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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가 변신 이기수 대표, '씨름의 부활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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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가 변신 이기수 대표, '씨름의 부활을 꿈꾼다'
  • 권대순 기자
  • 승인 2014.02.13 1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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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한라장사 출신 이기수 트라스포 엔터테인먼트 대표...씨름 시범단 공연 등 씨름 부활 앞장서

[300자 Tip!] '기술씨름의 대명사' 한라장사에 6회 등극하던 씨름선수 이기수를 지칭한 표현이다. 기술씨름으로 씨름판에 색다른 재미를 선보였던 이기수(47) 대표가 사업가로 변신했다. 스포츠대회나 이벤트 관련 기획 분야에 발을 디딘 그는 최초의 씨름 시범 공연, 씨름장 치어리더 도입 등 여전히 씨름과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스포츠Q 권대순 기자 · 사진 이상민 기자] 씨름의 인기는 예전만 못하다. 강호동, 김영현, 이태현, 최홍만 등이 국민적 인기를 얻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의 향수를 추억하는 사람들에게 '이기수'라는 이름 석자는 씨름판의 감초같은 존재로 기억되고 있을 것이다. MBC 스포츠플러스 씨름해설위원이자 트라스포엔터테인먼트를 운영중인 이기수 대표를 만나봤다.

◆ 화려했던 선수 생활

안다리, 앞무릎치기, 차돌리기, 어깨걸어치기, 뿌려치기에 뒤집기까지... 박광덕, 김경수, 김영현 등 거구들이 씨름판을 휘어잡던 그때, 이기수 대표가 왜소한(?) 체구로 그들을 하나씩 제압할 수 있던 것은 바로 그의 다양하고 화려한 기술 때문이었다.

"같은 한라급(105.0kg 제한)에서도 체중이 적게 나갔다. 92~93kg 정도를 계속 유지했다. 힘에서는 밀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 본능적으로 기술을 익혔던 것같다. 보통 주특기가 있는 선수는 그 기술을 써서 이기는 경우가 80% 정도 된다. 나같은 경우는 10가지 정도 되는 기술을 다양하게 사용했다. 그렇게 우승하니까 주위에서 '기술씨름'이라고 불러줬다."

▲ 1993년 한라장사에 오른 이기수 대표. 그는 기술 씨름으로 통산 6번의 한라장사에 오르며 이름을 떨쳤다. [사진=트라스포엔터테인먼트 제공]

보통의 경우라면 체격차를 극복하기 위해 몸을 불리는게 우선인데, 그는 체중을 유지한채 기술을 늘렸다. 언제부터 기술을 연마한 것일까.

"같은 진주상고·경상대를 졸업한 고 최욱진 선배가 뒤집기의 달인이었다. 내가 뒤집기를 잘한 것도 그 선배 때문이다. 처음에 선배를 보면서 많이 배웠다."

그는 선수시절로 돌아간 듯 흥이나서 말을 이어나갔다.

"항상 큰사람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연구했다. 레슬링, 유도 기술을 접목시키려고 노력했다. 이런 노력이 있었기에 천하장사 출신 선수들 모두 이길 수 있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하루에 예선부터 결승까지 진행되다보니 후반으로 갈수록 힘이 달린다는 것이얶다. 스모처럼 하루에 한경기 했으면 더 좋은 성적이 나올 수 있었을 것같다."

1999년 은퇴한 그는 소속팀 LG에서 코치로 제 2의 인생을 시작했다. 제자 최홍만이 천하장사에 오르는 등 그의 코치 인생은 순탄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2004년 LG 씨름단이 해체되면서 그는 갈길을 잃게된다.

◆ 위기를 기회로, 사업을 시작하다

운동을 하면서도 악기에 관심이 많아 색소폰, 드럼, 기타를 다루고 학창시절 축제 때도 총괄 기획을 도맡아 했다는 이기수 대표. 그는 사업에 뛰어들기로 결심한다.

