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22:11 (금)
박훈정 감독 초석 위 배우예술 '귀공자' [인터뷰Q]
상태바
박훈정 감독 초석 위 배우예술 '귀공자' [인터뷰Q]
  • 나혜인 기자
  • 승인 2023.07.05 08: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스포츠Q(큐) 나혜인 기자] 흔히 영화를 감독예술이라고 부르는 것과 달리 연극처럼 배우 면면이 드러나는 배우예술에 가까운 영화가 있다. '귀공자'는 후자에 가깝다. 배우가 먼저 눈길을 사로잡고 박훈정 감독의 스타일리시한 연출력이 그 주변을 감싼다.

배우들이 돋보이는 이유는 캐릭터에 있다. 박훈정 감독이 귀공자를 '캐릭터물'이라고 소개하는 것과 같이 각 인물의 개성이 극을 이끄는 키포인트가 된다.

지난달 21일 개봉한 영화 귀공자는 필리핀 불법 경기장을 전전하며 병든 어머니와 살아가는 복싱 선수 마르코, 잔인한 순간에도 웃음을 잃지 않는 정체불명의 남자 귀공자,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마르코를 집요하게 추격하는 재벌 2세 한이사 등 강렬한 인물들이 얽히고설켜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추격전을 탄생시킨다. 

박훈정 감독. [사진=스튜디오앤뉴 제공]
박훈정 감독. [사진=스튜디오앤뉴 제공]

◆ 배우들의 놀이터 '귀공자'

귀공자는 배우들이 입 모아 이야기할 만큼 자유도가 높은 작품이었다. 박훈정 감독이 초석을 다졌다면 기둥을 올리는 것은 온전히 배우들의 몫이었다.

박훈정 감독은 "연출할 때 일정 폭을 정해놓고 그 폭만 넘어가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연기적인 부분에서 생각했던 부분이 구현이 안 되면 구체적으로 지시하는데 이 배우들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며 "기본적인 방향만 주면 본인들이 만들어 가니까 그런 면에서 믿고 맡길 수 있었다. 이를 통해 더 많은 것들이 만들어졌다"고 전했다.

연기하기 가장 힘든 캐릭터라 예상했던 한이사는 김강우를 통해 기대 이상으로 완성됐다. 그는 "한이사는 흔한 인물이라 어떻게 구현해야 하나 고민했다. 자칫하면 전형적인 캐릭터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연기를 잘하는 배우가 해야 한다는 게 첫 번째였다"며 "김강우 배우는 베테랑이라 연기가 안정적이다. 이번에 함께하며 느낀 것은 안정적인 연기에 많은 변주를 더한다는 거다. 확실히 본인이 캐릭터를 잘 가지고 놀았다"고 칭찬했다.

높은 자유도는 이야기 결을 변화시키기도 했다. 당초 '슬픈열대'라는 제목으로 마르코가 처한 상황을 가슴 아프게 그려냈던 작품은 "더 이상 슬프지 않다"는 이유로 제목과 후반부 촬영 방향이 변경됐다.

박훈정 감독은 "원래는 정말 슬펐다"며 "마르코 입장에 봤을 때 잔혹한 이야기다. 원 시나리오도 엔딩을 밝게 끝내려 했지만 마르코 입장에서 먹먹한 느낌이 있었다. 분위기도 지금보다 무거웠는데 촬영하다 보니 슬프지 않게 됐다"고 설명했다.

박훈정 감독(왼쪽), 김강우. [사진=스튜디오앤뉴 제공]
박훈정 감독(왼쪽), 김강우. [사진=스튜디오앤뉴 제공]

"배우들과 이야기할 때 농담 반으로 '시나리오 상에 코미디가 있어'라고 했거든요. 그러다 이제 '웃겨', '웃긴데', '얘들아 이렇게 웃기려고 한 건 아닌데' 이렇게 된 거예요.(웃음) 한이사 대사 중에 귀공자가 돈을 요구하니까 '오늘 환율로 어떤지 아냐'고 물으면서 '일십백천만...' 하는 장면이 있어요. 원래 있던 대사인데 김강우 배우가 연기로 재미를 더했죠. 그게 자연스럽고 연기적으로 봤을 때도 나쁘지 않아서 그대로 갔어요."

