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자 Tip!] 소녀 같은 하얀 피부와 가녀린 몸. 그러나 고집있어 보이는 눈빛과 입매. 그동안 임수정은 작품을 통해 자신의 이미지를 치열하게 쌓아온 여배우다. 대표작인 '장화 홍련'에서 속을 알 수 없는 예민한 소녀 수미를 연기하고, 이후 한국 로맨틱 코미디의 대표 작품인 '김종욱 찾기'에서는 수더분하면서 속내를 쉽게 드러내지 않는 지우 역을 맡았다. 그런 임수정이 '엄마'로 돌아왔다. 그것도 우리가 기존에 생각했던 '엄마'와는 꽤나 다르다.
[스포츠Q(큐) 주한별 기자] 첫 엄마 캐릭터를 맡게 된 여배우들에게는 질문이 쏟아진다. 이제는 '연인'이 아닌 '엄마' 캐릭터를 맡았다는 것에 대한 심경을 묻는 것이다. 이는 '젊은 여배우'에서 '젊은'이라는 수식어를 떼었다는 하나의 상징적인 사건이기도 하다.
그러나 '당신의 부탁' 속 임수정의 엄마는 다르다. '장화 홍련' 속 수미가 일반적인 '소녀'와는 달랐듯이 임수정은 자신만의 호흡, 연기로 엄마가 되어가는 효진을 연기한다.
# 임수정의 '엄마' 연기, 그리고 여배우에게 '엄마'란
임수정은 엄마 캐릭터를 맡게 된 소감으로 "낯설고 어색하고 이상하다"며 솔직한 심정을 말했다.
"저에게도 엄마 역이 들어온다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겠다 생각한 터였어요. 그래서일까, 당황스럽지 않았죠. 다만 너무 큰 아들이어서 당황했어요."
영화 '당신의 부탁'은 유사가족의 이야기를 다뤘다. 극중 효진과 종욱(윤찬영 분)은 가족이지만 서로 혈연 관계가 아니다. 그렇다면 배우 임수정은 혈연 관계가 아닌 가족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임수정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려운 고민이 될 것 같아요. 그런데 제게도 그런 상황이 생길 수도 있죠. 예를 들면, 결혼하고 싶다고 생각한 남성이 나타났는데 '돌싱'일 수도 있죠. 아이가 있을 수도 있고요. 쉽게 혈연만이 가족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요. 그런 상황이 온다면 진지하게 고민 하겠죠."
영화 '당신의 부탁'에는 여러 엄마가 등장한다. 갑작스럽게 중학생 아들을 들이게 된 효진부터 곧 태어날 아이를 임신한 미란(이상희 분), 딸 효진의 인생이 마냥 걱정스러운 명자(오미연 분), 덜컥 아이를 임신하게 된 청소년인 주미(서신애 분)까지 다양한 엄마 들이다.
영화 속 어떤 '엄마'가 임수정에게 특히 와닿았을까? 임수정은 "오미연 선생님"이라며 효진의 친엄마로 등장한 명자를 언급했다.
"진짜 저희 엄마를 보는 느낌이었어요. 다투는 장면이 가장 와닿았죠. 저도 엄마와 다툴 때 얼굴 빨개지고 소리지르고 괜히 상처주는 말하고 그래요. 그게 매번 죄송해 죽겠다고 오미연 선생님께 말씀드렸어요. 그랬더니 '그게 엄마와 딸이지' 하시더라고요."
극중 효진은 자신의 고민을 상담하는 정우(한주완 분)와 미묘한 관계가 형성된다. 흔한 러브라인이 아닌 정우와의 관계를 임수정은 어떻게 생각할까?
"정말 낯선 사람에게 내 얘기를 털어놓고 싶을 때가 있죠. 정우는 심리상담을 하며 효진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캐릭터예요. 그러나 정우는 효진을 여자로 보고 연애하고 싶어하죠. 영화 후반부에서 효진과 정우의 관계는 열려있어요. 저는 그게 반가워요. 효진이 아들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기에는 32살, 너무 어린 나이예요."
# 영화 그리고 팟캐스트… 배우 임수정의 모습들
임수정은 최근 김혜리 기자, 최다은 PD와 함께 영화 팟캐스트 '김혜리의 필름클럽'을 진행한다. 해당 팟캐스트에서 임수정은 자신이 본 영화들에 대한 감상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며 청취자들과 소통한다. 남다른 영화 '덕력'도 느낄 수 있다.
