지 아무도 모르고, 설령 그것을 정확히 안다고 해도 감히 발설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실로 끔찍한 가상 시나리오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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