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스포츠Q(큐) 글 안호근·사진 주현희 기자] 7일 경기도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파울루 벤투(49) 감독의 한국 축구 대표팀 공식 데뷔전. 3만6000여 유효 좌석이 가득 찼다. A대표팀 경기가 매진 된 건 무려 5년만의 일이다. 당시 상대가 브라질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경기 외적인 부분인 효과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2018 러시아 월드컵 직전까지만 해도 한국 축구를 향한 대중의 시선은 싸늘했다. 가장 기대를 모았던 스웨덴과 1차전에서 무기력한 공격으로 패배를 당한 뒤에도, 잘 싸우고도 불안한 수비 속 멕시코에 석패한 뒤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세계최강 독일을 2-0으로 격파하자 비록 16강 지출에 실패했음에도 대표팀을 향한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은 한국 축구를 향한 국민적 관심이란 불씨에 기름을 끼얹는 역할을 했다. 과정도 드라마틱했다. 선수 선발 과정에서부터 ‘인맥 축구’라는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아야 했지만 그 당사자인 황의조(감바 오사카)가 가장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팀에 우승을 안겨 축구 팬들의 마음을 돌려놨다.
당초에 아시안게임이 많은 주목을 받은 건 손흥민(토트넘 홋스퍼)의 군 면제 여부가 달려 있기 때문이었다. ‘캡틴’ 손흥민은 욕심을 내려놓고 특급 조력자로 변신하며 한국 축구에 대회 2연패를 안겼다.
월드컵 출전 명단에 이름을 올렸을 때부터 이슈를 몰고 다녔던 이승우(헬라스 베로나) 또한 아시안게임 토너먼트 라운드에서 해결사 역할을 하며 특유의 세리머니 등으로 많은 팬들을 끌어모았다.
많은 기대 속에 대표팀 사령탑에 오른 벤투 감독은 이들을 모두 A대표팀에 발탁하며 이러한 관심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특히 이날은 최근 축구 대표팀을 향한 달라진 인기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손흥민은 훈련 과정에서부터 벤투 감독의 방식에 대해 큰 만족감을 나타냈고 김판곤 대한축구협회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장 또한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재확인하며 미소를 지었다.
감독 부임 인터뷰에서부터 진정성 있는 답변으로 축구 팬들의 호감을 샀던 벤투는 자신의 한국 축구 사령탑으로서 데뷔 무대인 코스타리카전에서 기대 이상의 경기력으로 경기장을 찾은 3만6000여 관중에게 보답했다.
손흥민과 남태희(알 두하일), 이재성을 바탕으로 한 빠른 축구는 관중들의 눈을 즐겁게 했다. 공을 돌리며 점유율을 확보하면서도 패스는 공격적이었다.
과거에 쉽게 찾아보지 못한 유기적인 플레이도 돋보였다. 후반 5분 나온 플레이는 이날 경기의 하이라이트로 꼽기에 손색없었다. 정우영의 원터치 로빙 패스로 시작된 공격은 손흥민-이재성으로 연결됐다. 다시 공을 받은 손흥민은 왼쪽 측면에서 돌파를 시도하다 이재성에게 연결했고 중앙에서 무방비로 있던 장현수에게까지 이어졌다. 장현수는 슛 기회에서 감각적인 로빙 패스를 선택했고 지동원이 가슴으로 잡아놓은 뒤 발리슛을 날렸다. 비록 수비 몸에 막히며 골로 연결되지는 않았지만 박수를 자아낼만한 과정이었다.
후반 3분 52초 남태희가 수비 진영에서 공을 빼앗아 낸 뒤 32차례 패스를 돌리는 동안 단 한 번도 코스타리카에 공을 넘겨주지 않았다. 전반 이재성의 선제골 이후에도 담담했던 벤투 감독은 지동원이 슛을 날린 뒤 박수를 치며 만족감을 나타냈다.
로날드 곤살레스 코스타리카 감독도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한국은 굉장히 다이내믹해고 강렬했기 때문에 이런 측면에서 스피드를 따라가지 못했고 경기 템포를 유지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토로했을 만큼 한국은 뛰어난 경기력을 뽐냈다.
벤투 감독은 “승리 이후엔 항상 기분이 좋고 축하받아야 하지만 특히나 오늘처럼 좋은 경기력으로 이겼을 땐 더 더욱 그렇다”고 만족감을 표하며 “90분 내내 경기를 지배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수비와 공격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도 좋은 장면이 많이 나왔다. 수비에서 공격에 기회를 만들어주라는 요구 사항도 잘 이행됐기에 득점 기회가 많이 나올 수 있었다”고 총평을 남겼다.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오는 11일 오후 8시 펼쳐질 칠레전에도 만원 사례가 예상된다. 이날 대표팀의 맹활약으로 인해 대표팀을 향한 관심이 더욱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팀은 8일 오전 10시부터 파주 축구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NFC)에서 팬들을 대상으로 훈련과정을 공개하는 ‘파워에이드 오픈트레이닝데이’를 진행할 예정인데 경기 후 500명을 훌쩍 넘기는 팬들이 NFC를 찾아 조기에 행사 입장 인원에 제한이 생겼다.
대한축구협회는 자정 무렵 공식 SNS 채널 등을 통해 “지금 파주로 이동 중이거나 이동을 계획하고 계신 팬 여러분은 도착한다해도 행사 입장이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며 “다음 기회에 참여해주시기 바란다”고 긴급 공지를 내보냈다.
아이돌들의 콘서트 등이 있을 때 자주 벌어지는 현상이 축구로 옮겨졌다. 그만큼 손흥민과 이승우 등의 인기를 방증하는 것이다. 이날 경기장에서도 유독 여성팬들의 함성 소리가 크게 들렸고 통상적인 축구 응원 구호가 아닌 특정 선수의 이름을 연호한다든지 함성소리가 울려퍼지는 일이 많았다. 국가대표 경기에서는 흔치 않았던 플래시 응원 또한 달라진 팬층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였다.
문제는 이러한 관심이 꾸준하게 이어지는 것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이후가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축구 열기는 상상을 초월했지만 오래가진 못했다.
팬들에게 꾸준히 관심을 가져달라고만 요구할 수는 없다. 축구협회와 대표팀 스스로 인기를 유지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협회 차원의 활발한 홍보 속 벤투 감독이 데뷔전 승리의 기세를 이어간다면 한국 축구가 그토록 열망했던 부흥기를 맞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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