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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혁의 '리더십', 진정한 스포츠맨 정신에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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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혁의 '리더십', 진정한 스포츠맨 정신에서 비롯된다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4.02.13 09: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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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치올림픽] 올림픽 정신 보여준 '진정한 올림피언', 수많은 후배들에 귀감

[스포츠Q 박상현 기자] "이규혁 선배에게서 너무나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지난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나란히 금메달 영광을 안은 모태범과 이상화는 약속이나 한 듯 선배 이규혁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지난 12일(한국시간) 아시아 선수로는 처음으로 스피드스케이팅 종목에서 올림픽 2회 연속 우승이라는 업적을 남긴 이상화(25)는 이번에도 이규혁(36 서울시청)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이규혁은 이상화에게 끊임없이 조언하며 10초30대에 불과한 초반 100m 속도를 10초10대까지 끌어올렸다. 오랜 선수 경험에서 비롯된 조언이 바로 이상화의 올림픽 2연패의 밑바탕이 됐다.

또 1992 알베르빌 동계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내며 우리나라 동계올림픽 사상 첫 메달의 주인공이 된 김윤만 역시 "모태범과 이상화, 이승훈이 세계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은 모두 이규혁이 있기에 가능했다"고 인정한다.

▲ 이규혁이 12일 러시아 소치 아들레르 아레나에서 열린 소치동계올림픽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1000m에서 역주하고 있다. 이 경기가 그의 현역생활 마지막 레이스가 됐다. [사진=AP/뉴시스]

그러나 정작 자신은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내지 못했다. 후배들이 시상대에 올라 환호하고 메달을 목에 거는 장면을 지켜봤을 뿐이다. 그럼에도 그는 대표팀 내에서 '형님 리더십'을 보여주며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의 영광을 가져왔다. 비록 그는 올림픽 메달을 가져오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위대한 유산을 남겼다.

그의 리더십에는 어떤 원천이 있을까.

◆ 오랜 선수생활에서 비롯된 '큰 형님' 리더십

겨우 16세밖에 되지 않은 선수가 1994년 릴리함메르 동계올림픽 빙판 위에 섰다. 당시 그는 쟁쟁한 세계 정상급 선수들과 경쟁하며 500m에서 36위, 1000m에서 32위라는 성적을 남겼다.

당시 이 소년이 20년 뒤 올림픽까지도 출전할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10년이면 강산이 바뀌니 20년이면 두번 바뀌는 세월이다. 삐삐와 PC통신이 최신 트렌드였던 때부터 스마트폰과 태블릿PC, 인터넷이 대중문화를 주름잡는 시대까지 올림픽이라는 무대를 관통해 뛴 것이다.

그가 바로 이규혁이다. 당시 16세 고교생이 지금은 불혹을 바라보고 있지만 20년 넘게 철저하게 자기 관리를 하며 올림픽이라는 무대를 여섯 차례나 밟았다.

대표팀의 터줏대감이었기에 그는 모든 선수들의 귀감이 되는 위치에 있었다.

후배들도 그의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곤두세운다. 이상화와 이승훈, 모태범이 대표팀 내에서 가장 의지하고 조언을 얻는 선수가 바로 이규혁이다.

▲ 이규혁이 지난 11일 러시아 소치 아들레르 아레나에서 훈련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무려 여섯 차례나 올림픽에 출전한 이규혁은 자신의 마지막 올림픽이 될 이번 대회를 "즐기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해왔다. [사진=AP/뉴시스]

그렇다고 해서 이규혁이 마냥 후배들에게 엄하기만 한 '큰 형님'은 아니다. 이상화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1등하면 결혼하자"는 농담을 건넬 정도로 후배들과 스스럼없이 지낸다.

이상화, 이승훈, 모태범도 좋은 성적을 올리고 인터뷰를 할 때면 꼭 이규혁에게 감사한 마음을 빼놓지 않고 전한다. 그만큼 이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선수가 이규혁이라는 얘기다. 세계 무대를 호령하는 선수들이지만 이규혁 앞에서는 언제나 순응한다.

