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Q(큐) 류수근 기자] ‘김밥’을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봤다. ‘김 위에 밥을 펴 놓고 여러 가지 반찬으로 소를 박아 둘둘 말아 싸서 썰어 먹는 음식’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김밥은 식사 대용이지만 국민 간식이라는 이미지를 더불어 가지고 있다. 사전에서도 보듯이 일반적으로는 복잡하지 않은 레시피를 가진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지난 12일 방송된 SBS '생활의 달인‘ 614회는 이같은 김밥에 대한 상식이 얼마나 우리의 편견일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줬다.
이날 ‘생활의 달인’에서는 일식사대문파 임홍식과 강희재 달인이 잠행단으로 나서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맛집 달인을 쫓는 ‘은둔식달’ 코너에서 김밥집 세 곳을 소개했다.
서울 용산구 에 자리한 ‘묵참 김밥의 달인’과 뉴욕타임스에 보도됐을 정도로 국적과 종교 불문하고 사랑받는 이태원동의 ‘고추냉이 김밥의 달인’, 대학가 5대 김밥 중 하나로 불리는 성북구의 ‘초밥물 김밥의 달인’이었다. 한마디로 세 달인의 김밥은 ‘마성의 김밥’으로 불릴 만했다.
특히, 세 김밥집을 관통하는 달인들의 ‘장인다운’ 요리철학은 프로그램을 본 뒤에도 오래도록 여운을 남길 만큼 감명깊었다. ‘김밥 레시피는 간단하다’는 우리의 일반적인 생각을 깡그리 바꿔놓았다. 여타 맛집 소개 프로그램과 달리 요리 과정을 전달하는 자체로 갖은 정성이 깃든 김밥에 대한 강한 믿음을 전해줬다.
우선 이들 세 곳 달인들은 자신만의 '베스트 김밥‘을 만들기 위해 자료준비부터 요리과정까지 상상을 초월하는 기발한 아이디어와 복잡한 과정을 거쳤다. 최상의 건강한 맛을 내기 위해서는 어떠한 번거러움과 수고로움도 감수했다.
특히, 이들은 인공 조미료나 감미료 대신 채소 등 천연 식재료를 활용하고 있었다. 이를 위해 부단한 연구를 거듭하고 있었다.
세 김밥 달인들은 김밥 속 재료를 아끼지 않는다는 점도 닮았다. 손님들이 맛있는 김밥으로 든든히 속을 채울 수 있도록 식재료로 풍성하게 채웠다. 김밥을 보기만 해도 배부를 만큼 두툼했고, 절단 단면은 빈 곳 없이 속으로 꽉 차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요리과정과 마음가짐을 언제나 한결같이 유지한다는 점이었다. 식당을 경영하는 모든 분들이 이런 신념을 갖고 요리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중심철학은 바로 자기 가족을 위해 요리하는 어머님 손맛이었다. 손님을 가족처럼 생각하니 식재료 하나도 허투루 선택하거나 레시피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김밥 달인들은 자신만의 색깔을 지니면서도 누구나 맛있게 즐길 수 있는 김밥을 만들고 있었다. 손님들은 신선하고 독창적인 맛과 푸짐함에다 영양까지 가득 챙길 수 있고, 자연스럽게 남녀노소 불문하고 세월이 지나도 잊지 못하고 찾아가게 만드는 ‘추억의 김밥’이 됐다.
‘묵참 김밥의 달인’은 용산 일대에서는 ‘묵참’으로 통했다. ‘묵은지 참치 김밥’의 준말이었다. 포장만 된다는 이 김밥집은 묵은지가 신의 한 수였다.
생활의 달인 잠행단의 강희재 달인은 “밥보다는 안에 들어가 있는 재료가 많고 참치를 넣어서 느끼할 것 같았는데 묵은지가 한 번 감싸줘서 괜찮다. 그리고 식감이 좋다. 묵은지 때문에 아삭거린다”고 평했고, 임홍식 달인은 "밥 자체에 향기도 좋다. 밥 향기가 보통 밥하고 다르다. 상큼한 향이 난다. 여운이 게속 남아 있다“고 남다른 맛과 향의 밥에도 감탄했다.
이 ‘묵참’ 김밥은 달인의 요리 과정이 더 큰 놀라움을 줬다. 입구에서 보면 작은 규모의 김밥집이었지만 주방으로 들어가니 의외로 넓었고 옛날 대갓집 주방을 연상시키는 큰 규모의 가마솥을 활용해 온갖 식재료를 만들고 있었다.
묵참 김밥의 달인은 무쇠솥에다 볶고 삶고 지지고 무치고 다한다고 밝혔다. 또 하나의 비밀은 밥에 녹즙을 넣어 씹을수록 구수한 향이 나는 밥을 만든다는 점이었다. 계절에 따라 파란색 채소를 갈아서 쓰고 있었는데 겨울에는 부추, 여름에는 시금치를 활용하고 있었다. 녹즙으로 밑간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김밥에 필수라고 알려진 참기름이 필요 없는 달인만의 김밥을 만들고 있었다.
