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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 눈물의 '라스트댄스', 도쿄올림픽 후반부는 여자배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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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 눈물의 '라스트댄스', 도쿄올림픽 후반부는 여자배구였다
  • 김의겸 기자
  • 승인 2021.08.08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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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김의겸 기자] 2020 도쿄 올림픽에 나선 한국 구기종목 중 가장 큰 감동을 선사한 종목을 꼽자면 단연 배구일 것이다. 대회 마지막 날 45년만의 메달 획득이라는 아름다운 도전에 나섰지만 끝내 무산됐다. 그럼에도 여자배구 국가대표팀을 비난할 이를 찾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스테파노 라바리니(이탈리아) 감독이 이끄는 세계랭킹 12위 대표팀은 8일 도쿄 아리아케 아레나에서 열린 배구 여자 3·4위전에서 세르비아(6위)에 세트스코어 0-3(18-25 15-25 15-25) 완패했다.

이로써 9년 전 2012년 런던 올림픽과 마찬가지로 4위로 마쳤다. 1976년 몬트리올 대회 동메달 이후 처음으로 포디엄에 오르겠다는 각오였다. 김연경(상하이 유베스트) 등 '황금세대'가 마지막으로 함께하는 올림픽이었다. 김연경은 또 다시 눈물을 흘렸지만 그의 '라스트댄스'는 아름다운 4위로 추억될 전망이다. 2016 리우 대회 은메달을 목에 건 세르비아는 이번엔 동메달로 유종의 미를 거뒀다.

한국은 세르비아의 높이를 극복하지 못했다. 키 193㎝ 왼손 아포짓 스파이커(라이트)로 김연경의 절친인 티야나 보스코비치가 1세트에만 14점을 몰아치는 등 33점을 뽑아냈다. 블로커 2명이 붙어도 그 위에서 내리꽂는 강력한 스파이크와 날카로운 궤적의 서브에 휘둘렸다. 세르비아는 2세트부터 보스코비치에 블로커가 몰리자 공격루트를 다변화 해 한국을 공략했다.

한국 여자배구 국가대표팀이 올림픽을 4위로 마쳤다. [사진=FIVB 제공]

비록 입상은 실패했지만 연일 감동을 선사한 여정이었다.

야구, 축구, 골프 등 인기종목은 물론 탁구, 핸드볼, 농구, 럭비까지 모두 기대보다 아쉬운 성적을 거뒀다. 특히 이번 대회 태권도, 유도, 레슬링 등 전통적인 효자종목에서 부진한 데다 대회 후반부에는 메달 행진도 끊겼는데, 배구가 국민들에게 희망을 선사했다. 

지난 리우 올림픽에서 축구, 배구, 핸드볼, 하키 모두 메달을 목에 걸지 못해 44년 만에 단체 구기종목 '노메달'로 마쳤다. 그나마 개인전인 여자골프에서 우승하며 체면을 세웠는데, 이번엔 골프마저 무너졌다. 여자배구는 이번 대회 구기종목 승자로 기억될 것으로 보인다.

브라질(2위)과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0-3 완패한 한국은 케냐(32위), 도미니카공화국(7위), 일본(10위)을 연달아 잡고 조 6개 팀 중 3위로 8강에 올랐다. 이어 준준결승에서 세계 4위 터키를 제압하는 이변을 연출하며 메달 가능성을 높였다. 특히 도미니카공화국, 일본, 터키전까지 5세트까지 치른 경기를 모두 승리로 장식하며 여자배구 묘미를 알렸다.

지난달 31일 한일전은 압권이었다. 승리하면 8강행을 확정짓는 경기였는데, 5세트 12-14까지 밀렸다. 한 점만 내주면 패하는 상황에서 내리 4점을 따내며 듀스 접전 끝에 웃었다. 같은 날 남자축구가 8강에서 멕시코에 완패하고, 야구도 미국에 지면서 고개를 떨궜는데, 지상파 중계 우선순위에서 밀렸던 여자배구가 적지에서 극적인 드라마를 연출해 감동이 극대화됐다.

주장 김연경(오른쪽 첫 번째)을 중심으로 원팀이 돼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 [사진=연합뉴스]

대회 준비과정을 돌아봐도 놀라운 성과가 아닐 수 없다.

2019년 2월 이탈리아와 브라질 리그에서 잔뼈가 굵은 라바리니 감독을 선임하며 올림픽 모드에 돌입했다. 올림픽 세계예선에서 강호 러시아(5위)를 상대로 2세트를 따내고도 믿기 힘든 역전패를 당하며 탈락했지만, 아시아예선에서 김연경의 부상투혼에 힘입어 우승하며 3연속 본선 티켓을 따냈다.