이에 대해 제갈성렬 전 대표팀 감독은 "이상화, 이승훈, 모태범 모두 이규혁이 대표팀에서 빙판을 달리는 모습을 봐왔던 '이규혁 키즈'들이다. 이규혁 역시 선수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리더 자격을 갖추고 있다"며 "아무래도 선수들과 함께 호흡하다보니 감독, 코치보다도 더 세심하게 알려주고 대안을 제시해주는 등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선수들이 어려울 때는 옆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켜주는 것도 그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규혁이 훌륭한 지도자가 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제갈 감독은 "사회에 나와 지도자로서 리더십은 조금 다르긴 하지만 대표팀 주장을 오래 하면서 쌓아왔던 수많은 경험과 리더십은 충분히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지도자의 경험은 따로 경험해야 할 부분이긴 하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은 자질이 있다"고 평가한다.

◆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에 남긴 유산

홍명보 대표팀 감독이 선수시절부터 위대한 업적을 쌓으며 형님 리더십을 발휘하고, 박지성이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월드컵 원정 16강이라는 위업을 이끌 수 있었던 것은 그 자신들도 현역 시절부터 끊임없는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몸소 자신들이 모범을 보이지 않는다면 성장하는 후배들에게 본보기를 보이기 어렵다.

▲ 이규혁과 올림픽 여자 쇼트트랙 금메달리스트 출신 김소희가 지난 8일 러시아 소치 아들레르 아레나에서 함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이규혁은 릴리함메르 동계올림픽 당시 16세 고교생으로 첫 출전했고 18세 여고생이었던 김소희는 전이경 등과 함께 같은 대회에서 여자 쇼트트랙을 제패했다. [사진=AP/뉴시스]

그런 점에서 이규혁이 남긴 자취는 후배들이 저절로 따르게 만든다.

이규혁은 올림픽에서는 메달을 따지 못했지만 세계스프린트선수권에서는 무려 네 차례나 제패했다. 지난 1970년 시작한 이 대회에서 네 번이나 우승한 것은 에릭 하이덴(미국, 4회)과 이고르 젤레조프스키(벨라루스, 6회), 제레미 워더스푼(캐나다, 4회)까지 모두 4명에 불과하다.

배기태가 1990년 한국인 최초로 우승한 후 김윤만 역시 1995년 대회 정상에 올라 한국 스피드스케이팅도 세계 정상권과 충분히 겨룰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됐다. 결국 이규혁이 2007년 우승을 차지한 뒤 2008년과 2010년, 2011년에 정상에 오르며 네차례 정상에 올랐다. 올림픽 6회 출전 외에도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에 남긴 '위대한 유산'이다.

제갈 감독은 "올림픽에서만 메달을 획득하지 못한 것뿐이지 이규혁이 걸어온 길 자체가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에 남긴 유산"이라며 "세계선수권에서 네차례 챔피언이 되는 것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충분히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역사의 페이지를 장식할 수 있는 선수"라고 말했다.

전세계에서 스케이팅을 제일 잘한다는 선수들이 모이는 올림픽 무대에 여섯 차례나 출전하고 세계선수권을 네 번이나 제패한 것은 그의 성실성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단 하나의 꿈을 위해 20년 넘게 자신의 사생활을 버렸다. 그리고 이것은 스피드스케이팅을 하는 후배들뿐 아니라 종목을 초월해서 모든 선수들에게 귀감이 됐다.

그의 끊임없는 '무한도전' 정신도 한국 스포츠에게 남긴 큰 유산이다.