묵참 김밥 달인은 “모든 걸 다 해서 하니까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맛을 있게 하기 위해서는 계속 열심히 해야겠죠"라며 흔들림없는 요리철학을 밝혔다. 잠행단 임홍식 달인은 ”어머니의 정성이 들어간 마음이 아니면 이렇게 안 나온다. 기본적으로 건강한 음식을 만들어야겠다는 사명감이 철저하신 분 같다“고 감탄했고, 강홍재 달인은 ”오감을 만족시키는 김밥“이라며 ”김밥의 신대륙에 온 것 같다“고 극찬했다.
‘고추냉이 김밥의 달인’은 이태원동의 아주 후미진 골목길에 자리하고 있었다. 뉴욕타임스에 나올 정도로 유명한 집으로, 이슬람교도까지도 즐기는 김밥이라고 김밥달인은 밝혔다.
방송 노출을 원하지 않는 맛집이어서 잠행단도 조용히 시식만 하며 식재료와 비법을 추측했다.
이 김밥집 레시피는 심플해 보였다. 조린 어묵에 지단, 상추, 오이, 단무지 정도가 들어간다. 샐러드 김밥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잠행단은 “부드러우면서 매콤하다” “상당히 자극적이지 않다. 간도 약하다”며 은근히 자극하는 미각에 감탄사를 연발했다.
이 김밥집 단골 손님은 “다른 김밥이랑 비교하면 속 재료가 다양하진 않은데 정말 단순하게 들어갔는데도 최고의 맛을 낸다. 솔직히 제가 먹어 본 김밥 중 베스트다. 채소를 많이 넣어 씹는 식감도 좋고 뒷맛도 뭔가 오묘하게 매콤한 맛이 있어서 좋다”고 표현했다.
이 김밥의 가장 큰 비법은 일명 ‘마약의 소스’라고 불리는 고추냉이 소스였다. 소스를 별도로 요청해 김밥을 찍어먹은 잠행단은 “그냥 가루 고추냉이가 아니고 생고추냉이다. 색깔이 연한 것 보니까 마요네즈를 섞은 것 같다. 정말 김밥에 대한 상식을 완전히 깨버렸다” “상당히 독특한 맛이 난다”며 기발한 비법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초밥물 김밥의 달인’은 든든한 한 끼로도 손색이 없어 오랜 시간 학생들에게 사랑받는 성북구의 김밥집이었다. 덩치 큰 학생들을 위한 ‘왕김밥’이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았다.
잠행단은 맛을 보자마자 “김밥의 밥이 상당이 독특하다. 이렇게 평이 나서 그걸 듣고 와 봤다.”“가격 대비 이 맛이 나올 수 있나. 속 재료가 이 정도 들어가도 되나”라며 아낌없이 재료로 꽉찬 김밥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곳 김밥의 가장 큰 매력은 김초밥 같지만 또 다른 맛이다. 잠행단은 “살짝 '초' 맛이 조금 올라온다. 맛이 굉장히 산뜻하다. 근데 김초밥 같은 설탕 맛은 아니다. 밥에 양념을 따로 치는 소스 같다” “일식 김밥의 맛이 난다”고 묘한 초밥 맛을 신기해 했다.
막상 초밥물 김밥 달인인 주인은 “생활의 달인이랄 게 없는데요”라며 겸손해 했다. 하지만 그 김밥에는 상상을 뛰어넘는 비법이 있었다.
초밥물 김밥은 쑥갓이 듬뿍 들어가 있고 봄 내음 물씬 나는 향긋한 채소 김밥이었다. 비법은 깊은 내공이 녹아 있는 ‘배합초’였다. 갓 지은 밥에 배합초를 섞었다.
김밥 달인은 “학생들이 좋아하는 입맛이 어떨까, 이런 거를 생각해서 연구를 해서 배합초를 넣었다. 하나도 허투루 준비하지 않는다”고 요리철학의 밝혔다.
초밥물 김밥을 위해 달인은 설탕 대신 말린 감을 준비한 뒤, 물 대신 소주를 써서 감에 남아 있는 옅은 떫은 맛마저 없댔다. 이렇게해서 천연설탕을 완성했다. 이후 신의 한 수가 더 있었다. 기존 상식과는 달리 감에 추가로 소금을 뿌렸다.
초밥물 김밥 달인은 “음식에 소금을 넣게 되면 단 맛이 더 확 올라온다. 그래서 단맛이 배가 된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달인의 경험에서 우러난 살아있는 레시피였다. 이후 부족한 신맛을 보충하기 위해 레몬도 넣었다. 13년의 노하우가 배합된 천연 배합초의 탄생이었다.
이같은 배합초를 배경으로 아낌없는 재료에 인정까지 듬뿍 김밥에 담았다. 초밥물 김밥 달인은 “항상 깨끗하게 해야 되고 푸짐해야 되고 맛이 있어야 된다. 그걸 기본 원칙으로 하고 있다”며 한결같은 김밥철학을 밝혔다.
‘원칙에 변함없는 정직한 김밥’. 세 김밥 달인은 이익을 우선시하는 ‘3인칭’ 김밥이 아니라 손님을 내 가족처럼 생각하며 ‘1인칭’ 김밥을 만들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김밥의 맛도 명성도 자연히 따라왔다. 이날 ‘생활의 달인’에서 소개한 세 곳의 김밥 달인을 관통하는 철학이었다. 언제나 어머님 손맛처럼 정성을 다 쏟는 요리철학이 숨쉬는이런 맛집이라면 어떻게 손님한테 사랑받지 않을 수 있을까?
[사진= SBS '생활의 달인' 방송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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