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Q(큐) 김의겸 기자] 쇼트트랙 편파판정 사태를 겪은 한국 국가대표팀 선수들은 다음 일정을 앞두고 완전체로 모여 다시 한 번 결의를 다졌다.
지난 7일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000m 준결승에서 연이은 편향된 판정에 결승 티켓을 뺏긴 뒤 할 말을 잃은 듯 경기장을 빠져나갔던 선수들은 이튿날 재개된 훈련에서 밝은 표정을 지었다.
남자 대표팀 막내 이준서(22·한국체대)는 편파판정에 결승행 티켓을 빼앗기고도 대범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8일 오후 중국 베이징 캐피털 실내경기장에서 공식 훈련을 치르고 믹스드존에서 취재진과 만난 이준서는 "지나간 일이다. 다 잊었다. 되돌릴 수 없다"면서 "다음 경기를 준비하는 데 집중하고자 다 털어버렸다"고 밝혔다.
중국 홈 텃세가 이번 대회 최대 이슈로 떠올랐다고 전하자 이준서는 "여기 와서는 휴대전화를 잘 안 만진다. 전자기기 사용을 최대한 안 하고 있다"며 "실격인 줄 전혀 모르고 다음 경기(결승전)를 준비하려고 했는데, 내 이름이 (비디오판독 대상자로) 호명돼서 놀랐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어제처럼 억울한 판정을 받아 본 적이 있느냐'고 묻자 "(당장) 기억은 나지 않겠지만, 돌이켜 보면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이준서는 9일 예정된 남자 1500m에서 준준결승부터 중국 선수를 상대한다. 쑨룽과 한 조에 묶였다. 그는 "중국 선수와 한 조인 것을 신경 쓰지 않고, 더 깔끔하게 경기하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황대헌(23·강원도청)도 마음을 추스른 상태다. "이런 판정도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며 "(다른 선수들과) 몸이 전혀 닿지 않았다. 경기 초반 중국 선수가 무릎 터치를 해서 (비디오판독으로) 그걸 보는 줄 알았다"고 돌아봤다.
이어 "화가 많이 난다"면서도 "남은 경기가 많으니 잘 먹고 잘 자려고 한다. 응원해 주시는 국민이 많고, 뒤가 든든하다.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다"며 "앞으로 이런 판정이 안 나왔으면 한다. 그러려면 내가 더 깔끔한 경기를 보여드려야 한다"고 힘줬다.
황대헌은 극심한 편파판정에 어떻게 대비할 것이냐는 질문에 농담도 곁들였다. "비밀이다. 여기에 한국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말할 수 없다"는 말로 취재진을 웃게 했다고. 중국 대표팀에 김선태 감독, 한국 출신 러시아인 빅토르 안(안현수) 코치가 있다는 점을 의식한 말이었다.
판정으로 피해를 보진 않았지만 박장혁(24·스포츠토토)도 화가 나기는 마찬가지.
박장혁은 준준결승에서 무리한 플레이를 한 선수와 충돌해 넘어지면서 왼손 손가락이 찢어져 준결승전에 기권했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상처 부위를 보며 '운동을 그만둘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는 그. 이내 마음을 다잡았을 때 동료들이 잇따른 편파판정으로 실격되고 말았다.
박장혁은 "내가 꿈꾸던 무대에 어렵게 올랐는데, 이런 걸 보려고 지금까지 운동했나 하는 회의감이 크게 들었다"며 "쇼트트랙이라는 게 적당한 몸싸움은 있을 수밖에 없지만, 특정 나라에만 유리하게 판정이 내려지는 건 정말 이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결승에서 2위로 들어왔지만 비디오판독을 거쳐 금메달을 따낸 런쯔웨이(중국)는 판정 논란에 "이게 바로 쇼트트랙이고, 이번 판정은 그나마 괜찮은 판정이었다"는 안하무인 발언을 했다. 이에 박장혁은 "(이런 상황에서) 그런 발언은 자제하는 게 맞지 않나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박장혁은 다친 부위를 11바늘 꿰맸다. "깊게 찢어져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행히 근육이나 신경 쪽은 좀 비껴갔다"면서 "그냥 꿰매기만 한 상태여서 스케이트 타는데 솔직히 지장이 있을 것 같지만, 부상 때문에 경기력이 안 나왔다는 핑계는 대고 싶지 않다"고 설명했다.
한국 선수가 한 명도 못 오른 결승전에선 리우 샤오린 샨도르(헝가리)가 편파 판정에 희생됐다.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하고도 반칙을 두 번이나 범했다는 판정 속에 메달을 내줬다. 중국 선수들도 몸을 쓰고 손을 썼지만 판정에 반영되진 않았다.
리우 형제 중 형이 1위, 동생이 4위로 들어왔는데, 금메달 주인공이 바뀌면서 덩달아 동생 리우 샤오앙 산도르가 동메달을 얻게 돼 형제 간 희비가 교차하기도 했다. 헝가리 쇼트트랙 선수가 받은 사상 첫 올림픽 개인전 메달이다.
동생 리우 샤오앙 산도르는 9일 AP통신과 인터뷰에서 "롤러코스터를 탄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형제는 경기 후 라커룸에 앉아 머리를 감싸 쥐고 한동안 말을 나누지 않았다고 한다. 샤오앙 산도르는 형에게 "오늘 결과를 잊어. 뛸 경기가 더 남아 있어. 금메달을 위해 더 싸우자"고 말했다.
판정에 대한 질문에 그는 "모두가 흥분한, 정말 미친 레이스였다고 생각한다. 미는 장면과 추월하는 장면이 자주 나왔다"면서 "치열했고, 여러 충돌이 있었다. 힘든 레이스였다"고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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