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Q(큐) 김한석 스포츠국장] 한국 야구가 2회 연속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1라운드에서 탈락한 뒤 여러 진단들이 쏟아지고 있다. 국제적 흐름에 비껴나 있는 스트라이크존과 기형적인 타고투저, 가벼워진 태극마크의 무게, 정체된 스타 발굴 등의 문제들이 제기되면서 야구계의 통렬한 자성을 요구하고 있다. 35년 만에 안방에서 치러진 국가대표팀 결전에서 맞은 '고척 참사'를 방송해설한 메이저리그 124승 투수 박찬호의 입에서 “이게 한국 야구 수준인 것 같다”는 탄식이 나올 때 한국 야구의 민낯이 여실히 드러난 듯했다.
이번 참사로 가장 심각하게 드러난 문제점은 세대교체다. 실패 속에서도 미래를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 28명 로스터의 평균나이는 30.9세. 금세기 최고령 대표팀이다. 2008 베이징 올림픽 우승멤버의 26.7세, 2015 프리미어12 원년 우승멤버의 27.8세와 비교했을 때 너무도 역동감이 떨어졌다. 한국 대표팀에선 9명에 그친 20대 젊은피가 일본 대표팀에는 20명이나 포진해 대조를 보였다.
칠순의 김인식 감독은 대표팀 사령탑 15년을 쓸쓸히 마감하면서 "류현진 김광현 이후 10년 동안 투수가 안 나오고 있다. 젊은 선수들이 성장해야 한다. 이제 새로 시작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지극히 자연스럽게 역설한 세대교체다. 전임감독제 도입으로 새출발해야 한다는 방법론도 빼놓지 않았다. "이제 매년 대표팀 경기가 있지 않는가. 재야에 능력을 갖춘 젊은 감독들이 전임감독을 맡아 젊은 선수들을 뽑고 국제대회를 치러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떠밀려 맡는 사령탑은 자신으로서 끝나길 바라는 고언이다. 프로감독들이 거부하는 '독이 든 성배'를 언제까지 대회마다 이 감독에게 강권하고, 저 감독에게 호소할 것인가.
그동안 대표팀 전임감독 논의는 꾸준히 제기돼 왔다. 하지만 효용론에서 여러 논리에 밀려 채택되지 못했다. 국가대표팀 경기가 적어서, 전임감독 대우에 따른 부담이 상대적으로 커서, 프로팀의 유혹에 중도 하차해버릴 우려도 있어서 등등. 결국 투자 대비 효과가 떨어진다는 반대논리가 지배해왔다.
이제는 전임감독제로 시스템의 변화를 꾀해야 한다. 그동안 기적의 빅이닝, 투혼의 역전극으로 버텨온 한국 야구의 한계가 WBC 2연속 실패로 여지없이 드러난 터다. 좌절을 딛고 일어서려는 새출발에는 뚜렷한 실체가 있어야 한다. 변화의 시기도 좋다. 오는 11월부터도 한국 일본 대만의 24세 이하 유망주들이 참가하는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이 열린다. 내년 자카르타 아시안게임, 2019년 프리미어12, 2020년 도쿄 올림픽, 2021년 WBC 등이 잇따르기에 전임감독이 큰 그림을 그리면서 세대교체의 줄기를 잡아나가기에는 좋은 여건이다.
이미 일본은 실패를 통해 변화를 모색했다. 2013년 WBC 결승행 실패로 3연속 우승이 좌절되자 뼈저린 반성을 통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선택했다. 일본프로야구기구(NPB) 12개 구단이 출자해 2014년 11월 'NPB기업'을 설립했다. 성인대표팀은 물론 연령대별, 여자, 사회인 대표팀을 상설화해 '사무라이 재팬'으로 통합 관리하는 주식회사다. 프로와 아마 야구가 결속해서 모든 세대의 세계 톱 등극을 통해 일본에 활력을 불어넣자는 기치를 내걸었다. 전임감독제를 시행해 은퇴 후 방송해설을 하던 40대의 고쿠보 히로키에게 세대교체 설계 임무를 맡겼다. NPB기업은 아시아를 넘어 메이저리그 올스타팀, 유럽팀, 중남미팀 등을 초청해 리그 시즌 전후에 공식경기를 마련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한국도 일본처럼 통합조직을 만들지는 못하더라도 전임감독제만큼은 확실한 의지를 갖고 도입해야 더 이상 기적에 의지하는 요행을 줄여나갈 수 있다. 전임감독의 역할도 대표팀 외에 상비군을 아우르고 아마추어팀의 유망주 육성 실태를 점검하면서 장기적으로 스타를 발굴하는 방향으로 넓히는 게 중요하다. 여기에는 KBO와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의 공조가 절대적이다.
