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Q(큐) 김의겸 기자] “축구는 야구, 배구와는 상황이 다르다. 아직 준비되지 않은 종목들까지 기다려줘야 하는 역차별을 받고 있다. 형평성도 중요하지만 (축구)협회 입장에서는 선도적으로 나갈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
홍명보 대한축구협회(KFA) 전무이사는 지난달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생활체육과 전문체육 연계를 위한 디비전 시스템 구축 정책 토론회’를 마치며 이 같은 말을 남겼다.
최근 한국 축구는 생활체육과 전문체육의 경계를 허물기 위한 클럽 디비전 시스템 구축에 대한 청사진을 그렸다. 2026년까지 단계적으로 프로와 아마추어가 연계해 승강제도가 정착된 통합 디비전 시스템을 구축, 다른 종목의 본보기가 되겠다는 각오다.
그렇다면 왜 축구에서 가장 먼저 이런 시도를 하는 것일까.
◆ 축구에서 말하는 클럽 디비전 시스템이란?
한국 축구는 현재 프로(1~2부리그), 세미프로(3~4부리그), 아마추어(5~7부리그)로 철저히 분리돼 있다. 통합 클럽 디비전 시스템이란 프로부터 동호회까지 모두 포괄하는 리그로 각 리그 상위 팀은 상부리그로 승격, 하위 팀은 하부리그로 강등되는 승강제를 말한다.
현재 프로축구는 K리그1, K리그2 승강제가 운영 중이다. 그 아래 세미프로 격인 실업축구 내셔널리그(N리그)와 K3리그 어드밴스(상부), 베이직(하부) 등이 있다.
아마추어 범주로 내려가면 2017년 출범한 K7 시군구리그를 시작으로 2018년 K6 시도리그가 생겼고, 올해 K5 전국리그가 시작됐다. 장기적으로는 2023년까지 내셔널리그와 K3리그를 K3, K4리그로 재편해 K3~K7에 이르는 아마추어 레벨을 먼저 통합한 뒤 2026년 K1~K7에 걸친 통합 시스템을 완성하겠다는 계획이다.
홍명보 전무이사는 “(축구)협회는 정부 사업, 정책을 우수하게 따라가는 스포츠 단체다. 2009년 초중고 주말리그 시작 때만큼이나 협회는 이번 디비전 시스템에 대해서도 준비가 돼 있다. 터무니없이 하고자 하는 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디비전 시스템 역시 정부 정책이다. 관리하는 입장에서 이를 더 발전시키고 참가자들에게 행복감을 주고자 이렇게 시도하고 있는데 역차별을 받진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축구만의 문제는 아니니 부처 협의를 통해 잘 풀어가겠다. 축구 좋아하는 분들의 행복과 건강을 위한 시스템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니 관심 가져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덧붙였다.
그에 앞서 근원적인 물음이 생긴다. 전문체육과 생활체육을 왜 통합하려는 걸까.
그 이유는 “스포츠는 과거 성적지상주의에서 벗어나 자아실현과 즐거움을 위한 매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스포츠클럽리그디비전은 변화하는 스포츠 패러다임에 맞춰 전문체육과 생활체육이 균형 있게 발전할 수 있도록 돕는 자율적, 효과적인 체육 선순환 체계를 형성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의 말에 잘 담겨 있다.
최근 국내 체육계 화두 중 하나는 아마추어리즘의 회복이다. ‘공부하는 운동선수, 운동하는 학생’이라는 모토를 내세우고 있는데, 쉽게 말해 운동부와 일반 학생의 경계를 허무는 게 장기적인 목표다. 운동선수라고 공부를 하지 않아도 진학하던 시절과는 점진적으로 작별을 고할 전망이다. 클럽 디비전 시스템 구축 역시 이와 맥락을 같이 한다.
많은 종목 중 축구에서 생활 스포츠와 전문 스포츠의 통합 이야기가 오가는 것은 축구가 가장 선진화된 환경과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는 편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축구에 ‘생활체육 활성화는 곧 엘리트체육 발전’이라는 인식 확산의 창구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
이기흥 회장은 “우리나라가 스포츠강국을 뛰어넘어 스포츠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소중한 계기가 될 수 있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생활체육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화합의 장을 마련하여 계층 간, 지역 간 친선과 화합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 왜 축구에서만? 야구는? 형평성 문제는 없나
전용배 단국대 스포츠경영학과 교수는 “역도부터 축구까지 모든 종목을 다 하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다시피 한 국가인 우리나라의 경우 항상 형평성의 문제가 발생한다”면서도 “(축구 이외에) 골프, 테니스, 배드민턴은 디비전 시스템이 가능할 수 있지만 다른 종목은 원천적인 난관이 많다”고 했다.
그 배경을 알아보자.
전용배 교수는 ‘자생력’을 이유로 꼽는다.
“한국 스포츠에서 특이한 점은 실업 팀이 1000여 개에 달한다는 점이다. 역도, 태권도, 야구에 이르기까지 890~900개가량의 팀이 공공기관 소속이다. 모든 실업 소속 선수들 월급을 세금으로 주고 있다는 특이점이 있다”며 “예를 들면 미국여자프로축구(WMLS)는 WK리그(한국여자실업축구)보다 연봉이 적다. 미국에서 발전한 스포츠는 수입과 비례한 급여를 받는다”고 했다. 다시 말해 한국 스포츠는 지금껏 성적 위주의 엘리트 체육에 힘을 쏟아왔기 때문에 지자체를 통해 연명하는 실업팀 위주로 흘러왔다는 것.
