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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소통' 지휘하는 젊은 거장 최수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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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소통' 지휘하는 젊은 거장 최수열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4.07.12 12: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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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용원중기자] “힘든 현실의 젊은 세대를 비롯해 서울 시민들을 위한 찾아가는 음악회, 무료 공익 공연에서 숨은 명작들을 잘 골라 질적으로 뒤지지 않는 무대를 마련하고 싶어요. 여가를 즐기러 오시는데 친절하게 보여주는 건 중요하지만, 음악의 본질이 흐트러지지 않는 한도 내에서 촌스럽지 않은, 세련된 방법을 찾는 게 연주회 기획자, 지휘자, 연주자 모두가 고민해야 할 부분인 것 같아요.”

 

◆ 서울시향 부지휘자 취임...청중 눈높이 맞춘 세련된 공연 올릴 계획

지난 8일 서울시립교향악단 부지휘자실에서 만난 최수열(35)은 그의 지휘 동작마냥 도전적이고 유려하게 말을 이어갔다. 이달 초 젊은 지휘자들에게 있어 꿈의 일터인 서울시향 부지휘자로 취임해 파란을 일으켰다. 그는 향후 1년6개월의 서울시향 정기공연 일정이 이미 확정된 상황에서 중간에 투입됐기에 공익공연이나 야외공연, 교육 프로그램 위주로 지휘하게 된다. 벌써부터 다양한 프로그램 구상에 흥겨운 표정이 역력하다.

“지휘자에게 있어 오케스트라는 악기인데 서울시향이라는 좋은 악기를 만질 수 있는 기회를 잡아서 설레요. 이곳에 상주하면서 잘 모르던 조직 시스템에 대해 배울 수 있게 된 점도 의미가 깊고요. 제 역할을 충실히 함으로써 서울시향이 더욱 발전하는 데 있어 좋은 발판이 돼야겠고, 저 역시 이 단체에서 많은 걸 얻어 가아죠.(웃음)”

최수열 지휘자는 대중 그리고 서울시향 단원들과 소통하는 면에서 충분히 신뢰할 만하다. 이전부터 서울시향과 다양한 공익공연을 해왔다.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는 현대음악 공연 '아르스 노바'의 어시스트 지휘자로 참여했고, '서울시향 어린이날 음악회' '아침 음악회' 등에서도 단원들과 호흡을 맞췄다. 지난해부터 성남아트센터의 ‘마티네(낮) 콘서트’를 기획, 지휘해 오고 있다.

▲ 서울시향을 지휘하는 최수열 부지휘자[사진=서울시향 제공]

“러닝타임 1시간의 마티네 공연 대부분이 듣기 편한 소품 위주로 꾸며지는 상황이었어요. 협연자도 총 3~4악장 중 한 악장만 연주하고 가는 분위기였고요. ‘대중의 입맛에 맞추지 말자’란 불친절한 콘셉트를 정했어요. 오전 시간대에 말러의 대작을 포함, 쇼스타코비치, 슈트라우스, 현대음악을 모두 연주해봤어요. 청중 대부분이 주부와 은퇴한 어르신들인데 반감을 갖지 않으시더라고요. 공익공연 역시 마티네 공연과 비슷하거든요. 시간상의 문제 등으로 인해 대작들이 소외되고, 25분짜리 교향시도 잘 연주하지 않는 풍토죠. 정기 연주회의 정형화된 코스를 생략한 뒤 공연시간을 잘 조율하면 얼마든지 밀도 높은 무대를 꾸밀 수 있을 거라 여겨요.”

이런 실험정신과 화합력이 높은 평가를 받았고, 지난해 9월 차세대 지휘자 발굴 및 육성을 위한 정명훈 예술감독의 '지휘 마스터클래스'에서 정명훈 예술감독과 단원으로부터 최고 점수를 받아 부지휘자 자리를 꿰찼다. 아시아권을 넘어 세계적 교향악단으로 발돋움한 서울시향에 대한 이야기도 젊은 세대답게 거침없다.

“서울시향의 연주회는 후기 낭만파와 근대 위주의 레퍼토리거든요. 정통 클래식 프로그램을 그리 자주 안 해서 이를 어떻게 다른 프로그램과 잘 섞느냐에 관심이 많아요. 예를 들어 고전에서는 하이든이 있겠죠. 모차르트는 자주 연주하는데 하이든의 경우 매력적 요소가 많음에도 덜 연주하거든요. 슈베르트보다 베토벤을 자주 연주하는 것고 비슷하게요. 슈만 심포니 역시 메인 디시로 내놓기에 약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 나름의 매력이 있는 작품이죠.”

