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Q(큐) 신희재 기자] 3승 2패 조별리그 탈락. 류중일 감독이 이끄는 한국 야구 국가대표는 2024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12에서 기대 이하의 성적표를 받았다. 2015년 초대 대회 우승, 2019년 준우승국의 아쉬운 결과다. 지난 두 대회보다 낮은 슈퍼라운드(4강) 진출을 목표로 삼았으나 이조차 달성하지 못했다.
류중일호는 다음 국제대회를 앞두고 미래 자원을 발굴한 것에 의의를 뒀다. 타자는 3루수 김도영(KIA 타이거즈), 유격수 박성한(SSG 랜더스)이 세계 무대에서 경쟁력을 입증했다. 투수는 불펜에서 스타가 탄생했다. 박영현(21·KT 위즈)과 김서현(20·한화 이글스)이 대회 평균자책점(ERA) 0을 기록, 향후 10년 이상 대표팀 뒷문을 책임질 새 필승조 탄생을 알렸다.
수원 유신고등학교 출신 박영현은 지난해 첫 성인 국가대표로 뽑혔던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보여준 5⅓이닝 무실점 행진을 이어갔다. 3경기 1승 1세이브 ERA 0, 3⅔이닝 2피안타 6탈삼진 무실점으로 절정의 컨디션을 자랑했다.
박영현은 이번 대회 중계 화면에 공개된 트래킹 데이터 수치로 화제를 모았다. 14일 쿠바전에서 결정구였던 시속 150km 패스트볼의 분당 회전수(rpm)가 무려 2588이었다. 미국 메이저리그(MLB) 투수들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 구위로 타자를 압도했다. 한일전 3-6 역전패 과정에서 “박영현을 왜 조기에 투입하지 않았는지”가 논쟁이 될 만큼 대표팀 부동의 마무리로 입지를 굳혔다.
데뷔 3년차인 박영현은 지난해 셋업맨으로 나서 최연소 홀드왕(32개)을 차지해 주목받았다. 김재윤(삼성 라이온즈)이 떠난 올해는 마무리로 보직을 바꿔 66경기 10승 2패 25세이브 ERA 3.52, KBO리그에서 조용준 이후 20년 만에 10승-20세이브를 달성해 눈길을 끌었다.
'제2의 오승환'이라는 별명처럼 평균 구속 140km 후반대 묵직한 패스트볼을 주무기로 삼는다. 노경은(SSG 랜더스)과 함께 KBO리그에서 2년 연속 구원으로 75이닝 이상을 소화하는 등 내구성도 탄탄하다. 대표팀 동료 김택연(두산 베어스)은 대회 전 "영현이 형이 당연히 마무리를 맡아야 한다. 국제대회 경험도 많고, (타자를) 압도하는 공을 던진다. 가장 좋은 투수가 마지막에 가야 한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박영현이 검증을 마친 자원이라면 김서현은 새로운 옵션으로 급부상했다. 서울고 출신 김서현은 이전까지 국제대회 출전 경험이 없었고, 지난달 대표팀 소집 훈련 때만 해도 불펜에 경쟁자가 많아 최종 승선을 확신하지 못했다. 그러나 최고 시속 155km의 강력한 패스트볼을 앞세워 류중일 감독의 선택을 받았다.
김서현은 이번 대회에서 4경기 4이닝 3피안타 4탈삼진 무실점으로 호투했다. 대표팀에서 홀로 4경기에 등판하는 등 코치진의 신뢰를 얻었다. 대회 후 최일언 투수코치는 “김서현이 제일 많이 던졌다. 던지고 싶어 하는 자세가 좋다"면서 "야구장에 나와서 매일 캐치볼부터 신경 써서 제일 많이 했다"며 김서현의 태도를 높이 평가했다.
데뷔 2년차 김서현은 올해 전반기만 하더라도 1군 마운드에 오르기 어려운 투수였다. 제구 불안으로 장점인 구위를 전혀 살리지 못했다. 하지만 후반기 한화가 김경문 감독-양상문 투수코치 체제로 개편되면서 빠르게 안정을 찾았고, 30경기 10홀드로 반전을 만들어냈다.
패스트볼과 슬라이더 위주로 타자를 공략하는 김서현을 향해 일본 야구팬들은 과거 일본프로야구(NPB) 최고의 마무리로 활약한 임창용을 떠올리며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김서현은 “일본 야구팬들이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다. 기회가 되면 한 번 (NPB에) 다녀와 보고 싶은 생각도 있다”고 포부를 밝혔다.
박영현, 김서현 외에도 류중일호는 한일전 2⅔이닝 무실점의 유영찬(LG 트윈스), 투심 패스트볼이 좋은 소형준(KT) 등 이번 대회 불펜에서 좋은 활약을 펼친 투수가 많았다. 다소 주춤했지만 조병현(SSG), 정해영, 곽도규(이상 KIA), 김택연 등 미래가 기대되는 불펜들도 소중한 국제대회 경험을 쌓았다.
한국 야구는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2028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에서 성적을 내기 위해 젊은 선수들 위주로 팀을 구성했다. 류중일 감독이 프리미어12를 끝으로 임기를 마친 가운데 KBO 사무국은 재계약과 새 감독 선임을 놓고 논의에 들어갈 예정이다. 류 감독은 "본선에 가지 못했어도 우리 어린 선수들이 장하다. 다음 대회도 건강하게 잘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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