타이틀 변경을 감수하면서 극 분위기를 바꾼 것에 대해서는 "계산에서 벗어났을 때 이 방향이 틀린 방향이라면 연출자로서 멈추고 바로잡아 본래 방향으로 가야 한다. 그런데 귀공자는 이 방향이 어떻게 보면 더 나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부분들이 보이는 거다. 장르에 매일 필요는 없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배우들에게 '제대로 한 번 놀아봅시다'했다"고 이야기했다.

캐릭터를 자유롭게 가지고 놀 수 있는 환경은 고민했던 부분을 해결하기도 했다. 귀공자의 병이 심각한 병이 아니라는 설정을 보여줄지, 관객들이 상상의 나래를 펼치도록 둘지 고민했던 박훈정 감독은 쿠키 영상을 추가하며 귀공자의 뒷이야기를 전했다. 이는 속편 가능성을 열어두는 계기가 됐다.

그는 "첫 시나리오에는 없었고 촬영 과정에서 생겼다. 더 이상 슬프지 않으니까 이왕 안 슬플 거 즐겁게 가고자 했다. 이 캐릭터에 마무리를 지어줘야 할 것 같더라"라고 말했다.

이어 "한이사도 마무리가 지어졌고, 마르코도 마무리가 지어졌는데 귀공자만 사라져 버리면 안 되겠다 싶었다. 이 내용을 쿠키 영상이 아니라 앞에 넣을까 싶기도 했는데, 귀공자가 판을 깔기는 했지만 영화 갈등 축은 마르코와 한이사 둘의 문제니까 쿠키로 뺐다. 이렇게라도 이야기 안에서 정확하게 마무리 지어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박훈정 감독(왼쪽), 강태주. [사진=스튜디오앤뉴 제공]
박훈정 감독(왼쪽), 강태주. [사진=스튜디오앤뉴 제공]

◆ 박훈정 감독표 세 번째 신예

앞서 박훈정 감독은 '마녀' 시리즈를 통해 김다미, 신시아 등 새로운 얼굴을 발견해 냈다. 귀공자 역시 예외는 아녔다. 극을 이끄는 메인 캐릭터 마르코에 또 한 번 신예를 캐스팅한 것. 1980:1로 발탁된 강태주는 높은 경쟁률을 증명하듯 뛰어난 연기력, 스크린에 묻어나는 열정, 호소 깊은 마스크, 수준급 영어 실력 등 빠지는 부분이 없었다.

박훈정 감독은 오디션장에서 만났던 강태주를 떠올리며 "배우로서 가지고 있는 에너지가 많았다. 연기 경력이 짧고 전작이 없다 싶은 신인 배우인데 연기도 안정적으로 깔려있었다. 외국어 실력도 좋다. 영어, 일어 모두 잘한다. 가장 중요한 건 외형적인 이미지가 제가 생각했던 마르코와 가장 잘 맞아떨어졌다"고 설명했다. 

특히 강태주가 지닌 연기 갈증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생각 이상으로 똑똑하고 영리하다. 정말 똘똘하다. 똘똘이지, 똘똘이. 이해력 좋고 배우로서 가진 장점이 정말 많다. 연기 표현에 있어 눈으로 말하는 배우다. 감성도 풍부하다"고 거듭 칭찬을 보냈다.

박훈정 감독은 이번 작품을 통해 '보는 눈'을 재입증한 셈이다. 그러나 연이은 신예 캐스팅이 의도는 아녔다고. 그는 "처음부터 신인을 찾겠다고 생각하고 오디션을 보지는 않았다. 기존에 있던 배우들을 염두에 두는 편"이라며 "하지만 제 마음에 드는 캐릭터와 유사한 이미지를 가진 배우 혹은 이 배우가 역할을 했을 때 어떤 연기를 보여줄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 등에서 아쉬움이 느껴진다면 신인 배우를 찾는다. 꼭 처음부터 '신인 배우가 해야 해' 이런 건 아니다. 항상 배역에 가장 잘 어울리는 배우를 찾으려다 보니까 이렇게 됐다"고 전했다.