임수정은 "저는 '피처링' 개념으로 함께 하고 있어요. 아무래도 자유로운 방송을 할 수 있는 게 팟캐스트죠. 제 생각을 자유롭게 이야기 해요. 최근에는 팟캐트스트 하는 게 최고의 재미예요. 너무 즐거워요."
팟캐스트에서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청취자들의 호평을 받고 있는 임수정이다. 라디오 DJ에 대한 욕심은 없을까? 임수정은 "종종 (제의가) 들어오긴 한다"며 라디오에 대한 사랑을 밝혔다.
"라디오 DJ는 성실하게 매일 출근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용기를 못 냈던 것 같아요. 배우라는 직업은 출퇴근이 명확한 직업이 아니잖아요. 그러나보다 할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머지 않은 시간에는 매일 출퇴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영화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가진 임수정이다. 그런 만큼 한국 독립영화에 대한 애착도 남다르다. 임수정은 '더 테이블', '당신의 부탁' 등 비교적 작은 규모의 영화에 출연했다.
"다양한 장르의 영화, 독립 영화에 출연하는 건 배우에게 풍족한 경험을 주는 것 같아요. 크고 작은 영화제의 심사위원을 해보면서 영화를 진지하게 보게 됐어요. 한국 영화는 수준도 높고 좋은 감독, 배우가 많아요. 다양성과 개성이 한국 영화의 힘이죠. (저예산 독립영화 출연) 이런 행보, 계속 하고 싶어요. 물론 천만영화에 대한 배우로서 흥행 욕심도 있죠."
한국영화의 다양성이 최근에는 저하됐다는 영화 팬들의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한국영화의 힘은 '다양성'이라고 이야기 한 임수정도 이와 같은 팬들의 지적에 동의했다.
"남성 중심 영화들이 많아지며 다양성이 많이 위축됐어요. 여배우들에게 주어지는 역할은 제한적이죠. 할리우드도 그런 문제들로 영화 제작진, 배우들이 목소리를 내고 있어요. 여기(한국)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낙담하진 않아요. 앞으로 한국영화 시장이 더 좋아질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영화를 남달리 사랑하는 임수정인 만큼 연출에 대한 욕심도 있지 않을까? 임수정은 "감독이 얼마나 어렵고 중요한 자리인지 안다"며 겸손한 대답을 했다.
"기획과 제작은 해보고 싶어요. 극영화 연출은 관심이 없어요. 다큐멘터리 연출은 관심이 있어요. 영화 기획, 프로듀싱에 관심이 많아요."
# 임수정이 사랑한 배우들
이날 인터뷰에서 임수정은 한국영화계의 다양한 배우들에 대한 존경과 애정을 드러냈다. 과거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에서 임수정과 호흡을 맞췄던 배우 소지섭은 최근 인터뷰에서 다시 호흡을 맞추고 싶은 배우로 임수정을 꼽았다. 그렇다면 임수정은 어떤 배우와 다시 한 번 호흡을 맞추고 싶을까?
"솔직하게 강동원 씨예요. 영화 '전우치'에서 짧게 호흡을 맞췄어요. 그떄 정말 재밌었어요. 로맨스가 아니어도 다시 호흡을 맞추고 싶어요."
임수정은 남자 배우가 아닌 여자 배우들과의 호흡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임수정은 "제가 여자 배우들과 '케미'가 좋아요"라며 국내 여배우들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임수정은 "'장화 홍련' 근영이(문근영), 정아 언니(염정아)와 너무 좋았어요. 이번 '당신의 부탁'에서 이상희 배우와의 호흡도 좋았어요. 'ing'에서는 이미숙 선배님과 좋았죠. '오션스' 시리즈 여자버전이 있었음 좋겠어요. 여자 배우들끼리의 협업이 자주 있었으면 좋겠구요."
[취재 후기] 임수정은 단순히 '연기 잘하는 배우'로 표현되지 않는다. 어떤 작품에서든 자신만의 고유한 매력을 드러내는 임수정이다. 임수정에게 '모두의 첫사랑', '만인의 연인' 같은 흔한 수식어가 붙지 않는 이유기도 하다.
스스로를 '게으르다'라고 표현한 임수정은 2018년 에세이 출간을 목표로 하고 있다. 무언가에 대한 새로운 도전으로 바쁜 임수정의 2018년을 스포츠Q가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