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Q(큐) 임부근 명예기자] 성실함은 큰 재능이다. 화려한 플레이 때문에 크게 부각 되지 않지만 세계 정상급 운동선수들은 재능을 만개하기 위해 음지에서 묵묵히 땀을 흘린다.
동의대의 2021 U리그(대학축구) 돌풍을 이끈 노동건(22)이 그런 케이스다. 프로에서 뛰고 있는 또래들에 비해 타고난 재능은 다소 떨어질지 모르지만 쉽게 만족하지 않는 승부욕 그리고 그걸 뒷받침해주는 성실함이 올 시즌 최고의 활약을 가능하게 했다.
올 시즌 동의대는 팀 역사에 남을만한 성적을 거뒀다. 매번 울산대에 밀려 준우승, 혹은 3위에 그쳤던 권역에서 마침내 우승을 차지했다. 이어진 왕중왕전에서는 한라대, 인천대, 조선대 등을 꺾고 팀 창단 최초로 결승에 올랐다. 전주대와 연장 혈투 끝에 아쉽게 1-2로 졌지만 기쁨이 더 큰 시즌이었다.
센터백이 주 포지션인 노동건은 주장으로서 팀의 중심을 잡았다. 경기당 평균 2골 이상을 뽑은 공격수들의 활약이 주목 받았으나 이는 노동건이 중심이 된 후방 수비 덕분이었다. 동의대는 11권역에서 12경기를 치르는 동안 8골만 내줬고, 왕중왕전에서도 탄탄한 수비로 0점대 실점을 기록했다.
만족할만한 성적이지만 노동건은 "시즌이 시작하기 전 각자 목표를 적어서 코치님께 제출했다. 그때 수비수들이 적은 목표를 봤는데, 다들 최소 실점이라고 썼더라"며 "저도 마찬가지였다. 왕중왕전을 포함해서 두 자릿수를 넘기지 말자고 목표를 세웠는데, 딱 10실점이더라. 조금 아쉽다"고 돌아봤다.
동의대는 지난 8월 추계대학축구연맹전에서 8강에 오르며 가능성을 보였다. 이후 왕중왕전에선 무르익은 경기력으로 모두를 놀라게 했다. 노동건은 동의대 돌풍의 이유로 체력을 꼽았다.
"평소에 체력 훈련의 강도가 편은 아니었어요. 왕중왕전을 앞두고 2주 정도 체력 훈련을 정말 많이 했어요. 덕분에 다른 팀보다 체력에서 우위를 점했다고 생각해요. 상위 라운드에 올라 갈 때마다 지치는 상황이 오는데, 체력이 뒷받침된 덕분에 강한 정신력도 유지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동의대의 강한 체력과 정신력이 빛났던 건 인천대와 16강전이었다. 인천대는 대학 최고 수준의 조직력과 체력을 자랑하는 팀. 동의대는 더 많은 활동량으로 승리를 거뒀다. 추계대학축구연맹전 8강에서 1-2로 진 것이 큰 동기부여로 이어지기도 했다.
"왕중왕전 대진표가 나온 뒤부터 복수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다른 팀은 몰라도 인천대만큼은 꼭 이기고 싶었고, 두 번 다시 지고 싶지 않았어요. 훈련 중에도 축구가 아니라 전쟁을 준비하는 것처럼 몰입했던 것 같아요. 인천대전이 끝나고 나니 다른 팀한테도 절대 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동료들도 그 말을 하더라고요. 많은 의미가 있었던 경기라고 생각해요."
왕중왕전에서 노동건의 폼은 그야말로 절정이었다. 대인마크, 뒷공간 커버, 빌드업 능력 등 센터백으로서 보여줄 수 있는 건 다 보여줬다. 노동건은 "왕중왕전 내내 컨디션이 정말 좋았다. 저도 왜 그런지 모르겠다"며 "학생으로서 마지막 대회다보니 오히려 마음을 내려놓게 되더라. 그게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다"고 웃었다.
조선대와 4강전에서도 노동건은 빛났다. 전반 31분 정확한 왼발 킥으로 선제골을 도왔고, 수비에선 상대 에이스 이후권을 스피드와 피지컬에서 압도했다.
"이후권 선수의 돌파를 막은 장면이 기억나요. 제가 빨랐다기보다는 그 선수가 치는 걸 예상했던 게 좋은 결과로 이어졌어요. 빠른 발을 가진 선수고, 그 장면에서는 제가 예측한 방향으로 치고 달릴 것 같았어요."
노동건의 첫 대학 소속팀은 예원예대였다. 팀 사정이 좋지 않아 2학년을 마치고 동의대로 편입했다. 동의대에 오기 전까지 노동건은 특별히 내세울 커리어가 없었다. 단 한 번의 우승도 없었고 결승전은커녕 4강에도 올라보지 못했다. 그랬던 그가 올 시즌 대학 최고의 수비수로 거듭났다. 성실함 덕분이다.
"빌드업과 스피드가 좋은 편은 아니었어요. 오히려 동의대에 처음 왔을 때만해도 빌드업이 너무 좋지 않다는 소리를 들었을 정도예요. 저도 많이 느꼈어요. 현대 축구의 센터백은 수비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요. 좋은 빌드업을 위해서 매일 공을 만졌어요. 주력도 늘리고 싶어서 지금도 저녁마다 타이어를 끌고 달리고 있어요. 남들처럼 눈에 띄거나 재능이 있는 선수는 아니지만, 그런 걸 신경 쓰기보다는 제가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하나 더, 타고난 리더십이 노동건의 장점이다. 초중고 모두 주장 완장을 찼고, 대학에서도 그랬다. 보통의 리더십으로는 불가능한 일. 스스로를 "소심하다"고 표현하지만 팀을 위해서라면 언제든 앞에 나서는 노동건이다.
"가끔 팀 운동을 진행하면서 분위기가 어수선해지는 때가 있어요. 그럴 때는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려고 했어요. 그 부분이 가장 어렵더라고요. 제가 소심해서 먼저 다가가는 걸 잘못하는데, 운동장에서 먼저 친해지니까 괜찮더라고요. 제가 잘했다기보다는 선수들이 정말 잘 따라와 줬어요. 제가 몇 마디 안 해도 잘하더라고요, 오히려 팀원들이 저를 생각해주는 느낌이었어요. 정말 고마워요."
노동건은 이제 성인 무대로 향한다. 대학 시절과 비교할 수 없는 경쟁이 기다리고 있다. 노동건은 자신감을 내비치며 유쾌하면서도 진지한 소망을 하나 드러냈다.
"제 이름이 노동건이잖아요. 그래서 주변에서 수원 삼성 골키퍼 노동건 선수 이야기를 많이해요. 이번에 왕중왕전 해설을 하신 분들도 그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저도 의식하고 있어요. 기회가 된다면 골키퍼 노동건 선수와 같은 팀, 아니면 한 경기장에서 뛰어보고 싶어요. 재밌는 장면이 연출 될 것 같아요. 장난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런 장면을 꿈꾸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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