 

◆ 한예종, 드레스덴 국립음대 졸업 후 독일 앙상블 모데른 지휘

작곡가인 아버지를 둔 최수열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지휘과 예술사와 예술전문사 과정을 졸업했다. 대학 재학 시절부터 이미 서울시향, 수원시향, 부천시향, 제주시향, 프라임필하모닉, 일본 센다이필하모닉 등을 객원지휘하며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2009년 독일로 건너가 드레스덴 국립 음대 최고연주자 과정에서 에케하르트 클렘을 사사하던 중 2010~11 독일학술교류처(DAAD) 예술분야 장학금 수여자로 선정된 이후 MDR 심포니, 예나 필하모닉, 츠빅카우 필하모닉, 작센주립극장 오케스트라 등과 작업하며 동시에 한국에서의 연주활동을 병행했다.

세계 최고 권위의 현대음악단체인 독일 앙상블 모데른이 주관하는 국제 앙상블 모데른 아카데미(IMEA)에 지휘자 부문으로는 동양인 최초로 선발, 앙상블 모데른의 부지휘자로 1년 동안 활동해 정통 클래식뿐만 아니라 현대음악에 재능 많고 강한 해석력의 지휘자로 평가받았다.

“객원지휘를 많이 하면서 절로 순발력을 체화했어요. 지휘자는 단원을 통해 소리를 내는 사람이라 소통이 굉장히 유연해야 하고, 많은 변수에 맞춰 소통의 길을 찾아내야 하죠. 그래서 악단마다 맞춤형 지도가 필요해요. 정확성이 떨어지면 테크닉 위주로 가야하고, 단원들의 연령층이 높을 땐 그들의 경험을 무시하지 않고 개개인을 더 존중해야 해요. 소통의 방식이 그때그때 달라져야 하죠. 그러지 않을 경우 지휘자와 단원 사이에 팽팽한 신경전, 기싸움이 벌어지기 일쑤거든요.”

 

서울시향의 경우 개개인의 기량이 뛰어나고, 능동적 앙상블을 지녀 뭔가를 정확하게 만들기보다 자신이 원하는 음악, 작품에 대한 방향을 설득하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한다. 서울시향 분위기가 젊고 자유로워 최수열 지휘자의 과감한 해석을 잘 받아들여주는 점은 큰 행운이다.

“작곡가의 의도, 음악적 기호를 해석해 재창조하는 사람을 지휘자라고 했을 때 지휘자가 가진 유일한 단서는 악보예요. 당연히 악보공부에 철저해야죠. 거장 지휘자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악보에 답이 있다’예요. 평생에 걸쳐 공부하고, 탐구해야죠.”

◆ 전세계 클래식 음악계 ‘젊은 지휘자 돌풍’ 중심에 우뚝

전 세계 클래식 음악계는 영국의 다니엘 하딩, 베네수엘라의 구스타보 두다멜, 에스토니아의 크리스티안 예르비 등 젊은 지휘자 돌풍이 거세다. 국내에도 성시연, 최수열, 아드리엘 김, 양승열, 김은선 등이 무서운 기세로 질주하고 있다. 최수열은 이런 흐름의 한 가운데에 서 있다.

“요즘 콘서트는 ‘연주를 보러 간다’고 말하기도 해요. 지휘자의 몸짓 하나하나를 즐기는 청중이 생겨난 거죠. 젊은 지휘자의 경우 음악 외에 볼거리가 많아서 대중의 환호를 받고, 티켓 판매에서도 도움이 되죠. 체력이 좋아 지치지 않고 욕심이 많은 지라 튀는 지휘 동작을 많이 해요. 저도 가만히 있진 않고요.(웃음) 그럼에도 연륜 있는 지휘자의 내공은 무시할 수 없어요. 미세한 움직임만으로도 소리가 물밀 듯이 밀려오는 걸 봤을 때, 젊은 지휘자로선 넘기 힘든 산을 마주한 느낌이죠.”

 

거장 정명훈 역시 “자신만의 지휘 스타일을 찾으려면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제대로 된 지휘를 하려면 나이가 예순은 돼야 한다는 말도 나오는 거다”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취재후기] 무대 위 가장 화려한 자리에서 가장 많은 박수를 받는 주인공이 지휘자다. 수 십명 단원들의 템포를 조율하며 원하는 소리가 나는지를 세심하게 감지해야 한다. 압박감과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지휘자 최수열은 한적한 공원이나 이별과 만남이 교차하는 공항에 혼자 가서 위안을 얻고 재충전을 한다. 해동검도 유단자가 된 이유도 대련 없이 혼자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정을 꾸린 뒤 예전만큼 해동검도를 못 한다”며 웃는 그로부터 싱그러운 욕망이 느껴졌다.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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