이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대회가 1년 미뤄졌고, 올초 대표팀 주전이던 이재영·다영 쌍둥이 자매가 학교폭력(학폭) 논란 속에 전력에서 이탈했다. 대회 전초전 격인 국제배구연맹(FIVB)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를 앞두고 김희진, 김수지(이상 IBK기업은행), 강소휘(GS칼텍스)마저 부상으로 빠지면서 조직력에 문제가 생겼다.

지난 5월 왼 무릎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은 김희진은 재활기간이 충분치 않아 완전치 않은 몸상태로도 투혼을 발휘했다. 약화된 전력 속에 현실적으로 8강을 목표로 해야 한다는 평가가 따랐다. 하지만 산전수전 다겪은 공수겸장 김연경의 리더십과 라바리니 감독 용병술 속에 기대 이상 성적을 거뒀다.

김연경이 이끄는 여자배구 대표팀이 도쿄 올림픽 4강에 진출했다. [사진=FIVB 제공]
김연경은 마지막 춤을 추며 웃지 못했지만 여전한 월드클래스 기량을 뽐냈다. [사진=FIVB 제공]

김연경은 세르비아전에서도 11점으로 분투했다. 보스코비치(192점)에 이은 득점 2위(136점·공격성공률 44.85%)에 오르고 디그 2위(144개), 리시브효율 9위(57.14%)를 차지하며 최우수선수(MVP)와 득점왕을 석권한 지 9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세계 최고 선수임을 입증했다. FIVB는 터키전 직후 "김연경은 10억 명 중 1명 나올까 말까 한 선수"라며 치켜세우기도 했다.

런던 올림픽 때 김연경이 '몰빵' 속에 혹사했다면 이번엔 조력자들이 힘을 보탰다. 박정아(한국도로공사)는 '클러치 박' 별명답게 해결사 역할을 톡톡히 했고, 미들 블로커(센터) 양효진은 중앙에서 중심을 잡았다. 박정아가 득점 9위(82점), 김희진이 16위(76점)로 뒤를 받쳤다. 박정아는 특히 리시브효율 10위(41.71%)에 랭크돼 리우 올림픽 8강전 악몽을 완전히 지웠다.

백업 없이 자신과의 싸움을 홀로 견뎌낸 리베로 오지영(GS칼텍스)은 디그 1위(162개)에 올랐다. 세터 염혜선(KGC인삼공사)은 세트 성공 3위(223개)로 마쳤다. 유효블로킹으로 수비를 도운 김수지, 원포인트 서버로 활약한 박은진, 게임체인저로 뛴 이소영(이상 KGC인삼공사), 정지윤(현대건설), 안혜진(GS칼텍스), 표승주(IBK기업은행)까지 원팀으로 똘똘 뭉쳤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가장 늦게 공동취재구역(믹스트존)으로 나온 김연경은 인터뷰에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 작은 목소리로 "아쉽다"며 "사실 누구도 우리가 이 자리까지 올라올지 예상하지 못했고, 우리 자신도 이렇게까지 잘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경기에 관해선 후회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김연경은 "후회는 없다"며 대표팀 은퇴를 시사했다. [사진=연합뉴스]
김연경(오른쪽 첫 번째)은 "이번 대회 후회는 없다"며 대표팀 은퇴를 시사했다. [사진=연합뉴스]

김연경은 은퇴를 시사했다. "국가대표 의미는 (감히) 이야기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무거운 것이다. 영광스럽고 자부심을 느꼈다. 사실상 오늘이 국가대표로 뛰는 마지막 경기"라고 전했다. 9년 전 일본과 동메달결정전에서 패한 뒤 코트에선 눈물을 꾹 참았다가 샤워실에서 대성통곡한 그가 이날 다시 눈시울을 붉혔다.

마지막으로 그는 "이번 대회를 통해 후배들이 나아갈 방향을 잡을 수 있었을 것 같다. 열심히 해서 좋은 모습을 이어갔으면 좋겠다. 이번 대회는 많은 관심 속에서 치렀다. 매우 즐겁게 했다. 조금이나마 우리 배구를 알릴 수 있어서 기분 좋다. 꿈 같은 시간을 보낸 거 같다"고 덧붙였다.

가뜩이나 상승세를 타고 있던 여자배구 인기는 대표팀 활약으로 호황을 누릴 것으로 기대된다. 오는 23일부터 경기도 의정부체육관에서 시작되는 리그 전초전 한국배구연맹(KOVO)컵을 향한 관심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라바리니호'가 시상대에 서지 못하면서 한국 선수단은 도쿄 올림픽을 금메달 6개, 은메달 4개, 동메달 10개로 마감했다. 아직 복싱, 수구, 사이클, 핸드볼 등 메달결정전이 남았지만 한국이 살아남은 종목은 없다. 오전에 열린 남자 마라톤에선 심종섭이 49위로 들어오고, 오주한은 부상으로 기권했다. 이대로면 종합 15위로 마칠 공산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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