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자Tip!] 류덕환은 계산적인 배우다. 자신이 연기하는 캐릭터에 대해 완벽한 이해를 추구하고, 대본에 담기지 않은 이야기들을 상상한다. 류덕환의 치밀함은 곧바로 캐릭터의 특징으로 연결되며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배우이자 연출자로서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류덕환이 가진 생각과 ‘미스 함무라비’의 정보왕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스포츠Q(큐) 글 이은혜·사진 주현희 기자] 드라마 ‘미스함무라비’의 류덕환은 정보왕 역을 연기하며 브라운관에 복귀했다. 류덕환은 약 3년의 공백이 느껴지지 않는 연기력과 캐릭터 해석 능력으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작품에 임하며 누구보다 치밀하고 치열하게 캐릭터를 연구하고 표현해내는 류덕환을 지난 19일 오후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서 만났다.
◆ 치밀했던 캐릭터 분석, ‘미스 함무라비’ 정보왕의 탄생
3년 만의 브라운관 복귀였다. 군 제대 이후 첫 작품으로 ‘미스 함무라비’를 선택한 류덕환은 자신을 완전히 지우고 정보왕으로 재탄생했다. 공백이 느껴지지 않은 연기와 섬세한 캐릭터 표현력은 그만의 치열한 분석을 바탕으로 탄생했다.
“대본은 그대로 받아들여요. 그 후 캐릭터 구상 과정이 조금 특이해요. 나쁘게 말하면 변태 같은데요. 사람을 보고 관찰하는 걸 좋아해서 대중교통을 타고 다니면서 사람들을 보고, 택시 기사님들과의 대화에서 많은 도움을 받아요. 이번에도 정보왕 캐릭터도 한 집단에서 성공하고 싶어 했던 친구가 이도연(이엘리야 분)과 박차오름(고아라 분)을 만나 변화하고 본질적인 행복을 찾는 것에 택시 기사님 이야기를 녹였어요. 그러면서 대본에 표현이 안 된 캐릭터의 과거를 써 봐요. 중요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그 과정을 거치면 대사 한 마디를 하더라도 확고함이 생기더라고요”
류덕환의 캐릭터 분석력이 가장 빛난 신을 꼽으라면 이도연(이엘리야 분)과의 키스신을 빼 놓을 수 없다. 뒷짐을 지고 입을 맞추는 정보왕의 모습에서는 소년 같은 풋풋함과 귀여움이 묻어나며 캐릭터의 특색을 살렸다는 호평을 받았다.
“(손을 뒤로 하는) 동작이 자연스럽게 나왔어요. 보왕이는 도연이를 항상 조심스럽게 대하거든요. 입맞춤을 하는 순간에도 ‘이러면 안 돼. 이 여자가 떠날 수 있어’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배려할 것 같았어요. 캐릭터로서 표현했을 뿐인데 그렇게 좋은 반응을 얻을 줄 몰랐어요”
◆ “‘미스 함무라비’,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게 중요했다”
‘미스 함무라비’는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주제들을 에피소드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유리천장과 성추행, 갑질 논란 등 다양한 이야기를 다룬 작품에서 류덕환은 ‘함께 성장하는 캐릭터’로서 드라마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다양한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에피소드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 본 류덕환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가슴털 부장 에피소드는 ‘이거 너무 간 거 아닐까?’라는 생각도 했는데 실제 있었던 사건이었어요. 충격 받았죠. 내가 세상을 모른다는 생각과 남성으로서 너무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드라마가 여성의 입장만을 대변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다양한 상황, 입장, 관점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실제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드리는 게 중요했던 거죠”
여러 과정을 거치며 만들어낸 정보왕 캐릭터는 작품에 유쾌함을 더하면서도 작품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톤을 유지하는데 힘을 실었다. 정보왕의 순수하고 어수룩한 모습을 정확하게 보여주면서도 시청자들에게 가벼운 웃음을 더한 것이다.
