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도=스포츠Q(큐) 민기홍 기자] “재.밌.는.야.구.하.겠.습.니.다.”
30여 분에 걸친 기자회견이 끝나자 통역이 취재진을 향해 “감독님이 마지막으로 할말이 있다”고 전했다. SK 와이번스의 제6대 사령탑 트레이 힐만 감독은 또박또박 한국말로 각오를 다졌다.
힐만 감독은 11일 인천 송도 컨벤시아에서 열린 감독 이·취임식에 참가, 자신이 생각하는 와이번스와 코칭 철학, 향후 운영계획 등을 밝혔다. 외국인 감독 체제 하에 지난 4년간 구겨진 자존심을 회복하려는 SK다.
강렬한 붉은색 넥타이를 맨 힐만 감독은 류준열 대표이사로부터 88번 유니폼을 받아들고 미소를 지었다. 그는 “김용희 감독님이 쓰던 번호를 그대로 물려받게 돼 기쁘다”며 “일본에서 쓰던 번호라 편안함을 느낀다”고 웃었다.
힐만 감독이 강조한 걸 풀이하면 존중, 융합, 재미다.
◆ 존중, 신뢰, 시스템
‘리스펙트’란 단어가 회견 내내 가장 많이 나왔다. 힐만 감독은 “선수들, 코칭스태프들과 신뢰를 쌓는 걸 우선으로 생각한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단어가 존중”이라며 “한국과 코칭스태프를 존중한다. 신뢰 관계에 기반을 두고 지도하겠다”고 약속했다.
한미일 프로야구에서 모두 지휘봉을 잡은 최초의 사령탑답게 힐만 감독은 “일본에서 배운 게 있다. 미국에 옮겨갔을 때도 좋은 영향을 준 부분”이라며 “당신의 나라의 야구와 문화를 존중하겠다는 자세”라고 강조했다.
물러나는 김용희 감독, 프런트와 코칭스태프, 함께 부임한 데이브 존 투수코치까지 수차례 칭찬한 힐만 감독이다. 그는 “나는 야구장에 오래 있는 걸 좋아한다. 열심히 일한다”며 “오랜 기간 필드에 있으면서 관계를 쌓겠다”고 다짐했다.
자신을 낮추면서 주변인들의 기를 살렸다. 힐만 감독은 “해외에서 경험이 운 좋게 모두 성공을 거뒀다. 제가 감독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올바른 시스템 속에서 선수, 코칭스태프, 프런트가 잘 했기에 가능했다”며 “좋은 계획, 열심히 일하는 코치가 있다면 어떤 것도 가능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장타력 유지, 유연하게 스몰볼 가미
SK는 2016년 두산 베어스에 이어 팀 홈런 2위에 자리했다. 21경기 연속 팀 홈런은 35년 KBO리그 역사상 최장 기록이다. 좌우 95m, 중앙 120m의 홈그라운드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 최적화한 라인업으로 재미를 봤다.
힐만 감독은 “이미 각종 기록과 통계 자료를 훑어봤다. 공격에서 파워가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며 “팀에 40홈런을 때린 타자(최정)가 라인업에 있다. 내년에도 지속되길 바란다. 2017년에도 장타율을 가져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디테일이다. SK는 장타에만 지나치게 의존해 승부처에서 약했다. 강한 투수를 만나면 무너진 이유다. 힐만 감독은 “가끔씩 커뮤니케이션이 안된 부분이 있다고 들었다”며 “SK는 스피드가 장점이 아니다. 말하기는 쉽지만 실천은 어렵다. 창의적인 방법을 나름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빅볼 야구의 상징 미국 출신이지만 상황에 따라 번트도 활용하겠다는 각오다. 힐만 감독은 “번트를 좋아하고 싫어한다의 개념은 없다”며 “에이스를 상대한다면 번트 작전을 쓸 용의도 있다”고 전의를 다졌다.
◆ 재미, 팬서비스, 세이버메트릭스
재미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힐만 감독은 니혼햄 파이터스 재임 시절 적극적인 서비스로 팬 베이스가 약했던 훗카이도에 니혼햄이 정착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SK 관계자는 힐만 감독과 계약한 배경으로 “힐만 감독이 연고지인 인천에 새바람을 불어넣기 위해 팬들도 자주 만나고 다양한 마케팅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싶다는 의견을 밝힌 데 높은 점수를 줬다”고 전했다.
힐만 감독은 연고지 인천에 대해 “원하는 만큼 지금은 다 알지는 못한다. 공부를 조금 했다”며 “연고지에 대해서는 늘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성공적인 게임을 위해서는 늘 공부해야 한다. 신경을 더 많이 쓰겠다”고 약속했다.
통계와 전통적인 방식을 적절히 혼용해 새바람을 일으키겠다는 각오도 밝혔다. 힐만 감독은 “구단의 세이버메트리션들과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도움이 될 만한 자료를 챙겼다”며 “경험과 통계의 밸런스를 유지해 조화를 이루겠다”고 약속했다.
힐만 감독은 “SK 와이번스의 새 감독이 돼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앞으로 많은 것을 기대하고 있다”며 “선수들이 보다 경기를 즐기면서 디테일해지길 바란다. 재밌는 야구를 하겠다"고 취임식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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