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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길에서 멍때리기] 카메라를 들고 일산 폐차창 화재를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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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길에서 멍때리기] 카메라를 들고 일산 폐차창 화재를 보며...
  • 이두영 기자
  • 승인 2020.07.28 16: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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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이두영 기자] 니코스 카잔차키스, 알랭드 보통, 무라카미 하루키 등은 여행을 통해 작품세계를 풍요롭게 했다. 이들은 방콕형 인간들이 얻지 못할 정신적 자양분을 여행길에서 얻었다.

여행에서는 다양한 사건과 사물,인간을 만난다. 가장 흔한 것은 마음을 넉넉하게 하는 풍경일 것이다.

그러나 때로는 테러,홍수,지진,화재 등 경천동지할 진풍경을 만나기도 한다.

지난 25일 오전 11시 40분께 경기도 일산서구 덕이동 원창폐차산업 폐차장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도 그런 종류다.

경기도 일산서구 덕이동 폐차장 화재.
경기도 일산서구 덕이동 폐차장 화재.

 

폐차 수백 대에서 나온 폐유와 폐타이어 등이 타는 뻘건 불기둥과 연기가 쉼 없이 치솟았다.

헬기는 쉼 없이 인근 운정호수에서 물을 길어 와 뿌렸고 수십 대의 소방차와 100여 명의 소방대원들은 이틀 동안 화재 진압에 온힘을 다했다.

어쩌다 보니 나는 화재 발생을 알게 된 점심때부터 밤중까지 현장 주변에 머물렀다. 거의 온종일 불구경을 한 셈이다.

발목을 다쳐 당분간은 장시간 서 있는 것이 불편한 처지인데도 거기서 얼떨결에 하루를 보낸 것은 정신을 새롭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화재로 피해를 본 당사자나 인근 주민들에게는 대단히 미안한 얘기이지만 거대한 불기둥은 많은 생각을 떠올리게 했다.

꿈틀대는 불과 연기는 어느 순간 공포스러운 생명체처럼 다가왔다가 노을과 뒤섞여 캔버스 위에서 움직이는 화가의 붓 같기도 했다.

나는 불길의 절대온도(캘빈온도)를 가늠하고,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헤파이스토스를 염력으로 초대했으며, 시커먼 연기가 겨울왕국의 엘사에게 절대로 가지 않기를 빌었다.

불구덩이에서 잊을 만하면 터지는 폭발음과 물 뿌리는 헬기의 엔진 소리, 강풍에 날아오는 매캐한 냄새는 오감을 자극했다.

장시간 불 옆에서 머무르다 보니 불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도 꽤 있었다.

카니발 차량을 타고 여행 오듯 나들이 나온 부부, 걷기 운동 나왔다가 화재 관람 삼매경에 빠진 동네 주민들, 1시간가량 스마트폰으로 화재 사진 찍기를 즐긴 오토바이 배달업 종사자, 밤 11시에도 구경 나온 주민 등.

흥겨움과 신기함을 표출하는 그들의 태도는 공연관람을 온 구경꾼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이들의 입에서는 이구동성으로 폐차 업체 주인의 도덕성을 의심하는 말이 나왔다. “아니, 똑 같은 업체에서 몇 번씩이나 불이 났는데 고의로 낸 거 아냐? 뭔가 냄새가 난다니까.” “주민들은 뭔 죄냐? 저 많은 환경오염 물질은 어떡하라고?” “보험은 들어 뒀겠지?” 따위의 이야기가 쉼 없이 오갔다.

엄청나게 발생하는 미세먼지와 발암물질 따위를 목격하며 나도 분통을 터뜨렸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불길은 나의 카메라 렌즈에서 살아 날뛰었다.

여행은 멀리만 가는 것은 아님을 새삼 절절이 느낀 하루였다. 일산,파주,김포는 물론 서울 주민까지 피해를 끼친 화재였지만, 사진을 찍는 나로서는 드러내놓고 좋아하지 못할 창조적 영감을 느낀 하루였다.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지만, 이 글이 행여 화재를 찬양한다는 오해는 없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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