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스포츠Q 글 박상현·사진 최대성 기자] 20년 전 차상광 코치가 받았던 비난을 지금 고스란히 정성룡이 물려 받았다. 사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부터 시작해 골키퍼에 대한 비난은 끊이지 않고 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의 고(故) 오연교나 1994년 미국 월드컵의 최인영 등 제대로 공을 처리하지 못해 어이없는 실점을 하는 골키퍼가 적지 않았다.
특히 브라질 월드컵에서 1,2차전 골문을 지켰던 정성룡에 대한 따가운 시선이나 날선 비판은 벨기에전에서 선방쇼를 펼친 김승규(23·울산 현대)와 비교되면서 더욱 심하다.
1994년 아시안게임에서의 아픔을 갖고 있는 차상광 코치로서는 동병상련을 느낄만도 하다.
◆ 성장 멈춘 제자 정성룡, 2년만 성남에서 더 키웠더라면?
차상광 코치는 현역에서 은퇴한 뒤 1999년부터 성남 골키퍼 코치로 활약했다. 그러던 중 포항에서 건너온 정성룡을 지도했다.
"정말 안타깝죠. 정성룡을 제가 지도해서 대표선수까지 성장시켰는데. 성장이 더 될 선수인데 그게 안됐던 것 같아요.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성장이 멈춰버렸어요. 남아공 월드컵 때는 경험이 부족해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계속 성장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상황은 나오지 않았겠죠. 비난과 비판은 어쩔 수 없어요. 본인이 이겨내야죠. 기본부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차분하게 한다면 다시 극복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러면서도 차상광 코치는 정성룡에 대한 약점을 콕콕 짚어낸다. 애제자에 대한 '사랑의 매'다.
"사실 성룡이는 어려서부터 골키퍼 전문 훈련을 받지 못한 편이에요. 그러다보니 기본 스텝이 잘 이뤄지지 않습니다. 신체적인 조건은 좋은데 스텝이 떨어지다 보니 크로스 등에서 자꾸 단점이 노출됩니다. 볼 컨트롤이나 패스 같은 것도 이뤄지지 않는 핸디캡도 있죠. 성남에서 이런 부분을 1, 2년 동안 더 키웠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많아요."
그러면서 김승규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지금껏 유일하게 유럽 진출이 이뤄지지 않은 포지션인 골키퍼에서 김승규가 해외 진출을 이뤄낼 수 있는 강력한 후보라는 것이다.
"유럽진출이 가장 유망한 골키퍼라면 역시 승규겠죠. 빠르기도 하고 좋은 선방 능력도 있죠. 승규는 체계적인 골키퍼 훈련을 받은 선수예요. 울산에서도 잘 키워냈고요. 또 한 명 들자면 이범영(25·부산)도 가능성이 있습니다. 신체적인 조건도 뛰어나고 나름 발 기술도 있습니다. 다만 선방 능력이 처지고 기복이 있긴 한데 이런 점만 잘 보완하면 충분히 유럽 진출을 노려볼만 하죠."
◆ 현재 U-16 대표팀 골키퍼 5명이 난형난제
불과 80년대, 90년대만 하더라도 골키퍼라는 포지션은 필드 플레이어가 안 되면 맡는 것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래서 전문적인 훈련도 없었다. 차상광 코치 역시 수비수로 활약하다가 중학교 2학년 들어서야 골키퍼로 전환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골키퍼란 이런 것이라며 지도해주는 코치가 없었다.
"독학했죠. 옆에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해주는 분은 계셨지만 전문적인 골키퍼 코치가 없었던 때였으니까요."
그런 면에서 지금은 상황이 좋다. 어렸을 때부터 체계적인 골키퍼 훈련을 받은 선수들이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U-16 대표팀과 그 또래 선수들만 보더라도 비슷한 실력을 가진 선수들이 5명 있어요. 어떤 선수라도 대표팀에 포함될 수 있는 선수들이죠. 굳이 차이점이라면 국제경기 경험 정도죠. 게다가 체계적인 훈련을 잘 받았기 때문에 성장 가능성도 크죠. 예전과 비교하면 골키퍼 선수층은 몰라보게 두꺼워졌습니다."
그렇다면 수문장이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능력은 뭘까. 현대 축구의 추세를 봤을 때는 민첩성과 순발력, 판단력과 함께 볼 컨트롤 능력도 절대적이라고 말한다.