◆ 올림픽 바라보는 패러다임 바꾼 올림피언

우리나라처럼 올림픽에 모든 것을 거는 나라도 흔치 않다. 국력이 약했던 시절부터 스포츠는 국위를 선양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올림픽 또는 세계 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게 되면 언제나 라디오와 TV에서는 '고국에 계신 국민 여러분, 기뻐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멘트가 습관처럼 흘러나왔다. 지금은 이렇게 낯간지러운 말은 나오지 않지만 아직도 메달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물론 메달을 따는 것도 중요하다. 스포츠가 상대와 자웅을 겨뤄 실력차에 따른 순위나 성적을 나누는 것이기 때문에 승자와 패자가 나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기면 기쁘고 지면 아쉬운 것이 일반적인 심리다.

▲ 이규혁이 12일 벌어진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1000m 경기를 마친 뒤 환호하는 관중들에게 손을 흔들며 화답하고 있다. 이 경기가 그의 현역 생활 마지막 레이스였다. [사진=AP/뉴시스]

하지만 올림픽이라는 무대는 조금 다르다.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 자체가 영광이다. 올림픽은 모든 선수들의 꿈이자 목표다. 그들의 꿈을 실현하는 곳이 바로 4년마다 열리는 올림픽이다. 그래서 올림픽에 출전해 스포츠맨 정신에 입각하는 선수들을 '올림피언'이라고 부른다.

이런 '꿈의 무대'를 한 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닌, 여섯 차례나 출전했다. 4년전 밴쿠버 동계올림픽이 끝난 뒤에도 그는 현역에서 은퇴하려고 했었다. 당시가 마지막 올림픽이 되는 듯했다. 하지만 그는 포기를 몰랐고 결국 여섯 번이나 올림픽에 출전한 '전설'이 됐다.

제갈 감독은 "금메달 한두번 따는 것보다 올림픽에 6번 나가는 것이 더 힘들다"며 "메달 따는 것, 금메달을 따는 것도 물론 영광이다. 하지만 꿈을 실현하는 무대에서 다섯 번이나 좌절했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여섯 번째 도전한 것 자체가 위대한 업적"이라고 평가한다.

또 그는 꿈과 희망을 주는 올림픽에서 진정한 스포츠맨이기도 했다. 겉으로 드러난 결과는 아쉬움과 실패였지만 그에게 올림픽은 항상 꿈과 희망이자 도전의 연속이었다.

이규혁은 소치 동계올림픽에 출전하면서 편안한 마음으로 대회를 즐기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몸소 한국선수단 기수를 자처했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며 그의 여섯번째 올림픽을 즐겼다.

그리고 이규혁은 올림픽이라고 해서 다른 선수들처럼 위축되거나 경직되지 않는다. 경기를 할 때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걸고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결과가 나왔을 때는 이를 인정하고 왜 그런 성적이 나왔는지 정확하게 판단하곤 했다. 그것이 그가 여섯 차례나 올림픽이라는 무대에 출전할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이처럼 위대한 그이기에 우리나라 선수는 당연하고 해외 선수들 역시 존경해마지 않는다. 경기가 끝난 뒤 그와 경쟁했던 네덜란드 등 다른 나라 선수들도 이규혁에게 존경의 표시를 보냈다.

스피드스케이팅 최강국으로 콧대가 세기로 유명한 네덜란드 선수들 가운데 남자 500m를 제패한 미셸 뮐더는 가장 존경하는 선수로 이규혁을 꼽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 이규혁이 6번째 올림픽에서 마지막 투혼을 불사르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사진은 500m에서 역주하고 있는 이규혁. [사진=뉴시스]

소치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 역시 일일 '베스트 포토'로 이규혁의 레이스 모습이 담긴 사진을 선정했다. 마지막 혼신의 힘을 다하는 그의 모습과 도전정신에 올림픽도 찬사를 보낸 것이다.

그가 보여준 스포츠맨 정신과 올림피언으로서 자세는 모든 이들에게 귀감이 된다. 그가 보여준, 그리고 앞으로 보여줄 리더십은 스피드스케이팅을 하는 후배들뿐 아니라 모든 스포츠 선수 나아가서 모든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기에 충분하다.

tankpark@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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