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Q(큐) 이세영 기자] “체육특기생들은 다 그런 거 아냐?”
최순실 국정농단 파문으로 대한민국이 큰 충격에 빠진 가운데 그의 딸 정유라(20) 씨로 인해 도매급으로 오해받는 이들이 있다. 다름 아닌 체육특기생이다.
이화여대에 승마 체육특기생으로 입학한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 최순실(60) 씨의 딸 정유라 씨는 대학생활을 하면서 특별대우를 받았다. KBS의 지난 7일 보도에 따르면 정유라 씨는 아파서 쓰러질 정도라고 해 수업에 나오지 않고도 학점을 받고 비속어를 섞어 쓴 과제를 제출해도 오히려 교수의 첨삭까지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부의 사전 조사에서 어떤 교수는 정유라 씨에게 학점을 부여한 근거를 전혀 제시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평균 학점은 1학년 1학기 0.11, 2학년 1학기 휴학, 2학년 1학기 2.27, 2학년 계절학기 3.3으로 계속 올랐다. 특혜 의혹을 받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정유라 씨의 특혜 의혹은 비단 이뿐만이 아니다. 청담고에서 이화여대로 진학하는 과정에서도 여러 가지 의혹이 될 만한 정황이 포착되기도 했다. 정유라 씨가 대학에 진학하는 시점에 이화여대가 승마 특기생 제도를 도입했다는 의심부터 입시 업무 책임을 맡고 있는 입학처장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의혹 등 적지 않다.
불성실한 대학생활을 하고도 높은 학점을 받는 정유라 씨에게 체육 특기생이 아닌 '체육 특권생' 또는 ‘체육 특혜생’이란 냉소적인 수식어가 붙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특히 김연아와 손연재 등 다른 체육특기생과 비교를 해보면 그 차이는 극명히 드러난다.
사실 체육 특기생 제도는 엘리트 체육을 추구하는 한국 사회가 만들어낸 시대적인 산물이다. 어렸을 때부터 운동만 해왔던 학생들에게 대학 입학의 기회를 주기 위해 제도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특기생 본인은 물론 학부모와 학교 모두 '대회 성적만 좋으면 된다'는 인식을 갖고 있어 출결과 학업은 뒤로 밀리기 마련이다. 체육 특기생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경기와 경쟁에 익숙하기 때문에 학교 수업을 받아야 한다는 의무감도 부족한 편이다.
하지만 시대 상황이 바뀌면서 체육특기생의 학사관리는 예전과 달리 점점 엄격해지는 추세다.
다른 대학 체육 특기생들도 정유라 씨처럼 '공주 또는 왕자 대접'을 받을까.
이미 알려진 것처럼 피겨스타 김연아(26)의 사례는 정유라 씨와 정반대다. 김연아는 2009년 피겨 국가대표로 활약할 당시 고려대 체육교육과에 입학했다. 김연아는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각종 국제대회와 전지훈련을 소화하는 등 바쁜 스케줄로 학교에 출석하지 못해 첫 학기에 두 과목에서 F학점을 받았다.
2학기가 되자 김연아는 F학점을 받지 않기 위해 훈련 계획을 제출하며 강의 출석을 대신했다. 수강 신청한 교수들에게 일일이 메일을 보내 출석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양해를 구했고 시험은 자필 과제물로 대신하는 등 남다른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고려대는 체육 특기생이 훈련 및 경기 참가 때문에 출석할 수 없는 경우 반드시 체육위원회에 증빙 서류와 함께 출석 인정 요청서를 제출해 적합 여부를 판단받도록 하고 있다. 체육위원회는 출석 인정이 적합한지 여부를 판단해 해당 교수에게 통보하는 역할만 한다. 이를 실제로 받아들일지는 담당 교수가 결정한다. 만약 출석이 인정되지 않아 수업의 3분의 1을 결석하면 낙제할 수 있도록 돼 있다. 현재 고려대에 재학 중인 유명 골프선수 전인지, 리디아 고 역시 이 규정에 따라 출석을 인정받고 있다.
리듬체조 스타 손연재(22)가 재학 중인 연세대는 어떨까.
연세대는 체육 특기생이 경기에 나서려면 사전에 체육위원장 허가를 받아야 한다. 경기 출전으로 결석하게 되면 사유서를 첨부, 학과목 담당 교수에게 결석계를 제출한다. 경기 참가가 아닌 훈련도 원칙적으로 오전 학교 수업을 끝내고 소화해야 한다는 점도 명문화했다.
내년 미국프로골프(LPGA) 투어 진출을 선언한 박성현(23)이 다니는 한국외국어대도 경기에 출전하거나 총장이 특별히 인정하는 경우 유고결석(불가피한 사유로 인한 결석) 또는 유고결시로 인정받는 규정을 마련해 놨다. 하지만 외대는 유고결석을 포함해 매 학기 총 수업일수의 4분의 1을 초과해 결석할 수 없다는 규정을 마련, 이를 무한정 사용할 수 없도록 했다.
동국대도 학사관리 규정이 엄격하다. 동국대는 체육 및 연기특기자가 경기나 훈련, 공연, 촬영 등으로 수업을 듣지 못하면 특별시험, 과제로 대체하거나 야간 강의를 듣도록 하고 있다.
중앙대는 특기자 전형으로 입학한 연예인과 관련된 규정이 있다. 학교 관계자에 따르면 중앙대는 연예인의 활동 기간을 출석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밖에 체육특기생이 공식 일정이 있더라도 출석을 인정해주지 않는 등 일반 학생들과 똑같이 대우하는 대학도 있다. 경희대는 대회에 출전하더라도 출석 인정을 해주지 않고 일반 학생과 똑같이 수업을 듣고 시험을 치르도록 한다.
이처럼 다른 체육특기생의 철저한 학사관리 시스템을 보면 정유라 씨가 왜 특혜를 받았는지 잘 알 수 있다. 더불어 정유라 씨 특혜 논란으로 “체육 특기생은 모두 그럴 것”이라는 일반인의 오해에 다른 체육특기생들이 억울해 하는 것도 십분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방상아 피겨 해설위원은 "지금은 대학도 엄격하게 학사관리를 하기 때문에 선수들도 공부를 하지 않고서는 졸업하기 힘들다. 학점을 따려면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며 "하지만 정유라 씨 사태 때문에 체육 특기생 제도가 축소되거나 없어져 대한민국 엘리트 체육 시스템의 구조가 흔들릴까봐 걱정하는 이들이 많다"고 우려감을 나타냈다.
실제로 각 대학에서는 체육 특기생을 줄이려는 움직임이 감지된다. 설상가상으로 대학마다 등록금 동결과 구조조정 중이서 체육 특기생을 줄일 수밖에 없다는 분위기다.
한양대 관계자는 "이미 2013년부터 줄기 시작했다. 50명에서 줄기 시작해 내년 신입생은 38명"이라며 "아무래도 예산을 줄이는 과정에서 소모성인 운동부에서 줄이고 있다. 우리뿐 아니라 다른 대학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성균관대 관계자는 "아무래도 정유라 씨 사건 때문에 자세한 내용을 말하기는 조심스럽다. 수시모집 때 자세한 설명을 해놓고 있다"고 말을 아꼈다. 연세대 측도 "2017년도 신입생은 이미 뽑은 상태다. 특별히 줄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인원수 감소 여부는 알 수가 없다"고 밝혔다.
‘최순실 게이트’와 ‘정유라 특혜시비’로 대한민국 체육계가 큰 화염에 휩싸인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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