전임감독이 단순히 대표급 선수들만 시즌 내내 보러 다니는데 그쳐서는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아마추어 유망주 투수들이 투구수 제한 편법을 강요받으며 동계시즌에도 혹사되면서 조기에 수술대에 오르고, 2004년 나무배트로 바뀐 뒤 대형타자들이 나오지 않고, 중학생 레벨의 병목으로 수급 불균형이 발생하는 등의 현실을 현장에서 확인해 프로, 아마 기술위원회와 장기적인 개선 방향을 논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퓨처스를 포함한 프로팀, 연령대별 대표팀 지도자들과도 정기적인 소통을 통해 한국 야구가 어떤 지향점을 갖고 스타자원을 발굴해 육성해야 하는 지를 집중 연구하는 역할도 필요하다.
김인식 감독의 당부처럼 꼭 젊다는 조건으로 선을 그을 필요는 없다. 일본 전임감독 고쿠보는 첫 실험작이었다. 2015 프리미어12에서 한국에 역전 우승을 내주는 빌미였던 투수 교체 타이밍 실책 등 코치 경험도 없이 스타성을 인정받아 전임 지휘봉을 잡은 데 따른 수업료가 비싼 편이었다. 그런 시행착오에도 세대교체의 기조를 살리기 위해 1차 계약기간을 지켜준 일본 프로-아마협의회는 역대 대표팀 감독들을 선정위원으로 끌어 모아 다음달 2020 도쿄 올림픽을 겨냥한 2기 전임감독 체제로 개편할 예정이다.
만약 전임감독제 도입에 따른 비용 문제가 여전히 걱정된다면 야구산업의 파이를 키우는 차원에서 바라보자. 일본이 왜 각급 대표팀을 '사무라이 재팬'으로 통합하고 그것을 총괄하는 조직을 주식회사로 출범시켰을까. 통합마케팅으로 확대하면 야구시장을 충분히 넓힐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한국 축구도 1990 월드컵에서 3전 전패를 당한 데 이어 1992 아시안컵 예선에 대표 3진을 내보냈다가 탈락하고 일본 대표팀이 1호 외국인 감독을 영입하자 큰 위기의식을 느껴 1992년 전임감독제를 전격 채택했다. 시행착오는 많았지만 어느덧 수백억원의 스폰서를 확보해 대표팀 마케팅의 수혜를 보고 있다. 농구, 배구에서도 부족한 예산으로 우여곡절은 많지만 전임감독제를 유지하려고 애쓰고 있는 이유는 리그의 마케팅 운명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 야구도 전임감독제로 블루오션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KBO리그는 2004년 평균관중이 역대 최저인 4383명으로 추락할 정도로 2000년대 초반 암흑기를 거쳤다. 그러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첫 우승을 차지하면서 13년 만에 평균관중 1만명을 회복하고 2009년 WBC 준우승 효과로 상승세를 틀어쥘 수 있었다. 하지만 2013년 WBC 1라운드에서 탈락하자 역대 평균관중 최고점(1만3451명)을 찍었던 2012년에 비해 16%가 하락하는 후유증을 겪어야 했다. 2015년 시즌이 끝난 뒤 프리미어12를 석권하자 지난해 평균관중은 13% 회복됐다. 이것처럼 대표팀 효과가 확실하게 드러나는 지표도 없을 듯하다.
국제대회가 늘어나면서 한국 야구는 밖에서의 선전으로 인기회복의 전기를 마련했다. 그렇지만 9구단, 10구단 시대가 열리고도 관중은 오르락내리락하며 정체돼 있는 KBO리그다. 리그로 공급되는 스타자원들이 줄어드는 한계가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무대에서도 보여줄 콘텐츠가 더욱 빈곤해진다면 어느 순간 흑역사로 되돌아갈 수 있다. 그렇기에 이번 좌절을 전환점 삼아 새로운 파이를 찾아야 한다.
전임감독이라는 새 시스템의 강점에 주목해보자. 한국 야구의 피돌기가 어디서 막혀 있는지 진단하고 세대교체의 중심을 잡는다면 리그를 대표할 만한 스타자원들도 늘어날 수 된다. 젊은피들은 태극마크를 달고 정례화된 경기를 거듭하면서 자긍심과 책임감을 높일 수 있고, 팬들도 미래를 확인하며 그 방향성을 응원할 수 있다. 전임감독이 한국 야구의 비전을 지속적으로 보여준다면 충분히 새로운 팬덤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본다.
나이키의 경쟁자가 닌텐도였듯이 국내 프로야구의 라이벌은 다른 프로스포츠가 아니다. 오는 31일 KBO리그가 개막해 뚜껑을 열어본다면 포켓몬일 수도 있고 대선일 수도 있다. 그래서 장기적으로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산업적인 관점이 필요하다. 새로운 파이를 찾아서 늘려야 1000만 관중시대를 앞당길 수 있다. 야구대표팀 전임감독제의 낡은 효용성 논리에 갇혀서는 결코 새로운 확장 기회를 찾을 수 없다.
도전과 열정, 위로와 영감 그리고 스포츠큐(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