코믹함과 진중함을 오가는 캐릭터의 톤 유지 방법에 대해 묻자 류덕환은 “코미디가 어렵다”는 말이 흘러 나왔다.
“기본적으로 센스도 필요하지만 자신을 잘 놓고 해야 하는 것 같아요. 사실 현장에서 만들어낸 게 많아요. 상대 하는 말을 듣고, 처해 있는 상황을 이용하고, 주변을 둘러보고. 제가 스킬이 부족해서요. 분장 이상하게 하고 웃기면 할 수 있는데 테크닉적인 부분이 어려운 거죠. 주어진 상황을 유지하면서도 뭔가 의미가 남는 코미디를 하는 건 배우로서 항상 고민해야 할 부분인 것 같아요”
◆ 여전히 성장하는 배우, 류덕환
1992년 데뷔한 류덕환은 꾸준히 연기를 이어왔다. 성인이 된 이후 ‘천하장사 마돈나’와 ‘신의 퀴즈’ 시리즈를 대표작으로 남긴 류덕환은 각종 단편 영화를 연출해 전주국제영화제 등 많은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하는 등 연출가로 성장하기도 했다.
배우이자 연출가로서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류덕환은 ‘관객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벽 보면서 고민 많이 했는데 잘 모르겠어요. 한 작품을 두고도 ‘연기 잘 한다’는 사람이 있고, ‘연기는 그저 그랬는데 작품은 좋았어’하는 사람도 있거든요. ‘내가 원한 것만 했는데 왜 사람들 반응이 다르지? 나는 관객들을 생각한 적 있나? 관객이 원하는 건 뭐지?’ 이런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이제는 관객들이 ‘배우 류덕환’을 믿어주면 저도 관객에 대해 믿음을 갖고 다양하고, 두려워하지 말고 나를 보여줘도 되겠구나 싶어요”
배우에게 ‘연기 잘 한다’는 칭찬 보다 듣기 좋은 말이 있을까? 평범하면서도 쉽게 듣기 어려운 칭찬에 대해 류덕환은 오히려 덤덤하면서도 새로운 반응을 보였다.
“정말 감사하지만, ‘연기 잘 한다’는 말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에요. 예전에 대학로에서 본 고등학생 친구들이 ‘신의 퀴즈’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제가 옆에 있는데도 못 알아보더라고요. 그때 제일 행복했어요.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있나’ 싶었어요. 모든 배우들은 그 역할의 100%가 되고 싶어 하니까요. ‘담배 태우는 연기 잘했다’는 말 보다 ‘담배 맛있게 태우더라’는 말이 좋아요”
류덕환은 꾸준한 성장을 기록해 온 배우다. 아역시절부터 성인 연기자가 되기까지, 그리고 연출자로서 영화를 선보이기까지 늘 놀라운 모습을 보여줬다. 류덕환은 섬세한 연기력과 감각적인 연출이 돋보이는 단편 영화들로 자신의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이런 류덕환을 자극하는 동료는 배우 박정민이다.
“(박)정민이는 타고났어요. 제가 봤던 배우 중 가장 변태적이고, 집요해요. 캐릭터가 가진 이상한 감정까지 찾아낼 정도로 캐릭터를 괴롭혀요. 그런데 그걸 스트레스라고 생각하지 않고 즐거운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같은 작품에 출연하는 것도 좋지만 제가 연출한 작품 출연을 제안하고 싶고, 그 친구가 연출을 한다면 제가 출연하고 싶을 정도에요”
[취재후기] 1시간 남짓한 인터뷰 시간 동안 계속해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진중한 이야기가 오가며 무거운 분위기가 형성될 수도 있었지만 인터뷰 현장은 시종일관 유쾌했다. 8할은 류덕환 덕이었다. 그의 성격을 표현할 수 있는 말을 남긴다.
“진지한 이야기를 하다가도 그 분위기가 순간적으로 불편할 때가 있잖아요. 그때 제가 망가져서라도 분위기를 풀어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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