“그래서 씨름 시범단 운영을 시작했다. 태권도 시범단에서 영감을 많이 얻었다. 태권도의 재미가 겨루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겨루기만 하다보면 좋은 기술이 나오질 못한다. 씨름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외부에서 모래판을 싫어하기 때문에 매트를 깔고 무대에서도 할 수 있는 것에서 착안했다.  시범단이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국제행사에 우리가 나갈 수 있었다. 전통 무용, 비보이, 사물놀이패 등과 함께 움직이며 다양한 공연을 만들었다."

씨름 시범단. 굉장히 생소한 단어다. 씨름에 시범을 보일 것이 있던가? 태권도는 기본적으로 품새라는, 기술을 보여줄 수 있는 장치가 있지만 씨름을 시범보인다는 것은 잘 상상이 가지 않았다.

“씨름에 스토리를 불어 넣었다. 기록을 보면 고려 충숙왕 8년, 임금이 내관들과 씨름 하는걸 너무 좋아해서 위아래가 없었다는 기록이 있다. 난중일기를 보면 이순신 장군도 군사 훈련 시킬때 쌀을 걸고 씨름 시합을 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즉, 임금과 서민이 다 좋아했던 운동이었다. 이런 것들을 씨름에 접목시켰다.”

씨름에 스토리를 넣는다. 좋은 발상이다. 그럼 씨름 선수들이 연기를 하는 것인가.

“그 부분이 가장 어려웠다. 씨름이 되면 연기가 안되고, 연기가 되면 씨름이 안됐다. 이제 주축인 친구들은 시간이 오래 지나 다들 베테랑이 됐다. 관중들과 호흡도 하면서 여유있게 이끌어 간다. 나머지는 대학 갓 졸업한 몸 좋고 얼굴 되는 친구들로 뽑는다. 씨름은 뚱뚱하다는 편견을 없애기 위해서다.”

하지만 단순히 씨름 시범단 운영만으로는 회사에 수익이 나지 않았다. 그는 관련된 영역으로 조금씩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국가에서 장기적으로 예산을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이 아니다보니 사실 시범단만으로는 수익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방면으로 알아보기 시작했다. 치어리더는 연간으로 계약을 맺을 수 있어 안정적인 수입이 가능해 시작했다. 또 씨름이 들어간 기업 체육대회 운영이나 지방 축제 기획·운영을 시작했다.”

그렇게해서 트라스포 엔터테인먼트가 탄생했다. 트라스포(Traspo)란 전통을 의미하는 트레디셔널(Traditional)과 스포츠(Sports)의 합성어로 우리 정서에 맞는 스포츠와 이벤트를 기획한다는 뜻이다.

그는 씨름 해설위원을 맡으면서 좀 더 다양한 기획을 할 수 있었다.

“새로운 도전을 해봤다. 치어리더 씨름대회도 열어보고, 외국인 한가족씨름대회도 기획했다.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이다 보니 연계해서 준비할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이제는 씨름 시범단의 적자를 다른 행사들이 메워주는 식이다.”

▲ 트라스포 엔터테인먼트 직원 및 치어리더들과 함께 포즈를 취한 이기수 대표.

◆ 씨름의 부활을 꿈꾼다

결국 그의 궁극적인 목표는 씨름의 인기 부활이다. 그에게 현 씨름계의 문제점에 대해서 물어봤다.

“지금은 일단 스타 부재가 가장 문제인 것같다. 누가 천하장사인지도 모르는 게 현실이다. 그리고 상금 규모도 너무 적다. 현재 천하장사 상금이 2억원인데, 크게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다. 10억 정도 되야 한다고 생각한다. 1등 하면 현금 10억이라고 하면 씨름 할 맛 나지 않겠는가. 학부모님들도 더 많이 씨름을 시킬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어두운 면이 있으면 밝은 면도 존재하는 법. 그는 씨름계가 조금씩 상황이 나아지고 있다고 했다.