국제 대회 좋은 성적을 위해 유지되는 팀이니 운영 효율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고 엘리트체육과 생활체육의 경계를 지우려는 시도는 꿈도 못 꾸는 실정이다.
한국 최고 인기 스포츠는 축구가 아닌 야구다. 생활야구를 즐기는 인구도 오랫동안 꾸준히 늘고 있는 추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교수는 “야구는 클럽 디비전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어렵다”고 말한다.
“야구는 (축구와 달리) 언제든 연고지 이전이 가능하다. 축구는 전 세계적으로 자유계약 시스템이다. (재정 지원이 미약한) 시·도민구단이 우승하지 못하는 것은 결국 연봉과 실력이 비례하기 때문”이라며 “야구는 못하는 팀에게 드래프트 우선권을 준다. 기회를 공정하게 준다는 차원이다. 리그 전체의 생존을 중요시 여기기 때문이다. 따라서 야구의 승강제 가능성은 없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프로축구와 프로야구의 태생적 차이를 예로 들었다. 자유경쟁을 통한 구단 중심의 수입구조가 아닌 경쟁적 균형과 리그 중심의 수입 공동분배 체계를 갖고 있는 프로야구의 폐쇄적 시스템 상 승강제도를 도입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한국형 축구 클럽 디비전 시스템을 고안한 채재성 동국대 체육교육과 교수는 “축구와 야구, 배구, 농구는 과제가 다르다. 같이 갈 수 없다. 축구가 워낙 앞서가고 있다. 참여 인구 숫자에 대한 효과만 따지면 축구 하나로도 의외로 엄청난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유럽은 100년 걸렸다. 우리는 2010년 들어서야 생활체육에서 스스로 운동하는 발판을 마련하고 지역 중심의 운영 클럽에서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자 이 사업을 시작했다. 독특한 종목이 앞서있기 때문에 치고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 인프라는 물론 의지도 따라야
정부는 축구에서 통합 클럽 디비전 시스템을 정착 시킨 뒤 차차 타 종목으로 확대하려는 계획이다. 정부 계획을 직접 실행하는 실무자인 심상보 대한체육회 스포츠클럽부장은 “아직 축구의 생활-전문 승강제가 이뤄지지 않았고 디비전 시스템이 완벽히 구축되진 않았으나 축구 종목 운영을 통해 타 종목의 디비전 시스템 적용 가능성을 엿보고 있다. 축구 종목의 동호회 수준별 리그 완성에 따라 타 종목으로 디비전 시스템 확대를 시도해볼만하다”고 설명한다.
디비전 시스템 구축을 위해서는 크게 6가지 사항을 고려해야 한다.
# 프로 혹은 실업 팀이 있는 경우 성인 중심, 없는 경우 유·청소년 중심의 디비전 구축
# 단일리그에서 2개 이상의 리그를 운영할 수 있는 인적자원(심판, 운영인력) 확보
# 하부리그에 참여할 수 있는 참가팀(선수) 확보
# 이해관계자간 공감대 형성과 종목단체의 의지
# 운영체제 정비
# 등록 규정 정비
이상 6가지가 그것인데 이 중 타 종목 확대라는 비전의 큰 걸림돌 중 하나가 바로 ‘종목단체의 의지’다. 대한체육회는 지난 5월 24일부터 지난달 17일까지 ‘디비전 시스템 운영사업 예산을 지원한다’는 조건 아래 61개 정회원 종목단체를 대상으로 디비전사업 희망 여부와 관련한 기초조사를 실시했다. 하지만 디비전 사업 도입을 희망하는 종목은 10개 종목에 불과했고, 그나마도 생활체육에 한정된 종목이거나 리그운영 제반 여건이 좋지 않아 현실적으로 디비전 도입이 어려운 종목이 절반을 넘는다.
심 부장은 “배드민턴, 탁구, 볼링, 배구, 테니스 등 디비전 도입이 가능하다고 판단되는 인기종목의 디비전 참여 의사가 없는 점이 아쉽다”고 했다. 동호회가 잘 발달한 야구, 농구의 경우 의지를 드러냈으나 제반 시설에서 축구보다 아쉽다. ‘승강제’라는 차원에서 접근하는 데 한계가 있기도 하다.
운영 장소와 인력 확보, 참가 팀(선수)의 참여 동기, 동호회(클럽)의 법인화 가능성 등 여러 부문에서 축구가 선행적으로 사업을 시작하게 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가장 단 시간 내에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 인프라가 갖춰진 종목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축구도 큰 시행착오 없이 계획대로 디비전 시스템을 완성시키리라는 보장은 없다. 넘어야 할 장애물이 많기 때문이다.
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17년부터 대한체육회, 축구협회가 프로, 아마축구를 통합하는 시스템을 추진하고 있다. 참가하는 팀들의 만족도가 높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아직 운동장, 예산이 풍부하게 확보되지 않아 힘겹게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참여욕과 만족도가 높은 만큼 국회, 국민들의 적극적인 지원을 바란다”고 호소했다.
산적한 많은 과제들을 안고 있는 축구협회가 보여준 자신감 그대로 다른 종목으로까지 생활체육과 전문체육의 통합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 한국에서 가장 ‘풀뿌리 운동’이라는 단어에 적합한 축구를 통해 한국 스포츠가 체질 개선을 위한 희망을 발견할 수 있을지 지켜볼 대목이다.
도전과 열정, 위로와 영감 그리고 스포츠큐(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