박훈정 감독(왼쪽), 김선호. [사진=스튜디오앤뉴 제공]
박훈정 감독(왼쪽), 김선호. [사진=스튜디오앤뉴 제공]

◆ "김선호, 대안 없었다"의 참뜻

귀공자는 한 차례 고비를 겪기도 했다. 김선호가 사생활 논란을 빚으며 하차 기로에 놓였기 때문. 하지만 박훈정 감독은 김선호의 손을 놓지 않았다.

"그때 상황을 아시겠지만, 당시 주변에서 선택을 강요하는 분위기였어요. 선호가 우리 작품을 제일 먼저 하기로 한 상태라 다른 곳에서 우리 결정을 기다리는 상황이었거든요. 그런데 저는 일단 무언가를 할 생각은 없었고, 그러던 와중에 다른 곳에서는 전부 하차했더라고요."

김선호가 가장 높이 날던 때 불거진 논란으로 떠들썩하던 시기였다. 시끄러운 분위기 속에 고민이 따랐지만 결론은 "대안이 있냐"였다. 박훈정 감독은 "저는 이 캐릭터에 김선호 말고 다른 배우가 생각이 안 나는데 누가 있냐. 대안이 없다. 이런 상황이니 계속 가든지 영화를 세우든지 둘 중 하나였다"고 알렸다.

김선호는 이러한 박훈정 감독의 고민을 귀공자 제작보고회에 가서야 알게 됐다. 이에 대해서는 "배우에게 고민하는 티를 낼 필요도 없고 내서도 안 됐다고 생각한다. 본인 상황이 어떻든 간에 멘탈에 타격이 있을 텐데, 같이 가자고 하는 사람이 반신반의하면 더 힘들고 자신도 없을 테니까 당연했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중요했던 것은 김선호의 의사였다. 그는 "그때는 며칠 간격으로 롤러코스터 타듯 이슈가 있었으니까. 본인이 괜찮으면 그냥 가도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의사를 물어보고 촬영에 들어갔다. 작업하는 과정에서도 배우로서 가진 능력이 좋은 친구니까 잘 해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훈정 감독(왼쪽), 김선호. [사진=스튜디오앤뉴 제공]
박훈정 감독(왼쪽), 김선호. [사진=스튜디오앤뉴 제공]

함께 작업하며 발견한 김선호의 장점은 빈 공간을 채우는 능력이었다. 박훈정 감독은 "연극을 오래 해서 기본기가 좋다. 연기 베이스가 좋으니까 빨리빨리 변형도 가능하고. 연출을 하다 보면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빈 공간이 생기기 마련이다. 진짜 좋은 배우는 그것을 다 채운다. 배우의 연기를 보면 빠지거나 부족함이 없다는 생각이 드는 배우가 있는데 그게 김선호"라고 이야기했다.

작품을 통해 쌓은 신뢰 덕일까. 박훈정 감독은 차기작 '폭군'에도 김선호를 택했다. 김선호뿐만 아니라 김강우도 귀공자에 이어 폭군에서 함께한다. 

그는 캐스팅 비화에 대해 "선호와 산책하다가 '다음에 뭐 하실 거냐'고 물어서 말해줬다. '재미있겠는데요. 저는 뭐할까요?', '그래? 그럼 너는 이걸 할까. 시간 되니?', '저 시간 많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농담처럼 주고받다가 대본을 읽어 보라고 줬는데 읽기도 전에 하겠다고 했다"며 "김강우 배우도 비슷하게 '나는 그럼 이 배역' 이런 이야기를 자연스레 나누다가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한편 폭군은 촬영을 마치고 후반 작업을 진행 중이다. 현재 절반 정도 작업을 마친 상황이다.

도전과 열정, 위로와 영감 그리고 스포츠큐(Q)

주요기사
포토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