"이번 브라질 월드컵을 봤을 때 체격이 뛰어난 선수보다는 빠르고 판단력이 좋은 골키퍼가 빛을 봤어요. 특히 브라주카 공인구 특성상 제대로 잡기보다 펀칭으로 멀리 쳐내는 것이 중요했는데 이런 순발력과 판단력이 중요한 거죠. 또 독일이 마누엘 노이어(28·바이에른 뮌헨)의 경우처럼 스위퍼 역할을 할 정도로 발재간이 뛰어난 골키퍼도 있었습니다. 이제는 모든 것을 갖춰야만 골키퍼를 할 수 있습니다."
◆ 외국인 골키퍼 반대, 제대로 키워낼 수 있는 시스템 아쉬워
예전 K리그에는 외국인 골키퍼가 있었다. 외국인 골키퍼는 K리그를 주름잡으며 팀 우승의 원동력이 됐다. 그러다보니 국내 골키퍼가 설 자리를 잃었고 결국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는 골키퍼 포지션에 한해 외국인 선수 영입을 금지시켰다. 1999년 전격적으로 외국인 골키퍼가 사라졌다. 그런데 최근 이 규정을 풀자는 움직임과 여론이 있다.
이에 대해 차상광 코치는 단호하게 반대했다.
"역설적으로 김병지(44·전남) 같은 선수가 오랫동안 현역에서 뛸 수 있는 것은 외국인 골키퍼의 영향으로 후배들의 성장이 더뎠기 때문입니다. 김병지, 최은성(43), 이운재(41) 등과 김용대(35·서울)의 나이를 봤을 때 5~6년이라는 공백이 있죠. 그 기간 동안 외국인 골키퍼를 쓰느라 골키퍼가 육성되지 못한 겁니다. 지금 같은 현상이 공격수 포지션에서도 일어나고 있다고 봐요. 모든 팀들이 외국인 공격수만 데려오다 보니 우리나라에 대형 공격수가 거의 사라졌죠. 중고등학교 때 스트라이커를 하다가도 대학교 때 수비수나 미드필더로 변신하는 경우도 있고요. 이런 시행착오가 있었는데 다시 외국인 골키퍼를 영입하자는 것은 어불성설이죠."
이어 차상광 코치는 골키퍼를 전문적으로 키워낼 수 있는 지도자 육성과 전문 교육 지원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전보다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골키퍼 육성 시스템에 대한 지원이 좀 더 명확해졌으면 좋겠어요. 필드 플레이어 출신 지도자들은 해외에 나가서 공부를 하고 오지만 골키퍼 코치들은 그렇지 못해요. 저도 6년 전에 나갔다 온 뒤 한번도 해외 연수를 받지 못했어요. 골키퍼도 필드 플레이어 포지션처럼 해외 유학 경험을 줬으면 좋겠어요. 6개월, 아니 짧게는 3개월이라도 유럽 등지에서 골키퍼 연수를 받고 오면 기량이 확 늘 수 있거든요. 전세계적으로 골키퍼 포지션의 발전은 계속 이뤄지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차상광 코치는 태국에서 오는 9월 열리는 아시아축구연맹 U-16 선수권을 앞두고 있다. 이 대회에서 4강 안에 들면 내년 FIFA 17세 이하 월드컵에 나갈 수 있다. 현재 대한축구협회 전임 지도자 계약은 내년까지로 되어 있다.
그 이후는 어떻게 될까.
"아직까지 구체적인 계획은 없고 지금 대표팀에만 주력하고 있어요. 하지만 하나 생각한 것은 골키퍼 전문 클리닉입니다. 지도자들 사이에서 골키퍼 학교를 만들자는 얘기는 10년 전부터 있었는데 시기가 잘 안 맞아요. 상주해야 할 지도자도 있어야 하는데 쉽지가 않죠. 지금 한국 축구에 골키퍼 지도자가 13% 밖에 되지 않습니다. 인력도 너무 부족하죠. 골키퍼에 대한 교육 지원 시스템이 확립되면 좀 더 나은 분위기 속에서 골키퍼가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취재후기] 공격수는 한 골을 넣어도 영웅이 된다. 실수 한 번에 역적이 되진 않는다. 하지만 골키퍼는 하나만 막는다고 해서 영웅이 되진 않는다. 그리고 실수 한 번에 역적이 된다. 골키퍼는 물론이고 수비수도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골키퍼와 수비수에 대한 교육 필요성은 더욱 절실하다. 그러나 우리나라 골키퍼 교육 시스템은 제대로 확립됐다고 하기엔 아직 모자란 것이 너무나 많다. 일본이나 심지어 오만 선수도 골키퍼로 유럽 진출을 이뤄내는 상황에서 왜 우리만 아직까지 유럽 명문 리그에서 뛰는 골키퍼가 없는 것인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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