“현재 씨름특별법안이 통과되어 문화체육관광부에 씨름 사무관이 별도로 있다. 씨름 단증화도 추진 중이다. 태권도나 유도는 단증이 있어서 사회 어디를가도 인정을 받는다. 씨름도 단증 같은 인증 제도를 만들면 대중들에게 더 가까이 갈 수 있을 것같다.”

씨름특별법. 씨름인들의 노력으로 2년만에 국회를 통과했다는 이 법안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물었다.

“음력 5월 5일 단오날이 '씨름의 날'로 지정됐다. 그날 씨름 관련 행사들이 열린다. 또 올해 20억원, 내년 50억원 정도의 예산이 확보될 예정이다. 그럼 17개 시도에 팀을 분배해 지역연고의 기초를 다지고 지원금을 나눠줄 수 있을 것같다.”

그의 머리 속에는 씨름을 활성화시킬 아이디어들이 떠다닌다.

“일단 지역 연고제를 정착시켜야 한다. 이전까지 팬들은 어떤 선수를 응원하지 ‘내 팀’ 을 응원하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지역민들의 지지를 받는 팀이 생겨야 된다고 본다. 팀 대항전의 활성화도 필요하다. 팀 단위 응원을 유도해야 한다.”

조용하던 씨름장을 시끄럽게 만든 것도 이기수 대표의 아이디어다. 그는 씨름장과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던 치어리더를 도입, 신나는 씨름판 분위기를 유도하고 있다.

“4년 전 우리가 치어리더를 처음 도입했다. 그전까지는 조용히 계시던 어르신들도 앞에서 응원을 유도하면 잘 따라한다. 그래서 지금 경기장 분위기가 굉장히 발랄하고 생기가 돈다. 선수가 등장할 때 음악도 깔고, 관중석을 모래판 옆까지 설치하는 등 팬들이 좀 더 신나고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제 씨름도 왁자지껄한 느낌이 든다.”

▲ 사업을 하면서도 그는 프로팀 감독으로 복귀하고 싶은 꿈을 잃지 않고 있다.

◆ 내 고향은 씨름

성공적으로 사업을 펼치고 있는 이기수 대표. 그의 포부는 원대했다.

“월드컵이나 올림픽 같은 국제 이벤트를 기획·운영해보고 싶다. 종합 기획을 해보고 싶은 꿈이 있다. 2년 전 농아인아시안게임을 진행하면서 단일규모 10억원이 넘는 행사 처음 운영해봤다. 이제 전국체전 등 점점 규모가 큰 행사에 도전하고 싶다.”

종합기획은 따로 많은 공부를 해야 한다. 큰 규모의 행사는 작은 부분 하나까지 톱니바퀴 돌아가듯 맞아떨어져야하기 때문이다.

“계속 공부를 하고 있다. 매번 올림픽이나 월드컵이 열릴 때 마다 개·폐막식 보면서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는지 연구한다. 이번 소치에서는 불꽃 한발이 경기장 전체를 다 덮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가격이 얼마나 할지, 어떻게 했는지 궁금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씨름인이었다. 다시 씨름판에 돌아가길 희망하고 있었다.

“프로팀 감독을 해보고 싶다. 경기인 출신이라면 누구나 감독을 희망한다. 감독은 선수 출신이 할 수 있는 꽃같은 것이다. 감독으로서 천하장사를 한번 키워내고 싶다. 대리만족이랄까. 하지만 지금은 팀이 없어서 할 수가 없다.”

[취재후기] 씨름판이 좋아져야 사업도 잘되고, 팀도 많이 생겨 다시 감독을 할 수 있다는 이기수 대표. 그 바람대로 우리 전통스포츠 씨름이 부활해 전국에 모래판 열풍이 다시 불길 기대해 본다.

iversoon@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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