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Q(큐) 박상현 기자]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를 지원하기 위해 삼성이 35억 원을 이미 지원했고 2020년 도쿄 올림픽 메달 획득을 위해 200억 원에 가까운 거액(186억 원)을 투자하기로 했다는 사실이 대한승마협회 내부 보고서를 통해 드러나면서 체육계 관계자들은 큰 허탈감과 절망감에 빠졌다. 더욱이 삼성 등 대기업이 경기 불황을 이유로 줄줄이 스포츠 팀 운영에서 손을 떼거나 예산을 줄이는 터여서 상대적 박탈감은 더 클 수밖에 없다.
특정 선수 1인에게 이처럼 천문학적인 거액을 몰아준다는 것은 국내 스포츠 현장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사례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승마가 전 세계적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끄는 종목이 아닌데다 정유라 씨의 승마 실력 또한 세계적인 수준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져 있어 상품성 차원에서 뒤떨어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대체 왜?”라는 의구심은 더욱 커진다.
국내 현실과 비교하면 그 극명한 차이를 알 수 있다.
스포츠 매니지먼트 업계 관계자 A씨는 "선수들의 훈련비용을 충당하려고 기업 후원을 받기 위해 밤새도록 제안서를 만들고 홍보 담당자를 찾아가 브리핑을 하는 등 얼마나 머리를 싸매는지 모른다"며 "그러나 정유라가 비선실세 최순실 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수백 억을 끌어들일 수 있다니 참담할 뿐이다. 우리 소속 선수도 세계적인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데 정유라 씨에 비하면 '흙수저'에 불과했다"고 안타까운 심정을 드러냈다.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는 여성스포츠 스타인 김연아와 손연재와 비교해 보면 어떨까?
김연아의 경우 한창 현역으로 뛰면서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을 당시 1년 훈련비용이 대략 5억 원 선이라는 것이 업계의 추정이다. 브라이언 오서라는 세계적인 코치의 지도를 받았는데도 그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업계에 따르면 손연재 또한 1년에 4억~5억 원을 훈련비용으로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연아 손연재 둘은 세계적인 수준으로 성장한 뒤에는 항공사 후원으로 업그레이드된 좌석을 이용할 수 있었지만 이전에는 이코노미 좌석으로 이동하는 등 온갖 고생을 해야만 했다.
또 이 훈련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김연아 손연재의 매니지먼트사는 후원기업을 찾아 동분서주했다. 그 결과 KB국민은행 등 여러 기업으로부터 후원금을 받아낼 수 있었지만 이마저도 '공짜'는 없었다. 김연아 손연재의 가슴에는 늘 스폰서 기업의 로고가 달려 있었고 CF 촬영에 적극 나서야 했다. 이러다보니 "훈련할 생각은 하지 않고 돈벌이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는 일부 팬들의 악성 댓글을 받기도 했다. 최고 스타가 되기까지 험난한 과정을 거친 셈이다.
김연아 손연재보다 상대적으로 유명하지 않는 선수의 사정은 더욱 열악하다.
해외 훈련 대신 국내 훈련을 받고 있는 피겨 스케이팅 선수들의 1년 훈련비용은 대략 4000만 원 선으로 알려져 있다. 이마저도 힘겹게 충당하는 '피겨 맘'이 많다는 것이 현장의 증언이다. 김연아의 어머니인 박미희 씨가 딸을 세계적인 피겨스타로 키우기 위해 여기저기서 빚을 져야만 했던 사실은 이미 피겨계에서는 널리 알려진 얘기다.
2008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과 2012 런던 올림픽 은메달을 따낸 '마린보이' 박태환도 베이징 올림픽이 끝난 뒤 SK텔레콤과 스폰서 계약이 종료돼 훈련비 충당에 어려움을 겪은 바 있다.
기량 면과 인지도 면에서 이들에 비해 훨씬 떨어지는 정유라 씨에 대한 삼성의 35억 + 알파 지원은 최근 삼성 스포츠단의 행보를 보더라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삼성그룹은 스포츠 투자의 효율성을 위해 제일기획으로 운영을 넘기면서 예산을 대폭 줄이는가 하면 럭비팀과 테니스팀을 전격 해체했다. 럭비계에서 팀 해체를 말아달라며 읍소했지만 삼성그룹은 귀를 막았다. 테니스팀은 현재 정현 전담팀으로 축소됐다.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도 구단 운영비가 대폭 줄어들면서 전력이 크게 약화돼 9위라는 최악의 성적표를 받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스포츠계 관계자들은 할 말을 잃고 있다.
얼마 전까지 프로축구 모 시민구단에서 일해 왔던 B씨는 "성남FC는 조금 더 많은 금액을 쓰지만 시, 도민 구단의 1년 예산이 40억 후반에서 많게는 70억 원 정도를 쓴다"며 "정유라 한 사람을 위해 35억 원을 덜컥 내놓았다니 놀라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축구계 인사 C씨도 "인천이나 광주 같은 시민구단은 기업 스폰서 유치도 제대로 되지 않고 운영비도 모자라 선수들의 월급도 밀리는 경우가 있다"며 "그런데 정유라 씨는 삼성으로부터 거액의 돈을 아무런 어려움 없이 받았다. 정유라 씨가 SNS에 올린 글대로 그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라고 쓴웃음을 지었다.
삼성 스포츠팬들의 반응도 상당히 냉소적이다.
한 팬은 “세계적인 선수들의 연봉을 비교하면 금방 답이 나온다. 미국 메이저리그사커(MLS)에서 활약하고 있는 디디어 드로그바의 연봉이 바로 35억 원이다. 올 시즌 운영비 축소로 어려운 시즌을 보내야만 했던 K리그 수원 삼성이 35억 원을 받았다면 드로그바 같은 선수 1명 정도는 데려올 수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고 꼬집었다. 또 다른 팬은 “정유라 씨에게 쓰려고 했던 200억 원이라면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맨체스터 유나이티드)도 영입할 수 있다. 즐라탄이 맨유에서 받는 주급이 대략 4억 원 정도다”라고 비꼬았다.
기업 사정이 어려워서 스포츠에 대한 지원을 줄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비선실세 최순실의 딸 정유라에게 어마어마한 특혜를 챙겨주면서 그 밖의 다른 스포츠단 지원에는 인색한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삼성이 반대급부를 위해 비선실세에게 대가성 지원을 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순실의 국정농단, 정유라의 특혜시비 못잖게 체육인들은 삼성의 이중 행태에 큰 실망감을 표하고 있다. 초일류기업을 표방하는 글로벌 기업 삼성과는 어울리지 않는 까닭이다.
한 개그맨은 한때 “일등만 알아주는 더러운 세상”이라고 외친 적이 있다. 삼성의 정유라 지원을 보면 ‘일등보다도 권력만을 알아주는 더러운 세상’이 아닐까 심히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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