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Q(큐) 안호근 기자] 올 시즌 프로농구(KBL)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을 꼽자면 처음 한국 무대를 밟은 필리핀 선수들일 것이다. 현란한 개인기술을 바탕으로 새 바람을 불러오고 있다.
반환점을 돈 2022~2023 SKT 에이닷 프로농구. 지난 15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올스타전에서도 필리핀 선수들의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강렬한 인상을 남긴 렌즈 아반도(25·안양 KGC인삼공사)와 팬투표로 뽑힌 론제이 아바리엔토스(24·울산 현대모비스) 등이 프로농구의 지형도 변화를 위해 긍정적인 시너지 효과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2020년 KBL은 변화에 나섰다. 2명에 그쳤던 외국인 선수 제한과 별개로 해당 국가 출신 선수들을 추가로 더 영입할 수 있는 아시아쿼터를 시행했고 우선적으로 일본인 선수들을 대상으로 했다. 그러나 유명무실했다. 원주 DB가 나카무라 타이치를 활용한 것이 전부였다.
이에 KBL은 올 시즌을 앞두고 그 대상을 필리핀 선수들까지로 넓혔다. 필리핀은 오래 전부터 농구에 많은 관심을 가졌고 그만큼 기술력이 좋은 선수들도 많았다. 최근에도 국제대회에서 필리핀을 만나면 빠르고 현란한 농구에 덜미를 잡히기도 할 정도였다.
연봉에 제한이 있는 필리핀 선수들에게 한국은 기회의 땅이었다. KBL 구단들도 이전과는 달리 적극적으로 나섰다. 특히 새로운 감독과 믿고 맡기는 슈터가 빠진 안양 KGC인삼공사, 새 감독 체제를 맞은 울산 현대모비스, 창원 LG 등은 고전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필리핀 카드와 함께 나란히 1,2,3위에 오르며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KGC인삼공사는 아반도, LG는 저스틴 구탕(25), 현대모비스는 아바리엔토스를 앞세워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아반도는 188㎝라는 신장이 믿기지 않는 탄력으로 호쾌한 덩크슛과 블록슛 등으로, 구탕은 1대1 상황에서 강해 알토란 같은 활약을 펼친다. 아바리엔토스는 필리핀 선수들 중 가장 돋보인다. 평균 30분 가까이 뛰며 13.1점 4.7리바운드로 팀 전력에 확실히 힘을 실어주고 있다.
반면 필리핀 선수 없이 시즌을 시작한 전주 KCC와 수원 KT는 각각 5위와 7위로 주춤하고 있다. 이 두 구단 또한 전반기를 마치고 필리핀 선수를 물색했고 새로운 아시아쿼터 선수들과 함께 후반기를 맞이한다.
당초 필리핀 선수들을 향한 시선이 호의적이기만 했던 건 아니었다. KBL 관계자는 “필리핀 선수들이 개인주의적이고 팀과 융화되기 힘들 것이라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겪어보니 전혀 달랐다. 누구보다 성실했고 팀에 잘 녹아 들었다. KBL 올스타전에 나선 아바리엔토스는 각종 퍼포먼스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미국프로농구(NBA) 덩크왕 애런 고든(덴버 너기츠)를 연상케하는 윈드밀 덩크와 폴더 덩크로 자칫 혹평이 난무할 뻔 했던 덩크 콘테스트를 살렸다. KBL 관계자들도 “아반도가 아니었다면 큰일 날 뻔했다”고 입을 모았다.
아반도와 아바리엔토스와 SJ 벨란겔(대구 한국가스공사)가 팀을 이뤄 국내 선수들과 3대3 대결을 펼치기도 했는데, 이 이벤트만을 위해 현장을 찾은 벨란겔로 누구보다 열심히 코트를 누볐다. 김선형(서울 SK), 이정현(고양 캐롯), 변준형(KGC인삼공사) 등 올스타들의 조합을 13-7로 제압하며 뛰어난 기량도 다시 한 번 농구팬들에게 확인시켜줬다.
필리핀 선수들의 뛰어난 적응력은 덩달아 KBL과 나아가 한국 농구 발전을 향한 기대감으로 이어진다. 이들의 기술력이 국내 선수들에겐 발전을 위한 자극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공수 양면에서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팀 플레이엔 아직 미숙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KBL 관계자들은 “이는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라며 “길게 보면 한국농구 발전을 위해서도 분명히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리그를 대표하는 선수들은 기회가 될 때마다 ‘한국농구의 부활’을 외친다. 이를 위해 다양한 이벤트와 팬서비스에 힘을 쓰고 있다. 다만 가장 중요한 건 경기력이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필리핀산 아시아쿼터 선수들의 화려한 플레이는 올 시즌 농구 팬들에게 또 다른 재미를 전하고 있다. 국내 선수들 또한 동반 성장하며 시너지 효과를 키워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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