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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정우성의 누아르학개론 [인터뷰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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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정우성의 누아르학개론 [인터뷰Q]
  • 나혜인 기자
  • 승인 2023.08.31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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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나혜인 기자]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 서비스(OTT)의 등장과 급부상한 숏폼으로 인해 콘텐츠 시장은 포화 상태에 달했다. 대중은 자극적인 콘텐츠를 좇고 콘텐츠 제작자는 니즈에 맞춰 잔인함과 선정성을 내세웠다. 더 많은 피, 더 많은 모자이크 경쟁에 불이 붙었다. 콘텐츠 시장에 범람한 폭력은 일상이 됐다.

영화인들이 이를 손 놓고 바라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관객의 호응을 얻는 동시에 '건강한 콘텐츠'를 제작하는 방법을 계속 고민했다.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시장 정화에 있어 반드시 필요한 고민이었다.

1994년 영화 '구미호'로 데뷔해 30년 가까이 영화에 몸담은 감독 겸 배우 정우성(50)도 이러한 고민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비트(1997)'의 폭발적인 인기 이후 다양한 액션 장르 영화에 참여하며 '남성들의 우상'으로 자리매김했지만 마음 한 켠에는 불편함이 있었다.

정우성. [사진=에이스메이커스무비웍스 제공]
감독 겸 배우 정우성. [사진=에이스메이커스무비웍스 제공]

"감독 정우성이라면 그동안 영화인이 누아르 액션 장르를 대했던 방식을 어떻게 해석할까."

동일한 장르와 소재를 재생산할 기회가 생긴다면 더 나은 방식으로 풀어내 볼 수 있지 않을까. 정우성은 첫 장편 연출작으로 누아르 액션 장르를 택하며 스스로 질문했다.

보호자는 10년 만에 출소해 몰랐던 딸의 존재를 알고 평범하게 살기를 원하는 수혁(정우성 분)과 그를 노리는 이들 사이의 이야기를 그린 액션 영화다. 당당한 아버지가 되기 위해 과거에서 벗어나려는 조폭과 그를 제거하려는 이들의 이야기로, 익히 봐왔던 전개다.

솔직한 심정을 덧붙이자면 보호자는 "배우 정우성으로서 마음에 드는 시나리오가 아니"었다. '감시자들(2013)'을 통해 만난 영화계 후배를 인간 정우성으로서 응원해 주고 싶은 마음에 참여를 결정했다. 당시의 정우성은 "새로운 액션을 만들고 관통시키면 배우로서의 롤은 완성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가졌다.

이후 우연한 계기로 출연과 연출을 동시에 맡으며 시작점으로 돌아갔다. '무엇을 위해 도전하는가'를 고민한 정우성은 "시나리오를 바라보고 고민하는 과정에서 나다운 작업 방식을 발견하고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영화 '보호자' 스틸컷. [사진=에이스메이커스무비웍스 제공]
영화 '보호자' 스틸컷. [사진=에이스메이커스무비웍스 제공]

◆ '착한' 누아르 액션 가능할까?

정우성은 누아르 액션 장르의 클리셰 소재인 한 '아이의 납치'를 사용하면서 어떻게 하면 아이를 독립적인 존재로 자리하게 만들 수 있지 끊임없이 연구했다. 그는 "연약함, 눈물을 자극하는 존재 등으로 대상화된 영화 속 아이들이 불편했다. 그건 아이라는 존재를 소모하는 것이 아닌가. 아이를 지킨다는 마음에서 정당화된 폭력에 정작 아이가 없었다. 이것이 과연 정당한가 싶었다"고 지적했다.

아이가 이야기 전개로 인해 '보호받는 존재'가 될 수는 있어도, '폭력의 정당성'을 위해 아이를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었다. 정우성은 "아이라는 존재 자체를 보여 주려고 했다. 어떠한 아이는 미성숙한 성인보다 더 성숙한 존재다. 인비(류지안 분)를 그렇게 그리려고 했다"고 밝혔다.

아이에게 주체성을 부여한다는 것이 아역 배우가 폭력 상황에 적나라하게 노출된다는 의미는 아녔다. 그는 "아역 배우에게 모든 폭력 상황을 설명할 필요는 없다. 아이답게 표현하는 방식 즉, 내가 이야기하는 것을 류지안스럽게 받아들여야 인비를 완성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인비와 대비되는 인물은 우진(김남길 분)과 성준(김준한 분)으로 그려진다. 객관성을 상실하고 성숙하지 못한 성인으로 그려지는 것. 정우성은 "모든 사람이 물리적 나이를 먹고 시간을 보내며 자신이 어른이 됐다고 생각하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자기감정에 매몰되기도 한다"고 이야기했다.

영화 '보호자' 스틸컷. [사진=에이스메이커스무비웍스 제공]
영화 '보호자' 스틸컷. [사진=에이스메이커스무비웍스 제공]

아이인 인비를 폭력 외부에 놓았다면 폭력 내부에는 성인인 우진이 자리했다. 정우성은 "우진에게 우리 사회가 폭력을 대하는 방식, 일상화된 폭력, 폭력을 놀이처럼 생각하는 모습 등을 투영했다. 극중 우진이 총을 쏘며 '게임 해요'라고 답히는 장면이 있다. 이는 타인에게 가해지는 아픔을 이해하지 못하고 결과에 대한 책임이나 파급력을 고려하지 않는 모습을 나타낸다"며 "폭력의 일상화는 폭력의 결과가 얼마나 잔인한지 무뎌지게 만든다. 이런 행위들이 단순히 악해서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감정, 만족감을 위해서 하는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우진이 의미하는 '폭력의 일상화'는 다시 수혁과 대비된다. 그 누구보다 일상과 폭력이 맞닿아 있던 수혁은 인비를 만나 폭력의 바깥으로 벗어나고자 한다.

