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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피고인' 엄기준 악역 통해 본 성장기 가정폭력과 범죄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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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피고인' 엄기준 악역 통해 본 성장기 가정폭력과 범죄 심리학
  • 류수근 기자
  • 승인 2017.02.12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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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류수근 기자] 범죄를 이해하는데 있어 심리학자들은 범죄의 원인과 범죄자의 범행 동기, 혹은 범죄 행동을 설명하기 위해 다양한 이론을 개발하고 실증 연구를 수행해 왔다. 사회학습이론으로 유명한 캐나다의 심리학자 앨버트 반두라 교수는 인간의 공격성은 학습되는 것으로, 주로 가족이나 주변 환경, 대중매체를 통하여 폭력적으로 행동하는 타인을 관찰하는 경우 '행동 모델링'의 과정을 통해 공격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고 분석했다.

반두라 교수는 1961년과 1965년에 행한 '보보인형 실험'을 통해, 아동이 '모방'을 통해 많은 것을 '관찰학습' 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후 미국의 심리학자 로웰 후스만의 연구 결과, 아동기에 폭력적인 장면에 많이 노출된 사람은 성인기가 되어 폭력행동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지난달 23일부터 월·화요일 밤에 시청자들의 선악 관념을 자극하는 범죄심리추리 스타일의 이색 드라마가 찾아와 높은 관심을 모으고 있다. 바로 지성·엄기준·권유리·오창석이 팽팽한 긴장감을 자아내고 있는 SBS 월화드라마 '피고인'(극본 최수진, 최창환·연출 조영광)이다.

엄기준 [사진= SBS 월화드라마 '피고인' 방송 화면 캡처]

'피고인'은 딸과 아내를 죽인 누명을 쓰고 사형수가 된 검사 박정우(지성 분)가 잃어 버린 4개월의 시간을 기억해 내기 위해 벌이는 투쟁과, 그룹 부사장인 '악인' 차민호(엄기준 분)를 상대로 벌이는 복수 스토리를 그리고 있다.

'피고인'은 지성과 엄기준의 선악 대립이 중심 스토리다. 하루아침에 사랑했던 아내와 딸을 죽인 잔혹한 살인자로 내몰렸지만 사건 당시의 상황을 기억하지 못해 어둡고 좁은 감방 안에서 몸서리치는 지성의 애절하고 리얼한 몰입 연기와, 형을 죽인 뒤 형 행세를 하며 남의 목숨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냉혈한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엄기준의 소름끼치는 눈빛 연기로 시청자들의 연민과 분노를 동시에 자아내고 있다.

'피고인'에는 범죄심리학의 측면에서 눈여겨 볼 만한 캐릭터가 있다. 바로 엄기준이 연기하고 있는 차민호 역이다.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으로 그려지고 있는 차민호는 누군가를 응시하는 섬뜩한 시선 하나만으로도 악인의 강한 체취를 풍긴다. 엄기준의 강렬하고 섬세한 눈빛 연기는 차민호의 이중적이고 음울한 내면의 세계를 실제처럼 표현하고 있다.

차민호를 냉혈한으로 만든 배경은 무엇일까? 차민호의 도를 넘는 악행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그가 가정폭력 피해자였다는 것이 밝혀졌다. 지난 6일 방송된 ‘피고인’에서는 차선호를 죽이고 대신 삶을 살아가고 있는 차민호의 성장과정이 그려졌다. 그룹회장인 아버지(장광 분)로부터 폭력과 차별을 받고 자랐고, 사랑하는 여인 나연희(엄현경 분)가 형 선호(엄기준 1인2역)와 정략결혼하는 광경을 그저 곁에서 바라만 봐야 했다.

'피고인'의 인물 소개란에는 악인이 된 차민호의 성장 배경에 대한 설명이 있다. 어린 차민호는 무서운 게 많은 겁쟁이였다. 아버지가 "이 놈!"하며 눈만 크게 떠도 울음부터 터뜨렸고 매라도 들면 숨기 바빴다. 그때마다 그를 달래준 것은 쌍둥이 형 선호였다. '형이랑 나랑 똑같은데 아버지는 왜 형만 아끼는 거야?', 극중 엄기준은 연희와 형이 정략결혼한 이후 급속도로 엇나가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부터 켜켜이 쌓여온 아버지에 대한 반감과 형에 대한 박탈감이, 나약했던 겁쟁이를 무감각한 냉혈한으로 바꿔놓은 것이다. 엄기준은 이같은 성격의 차민호를 소름끼칠 정도로 사실적으로 표출하며 극에 리얼리티를 부여하고 있다.

차민호가 악행을 저지르기까지는 아버지로부터의 차별과 폭행 속에서 자라온 성장 배경이 자리했다. 소외와 폭력 속에서 자라온 차민호는 범죄를 들키지 않기 위해 또 다른 범죄를 서슴지 않고 저지른다. 안타깝게 여길 여지조차 주지 않는 극악함은 머리칼이 곤두서는 전율을 느끼게 한다.

지성 [사진= SBS월화드라마 '피고인' 방송 화면 캡처]

범죄의 사회학적 이론은 행동의 원인을 개인의 내적 특성에서 찾는 심리학적 이론과는 달리, 해체된 가정이나 가난, 계층적 갈등과 같은 사회적 요소들에서 범죄의 원인을 찾는다. 사회학적 이론은, 역으로 사람이 왜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가에 주목하도록 만든다. 캘리포니아 대학의 사회학자 트래비스 허시는 가족이나 이웃 등 사회와 맺고 있는 다양한 유대 관계가 개인이 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막는다고 보았다.

'반사회적 인격장애'인 사이코패스의 뇌와 관련해 연구했던 미국의 뇌 과학자의 고백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제임스 팰런이라는 미국 어바린 의대 교수는 '괴물의 심연'이라는 저서에서, 알고 보니 자신은 매우 유명한 살인자 집안의 후손이었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팰런 교수가 사이코패스의 뇌를 가졌지만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훌륭한 뇌과학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행복한 어린 시절' 때문이었다. 성장과정의 즐겁고 안온했던 가정환경이 사이코패스의 기질을 오히려 훌륭한 과학자의 연구능력으로 바꿔놓았던 것이다. 성장과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다.  

'피고인'은 심도 높은 성격연기를 펼치는 지성과 엄기준이라는 두 배우를 통해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도 억울하게 살인자로 몰린 '박정우'와, 가정 폭력과 소외감이 키운 악인 '차민호'를 극명하게 대조시키며 팽팽한 긴장감과 심리적 혼돈을 주고 있다.

이와 동시에, 두 캐릭터는 우리의 가정과 주변환경 속에서 지금도 일어나고 있을지 모를 소외와 가정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결국 '피고인'은 우리의 작은 배려와 이해 그리고 사랑이, 서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밝은 사회를 만드는 밑거름이라는 사실을 선악의 양극에 선 지성과 엄기준의 연기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피고인'이 남다르게 다가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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