정우성은 수혁과 폭력을 격리하기 위해 모든 액션 장면을 은유로 표현했다. 어둠과 차, 커튼 등에 수혁을 숨겼다. 그는 "수혁은 폭력적인 상황에 놓여 있지만 폭력이 부자연스러운 상황에 몰려있다. 평범하게 사랑했던 여자로부터 '좋은 사람이 돼달라'는 미션을 받은 사람이 폭력에 자연스러운 존재로 있으면 안 된다. 그렇기에 몸부림칠 수밖에 없다"며 건물 안에서 벌어진 자동차 액션 신에 대해 "차 안에서 나오지 않고 달려드는 것 또한 자기 육체를 폭력 상황과 떨어트려 놓기 위함이다. 자신의 맹수성을 드러내지 않으려 스스로를 좁은 차 안에 숨긴다"고 설명했다.

이어 "아마 이 부분을 불만족스럽게 보는 분들도 있을 거다. 왜 빌런끼리 싸우다 죽냐는 의문도 가질 테다. 수혁으로 인해 치명적인 손상을 입는 빌런도 없다"며 "인비의 납치 사건 자체가 수혁도, 성준도, 우진도 의도하지 않았던 사건이다. 하지만 납치 사건으로 인해 아이러니한 상황이 계속된다. 이 아이러니 속에 수혁의 '좋은 사람' 미션을 정당화시키려면 그를 어떠한 폭력에도 대입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감독 겸 배우 정우성. [사진=에이스메이커스무비웍스 제공]
감독 겸 배우 정우성. [사진=에이스메이커스무비웍스 제공]

◆ 한국영화 30년, 정우성의 30년

"감독이 적성에 맞는 것 같아요"라고 말하며 크게 웃어 보인 그는 "기회가 와야 또 하겠죠"라는 기약 없는 기다림을 남겼다.

"저는 즐거웠어요. 글은 상상의 초석이 되잖아요. 같은 텍스트를 읽어도 각자 다른 상상을 가져갈 텐데, 제가 상상한 이미지를 구현한다는 건 즐거운 일이죠. 보호자라는 영화에 필요한 부분은 무엇일까 찾아가고, 밝히고, 실체화했을 때 오는 즐거움은 결국 영화의 개성이 돼요."

정우성이 보호자를 통해 가장 많이 받은 찬사는 "매력적이다"였다. 그는 "'매력적'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의 뿌듯함은 이루어 말할 수 없다"고 전했다.

반면 우려의 반응도 있었다. 기존 누아르 문법을 쓰지 않은 '낯선 영화'의 흥행 여부였다. 그는 "대중이라는 단어가 갖고 있는 막연함에 속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고 소신을 밝힌 뒤 "작품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대부분 '나는 너무 좋아하는 스타일의 영화다. 영화가 너무 좋다. 매력 있고 개성 있다. 그런데 대중이 좋아할까?'라고 말씀하시더라. 하지만 그렇게 말씀해 주신 분들이 대중과 동떨어져 있는 것은 아니지 않나"라고 의미를 풀었다.

정우성은 "새로운 도전이 받아들여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 안다"며 "새로운 것이 받아들여지는 순간 오는 찬란함이 있을 거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한국영화는 반짝이는 도전의 연속이었다. 새로움과 함께 찬란한 성공도 왕왕 있었다. 지금은 그러한 찬란함이 있는지 되묻고 싶다"고 진중하게 답했다.

감독 겸 배우 정우성. [사진=에이스메이커스무비웍스 제공]
감독 겸 배우 정우성. [사진=에이스메이커스무비웍스 제공]

"상업적, 대중적 시스템이 갖고 있는 편의성도 있어요. 이것이 산업의 윤택함으로 돌아와 더 많은 영화에 안정적인 촬영 여건을 제공하고 있고요. 하지만 그 안에서 새로운 도전을 얼만큼 허용하고 있는가 질문한다면 또 다른 이야기인 거죠."

한국영화의 현재를 냉철하게 분석한 정우성은 "새로운 도전이 성공하며 일으키는 부가적인 영향력은 엄청나다. 영화인이라면 이러한 찬란함을 고민해 볼 수 있지 않을까"라고 덧붙였다.

정우성은 새로움에서 탄생하는 '찬란함'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1990년대 한국영화는 호황기였다. 위기가 없었다는 말은 거짓말이겠지만 찬란했던 시간이 있었다.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이 사랑받았고 모든 것이 새로웠다. 지금 와서 이런 것들이 더 새로울 게 있냐며 포기할 수도 있지만 영화인들 각자 경력이 다르기 때문에 새로운 시각과 찬란함은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상업 시장 위주로 변질된 한국영화에 안타까움을 자아낸 그는 "지금은 '찬란함'보다 '천만'이 더 많아졌다. 1000만이라는 숫자만 보고 달려가는 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1000만이라는 숫자에서는 더 이상 찬란함이 느껴지지 않는다"며 "물론 천만 영화는 절대 쉽지 않다. 작정하고 만들어서 다 1000만이 되면 다들 작정하고 만들지 않겠나. 어떠한 노력이 때를 만나고 인정받아 만들어지는 결과물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영화의 본질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지는 생각해 봐야 할 거리다. 이는 영화인으로서 스스로가 갖는 고민"이라고 털어놨다.

끝으로 정우성은 "이런 생각은 해마다 조금씩 바뀐다. 상황에 맞게 변화하는 것을 관찰하고 고민한다. 이것이 내가 이 직업을 사랑하는 방식"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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